2013년 8월 1일 목요일

"나, 주님의 사랑에 안기다" (데이비드 베너 지음/ 유정희 옮김/ 생명의말씀사) 중에서...

... 자신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의 상호의존성에 대한 이해는 기독교 신학에서 지속적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왔다.

“자신을 깊이 알지 않고는 하나님을 깊이 알 수 없으며, 하나님을 깊이 알지 않고는 자신을 깊이 알 수 없다.” (존 칼빈, 기독교의 원리, 서두)

“심오한 지식을 추구하는 것보다 겸손히 자신을 아는 것이 하나님께 가는 더 확실한 방법이다.” (토머스 아 캠피스)

“주여, 제가 제 자신을 알아서 주님을 더 알 수 있게 해 주소서”(어거스틴)

기독교의 영성에는 하나님과 자신을 둘 다 깊이 알 때에만 일어날 수 있는 자신의 변화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신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일 모두는 기독교 영성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진정으로 하나님이나 자신을 알아 가는 데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으로 가득할 수도 있다.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 그러하듯 비본질적인 행위이다.

요컨대 하나님을 아는 것과 자신을 아는 것은 상호의존적이다. 둘 중 하나가 없으면 결코 멀리 나아갈 수 없다. 역설적이지만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다음에 우리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 그 다음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또 다시 우리자신을 바라봄으로써 - 하나님을 가장 잘 알게 된다.

패커는 어떤 사물에 대한 지식에서 사람들에 대한 지식으로, 사람들에 대한 지식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나아갈수록 지식의 체계가 점점 더 복잡해진다고 말한다. “대상이 더 복잡할수록, 그것에 대한 지식도 한층 복잡해진다.” 곁에 있는 어떤 사람을 진정으로 아는 것만도 매우 어렵기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아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로 여겨질 수 있다. 만일 우리보다 하나님이 이를 더욱 깊이 갈망하시지 않는 다면 정말 그럴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로 하여금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려는 데에 있다. 때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좀 멀게 느껴질지라도, 성경의 증거와 다른 사람들의 증언이 있기에 우리는 여전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바랄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은 매우 중요한 것이나, 패커는 “하나님을 조금 아는 것이 하나님에 대해 많이 아는 것보다 더 가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변화를 일으키는 지식은 하나님의 사랑을 친밀하게 인격적으로 아는 데서 온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요컨대 하나님을 아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요일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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