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출판문화는 틔우지 못한 꽃망울이다. 서점의 경우를 보자. 조선 조정은 서점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수차례 설치에 대해 논의했다.
하지만 서점은 설치되지 않았다. 서점이 생겨도 책이 원활하게 유통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지었기 때문이다. 사대부들은 책을 거래 가능한 물건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또 서점을 유지할 만큼 책의 양도 많지 않았다. 책쾌 같은 민간 차원의 서적 유통업이 존재하긴 했지만 영향은 미미했다. 저자는 국가독점체제가 출판문화의 숨통을 조였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임진왜란이 겹치면서 출판문화가 붕괴됐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역설적이게도 일본은 임진왜란을 통해 습득한 조선의 책과 활자를 바탕으로 출판문화를 꽃피웠다. 18세기 초 일본의 서점은 전국적으로 300곳이 넘었고, 청나라에서는 대규모 서점 상가 ‘유리창’이 번성했다. 하지만 동북아시아에서 유독 조선만 서점이 없었다. 서점의 부재는 결국 지식 시장의 부재를 의미한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금속활자의 나라라는 자부심이 무슨 소용 있는가”라고 되묻는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민간에 급속도로 확산됐는데 세계의 자랑 금속활자는 국가의 손아귀에만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은 저자가 보기에 개탄스러운 일이다.
세종 이후 한글로 쓰인 책은 한문의 번역물뿐이다. 천대받은 한글은 문자적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출판문화를 견인하지 못했다. 조선시대 한국어로 사유한 책을 찾아보기 힘든데 저자는 이것도 비극이라 말한다 .
이 서평을 소개한 페친 최낙언님의 一喝
"세계최초의 금속활자? 자랑이 아니다. 그리스 시대에 건전지, 증기기관을 발명했다와 아무 차이없다. 세상을 바꿔야 제대로된 발명이다.
한겨레 기사가 더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강명관 부산대 교수의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는 ‘세계 최초’ 금속활자는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고 말한다. 고려의 인쇄기술을 이어받은 조선에서 활자의 제작, 인쇄와 출판, 유통은 ‘주자소’와 ‘교서관’ 같은 국가기관이 사실상 독점했다. 즉 지식의 공급처 및 유통 주체는 국가였다. 어떤 책을 찍을지는 왕과 관료들이 결정했다. “그들은 체제 유지를 위한 책만 찍어냈다.” 사서삼경 같은 유학 서적과 대중 윤리서가 가장 많이 인쇄됐다. “군신, 부자, 부부 사이의 차별적 윤리의식”을 담은 <삼강행실도>는 아예 법률(<경국대전>)로 정해 보급에 주력했다. 구텐베르크 인쇄술이 중세를 붕괴시키는 쪽으로 작용한 반면, 조선의 금속활자는 중세 체제를 고착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왜 국가 독점이 유지됐을까? 지은이는 몇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일단 표음문자인 알파벳과 달리 표의문자인 한자는 글자 수가 너무 많다. 알파벳은 24자×α의 활자를 만들면 되지만, 한자는 4만여자×α의 활자를 만들어야 했다. 조선은 금속활자 제작 때 한 글꼴당 10만~30만개의 활자를 만들었다. 더구나 금속활자의 원료인 구리는 국내에서 거의 나지 않아 일본에서 수입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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