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1일 화요일

아. 베버도 좀 제대로 공부했어야/해야 하는데... 쩝... 진태원 선생의 명쾌한 정리!

(p.s. 루만은 사회학 전통과의 단절을 애써 강조했고 실제로 글 속에서 고전사회학자들에 대한 언급은 찾기 힘들 정도지만 어쩔 수 없이 고전사회학의 성과 위에 자신의 이론 건물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베버, 뒤르케임 등의 영향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베버의 논점은 탈주술화로서의 합리화를 통해 근대인은 자기 삶과 세계에 대해 이전의 사람들과 전혀 다른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것이다. 근대인에게 자연을 포함한 세계는 더는 숭배와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정복과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더 나아가 인간의 삶 자체가 더는 내재적인 의미를 갖지 않게 되었다. 베버는 그것을 죽음에 대한 상이한 태도에서 찾는다. 생명의 유기적 순환 속에서 삶을 영위하던 전통 사회의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완성을 뜻하는 것이었다. 반면 무한한 진보와 끊임없는 변화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근대의 인간에게 죽음은 의미 없는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 진보 자체가 어떤 궁극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을뿐더러, 인간의 삶이란 그 진보의 선상에 놓인 작은 한 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베버의 탈주술화 테제는 신은 죽었다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의 사회학적 변용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탈주술화로서의 합리화 과정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인가? 베버는 그렇다고 믿었으며, 그것을 우리 시대의 운명으로 간주했다. 이것은 이제는 집단적인 변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함축한다. 과거에는 예언자의 성령 아래 대중의 격렬한 열정을 동원하는 것이 가능했다면, 이제 그것은 광신적인 종파를 만들어낼 뿐 진정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없다. 따라서 베버가 볼셰비키 혁명을 “혁명이라는 자랑스러운 명칭으로 장식되고 있는 광란제”(‘직업 및 소명으로서의 정치’ 강연)라고 조롱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근대인에게 남은 것은 각자가 자기 인생을 조종하는 정령(Daimon)을 찾아 그에게 복종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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