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 논의, 복지국가 논의가 공허한 이유.
공공성, 즉 "공적 질서" 이해의 출발은 공과 사의 구분이다. 아니. 어떤 방식으로 공과 사가 이해되느냐의 문제다. 조선시대라고 공과 사의 구분이 없었을까. 오히려 더 분명했다. "공직" 개념이 대표적인데, 공적인 것은 대부분 국가, 나라의 활동, 그에 대한 참여와 관련된 것이었다. 이는 아마 서양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서양에서 공과 사 구분의 획기적 전환은 시장경제의 등장, 소유권 확립이었다. "개인주의" 개인의 권리 보호 같은 이념을 근거로 공과 사의 개념이 정립되었다. 한국의 경우는 공과 사 이해는 개인주의에 근거를 삼고 있지 않다. 전통시대의 연장에 가깝다. 공공성에 대한 서양 이론은 그것이 하버마스든 루만이든 대개 개인의 권리, 개인주의를 전제로 하고, 그런 공감대가 제도화된 사회에서의 공공성을 이야기한다. 그런 역사적 맥락, 논의 전제조건 자체가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양이론에 기초해서 공공성을 갑론을박하니 논의가 겉도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변호인에서 고문 경찰은 자기 자신이 그 어느 누구보다도 공적 이익에 충실하게 복무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에게 공적 질서는 국가, 공동체니까. 개인의 권리 보호가 공적 기관의 기본 역할이라는 '근대적' 공공성 이해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한국에서는 공공성, 공적 영역, 공적 업무 등에 대한 이런 기초적 공감대마저 없는 형편이다.
논의의 공허함은 복지국가 성격 논쟁에 있어서도 발견된다. 사회권의 발달을 복지국가의 전제조건으로서 많이 이야기하는데, 한국에서는 개인의 권리 중심으로 국가 정책이 발전되고 집행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개인들의 연대의 권리 주장에 대한 수용으로서 권리 인정, 복지 확대가 대부분 시혜적이다.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 Paternalism. 물론 한국 전통에서 위에대한 권위에 쉽게 굴복한 것만은 아니다. 저항, 투쟁, 반란의 역사도 만만찮다. 평등, 자유, 개인주의 같은 근대적 이념으로 연결도지 않았을 뿐. 서양, 특히 기독교 전통에서는 신 앞에서 평등, 개별자로서 만나기... 등의 역사가 근대적 개인주의의 토대가 되었다고 하는데... 글쎄... 여하튼 근대적 의미의 자유, 개인주의는 역시 프랑스 혁명 이후가 아니던가? 자본주의의 발달도 한 몫을 했고. 정치적 질서가 안정되었던 아시아에서는 그런 시도가 없어서 오히려 한 발 늦기도 했을테고.. 여하튼 한반도 맥락에서 투쟁, 저항은 개인의 권리, 개인주의 발달로 이어진 경험이 없다. 식민지 경험, 전쟁 경험, 분단도 그런 발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고. 주된 흐름이나 저항의 흐름이나 공동체, 집단, 국가를 중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 역사에서 1960년 4.19나 1987년 정도가 그런 변화를 기대할 수 있었던 계기였을텐데... 민중운동,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도 모두 새로운 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삼았으니까. 개인주의 운동, 자유주의 운동... 그런 전통은 한국에서 전무하다시피. 겨우 전경련의 자유기업원, 공병호, 복거일 등이 생각 날 뿐이니까. 인권 운동이 그나마 주목할만하다. "인권"!!
개별자 존중, 개별자 간의 연대로부터의 개혁 요구. 그로 인한 사회 질서의 변화... 이런 경험의 역사가 거의 없다. 집단으로서의 힘에 대한 집단의 대응이 있었을 뿐. 민주화 운동? 노동운동? 모두 개인의 권리, 인권의 발달과는 거리가 멀다.
어쩌면 인권 운동이 한국에서는 가장 급진적인 운동이 될수도. 좌파, 우파에게 모두 비난을 받을 수 있고. 인권의 더 급진적 버전이 동물권, 동물권 운동은 더 급진적이 될수도... 혹은 무정부주의, 자유주의 등도.
여하튼 복지국가의 드러난 모습, 제도, 지표 (재정 지출, 헌법 조항, 정책 목표, 각종 복지제도 확대)만 가지고 복지국가를 이야기하면 좀 답답하다. 복지국가 논의를 왜곡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결국 개인, 자율성, 개인주의에 대한 공감대 부족이다. 시혜적인 접근, 국가만 바라보는 접근으로서는 이 문제가 해결되기 힘들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