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영향력이 확 줄어들 일은 않겠지만, 그렇다고 많은 변화를 기대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바우만의 얘기다. 변화의 가능성은 오히려 시 단위의 지방정부와 그 연합에서 찾을 수 있다는... 어쩌면 사회학자들도 국가 단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닌지. 알게모르게 방법론적 국가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심지어 세계사회를 얘기하는 루만도 은근히 국가주의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지 않는가...
"바우만 = 미국의 정치학자 벤저민 바버가 몇 달 전에 출간한 책이 있어요. <만약에 시장들이 세상을 통치한다면(If the mayors ruled the world)>입니다. 시장은 선거로 뽑혀 시를 통치하죠. 시보다 상급은 주정부, 연방정부, 국가이고 그 하부는 개별적 정치층입니다. 가족, 친구, 이웃 등등이오. 도시는 이 둘 사이에 있고 상부와 하부 그룹 모두에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안 = 도시의 경우 국가보다 오히려 역사가 오래 됐네요. 한국에도 상당수가 왕조시대부터 도시기능을 활발히 해온 곳입니다. 나름의 정치와 권력이 결합된 진행방식이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바우만 = 그렇죠. 영토를 소유한 주권국가가 생긴 것은 베스트팔렌조약이 있던 1648년입니다. 종교전쟁을 끝내기 위해 유럽 대표들이 모여 영토 주권을 수용했죠. 벤저민 바버가 꽤 정확하게 말했는데요. 당시는 전쟁을 막기 위해 특정 지역 거주민의 국가 종속을 인정하는 영토주권 방식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세계화 때문에 상호 의존적인 상황이라 국가적인 접근은 시대에 맞지 않다는 겁니다. 오늘날 글로벌 이슈로 벌어지는 상호의존적인 의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쟁보다 협력해야 되는데 국가는 협력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어요. 자국의 영토를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 수비하라고 생긴 거니까요. 그래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위가 시 정부라는 겁니다. 이보다 낮은 단위들은 너무 약하고요. 서울, 런던, 뉴욕 같은 도시가 규모도 적당하고 인구밀도도 적당합니다. 지구상의 인구 절반이 도시에 살고 있어요. 개발도상국은 70%가 넘어요. 국가라는 단위는 복잡한 관료체계를 유지하면서 소통의 네트워크가 이웃 단위의 감성까지 끌어안을 수 없는 추상적인 체제인데 비해 도시는 지역공동체를 수용하는 소통을 하며 통합해 나가는 체제입니다. 이는 유토피아적인 개념이 아니에요.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지.
안 = 시장들이 모이는 강력한 국제의회까지 바라볼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1000여 지방정부가 모인 ‘지속가능성을 위한 세계지방정부’(ICLEI)의 경우는 이미 로스앤젤레스 대기오염을 개선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도 서울, 수원, 성남 등 많은 도시가 참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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