少年易老學難成
2014년 2월 14일 금요일
한국 근대 형사재판제도사 (도면회)
아주 흥미로운 책이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역사적 연구를 통해서 일반적인 결론을 도출해 내는... 일반화 수준이 너무 높으면 그것도 문제겠지만 - 이덕일의 연구가 이런 비판을 받는다. 이론(혹은 결론?)을 내려놓고 역사를 재구성한다는... - 기사 내용에 근거해서 보면 적당한 수준에서 설득력 있는 결론을 내리는 것 같다. 이런 연구를 좀 해 보고 싶다.
도면회 교수 신간 '한국 근대 형사재판제도사'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한국에는 재판제도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재판제도가 불완전하다."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조약(乙巳條約) 이듬해인 1906년. 한국 초대 통감으로 부임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한국 재판제도의 낙후성을 거론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공정한 사법제도 운용은 권력이 자신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다. 굳이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을 떠올릴 것도 없이, 법 적용에 '예외'와 '특권'이 지나치게 많은 사회에서는 늘 권력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다.
식민지화 전후 시기 한국의 사법제도와 정치·사회상을 추적해 온 도면회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가 관심을 둔 지점도 이와 비슷하다. 그는 대한제국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원인을 일본 제국주의라는 '외부'가 아닌 '재판제도의 보수반동화'라는 '내부'에서 찾았다. 신간 '한국 근대 형사재판제도사'는 이런 관점에서 식민지화의 원인에 접근한 책이다.
'대한제국 황제와 고위 관료, 한때 2만여명에 달한 한국군은 어째서 총 한 방 제대로 쏘지 못한 채 권력을 뺏기거나 무장해제를 당했나. 국가 멸망을 앞에 두고 어째서 양반 유생층 일부만 의병 투쟁에 나섰을까. 전국적 항쟁은 왜 일어나지 않았을까.'
이런 의문으로 시작하는 책은 갑오개혁 이전, 즉 조선 후기 형사재판제도의 구조와 성격을 분석하고 갑오개혁 당시 어떤 근대적 형사재판제도가 만들어졌는지, 전제군주제 수립 이후 형사재판제도가 어떻게 보수화됐는지 살펴본다. 이어 재판제도의 보수화가 일본의 한국 병탄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들여다본다.
1894~1895년 갑오개혁기 한국은 일본의 지원을 받아 고소·고발권 확대, 피의자 체포 시 차별 폐지, 체포영장제 도입 등 내용을 담은 근대적 재판제도를 만들었다. 형사사법제도의 존재 이유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둔 근대 국가의 모습에 적어도 이전보다는 한층 더 가까워진 셈이다.
그러나 독립협회 운동이 좌절되고 황제의 전제 정치가 확고해진 1899년 이후 한국의 재판기관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국민을 처벌하는 지배계급의 통치 수단으로 회귀했다. 관찰사, 군수 등 지방관들이 재판권을 악용해 국민을 수탈하고 억압하는 실상은 당시 황성신문, 독립신문 등 언론에도 숱하게 보도됐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국민은 러일전쟁 이후 한국에 주둔한 일본군 사령부나 일본 공사관에 재판의 억울함을 호소하기까지 했다. 실제로 일본이 한국 정부에 외교적 압력을 넣은 결과 탐관오리가 처벌되는 사례도 나타났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처럼 열악한 조선 사법제도의 실태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통감 부임 이후 재판제도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재판제도를 개혁하면 그간 지방관의 '사법 횡포'에 시달리던 한국민들이 일본의 통치에 호감과 지지를 보이지 않겠느냐는 것이 한 이유였다.
도 교수는 실제 을사조약에 반대하던 일부 개화파 지식인조차 통감부가 한국에서 진행한 사법제도 개혁에는 기대를 나타낸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
이토에게는 또 다른 의도도 있었다. 한국을 독점 지배하려면 한국과 조약을 맺은 영국, 미국, 프랑스 등 열강이 한국에서 보유한 치외법권을 폐지해야 했으므로 사법제도 개혁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이들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면 한국을 순조롭게 병합할 수 있고,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재판제도를 일본이나 서구 열강 수준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 이토의 판단이었다고 도 교수는 분석한다.
도 교수는 "갑오개혁기 근대적으로 개혁된 형사재판제도가 대한제국기 보수반동화함으로써 민중의 생명과 권리를 지켜주지 못한 결과 일제의 재판제도 개혁이 한국인에게 상당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며 "이는 '자주적 근대'와 '식민지적 근대'에 사회 구조적 측면에서 단절보다 연속성이 있음을 드러낸다"고 강조했다.
푸른역사. 600쪽. 3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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