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4일 토요일

한겨레신문 정희진 칼럼 중 일부다.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한 가장 첨예한 쟁점은 포스트(post)라는 접두사의 해석에 있다. 프랑스어에서 시작된 용어가 영문학에서 주로 연구되었으니 그 차이에다 영어의 포스트의 의미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후(以後), 탈(脫), 반대, ~ 넘어서, ~ 뒤에…. 시간적 의미에서는 후에 오는 것 같지만, 공간적으로는 뒤에 위치한다고 생각하므로 이전(以前)을 뜻하기도 한다.(예를 들면 ‘한국의 현재는 미국의 80년대와 같다’는 사고가 그렇다.)

포스트는 최근 인류 300년 역사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담론이다. 이 논쟁에서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시간은 순서가 아니라는 것.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 순으로 흘러 앞으로 나아간다는 개념은 근대에 고안된 것이다.

흔히 생각하듯 봉건 다음에 근대, 근대 다음에 탈근대가 아니다. “근대가 실현되지도 않았는데 무슨 탈근대?”라든가 “시대착오, 시기상조” 식의 논쟁 구도는 이미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이다. 직선적 시간은 근대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이전의 시간 개념은 내부가 닫힌 순환하는 원(圓)의 구조로서 미래라는 개념이 없었다.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을 본격적으로 제기한 고전,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던의 조건'의 부제도 시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지식의 문제’(rapport sur le savoir/a report on knowledge)이다. 총체적 거대 서사에 대한 비판과 재현(표상)의 위기. 인식의 안정성, 확실함, 합리성, 이런 가치들이 도전받기 시작했다. 리오타르의 주장은 서구가 독점했던 단일 주체의 단일 시간에 대한 성찰이다.

하지만 사실과 언어의 불일치는 본디 당연한 것이다. 이 혼란이 민주주의이고 탈식민주의다. 서구가 ‘지리상의 발견’을 했다면 우리는 발견된 ‘것들’인가? 근대의 주체가 개척하는 인간이라면, 개척당한 자연은 근대의 타자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모던의 기준이 백인 남성이라면, 흑인이나 여성은 그 자체로 포스트모던한 존재가 된다.

포스트는 실제 이후가 아니라 인식 이후를 말한다. 포스트모던은 기존 역사를 혼란시키기 위한 것으로 모던과 갈등을 일으키는 모든 개념을 말한다. “포스트모던은 근대성의 일부임이 분명하다. 근대의 끝이 아니라 새롭게 생성되는 근대이다.”(177쪽)

뭐. 대략 공감할 수는 있는데 따지고 들면 불만족스러운 점들이 눈에 띈다. 시간에 대한 직선적 사고는 대개 근대의 산물이라고 얘기 한다. 유대교나 기독교에서는 역사가 종말과 심판을 향해서 '진행'된다고 보는데 그것도 직선적 역사관 아닌가? 다시 말해 직선적 사고관 자체는 근대만의 산물은 아닌 것이다.  근대적 역사관의 핵심은 시간이 흘러 앞으로 간다는 개념 뿐 아니라 그 진행을 '발전'으로 보는 견해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유대교, 기독교에서는 역사는 종말, 심판을 향해서 진행되는 어쩌면 부정의 변증법적 전개로 보니까. 사실 '발전'이라는 표현에는 직선적 진행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니까, 발전적 역사관이라는 표현으로 근대의 역사관을 표현할 수 있겠다. 포스트 모던은 직선적 역사관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발전이라고 보는 역사관에 대한 비판이다. 역사를 발전으로 보는 것은 매우 근대적인, 서양중심적인 발상이니까.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역사의 지평이 완전히 달라졌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근대 이전에는 다른 지평 속에서 다른 시간적 기준, 종말적 기준, 문화적 물질적 수준을 가지고 살았던 다양한 문명이 공존했다. 근대는 곧 세계사회다. 세계 시간, 역사적 시간 등이 지배하는 것이다. 지역적 독특함은 세계적 전망과 지평 속에서 새롭게 창조된다. 근대의 무시무시함이다. 근대 이전의 다양한 경험, 전망, 기억을 무력화시킨다. 근대적 세계관의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서는 어떤 개념, 담론도 유통될 수 없다. 포스트모던? 그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근대의 힘을 '서구중심주의'라고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부정할 수 있는 것은 발전론적 역사관이다. 서양에서만 역사가 발전했고, 그래서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는 그런 사회진화론적 발상이다. 하지만 근대의 힘은 '서구중심주의'적 세계관과 동일시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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