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9일 금요일

1.
누군가를 정말 제대로 사랑하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그 이를 생각하게 되고 그 이 맘에 들려고 애쓰고 그 이가 원하는대로 살게 되어있다. 혹 그 이 맘에 들지 않는 행동을 했더라도, 그 이가 실망할 것을 생각하며 가슴아파하도 '재발방지'를 결단하는 것이다. 우리가 애를 쓰고 또 써도 그 이 뜻대로 살지 못하는 건, 내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 이를 제대로 모르는 것이고, 그 이를 신뢰하거나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를 별로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에서도 그렇다. 하나님의 뜻 - 그게 무엇이든 간에 - 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내가 죄인이라서,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기 때문이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거나, 그의 사랑을 잘 인식,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알면 그 앎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알긴 하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럴 경우 도대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질문을 해봐야 하는 것이다.
신앙에 있어서 내가 알고 있는 것... 내 삶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면 난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별로 없는 것이다.
학문에 있어서... 내 지식, 내가 전달하려고 하는 지식... 그 지식은 도대체 뭐냐? 그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그런 지식이냐? 아니면....
다른 한 편... 앎에 의미를 지나치게 부여하는 것도 좀 촌스럽다. 구식이다. 그래서 '세련된 근대'는 앎과 삶의 분리를 구조적으로 정당화시켰다. 그래서 그런 접근은 편한 구석이 있지만, 자연스럽지는 않다. 통합하려는 것은 인간의 욕망, 아닌 인간 삶의 필요충분조건에 가깝다. 분화되었지만 통합, 연합, 연대에 대한 지향은 켤코 사라질 수 없다. 루만은 그런 접근을 자꾸 경계하고, 분화를 유지시켜야 그나마 파국을 막을 수 있다... 뭐. 그 정도... 참 소박한 생각인 것 같다. '설국열차'에 비유하자면.... 기차를 궤도에 계속 달리게 해야 그나마 단백질덩어리를 먹으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지 않느냐는...
너무 비관적, 소극적 해석인가? 루만은 얼마나 radical해질 수 있을까? 적어도... 사회변혁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적, 기껏해야 법치국가, 복지국가 같은 소극적 대안을 제시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하나? 사회변혁을 위해서? 루만에게서 가능할까?


2.
제대로 알면 변화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참 명쾌하고도 희망을 주는 말이긴 한데... 이 말을 믿고서 좋다. 한 번 제대로 알아보자... 하나님, 예수님, 사랑에 대해서.... 그렇게 마음을 먹는 순간... 또 다른 '진실'과 직면하게 된다. 알려고 해도 제대로 알 수는 없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는... 왜? 하나님은 감추시는 분이기도 하니까.... 감추시는 하나님, 침묵하는 하나님... 알려고 해도 얘기해주지 않는 하나님.... 아니. 어쩌면 하나님은 감추기도 한다는... 그것 자체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기도 하겠다. 우리가 무엇을 안다는 것은 예를 들어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도 포함되니까...
앎은 결국 무지를 드러낼 뿐이다. 앎의 축적은... 무지의 축적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은 쉽게 알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


3.
앎은또한 다양한 경로, 방식을 취한다. 책, 논문, 문자로 전해지는 앎은 매우 일부분일 뿐이다. 그런 알량한 지식에 너무 많은 것을 걸 필요는 없다. 세상에 대한 정보, 지식 중 문자, 책, 논문으로 전할 수 있는 것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삶을 변화시키는 앎이라고? 겨우 책 하나로? 지식 한 조각으로? 알면 알수록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은 실현불가능이라는 앎이다.
하나님에 대해서 안다? 결국은 모른다는 것을 알 뿐이다. 특히 지식으로 이성을 이용해서 이해되는 그런 방식으로 다 파악되는 하나님? 아마 그런 하나님은 인기가 별로 없을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난 그런 표현이 매우 불편하다. 도대체 하나님 무엇을 알고 사랑한다고 표현할까? 물론... 잘 알아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4.
결국 지식, 책, 이성적 진술은... 세상에 대한 정보 중 매우 작고 작은 부분인 것이다. 그래서 예술이 있고, 종교가 있을 것이다. 예배의 감성적 요소를 너무 우습게 생각하지 마세요. 예를 들어... 옥성호씨. 책 몇 권 읽었다고 하나님에 대해서 분명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 마세요. 옥 선생...
논문,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 어쩌면 루만에게서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그런 것 아닐까? 과학은 과학일 뿐이다. 지식은 무지를 낳는다. 매우 포스트모더니즘적.... 최소주의.... 노자적 무위... 무위의 위... 무지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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