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식히려고 도서관에서 집어 든 책이 "예수와 다윈의 동행"(신재식)이다. 시작 부분이 인상적이다. 밤하늘의 별이 주는 상상력이 종교적 감수성을 깨운다는 이야기다.
"사실 우리가 물려받은 종교적 가르침 대부분은 이런 장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종교적 상상력을 통해 구성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화가 우리의 삶에서 일차 환경이 되면서, 자연의 경험은 관심의 뒤꼍으로 몰러났습니다. ... 자연이 아닌 문화가 우리들의 자연스러운 환경이 되었습니다. ... 우리의 종교 생활을 지배하는 일차적인 환경도 더 이상 자연이 아니라 문화입니다. 우리가 물려받은 종교적 신념이나 의례, 이 모든 것이 '문화화'되었습니다. 문화는 종교적 상상력을 박제화해 교리나 제의를 만들었습니다. 박제화된 교리나 제의는 자연에서 얻은 종교적 경험과 그 경험에서 나온 종교적 상상력을 퇴장시켰습니다. 잃어버린 종교적 상상력을, 자연의 상상력을, 별의 상상력을 다시 회복하는 길은 직접 자연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순례를 떠납니다. 21세기 과학 문화 시대를 살아가지만, 최초의 근원적인 종교적 상상력을 경험하기 위해서 길을 떠납니다" (8 - 9)
매우 인상적인 도입이다. 물론 책의 내용은 훨씬 더 난해하지만...
저자가 인식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도입의 이 내용은 정확하게 "전통-근대-탈근대"의 역사 발전 도식을 반영하고 있다. 자연의 경험 (야만, 신화적, 미신, 가난, 신분제, 개인 억압, 생존의 문제) - 문화의 경험 (문명, 탈자연, 이성, 합리성, 탈주술화, 개인화, 생태계 파괴, 탈인간화, 노이로제, 나눔의 문제, 오래 살기) - 다시 자연으로... (초월, 영성, 자연, 녹색, 생태적, 공동체, 공감, 잘 살기... ).
루만을 좀 얘기하지만...
루만은 근대의 성취를 강조하지만, 동시에 근대 비판적이기도 하다. 어쩌면 말년에 강조점이 후자로 이동했는지도... Inklusion에 대한 관심, 그리스 TV 인터뷰 등에서 확인되듯...
루만의 근대 비판은 어떤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가? 그는 근대를 결정짓는 현상들, 개인화, 기능적 분화 등은 매우 비개연적이라는 말을 했다. 이런 비개연적인 근대의 사회구조를 지탱가능하게 만들려니 현대 사회는 그야말로 복잡한 규제, 통제 장치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탈자연적인, 탈인간적인 사회-기계를 만들어내었다. 이 사회-기계은 매트릭스 같아서 인간은 그저 부속품처럼 이용될 뿐이다. 물론 사회 밖에서야 오히려 자율성을 갖게 되지만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해서 살아가려면 부속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죽는다고 사회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최적화된 사회는 그 효율성에서 떨어지는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복지제도고 각종 사회보장, 사회사업이다. 인권=개인주의=개인의 권리=평등...은 이렇게 유지되는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인간의 사회로부터의 분리, 배제의 평등이기도 하다. 물론 근대는 전근대의 여러 모순, 문제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없진 않다. 하지만 근대는 재봉건화, 파괴적 측면도 있는 것이다.
근대의 성취를 더 얻어내고, 정착시키는 것도 분명히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그것으로 근대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탈근대적 상상력이 필요한데, 그것은 주로 생태적 상상력으로 드러난다. 녹색!! 자연!! 자연에 대한 상상력, 종교적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그것은 탈봉건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윤리, 영성은 녹색 만큼 새로운 상상력의 원천이 되기 힘들다. 왜? 영성 역시 녹색/자연적 상상력을 통해서 비로소 새로운 기운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덕, 윤리는 어떤가? 도덕, 윤리는 기껏 기존 사회체계, 사회구조, 사회질서를 정당화할 뿐이다. 기능적으로다가... 윤리는 현대 도덕, 윤리가 기껏 그렇게밖에 되지 않음을 경고해야 한다. 이는 인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권 자체는 대단한 상상력의 원천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여성? 여성주의? 흠. 그것 역시...
자연, 생태적 합리성, 생태적 지속가능성만을 줄기차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까?
당장 근대적 질서가 무너지면 고통받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니면 녹색 상상력으로 근대적 질서를 재구성할 수 있을까?
여하튼 도덕, 윤리는 해답이 아니다.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다. 주변부 근대에서는 더더군다나...
한국 국가는 전형적인 발전 지향적 국가이고, 윤리는 거기에 종속될 뿐이니까. 그마저도 없을 때 보나는 나을까? 뭐. 그렇다고 볼 수는 있겠지. 윤리에 대한 경고!!가 결론인가? 국가의 한계? 국가중심적 윤리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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