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ional/ global, East/ West, Korean/ foreign, underdeveloped/ developed...
이런 이분법은 참 식상하다. 재미없다. national culture (단수!)에만 치중하면 이해하기 쉽고 그래서 대중에게도 '어필'하기 좋지만 (왜? 상식에 부합하니까. 일본과 한국 문화? 당연히 다르다. 독일과 미국도 다르고. 등등), 정말 그런가, 이렇게 연결되고 동시에 관찰하는 사회에서... 뭔가 석연찮다. 또 정반대의 경햐, 문화의 수렴, 동질화 테제도 설득력이 있고 그 역시 상식에 부합한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또 한가지 한국문화를 자꾸 예외적인 것으로 몰고 가고 (비정상), 발전된 서양의 문화가 지향해야 할 정상으로 보게 되면 그건 자존심 상하는 일일 뿐더러, 또 서양의 상황을 보면 그렇게 이상적이지도 않으니까 설득력도 떨어진다. 일부는 배우고 일부는 배척 혹은 심지어 가르쳐주기? 뭔가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자기비하와 (한류에 대한 과잉의미부여처럼) 과대망상 사이를 오가기 쉽다. 아. 정신분열... 조울증...
근대사회는 이미 그 내부에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루만도 잘 지적했듯이 국가주의(민족주의)는 전근대적 현상이 아니다. 정확하게 기능적 분화라는 사회구조적 변화와 같이 등장한 것이다. 집단에 대한 지향은 여전히 강력하게 작용하는 문화다. 어디에서건... 유럽에서도. 반대로 아시아에서도 차이의 문화가 발견된다. 개인주의도 그렇고... 이 두 문화의 뿌리를 지역적으로 대비시키는 것도 우습다. 다만 지역적 차이를 무시할 수 없다. 지역에 따라 그리고 또 시대에 따라 어떤 문화가 더 강하게 등장하는가, 바로 거기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사회구조적 조건이 있을 것이고.
"Semantik der Einheit"와 "Semantik der Differenz"는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한다. 어떤 문화가 더 강한가, 약한가... 그것을 봐야. 예를 들어 생명과학의 윤리! 한국이라고 왜 없었을까? 그게 어느날 갑지가 국가가 결정해서 도입되었을까? 노우! 전통적인 윤리도 있었고, 의료윤리도 있었고, 80년대 되면 생명과학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인식도 이미 전파되었고 공유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더 강력하게 확산되지 않았을 뿐이지... 생명윤리, 혹은 연구윤리 등이 상대적으로 쉽게 수용되었던 원인을 국가의 강력한 개입으로만 돌리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전통적인 문화의 요소는 비록 형식과 내용은 다르지만 - 생명윤리 - 그것을 쉽게 수용할 수 있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세계문화이고 세계사회의 지역으로서 한국, 세계화된 과학에 참여하면서 그 문화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 차이의 문화를 더 이상 무시하거나 주변적 이슈로 처리할 수 없을 정도가 된 것이다. 이 차이를 인식하는 일은 매우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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