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2일 화요일

지난 십수년 동안 많은 공적 논쟁이 있었다. 정보들이 난무하는... 그 중 스스로 가장 자신있게  판단내릴 수 있었던 경우는 아무래도 '황우석 사태'. 천안함 침몰 논쟁은 덜 그랬고 - 하지만 그들의 처신이 너무 허접해서 결론을 상대적으로 쉽게 유추할 수는 있었다 - , 이번 세월호 침몰의 경우엔 더 모르겠다. 게다가 한국 재난 구조 체계 같은 얘기는 더더욱...

세월호 사태를 겪으면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전문지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절감한다. SNS를 통해서 서로 부딪히는 정보들이 난무한다. 어떤 정보들은 합리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금새 그 허약함이  드러난다. 평소에 나름 합리적 판단을 하는 페친들도 별 근거 없어보이는 주장에 혹하는 약한 모습을 보인다. 어떤 주장이 "합리적 의심"의 대상인지 가까운지 찾아가는 과정이 쉽지 않은 것이다. 그나마 가장 믿을만한 방식은 해당 분야를 잘아는, 신뢰할만한 사람의 진술을 좇아가는 것이다. 예컨대 KBS가 7시 경에 이미 속보를 냈다가 그것을 나중에 감췄다는 주장에 대해서 방송국 사정을 잘 아는 김형민 피디가 반박한 것들. 

이런 논쟁을 결정짓는 것은 문화나 프레이밍 같은 유연한 개념이 아니라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다. 물론 전문지식이 충돌하는 경우들도 있다. 

여하튼 한국에서 전국민의 주목을 끄는 일련의 사태들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가 유언비어 운운할 정도로 다양한 정보들이 난립하지만, 적어도 합리적 외형을 갖춘 전문지식을 갈급해하는 그런 상황은 만들어진 것 같다. 유언비어, 언론플레이, 정보통제 등으로 담론의 방향을 조정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지식의 정치가 민주주의의 핵심적 주제로 부상한다.멩박과 그네가 언론과 인터넷, 전문가 등의 발언 통제에 그토록 목을 매는 것도 모두 이런 사태를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그네X 지지도가 이렇게 높은 이 비극적 사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여하튼 전반적으로 "합리적 사회"로 방향이 잡혀있는 것 같긴 하다. 루만이 아닌 베버, 하버마스적 의미로... 

문화, 프레이밍... 그런 접근의 설명력이 강해보이지 않는다. 문화와 프레임을 뚫고서, 다양한 정보, 지식들 사이에서 더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골라낼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전문지식의 정치"라고 표현해도 좋을... 한국에 필요한 것은 바로 합리적인 전문성이 아닐런지. 전문지식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전문지식의 정치" 그 자체가 하나의 전문지식이다. 

페친 장은주 샘의 이야기

"그러나 우리가 아이들을 더 이상 착하지만은 않게, 좀 더 '삐딱하게' 키워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좋은 시민'은 당연히 잘 규율화된 시민은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하고 규율을 어기는 게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무조건 삐딱함이라는 '미덕'은 갖추어야 좋은 시민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권위를 의심하기, 편견과 선입견에서 해방되기, 주어진 정보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기, 바로 이런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아이를 삐딱하게 키우기, 그것은 아이를 진짜 제 삶의 주인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고, 그게 진짜 교육이다."

바로 이 이야기다. 합리적이라는 것. 주체, 자율성, 개인주의를 전제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일차 과제다. 일차 과제를 완수했다고 하더라도 사실 그건 겨우 출발일 따름이다. 많은 공공 주제들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상충하는 주장에 대해서 어떤 주장이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을 내리려면... 어쩔 수 없이 전문지식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차과제.
즉 합리적 의심을 하지만 내가 판단 능력을 벗어나는 경우엔 합리적 의심을 거쳐서 전문가적 견해를 따른다.  그래서 페친 홍성수 샘은 이렇게 덧붙인다.

"비판적 시민과 위기상황에서 무조건 책임자의 지시에 따르는건 전혀 다른 문제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책임자의 지시를 신뢰할 수 없게 된게 이번 참사의 또다른 손실이 아닌가 하고요."

합리성, 개인주의, 자율성, 주체 지향의 한계를 인식하기!

아닌게 아니라 내가 본 독일인들은 대개 자신의 아는 분야, 판단할 수 있는 분야와 타인, 전문가의 견해를 존중해야 할 경우를 매우 잘 그리고 정확하게 구분하는 편이었다.전문가적 권위는 대개 언론이나 전문기관, 전문가조직 등으로 제한되는 것 같다. 그러니 대중 토론도 많은 편이 아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토론이 활발할 뿐.

우리는 둘 다 잘 안된다고 해야할까? 어쩌면 청개구리처럼... 어떨 때 너도나도 전문가 행세를 하고... 어떨 때 너무 순종적이고... 장은주 샘은 후자를 지적하는 것일테지. 홍 샘은 전자를...

한편으로... 누구나 전문가 행세를 한다. 전국민의 전문가화! 믿을 놈 없다. 신뢰 부족. 전문가 집단 정당성 상실. 그래서 내가 알아야겠다. 내가 아는 바를 나눠야겠다. 그러니 SNS가 초고도로 활성화.  어떻게 보면 민주화. 지식의 민주화. 참여 발달. 심지어 선도적인 모습까지 보이는 것이다. 미개가 아니라 매우 비판적 시민의식의 만개, 만개...

다른 한편으로... 권위와 지시에 너무 순종적. 그네 지지도를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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