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일 수요일

self-reference를 '자기지시'로 번역할 이유를 잘 설명한 글을 만났다. "괴델, 에셔, 바흐" 번역 문제를 다루는 글의 한 대목이다.


"그러나 박여성 번역자는 『괴델, 에셔, 바흐』의 수학적/과학적/철학적 난해함에 압도당한 나머지 대부분의 용어들을 지나치게 현학적이고 생경한 한자말투로 옮긴 것으로 판단됩니다. 일례로 “self-reference”를 “재귀 준거”라는 지극히 현학적이면서도 그 핵심을 빗나가는 번역어로 부적절하게 옮겼더군요. 그러나 『괴델, 에셔, 바흐』의 문맥에서 “self-reference”는 (조금 무리는 있지만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끔 간략하게 말하자면)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자기 지시” 이외의 그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에 관한 정확한 번역어의 설정과 그 개념적 설명은 언제 한번 기회가 나면 상세하게 다뤄보고 싶군요.

[왜냐 하면 『괴델, 에셔, 바흐』라는 책은 바로 이 “self-reference”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 묶음 그 자체라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self-reference”의 정확한 개념적 파악과 올바른 번역은 아주 중요합니다. 『괴델, 에셔, 바흐』의 문맥에서 “self-reference”는 “자기 지시” 외에 “자기 언급”이라는 번역어도 그런대로 가능하긴 합니다만, 그러나 그 개념의 단일성 · 통일성, 그리고 다른 인접 분야에서도 별다른 수정을 거치지 않고 쓸/쓰일 수 있는 상호통용성 · 중립성 · 적절성 따위를 고려할 때는 “자기 지시”라는 번역어가 최상이라고 판단합니다. 여기서... → 이 부분은 작성중! 위 단락에 이어서 추가로 덧붙이는 글: 왜냐 하면 여기서 “self-reference”는 여러 가지 형태로 구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논리학에서의 거짓말쟁이 크레타인의 사례처럼 말과 글로써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시(자기 언급), 3차원적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계단/폭포/건축물 따위를 그려낸 에셔의 작품들처럼 그림으로/시각적으로 나타내는 묘사적 지시(무한 순환적인 자기 반복), 프랙탈 기하학(fractal geometry, 쪽거리 기하학)에서 나타나는 자기 유사성(수학적 자기 지시), 디엔에이(DNA)의 이중나선 구조나 생물들의 면역 체계에서 나타나는 유전학적/면역학적 지시(자기 복제, 자기 인식 기제), 등등 아주 다양한 형태로 발현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언어적/논리적/감각적/관념적/상징적/수학적/생물학적 “self-reference”의 사례들을 하나로 묶어 포괄적으로 개념화할 수 있는 번역어로는 “자기 지시”만한 것이 아직까지는 없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 언급도 결국은 자기 지시의 하위 범주에 들어가므로 “self-reference”의 적절한 대표 번역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논거에 따르자면 “재귀 준거”는 쓸데없이 현학적인 데다가, 더글러스 호프스태터가 애초에 의도한 “self-reference”의 개념적 핵심 파악을 오히려 방해하는 거의 엉터리에 가까운 번역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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