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9일 수요일

"근대 적응과 근대 극복의 이중과제"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성장의 한계를 지적하는 접근은 "근대 극복"에 대한 것이다. 생태주의가 탈근대 담론이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는 것이 낯설지 않다. 하지만 근대 극복을 성장 중심으로, 특히 경제 성장 중심으로만 볼 때 그런 것인데... 근대 극복은 여러 방식으로 이미 시작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근대적 질서의 문제점을 보완하려는 여러 시도들이 사실은 근대 극복의 일환 아닌가? 복지국가가 그 대표적인 것이고. "근대 극복"은 더 근본적이고, 극단적인 변혁으로 이해해야 할까?  아애 자본주의 질서를 벗어나는 것? 사회주의 혁명? 새로운 소통매체 등의 출현으로 기존 질서가 무너지는 네트워크 혁명? 인간, 비인간 구분마저 무너지는 라투어 식의 전복? 루만 식으로 표현하면 탈분화, 분화된 기능체계들 간 경계가 무너지고 재설정되는 정도, 혹은 완전히 다른 분화 원칙이 우세하게 되는 것 정도를 이야기할 것이다. 그런 근대 극복이 가능한가? 아니면 기존 질서의 문제점을 조금씩 바꾸는... 고쳐서 쓸 것인가. 그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근본적, 전본적인 - 현실가능한 - 대안은 글쎄 거의 보이질 않는다. 공동체, 협동조합, 사회적경제? 글쎄 어떤 대안은 너무 급진적이어서 그런 방식이 전세계에 적용되려면 엄청난 희생을 초래하게 될 것이고, 그리 급진적이지 않은 대안은 그저 지금 모델을 고쳐서 쓰는 정도데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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