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읽은 내용. 황폐함으로 가득한 농촌 마을을 말하기 위해 작가 김훈은 딱 두 가지만 골랐다. 말라버린 마을의 우물과 방 바닥에 버려진 소년의 노트. 두 가지면 충분하다 했다. 사실 묘사된 마을은 실제의 마을보다 더 마을 같았을 것이다.
빈 하늘에 작은 구름 하나가 하늘을 가득 채운다. 하얀 눈밭 위로 내민 마른 갈대 하나가 눈을 완성한다. 작은 숨소리 하나가 침묵의 한가운데에 꽂힌다. 손을 털고 손등의 금반지를 보는 시선과 새끼손가락이 든 채 맥주잔을 드는 손과 꼭 허공에 한 번 뻗었다 내리는 하얀 양복 소매에 금시계...는 양아치보다 더 양아치같은 양아치를 만들어낸다. 언제나 중요한 건 사소한 하나다.
한 사람의 지배적인 모습을 결정하는 가장 작은 단 하나는 무엇일까? 거북이에게 등껍질의 이끼 같은. 만두아저씨에게 앞치마에 묻은 하얀 밀가루 같은. 끊임없이 머리카락을 마는 검지 손가락과 무료한 여고생의 오후 5시의 시선같은. 중요한 건 하나여야한다.
그 하나를 말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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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넌 뭘 보았니? 딱 하나만 말해봐. 그 사람의 젤 중요한 거 하나만.>
간결한 글은 나도 좋아한다. 사실 누가 그렇지 않으랴. 하지만 간결하게만 쓸 수 없는 사태와 상황이 있지 않은가. 뭐. 이것 또한 누군들 모르랴. 이 '간결한' 글에서 더 흥미로운 부분은 '언제나 중요한 건 사소한 하나'라는 얘기다. 그것도 얼핏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과연 전체에 대한 이해 없이 '사소한 하나'만 가지고서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까? 예를 들어 "황폐함으로 가득한 농촌"에 대한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사소해 보이는 "마을의 우물" "방바닥에 버려진 소년의 노트"만 가지고도 메시지가 전달이 되는 것이다. 오해하면 안된다. 간결함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선 지루하고도 괴로운 선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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