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의 송강호가 내린 선택은 감동적이다. 하지만 시대정신에 눈뜨고 양심의 소리에 응답한 그의 모습이 2주 동안 600만명이 넘는 사람이 극장으로 달려간 이유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욕망을 양심과 양립시킬 수 없던 시대상황은 보는 것만으로도 환멸을 불러일으킨다. 정부가 최소한의 ‘질’을 갖추지 못하면 시민은 작은 양심을 지키는데도 많은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국가란 국민이다”란 당연한 말을 용기를 갖고 외쳐야 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품격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만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란 최소한의 품격이 지켜지는 사회다.
김동조 선생은 블로그에 이 칼럼 후기 같은 글도 남겼다.
"'변호인'이 다룬 시기의 한국에는 품격을 논할 여유가 없었다. 정치적 여유 뿐 아니라 경제적 여유도 없던 시기였다. 하지만 국민 소득 2만 3천 불의 시대에 그때를 돌아보는 느낌이 그 당시를 살은 이들과 같은 수는 없다. 지금은 이집트와 중국과 이란에도 민주화의 바람이 불어오는 그런 시대다.
품격의 마지막에는 사회적 위선이란 게 있다. 사회의 모든 공적 품위에는 위선적인 면이 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공적인 장소에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면 사회적으로 매장된다. 차별이 남아있는데 차별적인 발언을 경계하는 건 위선적일 수 있지만 위선이 없으면 공적 품격도 무너진다.
안타깝게도 한국사회에서는 최소한의 공적인 품격이 너무 쉽게 무너진다.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는 건 물론이고 그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공공연하게 발언하는 위선조차 없는 자들 때문이다. 독재자에 대한 향수, 동성애자들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 가난한 자들에 대한 경멸 같은 것들이 너무 쉽게 보인다. 그런 태도를 보이는 자들에게 위선을 강제하는 교양이 결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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