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6일 금요일
천박한 역사인식 - 송파도서관의 인조-서흔남 동상
송파도서관 앞 쉼터에 이런 동상이 있다 (사진은 인터넷 검색 결과로 얻은...). 병자호란 무렵 인조와 서흔남이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내용은 대강 이렇다.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할 때 얼마나 혼란이 심했던지 이런 얘기가 전해오고 있다. 인조는 불과 10여 명의 신하를 거느리고 서울을 떠나 송파나루에 이르러 사공도 없는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남한산 기슭에 이르렀을 때는 날은 이미 어둑어둑했을 때였다. 날은 춥고 산길은 험한데 눈까지 내리니 신하들이 임금을 번갈아 업고 산을 올라가는데 모두가 지쳐 쓰러졌을 때,때마침 산에서 나무를 해 가지고 내려오던 한 나무꾼이 이 광경을 보고 자기가 임금을 업고 모시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바로 그 나무꾼이 서흔남이라는 사람이었다. 서흔남은 인조를 업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인조는 서흔남을 생명의 은인처럼 생각하고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배운 것이 없는 서흔남은 임금이 입고 있던 곤룡포가 그렇게 좋아 보였던지 임금이 입고 있는 곤룡포를 달라고 했다. 대신들은 저렇게 무례한 놈이 어디 있느냐고 야단을 쳤지만 임금은 아무말 없이 자신의 곤룡포를 벗어 상으로 내 주었다. 그후 서흔남은 평생동안 임금의 곤룡포를 소중히 간직하다가 죽을 때 유언으로 자신의 무덤에 함께 묻어달라고 해서 자손들이 그렇게 해주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도서관 다니면서 별 생각없이 보다가 이런 배경을 알게 되고 사뭇 분개했다. 지금도 볼때마다 불편하고 짜증난다. 무능한 탓으로 나라와 백성을 크나큰 어려움에 처하게 왕 인조의 피난길에서 임금을 도와 준 일이 21세기에도 기념해야 할 일인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동상을 세웠을까? 나랏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도와야한다? 서흔남을 배우자? '군사부일체, 임금을 섬기는 것처럼 스승과 아버지를 섬겨라... 뭐 그런 왕조시대 이념을 전파하고 싶은 것일까? 이 지역에 내려 오는 이야기가 한둘이 아닐텐데, 고작 이런 이야기를 '미담'인양 동상까지 세워서 기념하는 그 배짱과 천박한 역사인식을 생각하면 할수록 치가 떨린다. 대한민국엔 인간관계를 상하로 구분하고 '상'(혹은 갑)에 대한 '하'(혹은 을)의 복종을 '찬양하는' 왕조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것이다. 저 동상이 공공도서관 마당에 떡허니 자리잡고 있는 사태의 의미를 나는 그렇게 해석한다.
ps1) 인조, 서흔남 에피소드를 굳이 현대적 상황으로 끌어오자면...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이승만 대통령도 피난을 가야 했다. 그 과정에서 이승만이 탄 차가 갑자기 고장이 났다. 당황해 하고 있는 이승만에게 어떤 피난민이 자신의 차를 내어주고 정작 본인은 걸어서 피난을 갔다. 이런 일이 만약 일어났다면 우리는 이를 미담이라고 널리 알려야 할까?
자랑스럽게 기념해야 할 역사적 사건이 있고, 부끄러운 역사지만 교훈을 얻기 위해서 기억해야 둬야 할 일도 있다. 하지만 그러저러한 역사적 가치도 없고, 막상 알려지면 당사자에겐 창피한 일일 뿐인 사건을 굳이 널리 알릴 필요가 있을까?
ps2) 좀 더 찾아보니 서흔남은 그저 인조를 업었다는 것 이외에도 병자호란 관련 역사적 흔적을 남긴 인물이었다. 남한산성 밖으로 인조의 유서(諭書)를 전하는 등 여러 차례 성 밖을 왕래하며 명령을 전하고 적정을 탐지해서 전쟁 후 통정대부(정2품 당상관)의 품계를 줬다는 것이다(동상 설명문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음). 남한산성역사관 옆에 묘비도 세워져 있다고...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의 서날쇠가 서흔남이었다니... 새삼스럽다. 그렇더라도 해도 무능한 임금을 피난 중 업었던 이야기를 굳이 동상으로까지 만들어서 기억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ps2) 검색해서 들어오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 일부 표현을 수정하고 덧붙였습니다. 표현이나 논지전개가 여전히 좀 거칩니다. 이해해주시길...
분개하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 이야기가 나온 곳이 광주군이었으며 송파도서관이 속해있는 송파구는 남한산성이 있는 송파,하남,광주일대였기때문에 설화로써의 기념으로 써놓은 것입니다. 당장 남한산성과 접해있는 마천동,거여동은 그 이름의 유래부터 시작해 임경업 장군의 설화,일화를 기념해놓은 곳이 많습니다
답글삭제남이 잘 보지 않는다고 좀 과하게 감정을 쏟아놓은 글을 읽으셨군요. 죄송... 네. 물론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려고 세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역사적 사건 중에서, 무능해서 나라를 위태롭게 한 임금 피난을 돕는 왕조시대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다룬 동상을 다른 곳도 아니고 송파도서관에 세우겠다는 발상... 그런 사고의 흐름이 탐탁치 않은 겁니다. 위대한 인물의 업적을 기리는 것이야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다. 역사에서 배울 수 있다면 패배나 부끄러운 것도 기념해야지요. 예를 들어 "삼전도비" 같은 것은 전 그 자리에 놔두고 반성의 계기로 삼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무능한 임금에 관련된 고사를 '미담'처럼 전시하고 기념하게 하는 발상은 쉽게 용납하기 힘들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저처럼 느끼는 사람이 많다면 그런 동상이 세워지지도 않았겠지요. 제 의견이 소수일거라고 생각은 합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