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어떻게 ‘체제’와 ‘피해자’가 이토록 무매개적이고 원초적으로 대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 국가와 피해자가 직접 마주 서야 하고 원망이든 기대든 분노든 모두 국가의 역할을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될 수밖에 없는, 이 ‘전도된 국가주의’는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집단의 이름도 소속 조직도 내세울 수 없는 자원봉사자 개인 이외 누구도 허용되지 않는, 이 기묘한 비정치적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 국가와 개인만 있고 그 사이가 텅 빈 공간처럼 되어 있는 사회는 권위주의나 전체주의에 취약하다. 다양한 자율적 결사체들이 국가와 개인 사이에서 중간집단 내지 매개집단의 역할을 얼마나 풍부하게 할 수 있느냐에 따라 현대 민주주의의 질은 결정된다고도 할 수 있다. 모든 문제를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에서 시민 권력이라는 민주주의의 동의어는 듣기만 그럴싸한 공허한 말에 불과하다. 개인화된 대중사회에서 그 공허함을 채우는 것은 여론이 되는데,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결사체의 기반이 약할수록 맹목적 도덕주의가 지배하게 된다. 역설로 들리겠지만, 도덕을 강조하는 사회일수록 더 도덕적일 가능성은 줄어든다. 죄의식과 선의가 인간 공동체의 토대가 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개인의 내면적 결단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동원되고 강요될수록 선한 사회의 기반은 약해진다.
이택광 선생은 이에 대해서 조금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이런 논쟁 재미있네.
"개인과 국가가 직접 대면하는 상황을 좌파는 혁명적 상황이라고 부른다. 과연 지금이 그런 상황인가. 강한 국가가 있는 게 아니라 역설적으로 진보의 이름으로 강한 대통령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택광 선생은 이에 대해서 조금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이런 논쟁 재미있네.
박상훈 선생님이 생각하는 국가가 뭔지 궁금해진다. 우리가 목도하는 건 민간기업에 의존하지 않으면 해상구난조차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형해화된 국가라는 껍데기일 뿐이다. 이건 강한 국가가 아니라 거의 없다시피한 국가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