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0일 목요일

1. 굳이 기독교인으로서의 원칙, 양심 운운하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도 용인될 수 없는 어떤 부도덕한 행위. 고민할 여지 없는 비판의 대상이다. 원칙을 중시하는 편이고, 지금까지 그런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할 일이 많지 않았다. 대개 남에게 적용할만한 것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나이를 먹고 삶이 복잡해지고 이해관계도 복잡해지면서 내 문제에 적용해야 할 경우들이 늘고 있다. 타협한 적도 있고, 타협하려는 유혹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해관계란... 결국 욕망, 욕구, 필요의 문제다. 그것을 채우기 위한 방법의 문제다. 욕망이 작을수록 쉽게 비판할 수 있다. 욕망이 클수록, 타협해야 할 일은 많아지고, 유들유들해지는 것이다.

페친 박남일 님의 이야기가 공감된다.

글과 글 7
사는 게 편하면 글쓰기가 불편하고, 사는 게 불편하면 글쓰기는 편하다. 가진 게 부족하면 글이 풍족하고, 가진 게 풍족하면 글은 부족하다. 글을 써서 가난해지는 게 아니라, 가난하니까 글이 써지는 것이다.


2. 타협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려면...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으면 된다. 굳이 편법이나 꼼수를 쓰지 않고 원칙대로 정정당당하게 살려면 그만한 실력과 능력을 갖추면 된다.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는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아더라도, 내가 살고싶은대로 살기 위해서 '성공'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김혜리 기자가 이동진 평론가에 대해 했다는 얘기가 절실하게 다가온다.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기 위해 하고 싶은 것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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