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좀 우유부단한 면이 있음을 또 한 번 확인. 내가 잘 모르는 분야, 깊에 고민하지 않은 주제에 대해서 그런 경향이 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박유하 선생의 견해가 '신선'해서 솔깃했는데, 권명아 선생의 비판적 견해를 접하니 그 얘기도 맞는 것 같다. 옮겨 둔다.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극우파적, 국가주의적 논리가 학계에 전면적으로 등장한 것은 이른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라는 책이 기획되는 어름이었다. 그리고 잘 알려져있다시피 그 등장은 자학사관을 비판한다는 자료중심주의였다. 이를 '자료사관'이라 해야하나? 그즈음에도 나는 여러 경로로 이 집단적 흐름에 대해 분명한 비판의 태도를 취해왔고, 실제적 삶에 있어서도 그러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자료사관'에 대해서 내가 나서서 비판해야겠다는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물론 나의 비판의 논점은 사실 <역사적 파시즘>에 충분히 밝혀놓았다.
내가 이러한 국가주의적 <자료사관>을 비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이들의 논의를 보다보면, 과연 국가 폭력의 책임에 대해서, 한 줌의 자료로 모든 게 증명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사유'나 '사관'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것인가 하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기존의 사관이나 국가 폭력과 그 책임에 대한 문제를 그간의 논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제기하고 싶다면, 근대 이래 축적되어온 무수한 사상적, 철학적 사유의 궤적들을 대상으로 자기 주장의 새로움을 증명하는 방식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
그저 한줌의 자료를 손에 들고, 또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극단적 좌파"와 "순진한 민족주의자"를 적으로 삼아, 국가 폭력에 관한 책임의 문제를 '국가'(일본이든 어디든)에 되물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사유라는 이름이 부끄럽다.
그건 단지 과거의 문제만이 아니다.
박유하 선생님이 페북에 올린 글에 일본의 보상금을 받은 위안부도 많은데, 왜 거부하는 위안부의 입장만 갖고 주장하느냐라던가, 위안부 동원을 국가가 직접 한 증거가 없다라던가, 그래서 일본 국가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주장'을 보고 아연실색한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하다.
비유해서 이야기해보자. 밀양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는 입장은 철저하게 국가의 입장에서 나오는 국가주의적 발화이다. 그리고 밀양 주민 중에 보상금을 수령한 사람들에 대한 증거 자료도 많다. 또 국가가 아니라 한전이 집행한 일이고, 현장에서의 폭력도 군인이 아니라 '민간'에서 자행되고 있다. 그러면 이 문제에 대해서 국가의 책임을 묻는 것이 '극단적 좌파'의 유아적 주장이라는 뜻인가?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다. 국가주의적 입장의 논자들이 말이다.
국가주의적 폭력을 그저 '서류 작업'으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폭력인가는 이미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사례를 통해서 우리에게 어려운 사유의 과제를 주었다. 그러나 평범한 악의 실행자였던 아이히만은 '서류작업'을 통해서 국가주의를 주장하는 학자들보다는 어쩌면 더 순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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