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코너에 헨리 데이빗 쏘로의 "Where I lived, and What I lived For"가 꽂혀있다. 첫 장은 "Economy". 이렇게 시작한다. When I wrote the following pages, ... I lived alone, in the woods, a mile from any neighbor, in a house which I had built myself, on the shore of Walden Pond, in Concord, Massachusetts, and earned my living by the labor of my hands only. I lived there two years and two months." 아. 얼마나 매력적인가.
쏘로우의 이야기 자체가 흥미롭지만, 그의 이야기가 재생산되는, 그러니까 이야기되고 또 이야기되는, 심지어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여전히 읽히는 그 사실 또한 흥미롭다. 바로 내 얘기이기도 하다. 나는 왜 이 책에, 이런 생활방식 매력을 느끼는 것일까? 문화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런 "탈근대적 정신" "탈근대성"이다. 서양에서 60년대 말 이후로 확산된... 아시아의 경우, 경제성장의 결과로 절대빈곤을 경험하지 않은, 그러니까 물질만능주의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세대가 확산되는... 80년대 말 이후? 여하튼 쏘로우 같은 삶의 방식, 그런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고 확산하는 녹색운동, 생태운동, 탈물질주의적 가치관 확산, 한국의 김종철 등은 모두 근대성에 대한 성찰의 일환이다. 사회구조적 근대성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이야기다. 왜?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과는 - 직접적 - 관련이 없으니까. 사회구조적 조건은 여전하다. 다만 잠시 시선을 돌릴 수 있을 뿐이다. 그런 대안적 접근은 근대적 사회구조의 기생충 같은 것이다. 비판할 대상이 있는 동안에만 존재가능한... 지배적 구조를 바꾸지는 못하는... 뭐 nothing is impossible이라니까...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도피성 위로에 지나지 않을까? 그 정도에 지나지 않을 뿐일까?
근대 적응과 극복이라는 이중과제...
사회구조적 근대성, 근대성의 사회구조적 측면을 본격적으로 다루지지 않으면서도, 아니, 어쩌면 그러지 않기 때문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얼마든지 풀 수 있다. 사회구조적인 시각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그런 함의를 찾기 힘든 사회 비평, 사회 분석은 모두 곁다리를 짚고 있는 것일까? 배설구? 위로? 힐링? 회피? 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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