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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배운 중요한 진리
주일예배 설교차 부산 세계로병원에서 오신 이혁진 선교사님과 식탁교제 하다가 중요한 걸 알게 됐다.
세포마다 경계선인 막이 있는데 그 막이 없으면 세포는 살 수 없다. 또 그 막에는 세포 사이의 소통과 교류 채널로 미세한 반투과성 구멍(pore)이 들어서 있단다.
반투과성이라는 건 어떤 물질은 통과되지만 어떤 물질은 통과될 수 없는 semi-permeable한 형태라는 것.
이 세포의 구조는 은유적인 맥락에서 내가 아직 채우지 못한 공동체 책의 결론으로 끌어들이기에 안성맞춤의 맥점을 가지고 있다. 서구 2000년 기독공동체의 경험과 국내 200여 년 또는 100 수십여 년 기독교 공동체의 실험에서 드러난 성패의 핵심 관건은 첫째, 규모의 문제, 둘째, 개인의 고유한 자유와 공동체의 규율 사이의 탄력적인 조율의 문제였다.
이상적인 해법은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존중하며(생물학적으로 개체생명의 세포막를 중시하며) 동시에 공동체의 규범을 세워나가는 것인데(반투과성의 그 구멍으로 공동의 코드를 교신하며 공유하는 것), 그 실천적인 효용의 맥점이 모호하다.
공동체 개체 구성원들 사이의 그 구멍으로 통과시킬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목록을 짜는 것이 긴요한 후속 과제가 되겠다.
교리학자와 조직신학자는 그 정밀한 체계 너머를 상상하기 위해 생물학자를 친구 삼아 배워야 한다.
성서학자도 그 산만함을 정돈하기 위해 천체물리학자를 벗으로 영접하여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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