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3일 월요일

일단 믿고 보는 감독. 코엔 형제. 최신작 "인사이드  르윈"을 보다. 동진 형님이 일말의 아쉬움도 남기지 않는 영화라고 극찬을 해서 자신있게 한 달만의 극장행 메뉴로 이 영화를 고를 수 있었다.

결과는... 실망이 컸다. 이 양반들 영화를 좋아하는 건 충분히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면서 보는 재미도 얻게 해주기 때문인데... 다시 말해 집중해서 보게 해준다는 점인데... 이 영화는 재미가 없었다.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래서 집중하기 힘들었다. 포크송. 음악도 너무 촌스러워서 음악 듣는 재미조차 허락하질 않았다. 내가 영화가 담고 있는 시대, 분위기, 노래 가사 등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서 이 영화의 작품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페친 차정식 님의 영화평을 보니 고개가 끄덕여지긴 한다. 페이스북 글은 인용하기기 어렵고, 언제 사라질지 몰라서 그냥 긁어와서 붙여놓는다. 차교수님. 이해해 주세요!


* 절룩거리는 운명의 순환 궤도
-<인사이드 르윈>을 보고

우리 생의 이면에 얼마나 컴컴한 우수의 심연이 드리워져 있는지 궁금하면 이 영화를 꼭 보시라. 걸작이란 게 어떤 것인지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이 작품을 외면할 수 없다. <바톤 핑크> <파고>를 거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시리어스 맨>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진지한 팬을 실망시킨 적이 없는 코엔 형제 감독의 예술세계를 맛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운명처럼 마주쳐야 한다.

외면상 이 영화는 극적인 사건 한 번 없이 밋밋하게 사회적으로 루저에 불과한 한 부랑자 가수의 짧은 몇 일을 다룬 로드 무비다. 그 배경에 자리한 가수는 밥 딜런의 전성기를 위한 대로를 깔기 위해 세례 요한의 역할을 한 데이브 반 롱크라는 포크송 가수다. 그의 분신인 르윈 데이비스(Llewyn Davis)는 웨일스 출신의 가문에 동가숙서가식하는 빈털털이 가수의 역할을 참 '재수없게도' 잘 연출해 보여준다.

그의 앞길에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왕년에 두엣으로 활동하던 마이크는 이미 자살해 죽어버렸고, 음반의 성과는 금전적 보상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친구의 아내를 건드려 임신시키는 바람에 낙태수술비를 구하느라 전전긍긍하고, 매일 몸을 눕힐 '카우치'를 찾으러 이 집, 저 집 눈치 보며 다녀야 하는 신세다. 평생 고기 잡던 어부 아비는 치매환자로 요양원에 유폐된 상태이며 누이 하나 있는 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다. 그가 가수 때려치고 어부로 전업하고자 할 때 그의 선원 자격증을 쓰레기통에 내버려 그의 마지막 희망을 꺾어버린 장본인이 바로 그 누이다.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로 힘들게 시카고에 갔지만 '뿔의 문'(The Gate of Horn)이라는 업소의 사장은 그의 노래 한 곡(The Death of Queen Jane)을 들어보고 별로 돈이 안 되겠다고, 수염 깎고 핵심 보컬에 화음이나 맞추어보라고 냉정하게 심판한다. 초장에는 그나마 호의적이던 교수님 댁의 고양이 율리시스를 실수로 떠맡게 되어 짐을 지더니 시카고에서 초라하게 되돌아가던 야간 운전 길에서는 여우를 쳐서 절름발이로 만들어버린다.

그 고양이 이름 율리시스(오딧세우스)에 표상된 운명의 노선과 차에 치어 절룩거리며 숲속으로 숨어버리는 그 여우의 운명이 바로 르윈 데이비스의 억수로 재수 없는 운명에 복선으로 깔린다. '개스등'(Gaslight) 카페에서 한 여가수의 공연을 조롱하다가 다음 날 저녁 그의 남편에게 호되게 얻어맞는 폭력 사건에서 시카고의 추운 겨울 차도에 깔린 눈에 신발이 푹 빠져 양말이 젖는 사소한 해프닝의 모양새에 이르기까지 예술적 자존심 하나로 버텨가는 한 포크송 가수의 여정 위에 울울한 잿빛 비극으로 스멀거리지 않는 구석이 없다.

사회적 루저에 불과한 한 가수의 시덥지않은 이야기의 표면적 서사를 넘어 그 이면으로 심층 잠수하여 코엔 형제 감독의 의중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이 작품의 수미상관적 구조를 잘 음미해야 한다. 첫 장면이 곧 끝 장면과 맞물리는 구조 속에서 코엔 감독은 우리 생이 결국 비극적 아이러니의 순환 가운데 한 겨울밤의 꿈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나 이전 작품들에 비해, 아마 그 훈훈한 음악의 훈기 덕분이겠지만, 르윈 데이비스를 조명하는 감독의 시선은 꽤 따스한 편이다. 따스한 비관주의의 역설이 그 어느 작품보다 여기서 돋보인다.

또 한 가지 이 작품을 읽는 독법은 음악을 따라가는 것이다. '자신을 목매달아 죽여달라'는 'Hang me, O Hang me'가 처음과 끝에 배치되어 두 번 반복되는데, 예술가의 열정이 왜 죽음을 담보로 하는 곡예인지 그 담담하면서도 치열한 눈짓을 읽을 수 있다. 파트너 마이크와 함께 부르던 곡을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내려온 뒤, 그 무대에 올라가 노래부르는 가수는 포크송의 전성기를 열었던 밥 딜런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오는 '그린, 그린, 로키 로드'을 부르는 가수는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 데이브 반 롱크이다. 실제로 밥 딜런은 그의 출중한 실력을 인정하여 그를 매우 존경했다고 한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은 항상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냉정하게 가른다.

우발성의 미묘한 낙차를 코엔 감독처럼 영화적 효과로 잘 살려내는 감독도 드물다. 이 영화의 후유증은 밋밋한 그 리듬과 함께 오래 갈 것이다. 그 내구성의 힘으로 나는 내 삶의 후미진 구석에 틈입한 우수어린 비극적 운명의 곡예를 꽤 모질게 견뎌낼 수 있을 듯하다. 르윈 데이비스의 노래와 함께 호흡하는 동안 우리는 환도뼈 부러진 야곱처럼 절룩거리며 걷는 법에 꽤 익숙해질 수 있으리라.

굴절된 운명이 왜 구질구질한 비애의 풍경을 동반하는지 알고 싶다면, 그럼에도 삶의 온갖 비루한 속내를 끝내 포용하길 서슴치 않는다면 '인사이드 르윈'을 직접 만나보시길...

(*참고로 르윈 데이비스 역을 맡은 오스카 아이삭의 노래 실력, 기타 실력은 꽤 출중하다. 립싱크 한 번 없이 모든 곡을 현장 녹음했다. 그는 줄리어드 음대 출신의 음악도로 코엔 감독의 오디션을 거쳐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선발됐다.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듯한 그의 더부룩한 이미지가 르윈 데이비스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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