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rd sings" vs. "새가 운다"
"adult only" vs. "연소자 입장 금지" (긍정적/ 부정적 표현)
2013년 7월 31일 수요일
1
중간 점검을 받았다. 사실 제대로 검토해보면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일단 면피는 했다. 전체적인 그림이 나오긴 했고, 그 테제 자체는 나쁘지 않으니까. 지금 해 놓은 부분은 넘어가고 나머지를 비슷한 수준으로라도 작업해서 전체 그림을 빨리 맞추는 것이 심리적 안정에는 좋겠으나... 점검자의 의견은 나머지 부분이 더 어렵지 않고, 지금 해 놓은 부분이 어렵다면 어려운 부분을 제대로 마무리 하고, 그 부분을 독일 교수에게 검토받고, 다음으로 넘어가라는... 이래서 멘토가 필요하다니까. 사람은 쉬운 길을 선택하도록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 멘토가 개입해야 할 순간이다. 그 때가... 멘토의 개입으로 나는 2주 동안 해야 할 분량에 대한 부담이 생겼다. 감사한 일...
2.
프로야구는 중독성이 있다. 금단현상도 있고... 페이스북도 그런 것 같고...흠...좋지 않아... 그래도 배우는 것도 꽤 많다고... 위로 하련다.
오늘 짬짬이 본 기아-삼성 경기에서 느낀 단어... "조급" "자멸". 이번 주가 기아의 가을야구 여부를 결정하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중요한 시기다. 어제 완패했고, 게다가 삼성전 8연패다. 기아는 승리에 대한 간절함이 컸다. 부담감으로 작용할텐데... 3회엔가 어쩌다 연속 득점의 기회가 왔다. 삼성 배영수가 못 던진 탓도 있겠지만... 결국 어이없는 주루의 연속으로 다득점 기회를 놓쳤다. 조급함이 보였고 기회를 줬는데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물러났다. 지면 어떻게 하나... 불안감이 보일 정도로... 결국 삼성이 다시 기회를 잡아고... 결국 우르르 무너졌다.
선 감독 리더십이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물론 성적이 좋고, 팀 분위기가 좋다면 것도 용서가 되겠지만...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제일 먼저 매를 맞는 건 감독이다. 선 감독, 사람을 모른다. 스타, 엘리트라서 평민의 마음을 정말 모를까? 그래서 그럴까? 그것보다는 본성일 것이다.
에휴. 벌써 8월이다. 올해 야구 농사도 대략 마무리 되는 것 같다. 감사한 일이다. 야구에 관심을 끊을 수 있어서...
해가 점점 더 짧아질 것이고,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 것이고...
중간 점검을 받았다. 사실 제대로 검토해보면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일단 면피는 했다. 전체적인 그림이 나오긴 했고, 그 테제 자체는 나쁘지 않으니까. 지금 해 놓은 부분은 넘어가고 나머지를 비슷한 수준으로라도 작업해서 전체 그림을 빨리 맞추는 것이 심리적 안정에는 좋겠으나... 점검자의 의견은 나머지 부분이 더 어렵지 않고, 지금 해 놓은 부분이 어렵다면 어려운 부분을 제대로 마무리 하고, 그 부분을 독일 교수에게 검토받고, 다음으로 넘어가라는... 이래서 멘토가 필요하다니까. 사람은 쉬운 길을 선택하도록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 멘토가 개입해야 할 순간이다. 그 때가... 멘토의 개입으로 나는 2주 동안 해야 할 분량에 대한 부담이 생겼다. 감사한 일...
2.
프로야구는 중독성이 있다. 금단현상도 있고... 페이스북도 그런 것 같고...흠...좋지 않아... 그래도 배우는 것도 꽤 많다고... 위로 하련다.
오늘 짬짬이 본 기아-삼성 경기에서 느낀 단어... "조급" "자멸". 이번 주가 기아의 가을야구 여부를 결정하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중요한 시기다. 어제 완패했고, 게다가 삼성전 8연패다. 기아는 승리에 대한 간절함이 컸다. 부담감으로 작용할텐데... 3회엔가 어쩌다 연속 득점의 기회가 왔다. 삼성 배영수가 못 던진 탓도 있겠지만... 결국 어이없는 주루의 연속으로 다득점 기회를 놓쳤다. 조급함이 보였고 기회를 줬는데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물러났다. 지면 어떻게 하나... 불안감이 보일 정도로... 결국 삼성이 다시 기회를 잡아고... 결국 우르르 무너졌다.
선 감독 리더십이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물론 성적이 좋고, 팀 분위기가 좋다면 것도 용서가 되겠지만...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제일 먼저 매를 맞는 건 감독이다. 선 감독, 사람을 모른다. 스타, 엘리트라서 평민의 마음을 정말 모를까? 그래서 그럴까? 그것보다는 본성일 것이다.
에휴. 벌써 8월이다. 올해 야구 농사도 대략 마무리 되는 것 같다. 감사한 일이다. 야구에 관심을 끊을 수 있어서...
해가 점점 더 짧아질 것이고,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 것이고...
2013년 7월 30일 화요일
2013년 7월 29일 월요일
<지성과 영성의 만남. 이어령, 이재철 대담, 홍성사, 2012>
42f. 철: 부모에게 가장 큰 문제는 나이 들어 가면서 '어른'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이는 들어 가는데 나이 먹은 '노인'으로만 바뀌는 것입니다. ... 어른이 되느냐 노인이 되느냐, 그 분기점은 내가 나를 더 생각하느냐 상대를 더 생각하느냐, 바로 여기서 갈라집니다. 노인은 나이가 들수록 자기만 알죠. ...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남을 위하는 마음을 키워 가는 것입니다.
87: 령: 니버Reinhold Niebuhr의 기도..."주여,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평온을 주시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바꾸는 용기를 주시고, 내가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190f: 령: 민주주의는 잘못 번역된 말... 'cracy'는 지배하는 제도를 뜻함... 데모크라시는 '데모스demos' 즉 민중에 의해 지배하는 제도를 뜻하는 것이이 주의가 이니거든요. 주의는 '-이즘ism'이 붙지 않습니까. ... 제도인데 주의가되니, 민주주의 앞에 꼭 수식어가 붙어요. '무슨 식 민주주의'. 이래서 민주주의라는 것은 아주 간단한 원리인데도 오늘날 정치적으로 갈라지고 서로 상대방이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하죠.
275f. 령: 기독교의 본질과 기독교는 다른 것입니다. ... 제사... 우상숭배?... 종교는 문호가 아닙니다. ...가톨릭의 리추얼ritual이라든지 개신교에서 예배 드리는 방식 등은 전부 문화이며 양식화된 것입니다. 잘뭇하면 양식화된 것이 본질이 되어, 거꾸로 본질이 쫓겨납니다. ... 똑같은 기독교가 유입되어도 서양에서 드러나지 않은 기독교 진수의 어떤 부분이 한국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남미 쪽에 유입된 기독교가 또 다르고요. 이렇게 기독교는 하나가 아니고 사람들이 사는 토착 문화와 끝없이 연결되죠. 과거 지방 문화, 지역 문화였던 이스라엘 문화가 로마 문화와 결합됨으로써 전 세계에 퍼져 갈 수 있었습니다. ...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과 기독교가 오리지널이라면, 지금 우리가 접하는 기독교는 북유럽과 로마에서 온 유럽 기독교입니다. 로만도 들어가 바뀐 것이나 우링게 와서 바뀐 것이나, 둘 다 어차피 오리지널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어진 마음이나 역지사지(易地思之), 정(情)의 문화와 얽힌 기독교가, 유럽의 군사 문화, 정복 문화를 업고 성장한 기독교보다 사실은 오리진origin의 기독교, 예수님의 사랑과 잘 맞을 수 있습니다. 착하면 상을 주고 죄지은 자는 치면 그만인데, 우리에게는 '네가 죄인이지만 그래도 네가 어떻게 너한테 그렇게 할 수 있겠나'하고 그 사람을 붙잡고 무언가를 해주고픈 마음이 있어요. 명확하게 자르지 않는 그레이 gray zone이 있는 한국 문화가 오리려 예수님의 성격과 참 잘 맞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 옷을 지어 주는 마음 같은 것. ... 예수님이 완벽하게 만드신 사랑이라는 이름은 어떤 면에서 대단히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입니다. 그래야 사람ㅇ르 자르지 않습니다. 이런 면에서 어슴푸레한, 온유한 종교, 한국 사람의 긴 옷고름, 긴 종소리 같은 기독교가 실은 로마 군사들이 퍼레이드할 때 딱딱 끊어지는 기독교보다 어쩌면 더 온전할 수 있습니다. ... 그러니 콤플렉스 갖지 말고, 서양 기독교가 오리진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한국의 문화적 요소와 기독교적 요소가 합쳐진 것이 본질이 아니에요. 이 지점에서 창조가 필요합니다.
327f:령: 한국인은 희랍 사람들처럼 대단히 인간주의적이고 현세주의적이고 '수신제가'라고 해서 신체를 강조하는데, 기독교는 신체를 흙으로 보고 영을 귀한 것으로 봅니다. 헤브라이즘에서는 헬레니즘과 달리 신체성에 가치를 두지 않았죠. 우리는 현세에서 종교 없이도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윤리가 있다고 봤어요. 그래서 이야기할 때 '사람답게'라든가 '너도 사람이냐'라고 하듯이 사람을 삶의 최대가치로 봤기 때문에 신 없이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죠.
이런 저런 공부를 하고 '나름' 경험이 쌓이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은 '우연' 혹은 '무질서'라는 점이다. 물론 하나님이란 절대자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면... 그 분 앞에서 '우연'이란 없겠지만... 무신론적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우연, 복잡성, 무지의 불안, 공포를 견디다 못한 인간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지적 장치를 만들어 왔다. 근대 이전엔 대개 막연한 원칙, 원리나, 신 등의 장치가 지배적이었다면 근대 이후로는 '과학' '과학적 설명'이 대세다. 물론 인간과 세상사에 본원적인 우연, 무질서, 무지가 그렇게 쉽게 해결될 리가 없다. 이제 우리는 과학과 신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서로 상호보완적인 그런 세상을 살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과학적 합리성이 주는 확실성에 기초하고, 그것으로 부족한 부분을 '신'으로 해결하려는 매우 편의적이고 그 나름 합리적인 방식으로 선호하는 것 같다. "내 뜻대로 세상을 살테니, 하나님 저를 도와 주세요. 힐링해주시고, 자신감을 갖고 긍정적으로 돌파할 수 있게 해 주세요... " 딱 그 정도 인 것 같다. 선택적으로 하나님 사용하기... 이런 현대인들이 신의 위엄을 느끼게 하기란 쉽지 않다. 겨우... 예기치 못한 피해가 막심한 (개인적 혹은 집단적) 사태, 사고, 재난 정도? 불확실성은 '우연'으로 이해하는 게 차라리 더 합리적이다. 하나님의 뜻으로 그 나름 인과적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진화론은 사실 매우 합리적인 설명방식이다. 절대성을 찾는 근대적 마이드가 차리라 '신'과 더 쉽게 조화를 이룬다. 불확실성을 그 자체로 인정해 버리면... 신이 설 자리가 더 좁아진다. 교회가 '포스트 모던'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을 테고... 신앙에서 '확실성'이 설 자리가 좁아지는데, 확실성의 근거를 제공해주는 것으로 끝까지 붙들고 싶은 것이 바로 '성경'이다. 그들은 성경의 절대적 권위가 조금이라도 훼손되는 것에 더없는 불안감을 느낀다. 옥성호 씨는 적어도 성경에 관한한 '갑각류 크리스천'의 태도를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
지난 밤 사이 딸과 작은 전쟁을 치뤘다. 밤중 수유를 끊어보려고 칭얼거려도 무시하기도 했던 것. 새벽 1시경 위기가 찾아왔다. 보통 그 정도면 우유를 타 줬는데 냉정하게 무시했다. 다행히 더 울지 않고 잠에 듬. 두번째 위기는 새벽 4시경. 이번엔 칭얼거림의 강도가 좀 더 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방을 헤매다 나를 보고 기어와 내 몸을 붙든 것.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어서 아내가 평소보다 좀 더 적은 양의 분유를 타 주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딸은 이미 깨어있다. 하지만 너무도 조용히... 나를 보더니... 평소와는 다르게 약간 경계하는 눈초리... ㅠㅠ 간 밤의 일로 심기가 불편해진 것인지... 풀이 죽은 것인지... 마음이 아파서 꽈악 안아주었다. 에휴. 딸이 좀 예민한 편인 것 같은데...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육아해도 괜찮을런지... 게다가 할머니와 어머니는 딸이 싫어하는 건 조금도 안 하시려는 편이라 악역을 내가 맡는데...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겠지만... 육아 역시... 이론과 실체 사이에서 지혜로운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2013년 7월 27일 토요일
지금 해묵은 과제도 해결 못한 주제에 이러저러한 책들에 눈을 돌려서는 안되는데... 반쯤은 휴식 삼아, 반쯤은 어떤 영감을 기대하며 읽고 있다고 정당화하고 있다. 여하튼 그렇게 읽은 책 중에 옥성호의 "갑각류 크리스찬"가 있다. 레드, 블랙 두 권. 그 두권을 읽고 너무도 공감하여서, 심지어 감동까지 하여서... 그가 이전에 쓴 '부족한 기독교'를 도서관에서 찾아보았다. 나름 많이 팔린... 책 앞부분엔 그 책을 낸 부흥과개혁사 백금산 대표이자 목사가 저자 옥성호 씨와 주고받은 편지가 실려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흠.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친 것은 아닌지... 라는 생각을 했다. 신앙, 신학이 너무 보수적이라는... 그가 한국교회의 현실과 문제를 지적하는 부분에 대해선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가 근거로 삼는 신학의 색깔은 나와 좀 달랐던 것이다. 특히 '성경'에 대한 이해... '일점일획' 운운하는... 전형적인... 실망이다. 검색해보니 부흥과개혁사 백금산 목사에 대해서도 보수 중의 보수라고 평가하는 글을 보게 되었다. 참 역설적이다. 극보수주의 신학이 내리는 진단이 매우 과격하게 들리니... 이는 희한하게도 - 아니 아주 우연만은 아닐텐데 - 한국 정치 이념을 둘러싼 현실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제대로된 보수들이 한국 정치의 비정상적, 비-몰상식적 행태들, 특히 사이비 보수, 혹은 수구 꼴통, 반공주의자들이 '보수'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그런 행태들을 비판하는 모양새와 비슷하다.
2013년 7월 26일 금요일
어처구니없다. 산 속에서 길을 잃어 한참을 헤맸는데 결국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오고야만... 그런 상황...
(다음날... 창밖 풍경을 일부러 흐리게 찍었다. 그것 자체가 메시지니까. 사진으로 꽤 많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워낙 인생사, 인간, 사회의 복합성을 강조하는 편이라 영화든 예술이건... 복합성을 '잘' 드러내는 작품들을 좋아한다. 너무 복잡해서 아애 이해하고 싶은 욕망을 일으키지 않는 경우는 별로고, 이해가 될듯말듯, 생각할수록, 곱씹어 볼수록 이야기거리, 생각거리가 딸려나오는 그런 작품을 좋아한다. 사진도 그런듯... 제일 싫어하는 유형이 "증명사진류". 모월모일모시 나 모모씨 이곳을 방문했음! 혹은 날짜가 찍힌 현수막 걸어 놓고 찍는 사진들... 그런 사진들은 도무지 그 일차적 정보 이상의 정보를 깨 볼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다. 이 사진이 뭐 대단한 복잡성을 드러낸 것도 아니지만 뭐 그렇다는 얘기다. 흠. 어쩌다가 얘기가 이 쪽으로 흘러가는 것인지... )
(다음날... 창밖 풍경을 일부러 흐리게 찍었다. 그것 자체가 메시지니까. 사진으로 꽤 많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워낙 인생사, 인간, 사회의 복합성을 강조하는 편이라 영화든 예술이건... 복합성을 '잘' 드러내는 작품들을 좋아한다. 너무 복잡해서 아애 이해하고 싶은 욕망을 일으키지 않는 경우는 별로고, 이해가 될듯말듯, 생각할수록, 곱씹어 볼수록 이야기거리, 생각거리가 딸려나오는 그런 작품을 좋아한다. 사진도 그런듯... 제일 싫어하는 유형이 "증명사진류". 모월모일모시 나 모모씨 이곳을 방문했음! 혹은 날짜가 찍힌 현수막 걸어 놓고 찍는 사진들... 그런 사진들은 도무지 그 일차적 정보 이상의 정보를 깨 볼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다. 이 사진이 뭐 대단한 복잡성을 드러낸 것도 아니지만 뭐 그렇다는 얘기다. 흠. 어쩌다가 얘기가 이 쪽으로 흘러가는 것인지... )
"근대적 내용과 형식을 갖춘 사회 규범으로서의 법제도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고 전통적인 유교적 질서도 붕괴되어 있는 곳이 현재의 한국 사회의 현 주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장태주 1998: 33)
"법제정자는 법을 모호하게 제정하고, 카리스마는 주관적으로 법을 적용하고, 공무원들은 시행규칙에서의 권한을 자기 이익에 맞게 적용하는 시스템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세 가지 행위 동기에 의해서 나타난 것이 규정의 모호성과 그 임의적 적용이다."(장원호, 2009: 187, 대한민국은 도덕적인가)
"나는 우리 사회가 이제라도 우리 실정에 맞는 규정을 정확히 정하고 한 번 정해진 규정은 공정하고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치기에 대한 규정도 명확히 하고 교통법규를 위반하고 갓길로 가는 사람에게는 공정한 벌금과 일관성 있는 벌금 등을 부과해야 한다. 이 사회에는 우리가 지켜야 할 명확한 약속들이 있고 이를 어기면 반드시 그에 따르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는 확신 게임의 사회에 한발 다가서게 될 것이다"(장원호, 195)
장원호의 경우 '규정'의 차원을 구분하지 않아서 좀 혼란스럽다. 법, 교통법규, 놀이공원의 규정 등에 대한 논의는 달라져야 할 것이다. 도덕, 윤리, 관습, 법 등 사회 규범의 다른 차원에서 다른 해법에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행규칙'의 기능을 공무원들의 자기이익만을 위한 것으로 보기엔 무리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니고. 법은 추상적, 포괄적으로, 규칙은 좀 더 분명하게... 이건 일반적 법체계 아닌가?
사회이론이나 '루만'에 대해서도... 무슨 대단한 진리를 주장하는 것으로 생각 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루만을 포함해서 이론가, 철학자, 사상가, 그리고 어떤 주장, 이론을 무슨 예언자, 신탁처럼 모시고, '전도'하려는 이들이 있는데 참 역겹다. 그건 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의 진리를 매우 값싼 논리로 설파하려는 시도들... 참 천박하다. 진리의 세계는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언어로 표현하기 힘들다"가 정답에 가깝다.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그럼에도 뭔가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침묵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 현실의 문제들, 그 속에서 소외받고 부당한 대접을 받는 사람들, 생명들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생명'을 살리는 일, 생명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공생하는 일... 물론 모든 생명이 동등한 가치를 가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서야 또 다른 생명이 불이익을 당하겠지만... 여하튼 생명 간의 관계, 경중을 가리는 문제는 일단 제외한다면... 결국 '생명' '생태계' '공존' '공생'으로 귀결된다. 그것을 위해서 발언하고 행동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발언, 행동의 근거는 언어와 논리로 표현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게 역사의 진보라면 또 진보다. 논리를 세워나가는데 있어서 최대한 설득력있는 방식을 취하는 것 역시 필수적이다. 딱 그 정도로 사회과학의 의미를 생각하면 좋겠다.
그럼에도 뭔가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침묵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 현실의 문제들, 그 속에서 소외받고 부당한 대접을 받는 사람들, 생명들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생명'을 살리는 일, 생명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공생하는 일... 물론 모든 생명이 동등한 가치를 가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서야 또 다른 생명이 불이익을 당하겠지만... 여하튼 생명 간의 관계, 경중을 가리는 문제는 일단 제외한다면... 결국 '생명' '생태계' '공존' '공생'으로 귀결된다. 그것을 위해서 발언하고 행동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발언, 행동의 근거는 언어와 논리로 표현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게 역사의 진보라면 또 진보다. 논리를 세워나가는데 있어서 최대한 설득력있는 방식을 취하는 것 역시 필수적이다. 딱 그 정도로 사회과학의 의미를 생각하면 좋겠다.
나는 나름 사람을 잘 판단하는 편이라고 자부한다. 경험적으로 볼 때 (경험적-실증적^^) 상당한 근거가 있는 주장이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정직', 조금 더 욕심을 부리면 '한결같음'이다. '정직'은 거의 절대적 기준에 가깝고, '한결같음'은 희망사항에 가깝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반응이 그때끄때 다른 경우... 어떨 땐 더할 나위없이 상냥하게... 어떨 땐 퉁명스럽게... 그런 식으로 반응을 예측하기 힘든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 기분, 상대에 따라 태도가 극명하게 바뀌는 사람... 그런 사람을 나는 아주 우습게 본다.
한결같은 사람이 좋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부정적인 태도를 일관되게 견지하는 경우를 얘기하는 건 아니다. 긍정적으로 이해되는 태도를 유지하거나 유지하려고 그러려고 애쓰는 사람...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물론 어디 나만 그럴까. 웃는 얼굴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여하튼 변덕스럽다고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사람의 태도에서 오늘 아침 살짝 실망하면서 든 생각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누구보다 내게 적용되어야 한다. 나도 늘 상냥한 편이거나 시종일관 편하고 긍정적 에너지를 전달하는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결같은 사람이 좋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부정적인 태도를 일관되게 견지하는 경우를 얘기하는 건 아니다. 긍정적으로 이해되는 태도를 유지하거나 유지하려고 그러려고 애쓰는 사람...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물론 어디 나만 그럴까. 웃는 얼굴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여하튼 변덕스럽다고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사람의 태도에서 오늘 아침 살짝 실망하면서 든 생각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누구보다 내게 적용되어야 한다. 나도 늘 상냥한 편이거나 시종일관 편하고 긍정적 에너지를 전달하는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주의)적 사회과학에서 역사적 사회과학으로
"대체로 인문학적 감성은 삶의 복잡미묘한 측면들을 섬세하게 펼쳐내는 반면, 사회과학적 논리는 몇 가지 핵심적인 요인들을 잡아내어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를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하므로 자칫 인문학적 감성에 치우치다 보면 그 어떤 악인도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을 혼란에 빠지기도 하고, 사회과학적 논리를 내세우다 보면 한 발짝만 물러서서 생각해도 허점투성이인 주장에 목숨을 걸 수도 있다."
충남대 류동민 교수가 쓴 칼럼의 일부다. 사회과학의 한계는 분명하고도 분명하다. 도대체 사회의 무엇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이해하고 설명한다고 하는 부분이 도대체 사회의 얼마만큼이나 그려낼 수 있을까? 겸손할 필요가 있다. 겸손 또 겸손... 겸손한 이야기는 잘 듣질 않는다. 과학은 왜 과학인가? 적어도 진리라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파편적인 진리일지라도... 제한하고 제한해서... 실험대상을 통제할 수 있는 자연과학은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러저러한 조건에서 이러저러하게 했더니 이러저러한 결과가 나왔다. Punkt! 사회과학도 자연과학 흉내를 내기도 한다. 나름 대상을 조작적으로 정의하고, 변수화하고, 계량화하고, 그 상관관계를 밝히고... 분석을 위한 수치는 따로 수집된 '통계'를 이용하거나, 설문지 등을 통해서 얻는다. 나는 온몸으로 '통계'를 불신하고, '설문지' 따위도 불신한다. 물론 통계에 기초한 해석의 유용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이러저라한 '통계'의 수집 과정을 알수록 - 자살률, 범죄율 같은 통계부터 장애인, 고용 관련 통계들.... - 불신은 더 커진다. 계량화, 수량화된 사회과학적 접근을 온몸으로 부르르 떨면서 거부하고 싶다. 그것을 "자연주의적 사회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자연(주의)적-실증(주의)적-경험(주의)적]
그렇다면 사회과학은 어떤 길을 가야하는가? 역사적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역사기술적으로, 내러티브로... 월러스틴의 "역사적 사회과학"이 그런 주장 아닌가? (역사적-해석적...)
지금 적을 두고 있는 연구기관에서도 통계, 실증 맹신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계량적 연구 자체를 비난하지는 않지만, 계량적 연구에 대한 맹신에 대해서는 짜증, 분노가 치민다. 언제 한 번 이런 주제를 다룬 논문을 쓰거나 적어도 이 조직에서 그런 주제로 발표를 한 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는데, 그럴 기회가 있을지...
충남대 류동민 교수가 쓴 칼럼의 일부다. 사회과학의 한계는 분명하고도 분명하다. 도대체 사회의 무엇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이해하고 설명한다고 하는 부분이 도대체 사회의 얼마만큼이나 그려낼 수 있을까? 겸손할 필요가 있다. 겸손 또 겸손... 겸손한 이야기는 잘 듣질 않는다. 과학은 왜 과학인가? 적어도 진리라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파편적인 진리일지라도... 제한하고 제한해서... 실험대상을 통제할 수 있는 자연과학은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러저러한 조건에서 이러저러하게 했더니 이러저러한 결과가 나왔다. Punkt! 사회과학도 자연과학 흉내를 내기도 한다. 나름 대상을 조작적으로 정의하고, 변수화하고, 계량화하고, 그 상관관계를 밝히고... 분석을 위한 수치는 따로 수집된 '통계'를 이용하거나, 설문지 등을 통해서 얻는다. 나는 온몸으로 '통계'를 불신하고, '설문지' 따위도 불신한다. 물론 통계에 기초한 해석의 유용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이러저라한 '통계'의 수집 과정을 알수록 - 자살률, 범죄율 같은 통계부터 장애인, 고용 관련 통계들.... - 불신은 더 커진다. 계량화, 수량화된 사회과학적 접근을 온몸으로 부르르 떨면서 거부하고 싶다. 그것을 "자연주의적 사회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자연(주의)적-실증(주의)적-경험(주의)적]
그렇다면 사회과학은 어떤 길을 가야하는가? 역사적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역사기술적으로, 내러티브로... 월러스틴의 "역사적 사회과학"이 그런 주장 아닌가? (역사적-해석적...)
지금 적을 두고 있는 연구기관에서도 통계, 실증 맹신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계량적 연구 자체를 비난하지는 않지만, 계량적 연구에 대한 맹신에 대해서는 짜증, 분노가 치민다. 언제 한 번 이런 주제를 다룬 논문을 쓰거나 적어도 이 조직에서 그런 주제로 발표를 한 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는데, 그럴 기회가 있을지...
2013년 7월 25일 목요일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남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한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 '인간은 누구나 다 자아 확장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가진다'. 인간의 여러 본능 중에서 자아를 확장하고 싶은 본능이야말로, 특히 남자에게는 더 강하다. 자아확장이 주는 쾌감... 트위터, 페이스북... 친구들이 늘어날 때 [그리고, '좋아요'가 늘어날 때...jk] ... 자아 확장이 주는 쾌감의 정도는 무엇보다 자신이 타인에게 끼치는 눈에 보이는 영향력의 크기에 비례한다. ...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누군가에게 이미 영향을 미치며 산다... 다만 그 영향력의 크기가... " (갑각류크리스천 블랙편, 163)
내 기독교 신앙, 내 나름의 '믿음'에 근본적 도전을 주는 계기들이 계속 생기고 있다. (1) '구원'에 대한 칼빈의 이해, (20 이재철 목사님의 '믿음'에 대한 설명. 어제 접한 책은 옥성호의 '갑각류 크리스천 블랙편'(2013)이다.
자연의 웅장함에 대한 경외감 경험을 얘기한 후.. 그것을 "그저 그 웅장함, 자연의 모습 그 자체로 충분한... 존재가 꽉 채워지는 듯한 느낌"으로 표현한다. "내게 '기독교,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런 기대가 잠시가 아니라 영구적으로 충족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물며 창조주가 만든 자연을 통해서도 내 존재 전체가 채워지는 말할 수 없는 황홀경을 맛보는데 창조주로 말미암아 그런 충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내게 이해할 수 없는 껍데기 신앙에 불과하다"(46쪽)
"내가 정말로 미친 듯이 기뻤던 적이 언제인가? ... 왜 구원은 내게 이런 짜릿한 기쁨으로 다가오지 않는가?"(53쪽)
"뭔가 너무 너무 싫었던 것을 안 하게 될 때 느끼는 기쁨도 분명 크지만, 너무 너무 원했던 것을 손에 넣었을 때 느끼는 기쁨은 더 크기... 그런 의미에서 지옥에 안 가서 기쁜 것보다 분명히 천국에 가기에 구원이 진짜 기쁨이고 감격이어야 하는데..."(57)
"기독교의 구원이 주는 기쁨은 매우 형이상학적이고, 그 형이상학을 포기하면 '기독교가 주는 기쁨이 매우 세속적이게 된다'는 딜레마... 기독교의 구원이 제시하는 형이상학적 기쁨은 최소한 내게 별 감흥이 없다. 그러다 보니 나의 삐딱한 시각으로 볼 때 '기독교는 어찌 보면 실제로 가장 기쁜 요소가 별로 없으니 어떻게든 기쁨을 짜내려고 가장 발버둥치는 종교로 전락하고 있지 않나? ... '감동 있는 예배' 같은 단어를 쓰며 어떻게든 기쁨을 가장한 흥분을 조장하는 데 갖은 전략과 에너지를 쓰는 상황이 아닐까? ... 왜 오늘날 교회들이 그렇게 발라드 음악과 찬양팀에 목을 맬까? 그렇게 조작하지 않으면 기쁨, 감격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교회 속의 음악은 음식에 들어가는 조미료, 즉 MSG와 비슷한 것이다. 그게 없으면 맛이 안 난다. (58f)
"그렇다면 MSG 음악을 더하지 않은 기독교에 진짜 맛은 없다는 것인가? 구원이 주는 진짜 기쁨은 없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까지는 분명 기독교의 구원에 그 기쁨이 실재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갈구하고 찾는 것이다. 분명 지금 내 수준의 지옥 탈피용 구원의 기쁨 수준으로 사는 것이 기독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그 기쁨의 실체... 성경 속에서...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을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요 7:38)
...
왜 2002년 월드컵의 승리가 내게 그토록 큰 기쁨을 주었을까? 그때까지 피부로 느끼지 못했지만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대한민국, 내 나라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기독교만이 줄 수 있는 기쁨의 비밀은 결국 사랑 속에 있다. 빌립보서에서 말한 바울의 고백, 어느날 오후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분명 예수님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사랑이 있었기에 기쁨이 그들을 채웠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소유했던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지금 갈망한다. 내 속에 꺼지지 않는 기쁨을 위해서!"(60f)
"진짜 믿음은 '앎'에서 시작하는 것... 믿음은 안다는 것이다. 알면, 정말 제대로 알면 삶에서 아니, 나의 표정 하나에서 저절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어느 날 내 통장에 100억 원이 있음을 안다. ... 그 사람은 즉시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 바뀌어 새로워질 것이다. .. 성경은 이런 변화가 생긴 사람을 향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말한다. ... 기독교의 꽤 많은 진술을 우리가 믿는다고 말하지만, 이 믿음이 진짜 앎을 동반할 때 우리의 삶이 '뒤집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기적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하물며 내 통장에 100억 원이 있어도 내 인생 전체가 뒤집어지는데 옆집 친구의 아버지가 아닌 바로 내 아버지가,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나 대신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셨음을 안다면... 그 사실을 알게 된 나의 오느로가 어제가 똑같다면... 우리는 너무도 쉽게 '믿는다'고 말한다. 이 상황을 놓고 내밀 수 있는 가장 가능한 결론은 단 하나뿐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건 아닌지... " (74f)
"우리는 행여 하나님에 대해 아예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분의 수많은 약속을 앞에 두고도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 건 아닐까? 아니면 최소한의 무슨 느낌이라고 일으키기 위해서 나는 30분 이상 땀을 흘리며 반복해서 감동적인 노래를 계속 불러야만 하지는 않을까? 내 통장에 100억 원이 있음을 알 때 내 삶 구석구석에서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우러난다. 자신감을 갖기 위해 특별한 명상을 하고 세미나를 다닐 필요가 전혀 없다. 어떤 사실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생기는 믿음은 그냥 자연스럽게 삶 속에서 흘러나오고 삶의 모든 분야에서 자연스럽게 투영되기 마련이다. 내가 낳은 자식을 사랑하기 위해서 부모가 애쓸 필요가 없다. ... 내가 낳은 자식임을 알기에 자식에 대한 나의 사랑은 그냥 흘러나온다. 내 자식을 향한 사랑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듯 믿음은 그 대상을 아는 것이다. 정말로 안다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안다면, 그 결과 믿음은 자연스럽게 우리 삶 속에서 드러난다. 억지로 쥐어 짜야 하는 그 무엇이 아니다(81f)
==> 이 책을 읽오 내린 결론: 내 믿음 가짜다. 감동도 없고, 기쁨도 없다. 사랑하지도 않고,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자연의 웅장함에 대한 경외감 경험을 얘기한 후.. 그것을 "그저 그 웅장함, 자연의 모습 그 자체로 충분한... 존재가 꽉 채워지는 듯한 느낌"으로 표현한다. "내게 '기독교,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런 기대가 잠시가 아니라 영구적으로 충족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물며 창조주가 만든 자연을 통해서도 내 존재 전체가 채워지는 말할 수 없는 황홀경을 맛보는데 창조주로 말미암아 그런 충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내게 이해할 수 없는 껍데기 신앙에 불과하다"(46쪽)
"내가 정말로 미친 듯이 기뻤던 적이 언제인가? ... 왜 구원은 내게 이런 짜릿한 기쁨으로 다가오지 않는가?"(53쪽)
"뭔가 너무 너무 싫었던 것을 안 하게 될 때 느끼는 기쁨도 분명 크지만, 너무 너무 원했던 것을 손에 넣었을 때 느끼는 기쁨은 더 크기... 그런 의미에서 지옥에 안 가서 기쁜 것보다 분명히 천국에 가기에 구원이 진짜 기쁨이고 감격이어야 하는데..."(57)
"기독교의 구원이 주는 기쁨은 매우 형이상학적이고, 그 형이상학을 포기하면 '기독교가 주는 기쁨이 매우 세속적이게 된다'는 딜레마... 기독교의 구원이 제시하는 형이상학적 기쁨은 최소한 내게 별 감흥이 없다. 그러다 보니 나의 삐딱한 시각으로 볼 때 '기독교는 어찌 보면 실제로 가장 기쁜 요소가 별로 없으니 어떻게든 기쁨을 짜내려고 가장 발버둥치는 종교로 전락하고 있지 않나? ... '감동 있는 예배' 같은 단어를 쓰며 어떻게든 기쁨을 가장한 흥분을 조장하는 데 갖은 전략과 에너지를 쓰는 상황이 아닐까? ... 왜 오늘날 교회들이 그렇게 발라드 음악과 찬양팀에 목을 맬까? 그렇게 조작하지 않으면 기쁨, 감격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교회 속의 음악은 음식에 들어가는 조미료, 즉 MSG와 비슷한 것이다. 그게 없으면 맛이 안 난다. (58f)
"그렇다면 MSG 음악을 더하지 않은 기독교에 진짜 맛은 없다는 것인가? 구원이 주는 진짜 기쁨은 없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까지는 분명 기독교의 구원에 그 기쁨이 실재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갈구하고 찾는 것이다. 분명 지금 내 수준의 지옥 탈피용 구원의 기쁨 수준으로 사는 것이 기독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그 기쁨의 실체... 성경 속에서...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을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요 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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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2002년 월드컵의 승리가 내게 그토록 큰 기쁨을 주었을까? 그때까지 피부로 느끼지 못했지만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대한민국, 내 나라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기독교만이 줄 수 있는 기쁨의 비밀은 결국 사랑 속에 있다. 빌립보서에서 말한 바울의 고백, 어느날 오후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분명 예수님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사랑이 있었기에 기쁨이 그들을 채웠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소유했던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지금 갈망한다. 내 속에 꺼지지 않는 기쁨을 위해서!"(60f)
"진짜 믿음은 '앎'에서 시작하는 것... 믿음은 안다는 것이다. 알면, 정말 제대로 알면 삶에서 아니, 나의 표정 하나에서 저절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어느 날 내 통장에 100억 원이 있음을 안다. ... 그 사람은 즉시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 바뀌어 새로워질 것이다. .. 성경은 이런 변화가 생긴 사람을 향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말한다. ... 기독교의 꽤 많은 진술을 우리가 믿는다고 말하지만, 이 믿음이 진짜 앎을 동반할 때 우리의 삶이 '뒤집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기적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하물며 내 통장에 100억 원이 있어도 내 인생 전체가 뒤집어지는데 옆집 친구의 아버지가 아닌 바로 내 아버지가,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나 대신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셨음을 안다면... 그 사실을 알게 된 나의 오느로가 어제가 똑같다면... 우리는 너무도 쉽게 '믿는다'고 말한다. 이 상황을 놓고 내밀 수 있는 가장 가능한 결론은 단 하나뿐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건 아닌지... " (74f)
"우리는 행여 하나님에 대해 아예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분의 수많은 약속을 앞에 두고도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 건 아닐까? 아니면 최소한의 무슨 느낌이라고 일으키기 위해서 나는 30분 이상 땀을 흘리며 반복해서 감동적인 노래를 계속 불러야만 하지는 않을까? 내 통장에 100억 원이 있음을 알 때 내 삶 구석구석에서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우러난다. 자신감을 갖기 위해 특별한 명상을 하고 세미나를 다닐 필요가 전혀 없다. 어떤 사실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생기는 믿음은 그냥 자연스럽게 삶 속에서 흘러나오고 삶의 모든 분야에서 자연스럽게 투영되기 마련이다. 내가 낳은 자식을 사랑하기 위해서 부모가 애쓸 필요가 없다. ... 내가 낳은 자식임을 알기에 자식에 대한 나의 사랑은 그냥 흘러나온다. 내 자식을 향한 사랑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듯 믿음은 그 대상을 아는 것이다. 정말로 안다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안다면, 그 결과 믿음은 자연스럽게 우리 삶 속에서 드러난다. 억지로 쥐어 짜야 하는 그 무엇이 아니다(81f)
==> 이 책을 읽오 내린 결론: 내 믿음 가짜다. 감동도 없고, 기쁨도 없다. 사랑하지도 않고,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2013년 7월 24일 수요일
2013년 7월 23일 화요일
"서양인은 남과 구분되기 위한 선택을 한다면, 동양인은 남과 하나가 되기 위한 선택를 한다. 동양인은 주류 문화에 소속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다. 물건을 구입할 때도 자신의 판단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입소문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며, 한번 인기몰이를 시작하면 대박을 터뜨리는 대중문화의 '쏠림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서양에서는 '주체로서의 나I'가 강하고 동양에서는 '대상으로서의 나Me'가 강하다.
서양 집은 담장이 없고 마당이 개방되어 있는데 반해, 동양 집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져 있고 큰 대문이 있다. 집 내부는 정반대다. 서양은 집안 내에서도 사생활이 중시된다. ... 동양에서는 집안 내에서의 사생활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동양인은 각각의 호칭에 맞춰 그때끄때 변화시킬 수 있는 유동적 자아를 가지고 있다.
동양의 집단주의는 개인의 행복을 희생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우울증을 방지하는 기능도 한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행복한 개인의 비율이 동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동시에, 불행한 개인의 비율도 높다.
동양에서는 개인의 행복을 크게 강조하지 않았다. 인간은 행복하다가도 불행해질 수 있는 존재라고 보고 행복과 불행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을 강조했다"
(EBS 다큐멘터리 동과서)
서양에서는 '주체로서의 나I'가 강하고 동양에서는 '대상으로서의 나Me'가 강하다.
서양 집은 담장이 없고 마당이 개방되어 있는데 반해, 동양 집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져 있고 큰 대문이 있다. 집 내부는 정반대다. 서양은 집안 내에서도 사생활이 중시된다. ... 동양에서는 집안 내에서의 사생활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동양인은 각각의 호칭에 맞춰 그때끄때 변화시킬 수 있는 유동적 자아를 가지고 있다.
동양의 집단주의는 개인의 행복을 희생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우울증을 방지하는 기능도 한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행복한 개인의 비율이 동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동시에, 불행한 개인의 비율도 높다.
동양에서는 개인의 행복을 크게 강조하지 않았다. 인간은 행복하다가도 불행해질 수 있는 존재라고 보고 행복과 불행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을 강조했다"
(EBS 다큐멘터리 동과서)
한국사회는 질적으로 나빠질 이유가 충분하다. 왜? 기능적 분화는 오히려 구조적 악, 제도적으로 정당화된 악을 양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당화된 권력, 정당화된 자본이 활개를 칠 수 있는 것이다. 차리리 음성적으로 일어날 때보다, 기득권, 욕심쟁이들은 더 정당하게 해먹을 수 있는 것이다. 홀로코스트가 가능한 것처럼... 이명박, 박근혜 등의 무리가 선거를 통해서 얻은 정당성을 가지고 해먹고 있는 것처럼. 사익을 위해서 공적 제도를 이용하는 것처럼. 외형적 정당성을 띤 부패한 세력, 권력들...
과학은 얼마든지 팽창할 수 있다. 경제 등과 맞물려서...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들이 마련되어야하는데... 그것이 겉도는 것이다.
과학은 얼마든지 팽창할 수 있다. 경제 등과 맞물려서...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들이 마련되어야하는데... 그것이 겉도는 것이다.
2013년 7월 22일 월요일
science의 어원은 sceadan로 그 뜻은 "to divide, seperate".
reason(이성(理性)의 어원은 비례를 뜻하는 'ratio'.
사물을 분리하고 해석하여 규칙성을 발견하는 능력이 바로 이성이다.
idea(이데아) --> identity
고정불변의 이데아... 자신만의 고유한 속성...
"동야인들은 일반적으로 감정을 절제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서양인에 비해 더 미묘한 방식으로 감정을 표출한다. 동양 - 눈꼬리 ^^, ^-^, ㅜㅜ, ㅠㅠ, ;;, 서양 - 입꼬리... :), :(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웃을 때 입을 손으로 가리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해왔다. 입을 통해 상대방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예의에 어긋난다고까지 생각했던 것이다. 이 경우 눈이 감정을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된다. 이 때문에 동양에 '눈치'라는 말이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말의 표면적 의미뿐만 아니라 목소리의 톤이나 이야기의 맥락 등의 정보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것을 '고맥락적 커뮤니케이션 high-context communicaiton이라고 한다.
동양 아이들은 하늘에서 내려다본 듯한 그림... 서양아이들이 자신이 실제로 본 눈높이로...
서양 아이는'자기 자신이 바라본 관점(1인칭 시점)에서 그림을 그리고, 동양 아이는 자신을 초월한 '상상의 제3자가 바라본 관점(3인칭 관점'에서 그림을 그린다.
individual=in+divide, atom=un+cut
'원자'와 '개인'의 의미맥락은 동일하다.
서양에서는 일찍이 교역 문화가 발달.... 교역 문화에서는 개인의 능력이 중요. 개인의 사유 재산과 계약 관계를 규정한 로만 만민법... 'I'가 항상 대문자로 씌여진다... 동양에서는 쌀 농사를 중심으로 농경 문화가 발달. 쌀은 밀과는 달리 영양가가 높아서 자급자족 가능... 집단이 힘을 합쳐야 하는 일... 개인보다 집단이 중시됨.. .
individual=in+divide, atom=un+cut
'원자'와 '개인'의 의미맥락은 동일하다.
서양에서는 일찍이 교역 문화가 발달.... 교역 문화에서는 개인의 능력이 중요. 개인의 사유 재산과 계약 관계를 규정한 로만 만민법... 'I'가 항상 대문자로 씌여진다... 동양에서는 쌀 농사를 중심으로 농경 문화가 발달. 쌀은 밀과는 달리 영양가가 높아서 자급자족 가능... 집단이 힘을 합쳐야 하는 일... 개인보다 집단이 중시됨.. .
(EBS다큐멘터리 동과 서)
한국 사회를 분석, 이해,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할 때 다야한 경향성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낙관론 혹은 비관론에 빠지기 쉽다.
한국사회는 물론 긍정적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런 부분이 있다. 자랑할 부분도 있고, 앞으로도 더 좋아질 부분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발전되었다고 생각한 부분이 오히려 퇴행적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법치국가를 예로 들어보자. 법대로 한다... 는 이전의 무법적 억압, 약탈과 비교할 때 약자의 입장에선 긍정적 발전으로 볼 여지가 있지만... 억압자, 지배자가 적응이 되기만 하면... 예전의 법의 무시하던 방식의 지배, 약탈, 압제에서 법의 이름으로 정당화된 지배, 약탈, 압제로 바뀔 뿐인 경우도 많다.
제도의 도입 그 자체만을 가지고 진보라고 평가해서는 곤란한 것이다.
한국사회는 물론 긍정적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런 부분이 있다. 자랑할 부분도 있고, 앞으로도 더 좋아질 부분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발전되었다고 생각한 부분이 오히려 퇴행적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법치국가를 예로 들어보자. 법대로 한다... 는 이전의 무법적 억압, 약탈과 비교할 때 약자의 입장에선 긍정적 발전으로 볼 여지가 있지만... 억압자, 지배자가 적응이 되기만 하면... 예전의 법의 무시하던 방식의 지배, 약탈, 압제에서 법의 이름으로 정당화된 지배, 약탈, 압제로 바뀔 뿐인 경우도 많다.
제도의 도입 그 자체만을 가지고 진보라고 평가해서는 곤란한 것이다.
새벽부터 많은 비가 왔다. 하여 사무실 나오는 길 신발은 "쪼래기"로 낙점. 오는 길에 이재철, 이어령 대담을 조금 들었다. '믿음'은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말그대로 '믿음'은 '믿음'이지 '이해'는 아닌 것 같다. 믿음보다는 이해가 범위가 크다. 이해되어서 믿을 수도 있지만, 이해되지 않고도 믿을 수 있다. 이해되지는 않지만 믿을 수 있는, 혹은 믿어야 하는 그 부분들을 도대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이어령 선생은 그 대담에서 그 나름의 방법론을 보여준다. 성서를 도대체 어떤 문서로 봐야 할 것인가...의 문제...
2013년 7월 20일 토요일
도서관 '학습기기실'이 너무 추워서 콧물을 흘리다 이게 뭔짓인가 싶어서 좀 더 '따뜻한' '인문자연과학실'에 있다. 온 김에 서가를 어슬렁거리다가 내 논에 들어온 책이... "EBS 다큐멘퍼리: 동과 서"였다. 원래 이런 단순하고 분명한 구분이 매력적이다. 따지고 들면 설득력이 떨어지더라도 일단은 혹하게 된다. 강준만, 김정운, 김용옥 그리고 그밖에 언론에서 선호하는 학자들의 태도가 대개 그렇다. 알기쉽고, 분명하게 얘기하지만, 발언의 내용을 따지고 들면 헛점투성이인... 어쩌면 모호하고 복잡하기만 한 내 생각, 논문, 글쓰기에 진절머리가 난 참이라 좀 단정적이고 분명한 얘길 듣고 싶었나보다. 제목을 보면서 미국 Nisbet 교수의 저서 "생각의 지도 The Geography of Thought"를 연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책을 토대로 기획한 다큐였다고...
책 내용은 역시나 "이보다 더 명쾌할 수는 없다".
동양 - 물질(재료) 중심, 서양 - 물체(사물) 중심
동양 - 동사 중심, 서양 - 명사 중심
동양 - 동질성, 일체(one-ness) 강조, 서양 - 개체성, 집합(collection) 강조
동양 - 사물간의 관계 중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인정, 기(氣)로 가득차 있다. 기를 매개로 연결되어 있다. 지구와 달의 상호작용으로 밀물 썰물 생기는 것을 일찌기 알았음, "고대 중국인들은 2500년 전부터 파장, 자기장과 같은 개념을 알고 있었고... 서양인들은 18세기 후반까지도 떨어져 있는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했음...
현대물리학에서는 기로 연결되어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공간을 '장(場) fied'이라고 부른다. 동양인들은 우주를 하나의 커다란 장으로 생각했다. 현대물리학은 장 개념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연구를 진행... 아인슈타인은 중력장 이론과 양자장 이론을 통해 물체를 이루는 입자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밝힘.
사물(事物)이라는 단어는 연결관계를 잘 드러낸다. 모든 물체物와 물체物는 서로 연결(事) 되어 있다.
동양: (차) 더 마실래? (동사 중심)
서양" (Would you like to have) more tea? (명사 중심)
동양인들에게 우주의 사물들은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사물을 둘러싼 환경과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
한 송이 국화꽃이 피기까지는 봄부터 소쩍새도 울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다...
--> 동양적 사고는 오늘날 생태학적 사고나, 싸이버네틱스, 체계이론적 사고와 친화성이 매우 크다.
--> 그런 전통에서 이론을 만든 루만도 어쩌면 동양인들에게 더 쉽게 어필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생겨나고 사라진다. 불교에서는 연기(緣起)라고 부른다. 모든 사물이 수많은 인연에 따라 생겨난다. '연'은 인연, 즉 수많은 원인을 가리킨다. '기'는 생겨난다는 뜻.. 모든 사물은 늘 변화하면서 새롭게 생겨나는 존재라는 뜻. 서양에서는 모든 존재를 고정적인 의미인 'Being'으로 펴현. 동양에서는 모든 존재가 항상 변화해간다는 의미인 'Arising, 기(起)'으로 표현. 동양의 관점ㅇ네서 모든 존재는 고정된 명사적 존재가 아니라 늘 변화하는 동사적 존재.
동양에서는 어떤 사물의 특성을 알고자 할 때 다른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도 그 사람의 가정환경, 인간관계 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식...
서양에서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알고자 할 때 그 사람의 타고난 성격이나 특유한 사고방식, 심리상태 등 그 사람 고유의 내면 분석을 통해서 파악하려 함.
동양에서는 사물과 사물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고 전헤함. 주역(周易)에서는 이를 대대성(對待性)이라고 표현. 대대성이란 이 세상 모든 사물이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상호연결되어 있다는 뜻.
천지인... 사람은 땅이나 하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음양... 세상 만물이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시간(時間), 공간(空間), 인간(人間)...
동양에서는 시(時)라는 단어에 굳이 간(間)자를 추가해서 표현... 시간을 전과 후가 합쳐진 개념으로 인식했기 때문.
서양에서는 사물을 추상화(抽象化)abstraction해서 표현하기 때문에 간(間)개념이 발달하지 않았음. 서양에서는 모든 사물이 독립된 물체들의 결합이라고 믿기 때문에 쪼개고 또 쪼개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본질적인 물체에 도달한다 믿었고, 이것을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 여겼다.
공간.. 전후좌우 네 가 방향이 합쳐져서 발생하는 대대적 개념.
동양이 관계 중심적이고 서양은 개체 중심적 이라는 주장은 반드시 옳은 것 같지 않다. 개체중심저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동양의 관계는 삼강오륜에 잘 나타나 있다.
삼강(三綱)
- 군위신강(君爲臣綱):(임금과 신하사이의 도리) 신하는 임금을 섬기는것이 근본이요.
- 부위자강(父爲子綱):(어버이와 자식사이의 도리) 아들은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 근본이요.
- 부위부강(夫爲婦綱):(남편과 아내사이의 도리) 아내는 남편을 섬기는 것이 근본이요.
오륜(五倫)
- 父子有親(부자유친): 어버이와 자식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한다.
- 君臣有義(군신유의):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로움이 있어야 한다.
- 夫婦有別(부부유별): 부부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
- 長幼有序(장유유서):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
- 朋友有信(붕우유신): 친구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밖에도 의미를 갖는 관계는 다양할 수 있다. 친척, 친족, 마을 등등. 문제라면 문제는 이렇게 관계로 얽히지 않는 관계 밖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이다. 이방인, 손님, 혹은 야만(족), 미개(족) 등으로 다루면... 그들에 대한 예절, 규범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관계 중심적이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의미있는 관계를 - 근대화된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 매우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 간(인권), 시민 간 (시민권)의 보편적 관계에 대한 이해가 천박하기 그지없다. 특히 대도시에서 친분관계, 직접적 관계가 없는 인간을 어떤 관계로 설정할 것인지... 그런 개념들이 희박하다(혹은 아애 없다). 그런 상황을 두고 과연 관계 중심적이라고 일반화할 수 있을까? 아... 물론 직접적 친분관계를 넘어선 관계로 한민족, 국민.. 같은 개념들이 있다. 그것은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 발동된다. 월드컵 한국 경기를 길거리에서 응원하러 보인 사람들 속에서... 혹은 다른 형태의 민중, 비판적 시민, 시민사회... 등은 촛불집회 같은 경우에서...
반면에 개체중심적이라는 서양에서는 개인주의 덕/탓에 개별적 인간들 간의 평등, 보편적 관계를 상정하는 개념들이 발달했다. 인권, 천부인권.... 물론 여기에서 동등한 권리를 갖는 '인'에 포함되는 '인'의 범위는 확대되었다. 서양인들은 근대적 관계 개념을 발전시켜왔던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개체에서 특징을 찾는 것... 관계 속에서 개체의 특징을 찾는 것... 뭐 그런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런 관계 속에서.... 보편적 '인간'들 속에서 개인의 특징을 찾는 동양의 문화는.... 천지인.. 운운하기도 하지만... 인권 같은 개념으로 발달되지는 않았다는...
물론 그 관계중심성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들에 대한 관념으로... 인인유친.... 같은 개념을 발전시키지 못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타인 속에서 동등함을 발견할 수 있다면, 애초에 관계성에 더 민감한 동양인들이 인권을 더 체화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문화, 이주민들에 대한 접근은 우리는 우리의 관계 속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려고 시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보편적 인권이 아니라...
책 내용은 역시나 "이보다 더 명쾌할 수는 없다".
동양 - 물질(재료) 중심, 서양 - 물체(사물) 중심
동양 - 동사 중심, 서양 - 명사 중심
동양 - 동질성, 일체(one-ness) 강조, 서양 - 개체성, 집합(collection) 강조
동양 - 사물간의 관계 중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인정, 기(氣)로 가득차 있다. 기를 매개로 연결되어 있다. 지구와 달의 상호작용으로 밀물 썰물 생기는 것을 일찌기 알았음, "고대 중국인들은 2500년 전부터 파장, 자기장과 같은 개념을 알고 있었고... 서양인들은 18세기 후반까지도 떨어져 있는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했음...
현대물리학에서는 기로 연결되어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공간을 '장(場) fied'이라고 부른다. 동양인들은 우주를 하나의 커다란 장으로 생각했다. 현대물리학은 장 개념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연구를 진행... 아인슈타인은 중력장 이론과 양자장 이론을 통해 물체를 이루는 입자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밝힘.
사물(事物)이라는 단어는 연결관계를 잘 드러낸다. 모든 물체物와 물체物는 서로 연결(事) 되어 있다.
동양: (차) 더 마실래? (동사 중심)
서양" (Would you like to have) more tea? (명사 중심)
동양인들에게 우주의 사물들은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사물을 둘러싼 환경과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
한 송이 국화꽃이 피기까지는 봄부터 소쩍새도 울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다...
--> 동양적 사고는 오늘날 생태학적 사고나, 싸이버네틱스, 체계이론적 사고와 친화성이 매우 크다.
--> 그런 전통에서 이론을 만든 루만도 어쩌면 동양인들에게 더 쉽게 어필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생겨나고 사라진다. 불교에서는 연기(緣起)라고 부른다. 모든 사물이 수많은 인연에 따라 생겨난다. '연'은 인연, 즉 수많은 원인을 가리킨다. '기'는 생겨난다는 뜻.. 모든 사물은 늘 변화하면서 새롭게 생겨나는 존재라는 뜻. 서양에서는 모든 존재를 고정적인 의미인 'Being'으로 펴현. 동양에서는 모든 존재가 항상 변화해간다는 의미인 'Arising, 기(起)'으로 표현. 동양의 관점ㅇ네서 모든 존재는 고정된 명사적 존재가 아니라 늘 변화하는 동사적 존재.
동양에서는 어떤 사물의 특성을 알고자 할 때 다른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도 그 사람의 가정환경, 인간관계 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식...
서양에서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알고자 할 때 그 사람의 타고난 성격이나 특유한 사고방식, 심리상태 등 그 사람 고유의 내면 분석을 통해서 파악하려 함.
동양에서는 사물과 사물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고 전헤함. 주역(周易)에서는 이를 대대성(對待性)이라고 표현. 대대성이란 이 세상 모든 사물이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상호연결되어 있다는 뜻.
천지인... 사람은 땅이나 하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음양... 세상 만물이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시간(時間), 공간(空間), 인간(人間)...
동양에서는 시(時)라는 단어에 굳이 간(間)자를 추가해서 표현... 시간을 전과 후가 합쳐진 개념으로 인식했기 때문.
서양에서는 사물을 추상화(抽象化)abstraction해서 표현하기 때문에 간(間)개념이 발달하지 않았음. 서양에서는 모든 사물이 독립된 물체들의 결합이라고 믿기 때문에 쪼개고 또 쪼개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본질적인 물체에 도달한다 믿었고, 이것을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 여겼다.
공간.. 전후좌우 네 가 방향이 합쳐져서 발생하는 대대적 개념.
동양이 관계 중심적이고 서양은 개체 중심적 이라는 주장은 반드시 옳은 것 같지 않다. 개체중심저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동양의 관계는 삼강오륜에 잘 나타나 있다.
삼강(三綱)
- 군위신강(君爲臣綱):(임금과 신하사이의 도리) 신하는 임금을 섬기는것이 근본이요.
- 부위자강(父爲子綱):(어버이와 자식사이의 도리) 아들은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 근본이요.
- 부위부강(夫爲婦綱):(남편과 아내사이의 도리) 아내는 남편을 섬기는 것이 근본이요.
오륜(五倫)
- 父子有親(부자유친): 어버이와 자식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한다.
- 君臣有義(군신유의):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로움이 있어야 한다.
- 夫婦有別(부부유별): 부부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
- 長幼有序(장유유서):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
- 朋友有信(붕우유신): 친구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밖에도 의미를 갖는 관계는 다양할 수 있다. 친척, 친족, 마을 등등. 문제라면 문제는 이렇게 관계로 얽히지 않는 관계 밖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이다. 이방인, 손님, 혹은 야만(족), 미개(족) 등으로 다루면... 그들에 대한 예절, 규범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관계 중심적이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의미있는 관계를 - 근대화된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 매우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 간(인권), 시민 간 (시민권)의 보편적 관계에 대한 이해가 천박하기 그지없다. 특히 대도시에서 친분관계, 직접적 관계가 없는 인간을 어떤 관계로 설정할 것인지... 그런 개념들이 희박하다(혹은 아애 없다). 그런 상황을 두고 과연 관계 중심적이라고 일반화할 수 있을까? 아... 물론 직접적 친분관계를 넘어선 관계로 한민족, 국민.. 같은 개념들이 있다. 그것은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 발동된다. 월드컵 한국 경기를 길거리에서 응원하러 보인 사람들 속에서... 혹은 다른 형태의 민중, 비판적 시민, 시민사회... 등은 촛불집회 같은 경우에서...
반면에 개체중심적이라는 서양에서는 개인주의 덕/탓에 개별적 인간들 간의 평등, 보편적 관계를 상정하는 개념들이 발달했다. 인권, 천부인권.... 물론 여기에서 동등한 권리를 갖는 '인'에 포함되는 '인'의 범위는 확대되었다. 서양인들은 근대적 관계 개념을 발전시켜왔던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개체에서 특징을 찾는 것... 관계 속에서 개체의 특징을 찾는 것... 뭐 그런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런 관계 속에서.... 보편적 '인간'들 속에서 개인의 특징을 찾는 동양의 문화는.... 천지인.. 운운하기도 하지만... 인권 같은 개념으로 발달되지는 않았다는...
물론 그 관계중심성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들에 대한 관념으로... 인인유친.... 같은 개념을 발전시키지 못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타인 속에서 동등함을 발견할 수 있다면, 애초에 관계성에 더 민감한 동양인들이 인권을 더 체화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문화, 이주민들에 대한 접근은 우리는 우리의 관계 속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려고 시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보편적 인권이 아니라...
2013년 7월 19일 금요일
코헨 형제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본인들은 진지한대 보는 사람들은 웃는... 하지만 내용은 잔인한... 이명박, 박근혜... 국격, 국격하더니... 아주 시리즈물을 찍어대는구나. 어디 이명박, 박근혜.... 그리고 떡고물이라도 만져보려고 그 주위에 몰려든 저렴한 인간들만 탓할 것인가. 결국 대한민국, 남한 사회 구성원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북은 블랙 코미디 농도가 더 진하다. 이 정도로는 게임도 못 붙여볼 정도로... 이래 저래 저렴한 나라, 저렴한 국민들이다. 이 집단적 저렴함은 이제 비로소 발가벗겨지는 것이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민주화 이후로 한국 사회의 질이 "더 나빠졌다"고? 그건 아니지...
마음이 닫히면 얼굴이 굳는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이제 얼굴을 펴는 것이 어색해진다. 얼굴은 그럴수록 더 굳어진다. 악순환이다. 여유를 갖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려 애쓰는 것으로 굳은 얼굴을 푸는데 한계가 있다. 마음을 열어야 한다. 마음을 풀어야 한다. 사랑이다. 결국은... 진정으로 사랑해버려야 비로소 굳은 얼굴과 마음이 녹는다. 냉랭해진 관계에 온기가 돈다. 거슬리는 것,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사랑해버려야 한다. 바보처럼 내 기준을 내려놓아야 한다. Radical Life Change... 구원... 믿는다는 것...
구원, 믿음
오늘 페친이 된 이민규 교수님이 쓴 '구원'에 대한 글에서 많이 배웠다. 일부 옮겨 두면..
"한국에는 유난히 장로교가 많다. 그러나 특이할 정도로 장로교이면서도 칼뱅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벗어나는 부분이 많다. 그중 하나가 구원론이다. 물론 목회자들은 신학교에서 칼뱅의 “구원의 서정”을 배우고 시험도 보겠지만, 어찌 된 노릇인지 졸업만 하면 그 내용을 다 잊어버리고 교회에서 전혀 다른 내용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이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그것이 정통교회에서 이단으로 여기는 구원파의 구원론과 유사하다는 사실조차 잘 모른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는 “신자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후 성화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라는 가르침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칼뱅은 이러한 신학을 반대한다. 성화는 “구원 이후” 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칼뱅에게 구원이란 예수를 주로 고백하여 단박에 받는 것이 아니라 순서가 있는 “과정을 거치는 길”과 같다. 여기서 성화는 필수 과정이다. 즉 성화 없는 구원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러기에 그는 “기독교 강요”에서 “성화론”을 따로 다루지 않고 구원론에서 함께 다룬다. 그는 구원을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한 “칭의”와 “성화”로 설명한다. 칼뱅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여 이중은혜(a double grace) 곧 칭의의 은혜와 성화의 은혜를 받게 된다고 한다(Ⅲ.11.1).
칼뱅에게 성화의 행위는 구원 이후가 아니라 구원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칼뱅은 성화의 “행위”가 제한된 의미로 구원의 조건임을 인정한다. 쉽게 말하자면 야고보가 말하는 행위 없는 믿음의 허구성을 경고하는 것이다.
“우리가 행위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도 아니고,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도 아니다.” (칼뱅).
필자가 보기에는 칼뱅도 한 사람의 신학자에 불과하고 그가 성경을 해석하는 절대 기준이 될 수 없지만, 그의 칭의/성화 구원 과정은 “단박구원”보다 훨씬 성서적이다.*
칼뱅의 Ordo Salutis (라틴어로 구원의 순서)는 우리 말로 “구원의 서정”으로, 화란어로는 “구원의 수단”(Heilswerg), 영어권에서는 “구원의 길” (Way of Salvation)로 번역되었다. 칼뱅은 이 표현 그대로 구원을 순서가 있는 길과 같은 과정으로 이해한다."
대개 구원을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는 순간" 얻는 사후 천국행 티켓 정도로 생각하지 않는가?(단박구원!). 그 이후 좀 더 착하고, 은혜스럽게 살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한 번 "획득한" 티켓은 절대 뺏기는 법이 없는... 뭐 그런... 매우 편리한...
구원을 그렇게 전하는 것을 두고 "값싼 복음"이라고 비판하는 견해에 동의했으면서도, 난 기독교, 특히 장로교 교리 자체가 단박구원을 옹호하는 줄 알았었다. 그게 아니었구나.
어제 유트부를 통해서 들은 이재철 목사님의 설교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에서도 느낀 바가 많다. 내 식으로 풀어서 요약하자면... '믿음'은 그저 심리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 10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했는데... 여하튼... 결론은 삶의 변화, 의지적 노력 등이 수반되지 않는 건 믿음이 아니라는 것. 그저 립서비스일 뿐.
나는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나는 정말 구원의 길 위에 있는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한국에는 유난히 장로교가 많다. 그러나 특이할 정도로 장로교이면서도 칼뱅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벗어나는 부분이 많다. 그중 하나가 구원론이다. 물론 목회자들은 신학교에서 칼뱅의 “구원의 서정”을 배우고 시험도 보겠지만, 어찌 된 노릇인지 졸업만 하면 그 내용을 다 잊어버리고 교회에서 전혀 다른 내용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이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그것이 정통교회에서 이단으로 여기는 구원파의 구원론과 유사하다는 사실조차 잘 모른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는 “신자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후 성화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라는 가르침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칼뱅은 이러한 신학을 반대한다. 성화는 “구원 이후” 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칼뱅에게 구원이란 예수를 주로 고백하여 단박에 받는 것이 아니라 순서가 있는 “과정을 거치는 길”과 같다. 여기서 성화는 필수 과정이다. 즉 성화 없는 구원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러기에 그는 “기독교 강요”에서 “성화론”을 따로 다루지 않고 구원론에서 함께 다룬다. 그는 구원을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한 “칭의”와 “성화”로 설명한다. 칼뱅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여 이중은혜(a double grace) 곧 칭의의 은혜와 성화의 은혜를 받게 된다고 한다(Ⅲ.11.1).
칼뱅에게 성화의 행위는 구원 이후가 아니라 구원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칼뱅은 성화의 “행위”가 제한된 의미로 구원의 조건임을 인정한다. 쉽게 말하자면 야고보가 말하는 행위 없는 믿음의 허구성을 경고하는 것이다.
“우리가 행위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도 아니고,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도 아니다.” (칼뱅).
필자가 보기에는 칼뱅도 한 사람의 신학자에 불과하고 그가 성경을 해석하는 절대 기준이 될 수 없지만, 그의 칭의/성화 구원 과정은 “단박구원”보다 훨씬 성서적이다.*
칼뱅의 Ordo Salutis (라틴어로 구원의 순서)는 우리 말로 “구원의 서정”으로, 화란어로는 “구원의 수단”(Heilswerg), 영어권에서는 “구원의 길” (Way of Salvation)로 번역되었다. 칼뱅은 이 표현 그대로 구원을 순서가 있는 길과 같은 과정으로 이해한다."
대개 구원을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는 순간" 얻는 사후 천국행 티켓 정도로 생각하지 않는가?(단박구원!). 그 이후 좀 더 착하고, 은혜스럽게 살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한 번 "획득한" 티켓은 절대 뺏기는 법이 없는... 뭐 그런... 매우 편리한...
구원을 그렇게 전하는 것을 두고 "값싼 복음"이라고 비판하는 견해에 동의했으면서도, 난 기독교, 특히 장로교 교리 자체가 단박구원을 옹호하는 줄 알았었다. 그게 아니었구나.
어제 유트부를 통해서 들은 이재철 목사님의 설교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에서도 느낀 바가 많다. 내 식으로 풀어서 요약하자면... '믿음'은 그저 심리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 10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했는데... 여하튼... 결론은 삶의 변화, 의지적 노력 등이 수반되지 않는 건 믿음이 아니라는 것. 그저 립서비스일 뿐.
나는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나는 정말 구원의 길 위에 있는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2013년 7월 18일 목요일
1.
장애인을 보고서 마음 한 켠이 서늘해질 때가 있다. 사지 멀쩡한 당신은 도대체 뭘 하고 있나면서 자책하게 되고... 물론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기분 나쁠 것이다. 장애에 대한 바람직한 시선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드는 생각까지 물리칠 수는 없잖은가...
2.
가까운 관계에서 존경받고 존경하기란 참 쉽지 않다. 서로에 대한 지식, 관계의 근접도... 모두 지나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정말 신뢰할 수 있는 사이라면... 거리두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거리를 좀 두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때... 괴롭다. 대학시절... 집에 들어와서 그냥 인사만하고 내 방에 들어가던 때가 있었다. 어쩜 사람은 그렇게 안 변하는지... 그 후 20년이 지났는데도...
3.
마음이 답답할 때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많지 않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가장 가까운 친구는 '아내'인데... 아내에게 얘기할 수 없는 답답함도 있는 법이니... 그럴 때 필요한게 친구라는 존재인데... 많은 것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친구... 어쩌다보니... 오늘은 하루 종일 그런 친구가 참 그리운 날이었다.
Sting의 "Angel Eyes"를 듣다. 영화 Leaving Las Vegas를 통해서 알게 된... 이 목소리의 주인이 Sting이라는건 나중에 알았다. 독일 기숙사 방에서 곰플레어(곰무비?)가 제공하는 스트리밍으로... 그러니까 그렇게 좋지 않은 화질로 겨우겨우... 유명한 영화인건 알았지만 기대치가 그다지 높지 않았던지... 감정입하면서 봤고, 그래서 영화가 남긴 우울한 느낌은 오래갔다. 우울한 느낌을 남겼던 영화들이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다. Reon, Reign over me, Philadelphia, No country for old man, Happy together, Godfahter 1,2, Once upon a time in America...
타인과의 관계가 어려운건 모두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면 본인은 언제나 옳고 정당하다. 정당함과 정당함이 부딪히면 남는 건 상처 뿐이다. 관계가 가까울수록 상처는 깊고 오래간다.
타인과의 관계가 어려운건 모두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면 본인은 언제나 옳고 정당하다. 정당함과 정당함이 부딪히면 남는 건 상처 뿐이다. 관계가 가까울수록 상처는 깊고 오래간다.
"'현대에 들어 우연과 불확실성은 일상생활의 기본적인 측면이 됐다. 위험, 투기, 비결정성, 변동은 사회적, 경제적, 개인적 생활에 내재해 있고 또 지배한다. 우리는 이제 도박의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 (Gerda Reith) 도박이 '불확실성과의 투쟁'이라면, 불확실성이 높아진 시대나 상황에서 도박이 성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이 가능하겠다. ... 불확실성은 현재의 상태에서 비롯됐을망정, 미래적 개념이다. 현재를 강조하는 느낌을 주는 불안정성이라는 개념이 더 나을 것 같다. 불안정성은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불경기로 불안정해질 수도 있지만, 호황으로 불안정해질 수도 있다. 이 두 시기는 도박에 친화적이기에 도박은 사회적 불안정성과의 투쟁이라고 볼 수 있다. 불안정성과 역동성은 일란성 쌍둥이다. ... 세계적으로 지난 5백년 동안 가장 부유했던 국민들은 가장 투기와 도박이 심했던 국가의 국민들이었다. 이 나라는 불안정성을 역동성으로 뒤집었다. 한국도 불안정성을 역동성으로 뒤집어 성공한 나라지만, 그 역사가 짧다. 역동성을 불안정성으로 뒤집어 후퇴하는 짓도 곧잘 하기 때문에 미래를 낙관할 순 없다." (강준만 세계문화의 겉과 속, 383쪽)
한국은 이제 여러 면에서 "예외적 국가"에서 "정상 국가"를 향해서 가고 있는 중이다. 많은 사건들이 이를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1) 시세 차익을 노리고 빚내서 집을 산 하우스 푸어들에겐 재앙이겠지만 "집값 안정" (2)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사소한 일들이 문제시 되는 경우들이 많아지고 있다. 논문 표절 시비, 국정원 댓글 사건, 재벌들 비리, 전두환 일가 조사 등등. 물론 아직 우스운, 챙피한 일들, 관행들이 부지기수지만... 물론 "정상 국가"는 자본주의적, 혹은 근대적 정상 국가일 따름이다. 서구에서는 이미 거친...
모든 사회는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봐야한다. 아무리 세계화가 되었지만... 동일한 해결책이 어디에서나 적용되기는 힘들다. 이론, 특히 거시적 이론일수록 지역적 차이와 다양한 현실을 모두 포함해야 하기 때문에 추상적일 수밖에 없고, 최대한 많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론을 복잡하게 구성하고, 이런 저런 내용을 포함시킨다. 결론적으로 거시 이론가의 다양한 작품 속에서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견해를 찾으면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여하튼... 한국의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현실에 대한 주류 분석, 설명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내 주장을 해야한다. 그 결론은 당연히 일본이나 독일에 직접 적용되기 힘들다. 오히려 독일에서는 그런 주장이 낡은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내 관심과 연구 대상은 한국이다. 한국... 내가 반박할 수 있는 것은.... 한국에 대한 주류 시각이다. 그것을 반박할 수는 있겠다. 여하튼 내 논문은 독일 대학에 제출하는 것이니까...
한국의 과학 거버넌스의 윤리문제 등에 대해서는... 그런 경우들이 많아지고 있다. Wild East 혹은 윤리의 부재... 윤리의식 실종... 이런 표현들을 많이 쓴다. 더 많은 도덕이 문제 해결이 될 것인냥... 어떤 도덕이냐의 문제다.
한국의 과학 거버넌스의 윤리문제 등에 대해서는... 그런 경우들이 많아지고 있다. Wild East 혹은 윤리의 부재... 윤리의식 실종... 이런 표현들을 많이 쓴다. 더 많은 도덕이 문제 해결이 될 것인냥... 어떤 도덕이냐의 문제다.
"<한국인의 심리에 관한 보고서>(C. Fred Alford, 남경태 옮김, 그린비)... 그의 결론은... 한국인의 심리엔 악(惡)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인이 오직 관계의 관점에서만 옳고 그름을 알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인다고 말한다. '한국적 관점에서 본다면, 악은 관계에 의해서 정의되는 게 아니라 관계 자체이며 혹은 관계의 배반이다'(161쪽)"(강준만, 세계문화... 368쪽)
"조홍식은 양심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종류의 양심[신념?]ㅓㅕ888'을 가진 집단이 여럿 존재할 경우 이들 간의 갈등과 마찰은 서로 타협하기 어려운 투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양심이란 남의 눈치를 보면서 가치를 조정하는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고 뚜렷하게 선과 악이 존재하는 절대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동양 사회엔 종교전쟁이 거의 없었던 반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는 종교가 일으킨 전쟁의 피비린내로 가득 차 있는 것... 조홍식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체면이 지배하는 사회가 훨씬 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회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체면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유교적인 충과 효의 개념에 대한 높은 기준을 공유하고 있다고 가정할 경우, 남의 비난과 소외를 피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싫더라도 충과 효를 실행하는 생존 전략을 쓰게 되므로 매우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홍식은 체면 사회와 자본주의가 결합됐을 때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말한다. ... 그러나 개인이 아니라 집단 차원에서는 그런 [체면이라는] 가면마저 내던지는 경향이 있다. 즉, 한국인의 수치심 문화가 패거리주의를 만나면, 급속히 부패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368f)
동아시아에서도 일본과 한국의 수치심 문화가 다른 것이다. 일본은 수치심이 공적 규범으로 자리잡았고,한국인의 '체면'으로 자리잡았다. 사적 질서.... 비교 대상이 되는 집단, 집단 내에서의 체면으로...
"조홍식은 양심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종류의 양심[신념?]ㅓㅕ888'을 가진 집단이 여럿 존재할 경우 이들 간의 갈등과 마찰은 서로 타협하기 어려운 투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양심이란 남의 눈치를 보면서 가치를 조정하는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고 뚜렷하게 선과 악이 존재하는 절대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동양 사회엔 종교전쟁이 거의 없었던 반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는 종교가 일으킨 전쟁의 피비린내로 가득 차 있는 것... 조홍식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체면이 지배하는 사회가 훨씬 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회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체면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유교적인 충과 효의 개념에 대한 높은 기준을 공유하고 있다고 가정할 경우, 남의 비난과 소외를 피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싫더라도 충과 효를 실행하는 생존 전략을 쓰게 되므로 매우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홍식은 체면 사회와 자본주의가 결합됐을 때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말한다. ... 그러나 개인이 아니라 집단 차원에서는 그런 [체면이라는] 가면마저 내던지는 경향이 있다. 즉, 한국인의 수치심 문화가 패거리주의를 만나면, 급속히 부패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368f)
동아시아에서도 일본과 한국의 수치심 문화가 다른 것이다. 일본은 수치심이 공적 규범으로 자리잡았고,한국인의 '체면'으로 자리잡았다. 사적 질서.... 비교 대상이 되는 집단, 집단 내에서의 체면으로...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 말하려는 바는 시장경제, 시장이 '도덕적으로'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자기조정적 시장경제란 애초에 현실에 이루어질 수 없는, 실현 불가능한, 망상적인 유토피아라는 것이다." (홍기빈)
자기조정적 시장경제... 매우 루만적인 표현이다. 루만의 입장은 사실 자율성 강조와 통합/구조적 결합 사이에서 오간다. 루만은 어쩌면 빠져나갈 구멍을 여기 저기 마련해 놓았는지 모른다. 아니. 실제로 현실은 그런 것이니까... 다만 루만의 어떤 점을 강조하느냐... 그 강조점은 달라질 수 있다. 비록 루만 스스로도 강조하고 싶지 않았던 진술이 부각될 수도 있으니까... 지금까지 루만은 '자율성'을 강조하는 편으로 이해되었다. 그런 이해에 따라 루만을 비판하는 견해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어쩌면 달라질 수는 있는데... 구조적 결합이나 통합 쪽은 사실 거의 건설현장에 가깝다.
루만은 왜 다양한 얘기를 하면서 한 쪽을 강조했을까? 혹은 적어도 한 쪽이 강조되는 것처럼 이해되게 만들었을까? 추론해 볼 수 있는데...
(1) 루만은 이론 미학을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을 사회의 환경에 배치한 것도, 기능적 분화와 자기생산적 기능체계들의 깔끔한 동학을 설명하면서...
(2) 루만은 비판의 대상, 특히 주적을 명시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설정하고... 그것에 타격을 주기 위해 특정 견해를 강조했다. 체계의 자율성과 구조의 결합이란 주제의 경우... 루만은 "개입주의자들"에 비판적이었던 것 같다. 특히, 복지국가의 팽창 경향에 대해서... 경제의 팽창, 개입 경향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똑같은 얘길 도덕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루만은 현대사회의 도덕에 대해서 탈도덕화와 재도덕화를 동시에 얘기했다. 루만의 강조점은 탈도덕화에 있고, 루만의 도덕론에 대한 이해도 탈도덕화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루만의 윤리(학)의 한계 지적 때문에 이런 경향이 강화되었을 것이다. 루만의 재도덕화 주장을 강조할 수도 있다. 그리고 윤리에 대해서도 윤리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도 있다(Krohn). 그런 이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진술들도 있고...
루만은 도덕주의자들, 도덕의 역할을 과신하고 요청하는 규범적 접근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래서 현대사회의 탈도덕성을 강조했을 것이다.
자기조정적 시장경제... 매우 루만적인 표현이다. 루만의 입장은 사실 자율성 강조와 통합/구조적 결합 사이에서 오간다. 루만은 어쩌면 빠져나갈 구멍을 여기 저기 마련해 놓았는지 모른다. 아니. 실제로 현실은 그런 것이니까... 다만 루만의 어떤 점을 강조하느냐... 그 강조점은 달라질 수 있다. 비록 루만 스스로도 강조하고 싶지 않았던 진술이 부각될 수도 있으니까... 지금까지 루만은 '자율성'을 강조하는 편으로 이해되었다. 그런 이해에 따라 루만을 비판하는 견해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어쩌면 달라질 수는 있는데... 구조적 결합이나 통합 쪽은 사실 거의 건설현장에 가깝다.
루만은 왜 다양한 얘기를 하면서 한 쪽을 강조했을까? 혹은 적어도 한 쪽이 강조되는 것처럼 이해되게 만들었을까? 추론해 볼 수 있는데...
(1) 루만은 이론 미학을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을 사회의 환경에 배치한 것도, 기능적 분화와 자기생산적 기능체계들의 깔끔한 동학을 설명하면서...
(2) 루만은 비판의 대상, 특히 주적을 명시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설정하고... 그것에 타격을 주기 위해 특정 견해를 강조했다. 체계의 자율성과 구조의 결합이란 주제의 경우... 루만은 "개입주의자들"에 비판적이었던 것 같다. 특히, 복지국가의 팽창 경향에 대해서... 경제의 팽창, 개입 경향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똑같은 얘길 도덕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루만은 현대사회의 도덕에 대해서 탈도덕화와 재도덕화를 동시에 얘기했다. 루만의 강조점은 탈도덕화에 있고, 루만의 도덕론에 대한 이해도 탈도덕화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루만의 윤리(학)의 한계 지적 때문에 이런 경향이 강화되었을 것이다. 루만의 재도덕화 주장을 강조할 수도 있다. 그리고 윤리에 대해서도 윤리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도 있다(Krohn). 그런 이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진술들도 있고...
루만은 도덕주의자들, 도덕의 역할을 과신하고 요청하는 규범적 접근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래서 현대사회의 탈도덕성을 강조했을 것이다.
2013년 7월 17일 수요일
"오랫동안 여성은 도덕 철학이 말하는 '인간'의 범주에 속하지 못했다. 따라서 인간에 속하지 못하는 여성이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성취한 인권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당시의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결국 '위대한' 프랑스 혁명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귀족 계급의 남성에서 전체 남성으로 확대했을 뿐이다. 남녀가 사회적으로 평등하다는 '선언'이 이루어진 것은 20세기의 일이다. 유럽 사회에서 남자와 여자가 가족 공동체 내의 가사노동에 대하여 공동의 책임이 있다는 법 규범에 합의할 수 있었던 것은 1960년대가 지나서이다." (이화영, 도덕은 성(性)중립적인가, 198)
관계라는 괴물...
혼자 산다? 그건 극단적인 예외적 상황에서만 가능할 뿐이고, 설령 가능한대도 그렇게 산다는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 때는 각종 감정, 상태의 혼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게 좋은 것만 취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때로는 불쾌한 상태, 상황도 참아야 하는 것이다. 짜증내는 것도 그냥 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쌓이고 쌓여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이라면 나도 짜증을 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 얽히고 섥히면서 미운정 고운정 쌓아가면서 사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완전히 다르다. 상호작용이 잘 되질 않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미운정, 고운정이 쌓이질 않는 것이다. 그런 세계에 대해서는 완전히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식물과 상호작용한다고 생각해보다. 인간을 대하듯 해서는 도무지 메시지가 오가질 않는다. 식물의 메시지를 읽는다?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론상, 아니 교리상 훨씬 더 쉽다. 왜?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끊임없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우리 상황을 돌아보는 존재이기 (혹은 그런 존재로 상정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상호작용하려면 하나님의 언어, 소통 방식를 이해해야 한다. 공유하는 언어 없이는 소통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 하시는가? 성경을 통해서? 자연을 통해서? 꿈으로? 생각으로? 하나님은 내 이야기를 들으시는가? 거기에 대해서 반응하시는가? 그런 부분에 대한 이해와 체험이 없다면 도무지 하나님과 관계 속에 있다고 얘기할 수 없는 것이다.
요즘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불쾌하고, 짜증나과, 생각할 수록 화가 치미는 일들이 좀 있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는 그럴 일 자체가 없는 것 같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니... 인간에 대한 느낌을 하나님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까? 교리적 가르침을 일방적으로 전달하지 않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은 그런 세계를 "신비"로 표현한다. 뭔가를 알긴하는데 설명하거나 묘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신비"라기 보다는 "미지"다. 여전히... 여전히...
"한국에서 자생적 담론이 싹트기 위해서는 전통사상을 계승하는 것 못지 않게 서양사상사의 핵심을 내면화해야 할 것이다. 그런 내면화의 노동없이 생산된 담론은 지구촌의 한구석을 떠나자마자 생명력을 잃게 될 허약한 사상일 것임이 틀림없다. 외래성의 극복보다 먼저 와야 하는 것이 낙후성의 극복이며, 서양의 극복보다 더 시급한 것이 동양의 자기극복이다. 보편성과 미래성을 갖춘 사상, 역사적 현실에 부합하는 이념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현재 전 지구적 관점을 획득한 서양문화의 원천과 수렴지점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입지점에 설 수 있어야 할 것이다"(김상환,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 이후: 현대 프랑스 철학의 쟁점)
2013년 7월 16일 화요일
며칠 간의 "나름" 휴가 후 내일 다시 사무실에 나간다("출근"이란 표현을 굳이 쓰지 않음에 유의할 것...). 오고가는 시간 두 시간에 어영부영 보내는 시간까지 있으니 집중해서 뭔가를 생산해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업무"에도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또 내일(아니 지금 날을 꼬박 새고 있으니 오늘이구나)엔 교구 교역자 심방까지 있어서 일찍 집에 와야 하니... 아침을 맞는 기분이 영 별로다. 새벽 네 시가 넘었는데... 긴 시간 운전까지 하고 왔는데도... 도대체 잠에 들질 못하고 있다. 아침 일찍 수영 약속(?)까지 있는데... 잠은 이대로 포기될 것인가?
한여름밤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 뒤척이며 팟캐스트를 듣다 일어나 거실 한 쪽에서 노트북을 켠다. 한참 이것 저것 해보다 다시 들어가서 잠을 청한다. 아내와 딸이 곤히 자고 있다. 지난 며칠간 처가를 방문하고 오늘 돌아왔는데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런 일들이 떠올라 마음 한 구석이 아린다. 정태춘의 "한여름밤"이 생각난다.
한 여름 밤의 서늘한 바람은 참 좋아라
한낮의 태양 빛에 뜨거워진 내 머릴 식혀 주누나
빳빳한 내 머리카락 그 속에 늘어져 쉬는 잡념들
이제 모두 깨워 어서 깨끗이 쫓아 버려라
한 여름 밤의 고요한 정적은 참 좋아라
그 작은 몸이 아픈 나의 갓난 아기도 잠시 쉬게 하누나
그의 곁에서 깊이 잠든 피곤한 그의 젊은 어미도
이제 편안한 휴식의 세계로 어서 데려 가거라
아무도 문을 닫지 않는 이 바람 속에서
아무도 창을 닫지 않는 이 정적 속에서
어린 아기도 잠이 들고
그의 꿈 속으로 바람은 부는데
한 여름 밤의 시원한 소나기 참 좋아라
온갖 이기와 탐욕에 거칠어진 세상 적셔 주누나
아직 더운 열기 식히지 못한
치기 어린 이 젊은 가슴도
이제 사랑과 연민의 비로 후드득 적셔 주어라
한 여름 밤의 빛나는 번개는 참 좋아라
작은 안락에 취하여 잠들었던 혼을 깨워 주누나
번쩍이는 그 순간의 빛으로 한 밤의 어둠이 갈라지니
그 어둠 속을 헤매는 나의 길도 되밝혀 주어라
아무도 멈추게 할 수 없는 이 소나기 속에서
아무도 가로막을 수 없는 이 번개 속에서
어린 아기도 잠이 들고 나의 창으로
또 번개는 치는데
한 여름 밤의 서늘한 바람은 참 좋아라
한낮의 태양 빛에 뜨거워진 내 머릴 식혀 주누나
빳빳한 내 머리카락 그 속에 늘어져 쉬는 잡념들
이제 모두 깨워 어서 깨끗이 쫓아 버려라
한 여름 밤의 고요한 정적은 참 좋아라
그 작은 몸이 아픈 나의 갓난 아기도 잠시 쉬게 하누나
그의 곁에서 깊이 잠든 피곤한 그의 젊은 어미도
이제 편안한 휴식의 세계로 어서 데려 가거라
아무도 문을 닫지 않는 이 바람 속에서
아무도 창을 닫지 않는 이 정적 속에서
어린 아기도 잠이 들고
그의 꿈 속으로 바람은 부는데
한 여름 밤의 시원한 소나기 참 좋아라
온갖 이기와 탐욕에 거칠어진 세상 적셔 주누나
아직 더운 열기 식히지 못한
치기 어린 이 젊은 가슴도
이제 사랑과 연민의 비로 후드득 적셔 주어라
한 여름 밤의 빛나는 번개는 참 좋아라
작은 안락에 취하여 잠들었던 혼을 깨워 주누나
번쩍이는 그 순간의 빛으로 한 밤의 어둠이 갈라지니
그 어둠 속을 헤매는 나의 길도 되밝혀 주어라
아무도 멈추게 할 수 없는 이 소나기 속에서
아무도 가로막을 수 없는 이 번개 속에서
어린 아기도 잠이 들고 나의 창으로
또 번개는 치는데
"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
1.
어쩌다 들은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책소개를 접했다. "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 작가 이름이 특이하다. 박하와 우주. 검찰청 출신 부부작가라고 한다. 인터넷으로 찾은 책 정보인데, 팟캐스트에서 편집자가 전한 얘기도 대동소이했다.
"우리들 중 누군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게 분명해요! 우리가 가장 증오하는 살인자의 모습으로 바뀔 거라구요!"가 펼쳐내는 소름 끼치는 전개. 더 이상의 반전은 없다! 얼마 전의 ‘대구여대생 납치살해사건’, 감옥에 있어야 할 피의자가 호화병실에서 편하게 생활하고 있는 행태가 최근에 밝혀진 2002년 ‘여대생 공기총 청부살인사건’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분노로 들끓었다.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피의자들이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끔찍하게 죽여놓고도 그 어떤 죄의식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 그리고 평생 그 아픔을 짊어진 채 괴로워하며 살아가야 하는 가족들. 하지만 범죄자들은 오히려 법의 보호를 받는 게 현실이다. '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으며, 소름 끼치면서도 통쾌한 반전을 통해 독자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한국 형법이 "피해자"보호보다 "가해자"보호가 발달했기 때문이라는데... 딱히 모든 '가해자'가 대단한 보호를 받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선택된, 선별된 '소수'가 가해자가 될 때 보호를 받겠지... 피해자도 마찬가지 아닐까? 일반적으로 피해자가 억울한게 아니라 특별한 소수에 속하는 피해자는 대단한 관심과 보호를 받겠지...
어쨌거나 한국에서 피해자 보호에 대한 '개념' '접근' '공부'가 많지 않았다고 하는데... 충분히 그랬을 법하다. 그런 점을 부각시키는 소설... 의미있고, '범죄피해학' 같은 공부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보다... 이런 곁가지 언급이 귀에 들어온다. 역시 사람은 듣고 싶은 것을 듣는다.
공부, 학문에서도 결국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의미는 '차이''구별'에서 나온다. 다름.... 하지만 왜 다른지 그 이유가 설득력있게 전달되어야겠지.
어쩌다 들은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책소개를 접했다. "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 작가 이름이 특이하다. 박하와 우주. 검찰청 출신 부부작가라고 한다. 인터넷으로 찾은 책 정보인데, 팟캐스트에서 편집자가 전한 얘기도 대동소이했다.
"우리들 중 누군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게 분명해요! 우리가 가장 증오하는 살인자의 모습으로 바뀔 거라구요!"가 펼쳐내는 소름 끼치는 전개. 더 이상의 반전은 없다! 얼마 전의 ‘대구여대생 납치살해사건’, 감옥에 있어야 할 피의자가 호화병실에서 편하게 생활하고 있는 행태가 최근에 밝혀진 2002년 ‘여대생 공기총 청부살인사건’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분노로 들끓었다.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피의자들이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끔찍하게 죽여놓고도 그 어떤 죄의식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 그리고 평생 그 아픔을 짊어진 채 괴로워하며 살아가야 하는 가족들. 하지만 범죄자들은 오히려 법의 보호를 받는 게 현실이다. '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으며, 소름 끼치면서도 통쾌한 반전을 통해 독자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한국 형법이 "피해자"보호보다 "가해자"보호가 발달했기 때문이라는데... 딱히 모든 '가해자'가 대단한 보호를 받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선택된, 선별된 '소수'가 가해자가 될 때 보호를 받겠지... 피해자도 마찬가지 아닐까? 일반적으로 피해자가 억울한게 아니라 특별한 소수에 속하는 피해자는 대단한 관심과 보호를 받겠지...
어쨌거나 한국에서 피해자 보호에 대한 '개념' '접근' '공부'가 많지 않았다고 하는데... 충분히 그랬을 법하다. 그런 점을 부각시키는 소설... 의미있고, '범죄피해학' 같은 공부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보다... 이런 곁가지 언급이 귀에 들어온다. 역시 사람은 듣고 싶은 것을 듣는다.
공부, 학문에서도 결국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의미는 '차이''구별'에서 나온다. 다름.... 하지만 왜 다른지 그 이유가 설득력있게 전달되어야겠지.
2013년 7월 11일 목요일
페친의 페친인 서울대 이근 교수가 페북에 남긴 글이다.
"2008년에 세계금융위기가 터지고 싱가폴 국립대학에서 Global Governance와 관련된 회의가 있어서 발표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내 주장의 요지는 이전까지는 개도국이 Global Governance의 대상이 되었다면, 이제부터는 선진국도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니 선진국에 대한 Global Governance 역시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의 금융시스템이나 global leadership, 유럽의 금융시스템이나 leadership에 대한 신뢰를 많이 잃었기 때문이다. 일본도 말할 것 없다. 당시 이러한 주장에 대한 참석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주최측인 싱가폴은 매우 난감해 하였고, 같이 회의에 있었던 Ikenberry 역시 불쾌한 표정이었다. 하기사, 당시 회의의 주최측이 싱가폴 대학에 분소가 있었던 Brookings 연구소였으니 그랬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너무 순진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당시 미국의 석학으로 알려진 Ikenberry가 참여하는 BBC TV debate가 공동행사로 있었는데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지금 이름이 기억이 안나지만 북경대의 젊은 교수였고, 미국의 석학은 모든 질문에 동일한 답변만을 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NYU의 저명한 Stern School of Business의 학장인 Peter Blair Henry가 나와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우선 글의 제목부터 맘에 든다 'The Global Trust Deficit' ..."
자연스럽게 내 논문의 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서양 학자들이 그것을 들었을 때? 전혀 불쾌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흐뭇해 할 것이다. "그렇지. 아시아는 아직 우리한테 배워야지. 그럼..." 참. 그런 반응을 얻어내려고 내가 이렇게 오랫 동안 공부하고 있는건가? 서양은 아시아에서 배울 게 없나?
"2008년에 세계금융위기가 터지고 싱가폴 국립대학에서 Global Governance와 관련된 회의가 있어서 발표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내 주장의 요지는 이전까지는 개도국이 Global Governance의 대상이 되었다면, 이제부터는 선진국도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니 선진국에 대한 Global Governance 역시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의 금융시스템이나 global leadership, 유럽의 금융시스템이나 leadership에 대한 신뢰를 많이 잃었기 때문이다. 일본도 말할 것 없다. 당시 이러한 주장에 대한 참석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주최측인 싱가폴은 매우 난감해 하였고, 같이 회의에 있었던 Ikenberry 역시 불쾌한 표정이었다. 하기사, 당시 회의의 주최측이 싱가폴 대학에 분소가 있었던 Brookings 연구소였으니 그랬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너무 순진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당시 미국의 석학으로 알려진 Ikenberry가 참여하는 BBC TV debate가 공동행사로 있었는데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지금 이름이 기억이 안나지만 북경대의 젊은 교수였고, 미국의 석학은 모든 질문에 동일한 답변만을 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NYU의 저명한 Stern School of Business의 학장인 Peter Blair Henry가 나와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우선 글의 제목부터 맘에 든다 'The Global Trust Deficit' ..."
자연스럽게 내 논문의 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서양 학자들이 그것을 들었을 때? 전혀 불쾌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흐뭇해 할 것이다. "그렇지. 아시아는 아직 우리한테 배워야지. 그럼..." 참. 그런 반응을 얻어내려고 내가 이렇게 오랫 동안 공부하고 있는건가? 서양은 아시아에서 배울 게 없나?
루만을 글을 쓰는 것 보다 그의 메모를 만들고 정리하는 일에 시간을 더 많이 썼다고 하는데... 읽은 것과 떠오르는 생각을 요약하고 정리하는 일은 학문적 활동, 아니 인간의 체계적 지적 활동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나도 꽤 다양한 방식을 시도해 보았는데... 지금은 컴퓨터를 이용하고 있고, 그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1) 주제별로 워드 파일을 만들고 저자 이름 순서대로 문헌을 정리하기 (2) 주제별로 워드 파일을 만들고 소주제별로 내용을 정리하기. 지금까지 활용도를 보면 (1)이 월등하게 높다. (2)는 왜 잘 이용되지 않을까? 이런 저런 내용을 모아 놓았는데 중복도 많고, 막상 필요한 내용은 찾기 힘든 경우도 많고...
2013년 7월 10일 수요일
‘시간 차이’를 둔 교환 행위인 선물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선물’이란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선물이 보답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선물이 아니라 교환의 시작이며, 그것이 거저 주는 것이라면 그 또한 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우리가 거지에게 돈을 줄 때 선물을 준다고 하지 않는 것처럼)."
좀 씁쓸하긴 하지만... 감추고 싶은 속내가 드러나서 민망하긴 하지만... 꽤 그럴듯하지 않은가? 세상에 무조건, 조건 없이 주는 것... 그런 게 있을까? 하다못해 전적으로 헌신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조차... 자기만족, 인정... 같은 것에서 보상을 얻지 않을까?
"남녀간의 사랑이 가족이라는 상징이 부여되는 분업체계로 은폐되고 마는 것이지요. 남편은 밥을 먹었으니 돈을 벌어와야만 합니다. 이제 그는 가장으로서의 노동이 가정경제를 유지하는데 불가피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이제 돈을 받았으니 제때에 식사를 차려야만 합니다. 그녀는 아내로서 가사노동이 가정경제를 유지하는 데 불가피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혼부부의 사랑을 유지시켰던 선물의 논리가, 마치 음식과 돈이 교환되는 식당에서처럼 이제 뇌물의 논리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이제 우리는 사랑도 기대 할 수 없고, 선물 또한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채권과 채무의 관계, 즉 뇌물의 관계만이 존재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강신주, 철학 삶을 만나다, 293쪽)
강신주의 이야기는 좀 더 "따뜻하다". 선물과 뇌물을 구분하는 모양인데... 글쎄... 난 그가 표현하는대로 "선물"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음. 내 기준으로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강신주는 전체적으로 매우 쿨한 편이지만, 낭만주의적 편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좀 씁쓸하긴 하지만... 감추고 싶은 속내가 드러나서 민망하긴 하지만... 꽤 그럴듯하지 않은가? 세상에 무조건, 조건 없이 주는 것... 그런 게 있을까? 하다못해 전적으로 헌신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조차... 자기만족, 인정... 같은 것에서 보상을 얻지 않을까?
"남녀간의 사랑이 가족이라는 상징이 부여되는 분업체계로 은폐되고 마는 것이지요. 남편은 밥을 먹었으니 돈을 벌어와야만 합니다. 이제 그는 가장으로서의 노동이 가정경제를 유지하는데 불가피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이제 돈을 받았으니 제때에 식사를 차려야만 합니다. 그녀는 아내로서 가사노동이 가정경제를 유지하는 데 불가피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혼부부의 사랑을 유지시켰던 선물의 논리가, 마치 음식과 돈이 교환되는 식당에서처럼 이제 뇌물의 논리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이제 우리는 사랑도 기대 할 수 없고, 선물 또한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채권과 채무의 관계, 즉 뇌물의 관계만이 존재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강신주, 철학 삶을 만나다, 293쪽)
강신주의 이야기는 좀 더 "따뜻하다". 선물과 뇌물을 구분하는 모양인데... 글쎄... 난 그가 표현하는대로 "선물"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음. 내 기준으로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강신주는 전체적으로 매우 쿨한 편이지만, 낭만주의적 편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 과정에서 넓은 범위의 정체성으로 통합되는 과정integration과 좁은 범위의 공동체로 분화되는 과정fragmentation이 동시에 일어나는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미국의 정치학적 제임스 로즈노James Rosenau는 'fragmentation분합(分合)'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조지프 나이Joseph S. Nye, 제국의 패러독스, 강준만 665쪽)
fragementation이라... 통합과 분화의 공존...이라는 아이디어는 사회이론에서도 자주 등장한다(뒤르케임, 루만 등등). 그것을 한 단어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흥미롭지만... 로즈노가 지적한 내용은 이 설명만 봐서는 별로 와 닿지 않는다.
fragementation이라... 통합과 분화의 공존...이라는 아이디어는 사회이론에서도 자주 등장한다(뒤르케임, 루만 등등). 그것을 한 단어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흥미롭지만... 로즈노가 지적한 내용은 이 설명만 봐서는 별로 와 닿지 않는다.
인간관계는 상호적이다. 일방적일 수가 없다. 이건 진리다. 엄마가 아빠보다 자식에게 더 강한 애착을 느끼는 건 바로 뱃 속에 담고 있으면서 "나름의" 상호작용하는 시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아빠에게 출생한 자식은... 어느날 갑자기 손에 주어진 "무엇"과도 같다.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그런... 한참 동안도 의미를 주고 받는 관계는 아니다. 그러다 아이가 사람을 개별적으로 구분하고, 내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구별된 방식으로 반응하면서 본격적으로 상호작용이 시작된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고 일방적일 수는 없는 법이다.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대부분 이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잊을 때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관계의 성격과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다. 자신의 책임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못하고, 모든 문제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릴 때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 왜 다른 사람에겐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나한테는 그러는가... 그런 점들을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이다. 그럴 성찰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2013년 7월 9일 화요일
"스피박은 자신이 주장하는 이 협상이란 결코 포섭이나 굴복이 아니라 개입이며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일수록 협상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약자는 협상의 테이블을 배척해버리고 싶은 유혹에 지기 쉬운데, 그러면 결국 지배적인 사유 구조에 투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약자는 협상의 테이블로 가서 그 착취적인 사유 구조들을 끝까지 붙들고 능러져 얻어낼만한 것을 얻어 내는 것이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오늘날의 현실에 그나마 대처한다고 할 것이다"(태혜숙,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강준만 592쪽)
"고부응은 '그러나 이런 주장은 한국이 처해 있는 정치적, 지적 상황에 대한 간과 내지 무시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국의 학문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서구의 제국주의적 팽창의 결과이며 한국의 교육과 학문은 서구의 지적 체제 아래 종속돼 있다. 따라서 한국의 주체적 학문을 구성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이런 서구의 지배에 눈을 감아버리겠다는 진술과 별반 다르지 않다' ... '사실상 주체적 학문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논의를 살펴보면, 그들이 말하는 주체적 이론이란 서구의 현대 이론이 이미 극복해버린 서구의 과거 이론 틀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결과임을 알 수 있다'"(고부응, 초민족시대의 민족 정체성, 강준만 593쪽)
"고부응은 '그러나 이런 주장은 한국이 처해 있는 정치적, 지적 상황에 대한 간과 내지 무시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국의 학문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서구의 제국주의적 팽창의 결과이며 한국의 교육과 학문은 서구의 지적 체제 아래 종속돼 있다. 따라서 한국의 주체적 학문을 구성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이런 서구의 지배에 눈을 감아버리겠다는 진술과 별반 다르지 않다' ... '사실상 주체적 학문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논의를 살펴보면, 그들이 말하는 주체적 이론이란 서구의 현대 이론이 이미 극복해버린 서구의 과거 이론 틀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결과임을 알 수 있다'"(고부응, 초민족시대의 민족 정체성, 강준만 593쪽)
2013년 7월 8일 월요일
체면 문화, 명분의 긍정적 기능?
"C. 프레드 앨퍼드C. Fred Alford... 의 결론은 한국인의 심리엔 악(惡)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인이 오직 관계의 관점에서만 옳고 그름을 알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인다고 말한다.
"조흥식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체면이 지배하는 사회가 훨씬 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회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체면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유교적인 충과 효의 개념에 대한 높은 기준을 공유하고 있다고 가정할 경우, 남의 비난과 소외를 피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싫더라도 충과 효를 실행하는 생존 전략을 쓰게 되므로 매우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368)
"신문 사설의 인칭 사용... '국민'과 '우리'의 남용... 신문마다 색깔이 각기 다르고 그에 따라 대변하는 사람들도 다를 텐데, 거의 모든 신문이 늘 '국민'을 앞세운다. 우리 모두 '우리'와 '국민'이라는 표현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328)
명분과 실제는 다르지만... 체면때문에라도, 혹은 명분이니까... 어떤 것을 주장하는 경우 "국민" "우리" 뒤에 정파적 이익을 감추는 것... 그것의 역기능을 강조하지만, 긍정적 기능도 있지 않을까? 때로는 싫더라도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대의를 찾고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따라야하니까...
역기능, 순기능을 구분해서 따져봐야 할 듯.
"조흥식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체면이 지배하는 사회가 훨씬 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회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체면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유교적인 충과 효의 개념에 대한 높은 기준을 공유하고 있다고 가정할 경우, 남의 비난과 소외를 피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싫더라도 충과 효를 실행하는 생존 전략을 쓰게 되므로 매우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368)
"신문 사설의 인칭 사용... '국민'과 '우리'의 남용... 신문마다 색깔이 각기 다르고 그에 따라 대변하는 사람들도 다를 텐데, 거의 모든 신문이 늘 '국민'을 앞세운다. 우리 모두 '우리'와 '국민'이라는 표현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328)
명분과 실제는 다르지만... 체면때문에라도, 혹은 명분이니까... 어떤 것을 주장하는 경우 "국민" "우리" 뒤에 정파적 이익을 감추는 것... 그것의 역기능을 강조하지만, 긍정적 기능도 있지 않을까? 때로는 싫더라도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대의를 찾고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따라야하니까...
역기능, 순기능을 구분해서 따져봐야 할 듯.
독일에서는 공적 규칙이 매우 중시된다. 상황에 따른 협상에 의존하기 보다는 규칙, 원칙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에서는 '명분'이란 말이 자주 사용된다. 이는 어떤 결정의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혹은 지향해야 할 바를 가리킨다. 공적 규칙과 유사한 점이 없진 않지만, 다만 명분과 실제가 다른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결정적 차이가 있다.
독일과 한국이 극에서 극을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강준만의 "세계문화의 겉과 속"을 읽으면서 기준에 따라서 한국의 특징은 영국, 미국, 프랑스보다 오히려 독일에 가까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독일과 한국이 극에서 극을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강준만의 "세계문화의 겉과 속"을 읽으면서 기준에 따라서 한국의 특징은 영국, 미국, 프랑스보다 오히려 독일에 가까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1.
"메시지 신약" 덕분에 사도신경을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다. 바울의 삶과 메시지에 대해서도 좀 달리 생각해보게 되고...
2.
강준만의 "세계문화의 겉과 속"은 흥미로운 얘기들로 가득 차 있다. 다만 다루는 주제가 매우 다양하고 인용도 많아서, 단편 하나하나는 흥미롭고 정보도 많은데, 전체를 아우르는 저자의 시각이 무엇인지, 그런게 있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단점이라면.... (1) 시간을 너무 많이 뺐긴다는 점. (2) 논문과 연결점이 많아서 내 테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 ㅠㅠ
3.
월요일이다. 날은 더할나위 없이 우중충하고 습도도 높다. 7월도 벌써 8일이다. OMG!! 말일까지 일단 한 번 다 정리해보겠다는 내 계획은 무리였을까? 조직에서 주어진 과제에도 조금씩 시간을 내야하는데... 흠. 집중하자!!
4.
오늘은 계획. 1장 모두 정리하기, 일단...
"메시지 신약" 덕분에 사도신경을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다. 바울의 삶과 메시지에 대해서도 좀 달리 생각해보게 되고...
2.
강준만의 "세계문화의 겉과 속"은 흥미로운 얘기들로 가득 차 있다. 다만 다루는 주제가 매우 다양하고 인용도 많아서, 단편 하나하나는 흥미롭고 정보도 많은데, 전체를 아우르는 저자의 시각이 무엇인지, 그런게 있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단점이라면.... (1) 시간을 너무 많이 뺐긴다는 점. (2) 논문과 연결점이 많아서 내 테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 ㅠㅠ
3.
월요일이다. 날은 더할나위 없이 우중충하고 습도도 높다. 7월도 벌써 8일이다. OMG!! 말일까지 일단 한 번 다 정리해보겠다는 내 계획은 무리였을까? 조직에서 주어진 과제에도 조금씩 시간을 내야하는데... 흠. 집중하자!!
4.
오늘은 계획. 1장 모두 정리하기, 일단...
2013년 7월 7일 일요일
과잉순응을 통한 저항 - 보드리야르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ilard)는 좌파 이론가들에게 허무주의자, 비관주의자, 패배주의자, 탈정치주의자로 비판을 받았지만, 그 나름의 저항 전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게 바로 '과잉 순응'이다 .'적합한 전략적 저항은 의미와 발언을 거부하고 거부와 비수용의 형태 그 자체인 현 시스템의 메커니즘을 '과잉 순응적인' 방식으로 흉내 내는 것읻. 이것이 대중의 저항 전략이다. 그것은 거울의 경우처럼 시스템의 논리를 흡수하지는 않으면서 복사하고 의미를 반영시키으로써 그 논리를 뒤집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야말로 현재로선 유일한 전략이다(만약 이걸 전략일고 부를 수 있다면)" J Baudrillard, 1980, The Imposition of MEaning in the Media and the Implosion of the Social in the Masses, 148. (강준만, 세계문화의 겉과 속, 564쪽)
2013년 7월 6일 토요일
기회주의, 비겁(卑怯)...
기회주의: 기회를 엿보다가 상황에 맞추어서 살아갈 방도를 찾는 삶의 태도. 좀 덜 부정적이지만 유사한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편의주의'가 있음.
비겁: 상황을 따라 신념을 저버리거나 바꾸는 삶의 태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이런 성향이 있다. 문제는 어느 정도냐는...
가족주의와 개인주의는 사실 상반되는 가치 지향이다. 나는 그 속에서 자주 기회주의, 편의주의적 입장을 갖게 된다. 내게 더 유리한 쪽을 취하는 것. 요즘 자주 느끼는 바다. 내 속의 기회주의.... 쓸면 뱉고, 달면 삼키는... 비겁한 태도...
비겁: 상황을 따라 신념을 저버리거나 바꾸는 삶의 태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이런 성향이 있다. 문제는 어느 정도냐는...
가족주의와 개인주의는 사실 상반되는 가치 지향이다. 나는 그 속에서 자주 기회주의, 편의주의적 입장을 갖게 된다. 내게 더 유리한 쪽을 취하는 것. 요즘 자주 느끼는 바다. 내 속의 기회주의.... 쓸면 뱉고, 달면 삼키는... 비겁한 태도...
concepts
- value paradox (가치 패러독스, "보상"? 한 가치가 지배적이면 다른 가치를 선호, 추구하는... 집단주의가 강한 한국에서 개인주의를 갈구하는.... 개인주의가 강한 미국에선 공동체주의를 지향하는...) (Marieke de Mooij)
- 불확실성 회피(uncertainty avoidance)... "불확실성 회피 문화가 강한 문화에서는 어떤 것이 더럽고 위험한지에 관한 분류가 엄격하고 절대적... 어떤 범주에 속한 사람들을 조심해야 하는지, 즉 피해야 할 위위험한 타인들의 범주가 필요... (66) (Geert Hofstede 의 조사 결과... 한국은 당연히 높은 편, 싱가폴은 낮은 편...
- uncertainty reduction theory(불확실성 줄이기 이론)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 대개 지금까지 성공적이었던 방식을 계속해서 써먹으로고 함.
- 비동시성의 동시성(Gleichzeitigkeit des Ungleichzeitigen, the contemporaneity of the uncontemporary; synchonism of non-synchronism of, Simultaneity of the Non-simultaneous -
(특정 국가 내 집단 간 불균등성을 언급할 때 사용될 수도 있고, 세계사회 내의 비동시성의 동시성, 지역에 따른 불균등한 발전이 ...
- 문화지체 (cultural lag)
"테크놀로지, 경제, 사회조직, 가치 등 네 가지 요소... 이들의 변동 속도는 각기 다르다... 변동 속도가 빠른 순서대로 보자면... 테크놀로지, 경제, 사회조직, 가치 순..."(169)
- 간섭(干涉, interference)
어떤 것이 다른 것에 영향을 줘서...
- 불확실성 회피(uncertainty avoidance)... "불확실성 회피 문화가 강한 문화에서는 어떤 것이 더럽고 위험한지에 관한 분류가 엄격하고 절대적... 어떤 범주에 속한 사람들을 조심해야 하는지, 즉 피해야 할 위위험한 타인들의 범주가 필요... (66) (Geert Hofstede 의 조사 결과... 한국은 당연히 높은 편, 싱가폴은 낮은 편...
- uncertainty reduction theory(불확실성 줄이기 이론)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 대개 지금까지 성공적이었던 방식을 계속해서 써먹으로고 함.
- 비동시성의 동시성(Gleichzeitigkeit des Ungleichzeitigen, the contemporaneity of the uncontemporary; synchonism of non-synchronism of, Simultaneity of the Non-simultaneous -
(특정 국가 내 집단 간 불균등성을 언급할 때 사용될 수도 있고, 세계사회 내의 비동시성의 동시성, 지역에 따른 불균등한 발전이 ...
- 문화지체 (cultural lag)
"테크놀로지, 경제, 사회조직, 가치 등 네 가지 요소... 이들의 변동 속도는 각기 다르다... 변동 속도가 빠른 순서대로 보자면... 테크놀로지, 경제, 사회조직, 가치 순..."(169)
- 간섭(干涉, interference)
어떤 것이 다른 것에 영향을 줘서...
"세계문화의 겉과 속" (강준만 2012, 인물과사상사)
예상대로 이 책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시작부터 신선한 정보와 견해로 나를 사로잡는다. 내가 논문에서 다루는 주제는 결국 "세계사회의 규범적 불확실성: 동아시아의 경우"인데... 규범적 불확실성의 정도, 그리고 그것을 처리하는 방식이 세계사회의 지역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주장하고,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 어떤 특징을 보이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한국인이 처한 상황, 한국이 느끼는 바를 "만성적 불안감"(6)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쉽게 "보수성" 혹은 "수구성"으로 연결된다는 것이고... 불안감의 원인을 "세계 최고인 대외의존도(무역의존도)"(5)로 본다. 미국과 일본의 대외의존도가 20퍼센트 안팎인데 한국의 경우 2011년 113.2퍼센트로 사상 최고였다고 한다. 음. 엄청난 차이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퍼센트 떨어지면, 한국의 경제성장률도 0.4%포인트 하락... 어느 나라에서 전쟁이나 분쟁, 자연재해가 일어난다면,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에게 즉각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5)
하지만 이런 팩트가 무색하게 우린 그다지 무역에 능숙한 것 같진 않다. 그다지 개방적이지도 국제적이지도 않지 않은가. 사대주의...큰 나를 섬기면서 어부지리를 얻는 방식에 익숙해서인가? 큰나라, 혹은 선진국은 확실히 섬기는 것 같다. 그게 불안감을 해소하는 나름의 비법이었나? 자주적이지 못하다.
자랑은 아니지만 국사 교과서 등에서 강조하는 수 천번의 외침... 가까이만 보더라도 일본제국주의의 침탈, 6.25 전쟁... 비교할만한 경험이 거의 없는 일본,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정서, 문화를 가지고 있으리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생존의 위협! 일상화된 위협과 위기 그리고 "불안"...
Hall, Edward T. 1959/ 2000, 에드워드 홀, 침묵의 언어, 한길사.
- 고맥락/저맥락 high context, low context - 저맥락문화에서는 의사소통이 주로 표현된 내용(대화, 글)으로 이루어지고 이런 표현은 대체로 직설적인 반면, 고맥락 문화에서는 표현된 내용에서 상대방의 진의를 유추하는 단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고맥락 문화에서는 말보다는 말을 하는 맥락 또는 상황을 중요하게 여겨 상대방의 뜻을 미루어 짐작해야 할 필요성이 더 크다.
- 홀이 몇몇 국가를 분석해 고맥락 사회에서 저맥락 사회까지로 배열했는데, 일본, 아랍국가들, 프랑스, 미국, 독일 순이었다.
- "한국의 고맥락 문화엔 강한 연고주의와 정실주의도 적잖이 작용하는 듯하다. 배짱이 맞는 사람들끼리는 이심전심이 작동할 것이므로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 탓에 사회적 차원의 부작용과 폐해는 매우 심각하지만, 사람들 좀처럼 고맥락 문화가 제공할 수 있는 경제성과 편의성을 포기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27)
"대상과 상황에 따라 행동을 달리하는 것이 서구의 입장에서 정체감 혼란이나 일관성 결여라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지만, 한국인은 그걸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30)
--> 어쩌면 많은 한국인은 내가 "규범적 불확실성"이라고 부르는 것, 즉 규범적 일관성 결여를 그리 불확실하다고 보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이는 독일 등 서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독일 등에서 서구에서도 지나치게 일관적인 것은 별로 기능적이지 못하다고 평가받는다. 정치인이 너무 정직하면? 그건 사실 곤란한 일이다. 조직에서 "위선(僞善)hypocrisy"은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나름의 기능이 있다. 너무 정직해서도 곤란하다.
일관성 결여는 그 자체가 법익이 되면 - 대다수가 그러하면 그 자체로는 안정적이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이원적, 이중적 태도가 용서가 된다. 공적 제도, 문서에 나타나지 않는 "침묵의 언어"가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구조와 규범/문화 간의 간극이 더 커지고 있다. 그래서 이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던 것이 갈수록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한국인이 처한 상황, 한국이 느끼는 바를 "만성적 불안감"(6)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쉽게 "보수성" 혹은 "수구성"으로 연결된다는 것이고... 불안감의 원인을 "세계 최고인 대외의존도(무역의존도)"(5)로 본다. 미국과 일본의 대외의존도가 20퍼센트 안팎인데 한국의 경우 2011년 113.2퍼센트로 사상 최고였다고 한다. 음. 엄청난 차이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퍼센트 떨어지면, 한국의 경제성장률도 0.4%포인트 하락... 어느 나라에서 전쟁이나 분쟁, 자연재해가 일어난다면,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에게 즉각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5)
하지만 이런 팩트가 무색하게 우린 그다지 무역에 능숙한 것 같진 않다. 그다지 개방적이지도 국제적이지도 않지 않은가. 사대주의...큰 나를 섬기면서 어부지리를 얻는 방식에 익숙해서인가? 큰나라, 혹은 선진국은 확실히 섬기는 것 같다. 그게 불안감을 해소하는 나름의 비법이었나? 자주적이지 못하다.
자랑은 아니지만 국사 교과서 등에서 강조하는 수 천번의 외침... 가까이만 보더라도 일본제국주의의 침탈, 6.25 전쟁... 비교할만한 경험이 거의 없는 일본,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정서, 문화를 가지고 있으리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생존의 위협! 일상화된 위협과 위기 그리고 "불안"...
Hall, Edward T. 1959/ 2000, 에드워드 홀, 침묵의 언어, 한길사.
- 고맥락/저맥락 high context, low context - 저맥락문화에서는 의사소통이 주로 표현된 내용(대화, 글)으로 이루어지고 이런 표현은 대체로 직설적인 반면, 고맥락 문화에서는 표현된 내용에서 상대방의 진의를 유추하는 단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고맥락 문화에서는 말보다는 말을 하는 맥락 또는 상황을 중요하게 여겨 상대방의 뜻을 미루어 짐작해야 할 필요성이 더 크다.
- 홀이 몇몇 국가를 분석해 고맥락 사회에서 저맥락 사회까지로 배열했는데, 일본, 아랍국가들, 프랑스, 미국, 독일 순이었다.
- "한국의 고맥락 문화엔 강한 연고주의와 정실주의도 적잖이 작용하는 듯하다. 배짱이 맞는 사람들끼리는 이심전심이 작동할 것이므로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 탓에 사회적 차원의 부작용과 폐해는 매우 심각하지만, 사람들 좀처럼 고맥락 문화가 제공할 수 있는 경제성과 편의성을 포기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27)
"대상과 상황에 따라 행동을 달리하는 것이 서구의 입장에서 정체감 혼란이나 일관성 결여라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지만, 한국인은 그걸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30)
--> 어쩌면 많은 한국인은 내가 "규범적 불확실성"이라고 부르는 것, 즉 규범적 일관성 결여를 그리 불확실하다고 보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이는 독일 등 서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독일 등에서 서구에서도 지나치게 일관적인 것은 별로 기능적이지 못하다고 평가받는다. 정치인이 너무 정직하면? 그건 사실 곤란한 일이다. 조직에서 "위선(僞善)hypocrisy"은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나름의 기능이 있다. 너무 정직해서도 곤란하다.
일관성 결여는 그 자체가 법익이 되면 - 대다수가 그러하면 그 자체로는 안정적이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이원적, 이중적 태도가 용서가 된다. 공적 제도, 문서에 나타나지 않는 "침묵의 언어"가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구조와 규범/문화 간의 간극이 더 커지고 있다. 그래서 이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던 것이 갈수록 문제가 되는 것이다.
별로 행복하지않은 책읽기
1.
읽어보려고 빌린 책 두 권을 몇 쪽 넘기지 않고서 덮어버렸다. 내가 기꺼이 읽고 싶은 책이 어떤 종류인지 새삼 확인시켜주는 에피소드다.
2.
박총의 "욕쟁이 예수"를 재미있게 읽어서 그의 전작이자 첫번째 책 "밀월일기"(2008)를 찾아봤다. 그의 "안해"와의, 그야말로 순도 100%의 "사랑"얘기였다. 음.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나를 위한 건 아니라고... 박총이란 양반... 참 독특한 것 같다. 페이스북에서도 느끼지만... 내 기준으로 볼 때 감성의 과잉... 다행히 "욕쟁이 예수"에서는 이성의 충만함도 보여주었지만... "감성적"인 글, 팩트가 아닌 느낀 바에 대한 긴 서술, 형용사 부사가 많은 글, 꾸밈이 많은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3.
강준만의 "증오상업주의"(2013)는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욕쟁이 예수"의 대척점에 있다. 이성적 주제, 사실 위주, 간결한 문장 등등. 그런데 왜 읽고 싶지 않았을까? 일부 내게 생소한 미국 매스미디어 이야기나 미디어 학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긴 했지만 제목처럼 이 책의 핵심은 한국의 긴급하고도 중요한 정치의 문제를 다루지 않았던가? 안철수 이야기도 있고... 하지만...이 책은... 결정적으로 논의의 층위가 너무 얕다. 신선하지도 않고... 강준만 선생의 글은 칼럼 정도로 다 전달되는 논지를 길게 늘여 쓴 것 같다. 사실 내가 강준만의 책을 찾아볼 마음을 먹게 된 계기도 몇 년 묵은 그의 칼럼이었다. 짧은 글 속에서 한국 사회 문제의 핵심을 짚어내는 문장에 반했던 것... 하지만 그의 긴 글에서는 그런 맛을 느낄 수가 없다.
4.
결국 어떤 면에서 "증오상업주의"는 "밀월일기"와 비슷한 종류의 글이었던 것. 짧게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를 길게 늘이는... "밀월일기"의 경우... 어쩌면... 길게 늘어지는 형식이 글이 드러내려는 메시지와 어울린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일상 속에서 지은, 하나님의 큰 이야기를 닮은 작은 이야기, 살아 낸 이야기, '아무렇지도 않고 고울 것도 없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담으려고 했다니 말이다. 사실 우리 일상은 그야말로 반복의 연속이지 않던가. 밥먹고, 싸고, 자고, 씻고, 싸우고, 혹하고, 등등. 새롭다고 느낄만한 정보는 별로 없는... "증오 상업주의"는 한 문장 요약될 수 있는, 한 편의 칼럼 정도로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를 늘이고 늘여서 읽는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그런 글이다. 물론 강준만의 책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재미있게 읽었던 책도 있다. 또 옆에 있는 "세계문화의 겉과 속"도 아마 그 쪽에 속할 것 같다.
5.
아내와 얘기를 들을 때도 얘기가 길어진다싶으면 난 좀 요약해라 그 얘긴 아까 했다 등등 다그치는 편이다. 어쩌면 아내는 길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을 텐데도...
충분히 많은 정보와 절제된 감성이 조화를 이룬, 일기 읽기의 즐거움을 알려준 것은 김현 선생의 "행복한 책읽기"...
6.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등을 이용하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감성을 드러내면서 교감하길 원하는 쪽, 사실과 사실에 대한 견해를 전달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쪽...
7.
내 블로그니까 이런, 저자 입장에보면 억울하게 느낄 그런 얘기를 막 내지른다.
읽어보려고 빌린 책 두 권을 몇 쪽 넘기지 않고서 덮어버렸다. 내가 기꺼이 읽고 싶은 책이 어떤 종류인지 새삼 확인시켜주는 에피소드다.
2.
박총의 "욕쟁이 예수"를 재미있게 읽어서 그의 전작이자 첫번째 책 "밀월일기"(2008)를 찾아봤다. 그의 "안해"와의, 그야말로 순도 100%의 "사랑"얘기였다. 음.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나를 위한 건 아니라고... 박총이란 양반... 참 독특한 것 같다. 페이스북에서도 느끼지만... 내 기준으로 볼 때 감성의 과잉... 다행히 "욕쟁이 예수"에서는 이성의 충만함도 보여주었지만... "감성적"인 글, 팩트가 아닌 느낀 바에 대한 긴 서술, 형용사 부사가 많은 글, 꾸밈이 많은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3.
강준만의 "증오상업주의"(2013)는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욕쟁이 예수"의 대척점에 있다. 이성적 주제, 사실 위주, 간결한 문장 등등. 그런데 왜 읽고 싶지 않았을까? 일부 내게 생소한 미국 매스미디어 이야기나 미디어 학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긴 했지만 제목처럼 이 책의 핵심은 한국의 긴급하고도 중요한 정치의 문제를 다루지 않았던가? 안철수 이야기도 있고... 하지만...이 책은... 결정적으로 논의의 층위가 너무 얕다. 신선하지도 않고... 강준만 선생의 글은 칼럼 정도로 다 전달되는 논지를 길게 늘여 쓴 것 같다. 사실 내가 강준만의 책을 찾아볼 마음을 먹게 된 계기도 몇 년 묵은 그의 칼럼이었다. 짧은 글 속에서 한국 사회 문제의 핵심을 짚어내는 문장에 반했던 것... 하지만 그의 긴 글에서는 그런 맛을 느낄 수가 없다.
4.
결국 어떤 면에서 "증오상업주의"는 "밀월일기"와 비슷한 종류의 글이었던 것. 짧게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를 길게 늘이는... "밀월일기"의 경우... 어쩌면... 길게 늘어지는 형식이 글이 드러내려는 메시지와 어울린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일상 속에서 지은, 하나님의 큰 이야기를 닮은 작은 이야기, 살아 낸 이야기, '아무렇지도 않고 고울 것도 없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담으려고 했다니 말이다. 사실 우리 일상은 그야말로 반복의 연속이지 않던가. 밥먹고, 싸고, 자고, 씻고, 싸우고, 혹하고, 등등. 새롭다고 느낄만한 정보는 별로 없는... "증오 상업주의"는 한 문장 요약될 수 있는, 한 편의 칼럼 정도로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를 늘이고 늘여서 읽는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그런 글이다. 물론 강준만의 책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재미있게 읽었던 책도 있다. 또 옆에 있는 "세계문화의 겉과 속"도 아마 그 쪽에 속할 것 같다.
5.
아내와 얘기를 들을 때도 얘기가 길어진다싶으면 난 좀 요약해라 그 얘긴 아까 했다 등등 다그치는 편이다. 어쩌면 아내는 길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을 텐데도...
충분히 많은 정보와 절제된 감성이 조화를 이룬, 일기 읽기의 즐거움을 알려준 것은 김현 선생의 "행복한 책읽기"...
6.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등을 이용하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감성을 드러내면서 교감하길 원하는 쪽, 사실과 사실에 대한 견해를 전달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쪽...
7.
내 블로그니까 이런, 저자 입장에보면 억울하게 느낄 그런 얘기를 막 내지른다.
2013년 7월 5일 금요일
...
덥다. 많이. 계속 덥지만 그렇다고 빨리 선선해지기를 바래서는 안된다. 날이 선선해지기 전에, 그러니까 아직 더울 때 최대한 많이 해 둬야 하기 때문이다. 선선함을 기쁘게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더위에 대해서 불평해서는 안된다.
radical life-change
"욕쟁이 예수"를 읽으면서도 느낀 바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는다는 것, 복음, 복된 소식, 유앙겔리온의 핵심은 제국의 법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법을 따르고, 하나님이 세우신 새로운 질서 속으로 들어가기로 결단하는 일이다. 그저 예수 믿어서 "구원"받고, 죽은 후 들어가는 천당행 티켓을 확보한 일이 아닌 것이다. 복음은 그러게 값싼 것이 아니다. 오늘 읽은 사도행전 설교에서도 바울이 힘을 주어 강조하듯이...
"나는... 하나님 앞에서 삶을 근본적으로 고치고 우리 주 예수를 철저히 신뢰하도록 당부했습니다"(20:21)
"I taught you.. urging... to a radical life-change before God and an equally radical trust in our Master Jesus."
radical ife-change라는 메시지성경의 표현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radical life-change... radical life-change... 그런 것이 없다면... 그런 근본적, 급진적 변화가 따르지 않는다면... 복음을 안다고, 복음을 믿는다고 얘기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 설교는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회중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작별의 날, 다시는 보지 못할 것임을 알고서 행한 설교이고, 설교를 마친 후 모두 무릎을 꿇고 울면서 기도했다(36절).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바울이 어떤 심정으로 이 설교를 했을지를 생각하면... 이 메시지의 무게가 달리 느껴진다. 바울이 마치 유언처럼 남긴 이 메시지 속에서 바울은 radical life-change를 간절히 요구하는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준"(27절) 그 사람들에게...
"나는... 하나님 앞에서 삶을 근본적으로 고치고 우리 주 예수를 철저히 신뢰하도록 당부했습니다"(20:21)
"I taught you.. urging... to a radical life-change before God and an equally radical trust in our Master Jesus."
radical ife-change라는 메시지성경의 표현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radical life-change... radical life-change... 그런 것이 없다면... 그런 근본적, 급진적 변화가 따르지 않는다면... 복음을 안다고, 복음을 믿는다고 얘기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 설교는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회중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작별의 날, 다시는 보지 못할 것임을 알고서 행한 설교이고, 설교를 마친 후 모두 무릎을 꿇고 울면서 기도했다(36절).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바울이 어떤 심정으로 이 설교를 했을지를 생각하면... 이 메시지의 무게가 달리 느껴진다. 바울이 마치 유언처럼 남긴 이 메시지 속에서 바울은 radical life-change를 간절히 요구하는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준"(27절) 그 사람들에게...
...
1.
아침에 컴퓨터를 켜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페이스북 보기. 그다음 "미디어 다음" "네이버 뉴스". 커피와 빵을 먹으면서... 물론 사무실 나오는 길 지하철 안에서 다 확인했지만... 또... 한 번... 페북이나 뉴스에서 흥미로운 거리를 발견하면 읽고 공유하고 또 거기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이런저런 형태로 정리하느라 한 시간여를 들이기도 한다. 오늘을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들이 전혀 없어서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흠. 너무 이른걸... 그렇담 우선순위에서 밀린^^ "메시지 성경"이나 존 스토트 목사님을 만날 차례다.
2.
내가 애매한 신분으로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 - 아마 내년까지 버티기는 힘들... - 이 조직의, 지금은 사임한 원장께서 연락을 먼저 하셨다. 그 분 사임 이후에 몇 번 통화한 적이 있긴 하지만... 오랜만에... 7월 말에 보기로 했다. 그 때까지 쓴 것을 들고 오라는... 지도교수도 안 하는 그런 일을... 왜? 글쎄...
여하튼 그 통화 덕분에 힘이 좀 생겼다. 올 해를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내년부턴 새로운 일을 모색해야 할텐데... 남은 시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중요한 시기다.
3.
아버지께서 서울에 올라오셨다. 요즘 부모님에 대해서 느끼는 바, 그리고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바가 많다. 자식을 사랑하라는 규범은 없는데 부모를 공경하라는 규범이 생긴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더 어렸을 때는 하지 못했던 생각들.... 어릴 때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일들이 반드시 그렇게 단순하게 될 일이 아님을 알게된다. 어른화가 진행 중인 셈이다.
2013년 7월 4일 목요일
집중력...
오후 네 시... 비가 오려는지 꿉꿉하다. 집중력이 완전히 바닥에 가 있다. 어제는 아이디어, 뭔가를 쓰고 싶은 욕구... 이런 것들이 모처럼 넘쳐났는데 하루를 못 간다. 잠을 5시간도 못 잔 여파가 있는 것도 같고... 이럴 땐 영화를 보거나 수다를 떨면 좋은데... 그럴 형편이 아니라... 인터넷도 하도 많이 들락거려서 더 이상 볼 것도 없다. 받아놓은 논문 파일들 정리나 해야겠다.
탈야구화...
어제 기아 타이거즈가 SK에 끝내기 역전패를 당했다. 그런데 대미지가 그리 크지 않다. 탈야구화가 조금씩 진행되는 건가? "가을 야구"를 하기 전에 뭔가를 이뤄야하는데... 그래서 탈야구화 현상은 반갑다. Weiter so...
여유...
The most exciting phrase to hear in science, the one that heralds new discoveries, is not 'Eureka!' but 'That's funny...'
Isaac Asimov
아.. 바로 내게 이런 정신이 필요하다. 진지할수록 가볍게.... 여유있게... 좀 거리를 두고서...
Isaac Asimov
아.. 바로 내게 이런 정신이 필요하다. 진지할수록 가볍게.... 여유있게... 좀 거리를 두고서...
normative/ ???
normative uncertainty(혹은 instability)를 찾다보니 그 대구로 등장하는 말들이 다양한다.
- factual/ normative
- cognitive/ normative
- structural/ normative
- factual/ normative
- cognitive/ normative
- structural/ normative
2013년 7월 3일 수요일
안정-안전-확실(성)
안전과 안정은 상대적으로 쉽게 구분된다.
"‘안전’이 사고나 위험 등과 관련 있다는... ‘안전’은 말 그대로 ‘편안하고(安) 온전한(全) 것’이다. 그러니 ‘사고’나 ‘위험’과는 거리가멀다. ‘안전’은 ‘위험이 생기거나 사고가 날 염려가 없음. 또는 그런 상태’를 뜻한다. (...) ‘안정’은 ‘일정함’, ‘꾸준함’과 관계가 있다. ‘안정’은 ‘편안하고(安) 정해진(定) 것’이다. 따라서 ‘변화’와 거리를 둔 말이다. ‘바뀌어 달라지지 않고 일정한상태를 유지함’을 뜻한다. ... ‘안정’에는 ‘시간’의 경과가 필요하다.현재의 상태를 말하지만, 과거 어느 시점부터 지켜본결과를 감안해야 한다. ... 상태가 본래 그렇다고 할 만큼 오래된 것이라면 안정돼 있다고 말한다."
안전(safety, Sicherheit)는 예기치 않은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안정 상태"를 해치지 못하도록... 안전을 해치는 상황이 있어야 비로소 안전이라는 개념이 생긴다. 안정은 바람직한 상태가 깨질 때....
위험에도 안전을 유지해야 안정된 상태라고 일컬을 수 있다.
인간에게 "안전"은 본능적 욕구이자 중요한 권리이기도 하다.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문이기도 하다(Sicherheitsstaat).
안정은? 안전도 정의하기 어렵지만, 안정은 정의하기가 훨씬 더 까다롭다. 개인에 대해서 안정은 "정서적 안정" "안정된 생활" 같은 식으로 쓰인다. 사회에 대해선 "안정된 사회" 같은 표현이 쓰이고... 안정은 질서와 연결되어서 떠오른다. "안정된 삶"에는 "안전한 삶"이 포함되는 것 같다. 즉, "안정된 삶"이란 개념이 내포하는 의미 범위가 더 넓은 것이다. "안정된 삶"엔 왠지 경제력, 사회적 지위 등을 적당히 골고루 갖춘 중산층이 연상된다. 안정에는 '질서' 연결되어 떠오른다. 질서가 흐트러지는 것을 사회의 불안 상태라고 표현한다. 변화는 안정을 해친다는 의미에서는 안정의 반대 쪽에 있고, 변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면 '불안'으로 이해된다. 사회전복세력 같은 표현들... 안정, 질서와 연결되는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 기득권층 이미지... 하지만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회가 바람직한 상태를 이뤘다고 평가될수록 안정추구는 보수적인 세력만의 것은 아니다. 좋은 상태, 바람직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이 비난받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불안정은 사회가 변화할 때 뿐 아니라, 기존 질서가 내적으로 문제가 있을 때에도 관찰된다. 예를 들어 제도와 현실 간의 괴리가 클 때... 이 경우 안정이란... 예컨대 법치, 법에 의한 통치를 요구하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안정은 그 자체로 반드시 보수적인 것만은 아니다. 사회가 완전한 변화가 필요한데도 변화를 거부하는 기존 질서대로의 안정 추구 세력은 보수적인 것이지만, 사회가 변화를 이루어서 상당히 긍정적 질서를 가져오는데도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 경우 안정 파괴는 그 질서를 지키지 않는 세력의 책임인 것이다.
"불안정"은 "불확실"과 매우 잘 연결된다. 불안정성.... 불확실성... 불안정은 또 "유연성"과도 연결된다. 노동유연성 같은 표현은... 사실 부정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불안정성을 영어로 unstableness로도 쓰지만 고급 표현으로 "precarity"가 있나보다.
"Precarity is a condition of existence without predictability or security, affecting material or psychological welfare. Specifically, it is applied to the condition of intermittent or underemployment and the resultant precarious existence. The social class defined by this condition has been termed the precariat."
검색을 해보니 normative instability(규범적 불안정성) 보다는 규범적 불확실성(normative uncertianty)이 더 자주 사용되는 것 같다. 확실성/불확실성은 (certainty/ uncertainty) 안전/불안전(security/ insecurity)과 안정/불안정(stability/ instability) 중간 정도에 위치지을 수 있는 개념 아닐까?
독일어 Sicherheit는 security(안전)과 certainty(확실성) 둘 다 해당한다. 물론 certainty는 Gewissheit로 번역되기는 하지만...
안정(stability, Stabilität)은 너무 강한 개념인 것 같다.
"안정"이란 표현을 검색해보니 정말이지 너무도 "안정지향적인" 냄새가 강하고, "규범적 불안정성"을 얘기하면 바로 "규범적 안정성"을 지향하는 것처럼 들릴 것 같다.
"규범적 불확실성"(normative uncertainty, normative Unsicherheit)로 하기로...
"‘안전’이 사고나 위험 등과 관련 있다는... ‘안전’은 말 그대로 ‘편안하고(安) 온전한(全) 것’이다. 그러니 ‘사고’나 ‘위험’과는 거리가멀다. ‘안전’은 ‘위험이 생기거나 사고가 날 염려가 없음. 또는 그런 상태’를 뜻한다. (...) ‘안정’은 ‘일정함’, ‘꾸준함’과 관계가 있다. ‘안정’은 ‘편안하고(安) 정해진(定) 것’이다. 따라서 ‘변화’와 거리를 둔 말이다. ‘바뀌어 달라지지 않고 일정한상태를 유지함’을 뜻한다. ... ‘안정’에는 ‘시간’의 경과가 필요하다.현재의 상태를 말하지만, 과거 어느 시점부터 지켜본결과를 감안해야 한다. ... 상태가 본래 그렇다고 할 만큼 오래된 것이라면 안정돼 있다고 말한다."
안전(safety, Sicherheit)는 예기치 않은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안정 상태"를 해치지 못하도록... 안전을 해치는 상황이 있어야 비로소 안전이라는 개념이 생긴다. 안정은 바람직한 상태가 깨질 때....
위험에도 안전을 유지해야 안정된 상태라고 일컬을 수 있다.
인간에게 "안전"은 본능적 욕구이자 중요한 권리이기도 하다.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문이기도 하다(Sicherheitsstaat).
안정은? 안전도 정의하기 어렵지만, 안정은 정의하기가 훨씬 더 까다롭다. 개인에 대해서 안정은 "정서적 안정" "안정된 생활" 같은 식으로 쓰인다. 사회에 대해선 "안정된 사회" 같은 표현이 쓰이고... 안정은 질서와 연결되어서 떠오른다. "안정된 삶"에는 "안전한 삶"이 포함되는 것 같다. 즉, "안정된 삶"이란 개념이 내포하는 의미 범위가 더 넓은 것이다. "안정된 삶"엔 왠지 경제력, 사회적 지위 등을 적당히 골고루 갖춘 중산층이 연상된다. 안정에는 '질서' 연결되어 떠오른다. 질서가 흐트러지는 것을 사회의 불안 상태라고 표현한다. 변화는 안정을 해친다는 의미에서는 안정의 반대 쪽에 있고, 변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면 '불안'으로 이해된다. 사회전복세력 같은 표현들... 안정, 질서와 연결되는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 기득권층 이미지... 하지만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회가 바람직한 상태를 이뤘다고 평가될수록 안정추구는 보수적인 세력만의 것은 아니다. 좋은 상태, 바람직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이 비난받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불안정은 사회가 변화할 때 뿐 아니라, 기존 질서가 내적으로 문제가 있을 때에도 관찰된다. 예를 들어 제도와 현실 간의 괴리가 클 때... 이 경우 안정이란... 예컨대 법치, 법에 의한 통치를 요구하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안정은 그 자체로 반드시 보수적인 것만은 아니다. 사회가 완전한 변화가 필요한데도 변화를 거부하는 기존 질서대로의 안정 추구 세력은 보수적인 것이지만, 사회가 변화를 이루어서 상당히 긍정적 질서를 가져오는데도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 경우 안정 파괴는 그 질서를 지키지 않는 세력의 책임인 것이다.
"불안정"은 "불확실"과 매우 잘 연결된다. 불안정성.... 불확실성... 불안정은 또 "유연성"과도 연결된다. 노동유연성 같은 표현은... 사실 부정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불안정성을 영어로 unstableness로도 쓰지만 고급 표현으로 "precarity"가 있나보다.
"Precarity is a condition of existence without predictability or security, affecting material or psychological welfare. Specifically, it is applied to the condition of intermittent or underemployment and the resultant precarious existence. The social class defined by this condition has been termed the precariat."
검색을 해보니 normative instability(규범적 불안정성) 보다는 규범적 불확실성(normative uncertianty)이 더 자주 사용되는 것 같다. 확실성/불확실성은 (certainty/ uncertainty) 안전/불안전(security/ insecurity)과 안정/불안정(stability/ instability) 중간 정도에 위치지을 수 있는 개념 아닐까?
독일어 Sicherheit는 security(안전)과 certainty(확실성) 둘 다 해당한다. 물론 certainty는 Gewissheit로 번역되기는 하지만...
안정(stability, Stabilität)은 너무 강한 개념인 것 같다.
"안정"이란 표현을 검색해보니 정말이지 너무도 "안정지향적인" 냄새가 강하고, "규범적 불안정성"을 얘기하면 바로 "규범적 안정성"을 지향하는 것처럼 들릴 것 같다.
"규범적 불확실성"(normative uncertainty, normative Unsicherheit)로 하기로...
박총 "욕쟁이 예수" 독후기
며칠 동안 틈틈이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책의 내용을 세 개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1) 글쓴이 일상 속의 영성, 신앙 생활
(2) 성경과 신학을 보는 '새로운' 눈: 한국 보수주의 신학, 신앙을 비판하는...
(3) 사회를 보는 새로운 눈: 주류 세계관을 비판하는...
(2)와 (3)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 동의할 수 있었고, 새롭게 배운 부분도 꽤 있었다. 다만 (1)에 대해서는... 역시 머리로는 좇아갈 수 있었으나, 내 일상 속의 영성 수준을 돌이켜 볼 때 실제적 '넘사벽'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가 새삼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일상 속 영성을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듯...
(1) 글쓴이 일상 속의 영성, 신앙 생활
(2) 성경과 신학을 보는 '새로운' 눈: 한국 보수주의 신학, 신앙을 비판하는...
(3) 사회를 보는 새로운 눈: 주류 세계관을 비판하는...
(2)와 (3)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 동의할 수 있었고, 새롭게 배운 부분도 꽤 있었다. 다만 (1)에 대해서는... 역시 머리로는 좇아갈 수 있었으나, 내 일상 속의 영성 수준을 돌이켜 볼 때 실제적 '넘사벽'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가 새삼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일상 속 영성을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듯...
2013년 7월 2일 화요일
결과...
어떤 분으로부터 조금 마음상하는, 하지만 자극이 되는 얘길 들었다. 그런 얘기 들을만한 상황인지라...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로 보여줘야 하는데... 좀... 답답하다.
한국의 지체된 문화와 일본의 앞서가는 문화
"한 사회의 지체란 기술과 사회현상은 앞서 가는데 법이나 제도가 그것을 뒤따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 어떤 사회현상이 일어났을 때 전체 사회가 가진 응전력이 문제가 된다. 한마디로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란 사회적 지체를 처리하는 속도로 가늠된다. ... 제도나 법은 속성상 새로운 사회현상을 선도하고 진단하기 보다는 추후 승인하는 성격이 강한 반면, 문화는 이미 추인된 사회현상에 의문을 제시할 뿐 아니라 새로운 현상을 재빨리 진단한다. 그런 뜻에서 나는 우리나라의 소설과 영화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IMF라는 전대미문의 사태에 당면하고서도 왜 우리 드라마는 <육남매>처럼 60년대로 돌아가고, 왜 우리 소설은 <봉순이 언니>처럼 70년대로 돌아가는가..... 이상하게도 우리 문화는 ... 항상 엇박자이다. 바로 응전하는게 아니라 반 박자 늦다. 그에 비해 일본문화는 현실에 응전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오히려 현실을 상회한다. ... 중국에 벌어지는 한류 열풍의 상당 부분이 '한국 문화의 지체' 탓에 덕을 보고 있는 것.... 즉 일본의 대중문화는 한국의 대중문화보다 너무 앞서 나간 탓에 중국인들에게 현실감을 주지 못하는 데 반해, 지체가 심한 한국의 대중문화는 중국보다 아주 약간 빠르거나 거의 동시대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장정일의 공부, 2006, 132 - 133)
한국의 문화 지체, 혹은 한국인들의 문화적 보수주의에 대해서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신 기술, 유행 수용엔 관한한 세계최고라는 점... 하지만 특히 IT 기술 쪽이 그런 것 같긴 하지만, 모든 최신 기술에 대해서 개방적인 것 같진 않다. 좀 꺼려하는 기술 분야가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일본과 비교하자면 로보트 기술... 그리고 개방적이라는 것은 다양성에 대해서라면 한국은 꼴찌 쪽일 것이다. 특정한 최첨단 기술은 삽시간에 유행처럼 퍼지지만, 그렇게 유행이 되지 못하는 초첨단 기술은 한국에서는 기회를 제대로 잡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문화적 지체와 그와 모순되어 보이는 첨단 기술 열광 현상은 그러니까 좀 더 자세히 보면 묘하게 얽혀있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 지체, 혹은 한국인들의 문화적 보수주의에 대해서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신 기술, 유행 수용엔 관한한 세계최고라는 점... 하지만 특히 IT 기술 쪽이 그런 것 같긴 하지만, 모든 최신 기술에 대해서 개방적인 것 같진 않다. 좀 꺼려하는 기술 분야가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일본과 비교하자면 로보트 기술... 그리고 개방적이라는 것은 다양성에 대해서라면 한국은 꼴찌 쪽일 것이다. 특정한 최첨단 기술은 삽시간에 유행처럼 퍼지지만, 그렇게 유행이 되지 못하는 초첨단 기술은 한국에서는 기회를 제대로 잡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문화적 지체와 그와 모순되어 보이는 첨단 기술 열광 현상은 그러니까 좀 더 자세히 보면 묘하게 얽혀있는 것이다.
법의 범죄 억지력
"극단적으로 말해 우리가 살인죄나 강도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경우는 살인을 행하기 직전이거나 강도를 모의할 때이다. ... 범죄에 앞서 한번쯤 형법을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는 범죄 억지력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모든 범죄는 완전범죄를 상정해야만 비로소 저질러질 수 있기 때문에... '막가파식' 범죄가 대담 악랄한 것은, 또 우리가 막가파식 범죄에 치를 떠는 이유는, 그들이 완전범죄를 아애 상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법이란 어떤 행위에 대한 사후 처벌과 조치를 할 뿐이다. 우리가 법만능주의를 경계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법은 범죄와 사회문제를 억제하는 최고의 예방 수단이기도 하지만 사후약방문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회문제나 범죄는 법 이전에, 사회가 함께 관심을 기울여 해결해야지, 처벌의 강도를 높인다고 해서 해결될 게 아니다." (장정일의 공부, 2006, 124 - 125)
물론 그렇다고 법이 필요없다는 얘긴 아닐 것이다. 기존의 법을 원칙적에 따라 일관되게 집행하는 법의 안정성은 오히려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법이 필요없다는 얘긴 아닐 것이다. 기존의 법을 원칙적에 따라 일관되게 집행하는 법의 안정성은 오히려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
리추얼의 빈곤
귀국 후 조문갈 기회가 몇 번 있었다('장례식'은 아니었다). 결혼식에도 몇 번 참석했다. 그때마다 갖는 느낌은... 리추얼(ritual)의 빈곤이다. 국적도 뿌리도 없는... 요상한 방식의 리추얼들이었다. 즉, 비용, 시간, 내용의 빈곤이 아니라... 리추얼이 갖는 의미, 맥락, 뿌리, 격식, 깊이의 빈곤이었다. 젊은 친척의 결혼식을 최악이었다. 키치의 극단... 급속한 근대화가 일상 예식을 이런 식으로 재편했나 싶기도 하고.... 뿌리없는 저급한 실용주의의 표현인 것 같기도 하고...
실용주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결혼식 풍경을 이런 저런 경로로 접한다. 아마도 그 리추얼의 뿌리는 유럽, 어쩌면 유럽의 귀족문화 혹은 부르조아지(중산층) 문화에 닿아있는지도 모르겠다. 독일에서 몇 번 참석한 결혼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오히려 더 화려한 것 같다. 물론 표본 수가 너무 작기 때문에 일반화하기엔 어렵지만... 여하튼 나름 전통이 있는 것 같고, 의미가 풍성해 보이는 리추얼이었다.
한국은 리추얼에 있어서도 철학, 전통, 문화의 빈곤을 여지없이 드러내보이는 것 같다. 오랜 역사에 비해서 참으로 초라한 한국의 도시나 시골 풍경에서도 관찰되는...
물론 오래된 모든 것은 역사성을 남긴다. 이런 조급한 근대성이 남긴 키치적 리추얼도 조금 더 오래 묵으면 그 나름대로 꽤 그럴듯한 문화가 될 것이다.
실용주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결혼식 풍경을 이런 저런 경로로 접한다. 아마도 그 리추얼의 뿌리는 유럽, 어쩌면 유럽의 귀족문화 혹은 부르조아지(중산층) 문화에 닿아있는지도 모르겠다. 독일에서 몇 번 참석한 결혼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오히려 더 화려한 것 같다. 물론 표본 수가 너무 작기 때문에 일반화하기엔 어렵지만... 여하튼 나름 전통이 있는 것 같고, 의미가 풍성해 보이는 리추얼이었다.
한국은 리추얼에 있어서도 철학, 전통, 문화의 빈곤을 여지없이 드러내보이는 것 같다. 오랜 역사에 비해서 참으로 초라한 한국의 도시나 시골 풍경에서도 관찰되는...
물론 오래된 모든 것은 역사성을 남긴다. 이런 조급한 근대성이 남긴 키치적 리추얼도 조금 더 오래 묵으면 그 나름대로 꽤 그럴듯한 문화가 될 것이다.
확실성, 안정(감) - 불확실(성), 불안(감)
"'안정감'에 대한 집착은 앞날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모든 인간의 본질적 욕구라는 사실이다.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과의 사귐 속에 절대적 안전과 안정을 누리던 인간이, 타락 이후에는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는'(창 3:10) 원초적 불안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지어 입은 것은 안정감을 획득하려는 인간 최초의 시도였다. '하나님 앞을 떠나'(창 4:16) 스스로의 힘으로 안정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몸부림은 가인이 세운 인류 최초의 도시, 에녹성 ... 에서 시작하여 훗날 대제국에서 절정에 이른다.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3대 안정감(신체적 안전, 물질적 안정, 미래에 대한 보장)에 목매지 않는... 거룩한 불안정성(the holy insecurity) (Fumitaka Mastuoka)" (박총, 욕쟁이 예수, 205쪽)
안정감에 대한 집착, 안정의 반대인 불안을 극복하기는 인간의 본질적인 요구다.
불안 속에서 안정, 안전을 갈구하는 인간들의 욕구는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꽤 성공적으로 안정을 보장하거나 안정감을 제공해 주었다.
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은 역사 지역에 따라 큰 편차를 보인다. 기근 등 자연재해, 전쟁, 폭력 같은... 문명의 역사는 어쩌면 이 불안감을 극복하고 안정을 확보하려는 인간 노력의 산물이 아닐런지... 각종 사회제도들 역시 마찬가지. 예를 들어 마을, 대도시, 국가 같은 조직들은... 외적 폭력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시도들. 어떠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서 제거될 수 없는 본원적 불안감이 있는데 그 원인은 바로 '죽음'이다. 혹은 이해되기 힘든 일들을 어떻게든 이해하거나, 이해되었다고 처리해야 살아갈 수 있는데.... 죽음과 이해되기 힘든 일의 처리를 통해서 안정감을 확보하는 일에 '종교'가 큰 역할을 한다. 제도적 종교는 아니더라도 각종 신화, 미신, 음모, 근대에 들어서 '과학' 등은 인지적 안정감, 세상에 대한 지적 확실성을 제공해 주는데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가장 원초적인 안전 제공 기제는 부모 그리고 가족이다. 어린 자식은 불확실성으로 충반한 세계 속 생존을 위해서 오로지 부모만을 의지할 뿐이다.
(인)지적 불안, 심리적 불안, 정서적 불안, 경제적 불안, 정치적 불안... 불안도 그밖에 여러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불안은 결속력, 연대감을 강화하는 구실도 한다. 그걸 얻기 위해 없던 불안을 조성하기도 한다. 반드시 나쁜 것, 배제될 것만은 아니다.
완벽한 안전을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불안의 요소가 될 수도 있기에 불안의 자리를 남겨 놓기도 한다. "거룩한 불안정성"도 그런 표현일 수 있고... 과학지상주의(뇌과학이든 창조과학이든...)에 대한 반대도 그런 입장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여하튼 인류의 문명 발달은 인간이 불확실성, 불안감의 원인으로 느끼는 것들을 계속 바꿔왔다. 인간은 잘 잊는 동물이라 늘 새로운 불안을 발명해낸다. 불안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처럼.... 물론 불안의 대상, 유형, 불안을 극복하는 방식의 발전은 인간 개개인의 삶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친다. 결코 만만하게 볼 일은 아닌 것이다. 특히, 근대 이후 서구가 만들어 낸 안전 장치들, 그것들의 발전은 정말이지 획기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근대의 자부심이 지나친 면도 있다. 그것은 과학적 지식의 자부심과 한 통속이다. 그래서 세계대전, 생태적 위협 같은 일들을 겪으면서 특히 새로운 뿌리를 갖는 불안감, 불확실성이 부상하기도 했다. 포스트 모던... 여하튼 근대 이후 불안의 처리, 안정 확보에 있어서 서구가 만들어낸 성과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은 새로운 위험에 직면해 있지만 그것들 처리 능력에 있어서는 아직 한참 앞선다.
아시아나 후발국가들은 그런 점들을 배워야 하고, 배울 수밖에 없다. 서구가 몰락한다고... 쉽게 무시하기 힘든 역략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인권, 개인주의, 복지국가, 법치국가, 각종 체계통합, 사회통합 제도들... 불안과 안전은 모두 발명된 것이라고... 영원한 안전은 불가능하다고... 그렇게 뒷짐지고 있어서는 안된다. "거룩한 불안정성"이 그걸 주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검색해 보니 이 개념은 Fumitaka Mastuoka이전에 마르틴 부버가 쓴 듯)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3대 안정감(신체적 안전, 물질적 안정, 미래에 대한 보장)에 목매지 않는... 거룩한 불안정성(the holy insecurity) (Fumitaka Mastuoka)" (박총, 욕쟁이 예수, 205쪽)
안정감에 대한 집착, 안정의 반대인 불안을 극복하기는 인간의 본질적인 요구다.
불안 속에서 안정, 안전을 갈구하는 인간들의 욕구는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꽤 성공적으로 안정을 보장하거나 안정감을 제공해 주었다.
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은 역사 지역에 따라 큰 편차를 보인다. 기근 등 자연재해, 전쟁, 폭력 같은... 문명의 역사는 어쩌면 이 불안감을 극복하고 안정을 확보하려는 인간 노력의 산물이 아닐런지... 각종 사회제도들 역시 마찬가지. 예를 들어 마을, 대도시, 국가 같은 조직들은... 외적 폭력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시도들. 어떠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서 제거될 수 없는 본원적 불안감이 있는데 그 원인은 바로 '죽음'이다. 혹은 이해되기 힘든 일들을 어떻게든 이해하거나, 이해되었다고 처리해야 살아갈 수 있는데.... 죽음과 이해되기 힘든 일의 처리를 통해서 안정감을 확보하는 일에 '종교'가 큰 역할을 한다. 제도적 종교는 아니더라도 각종 신화, 미신, 음모, 근대에 들어서 '과학' 등은 인지적 안정감, 세상에 대한 지적 확실성을 제공해 주는데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가장 원초적인 안전 제공 기제는 부모 그리고 가족이다. 어린 자식은 불확실성으로 충반한 세계 속 생존을 위해서 오로지 부모만을 의지할 뿐이다.
(인)지적 불안, 심리적 불안, 정서적 불안, 경제적 불안, 정치적 불안... 불안도 그밖에 여러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불안은 결속력, 연대감을 강화하는 구실도 한다. 그걸 얻기 위해 없던 불안을 조성하기도 한다. 반드시 나쁜 것, 배제될 것만은 아니다.
완벽한 안전을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불안의 요소가 될 수도 있기에 불안의 자리를 남겨 놓기도 한다. "거룩한 불안정성"도 그런 표현일 수 있고... 과학지상주의(뇌과학이든 창조과학이든...)에 대한 반대도 그런 입장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여하튼 인류의 문명 발달은 인간이 불확실성, 불안감의 원인으로 느끼는 것들을 계속 바꿔왔다. 인간은 잘 잊는 동물이라 늘 새로운 불안을 발명해낸다. 불안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처럼.... 물론 불안의 대상, 유형, 불안을 극복하는 방식의 발전은 인간 개개인의 삶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친다. 결코 만만하게 볼 일은 아닌 것이다. 특히, 근대 이후 서구가 만들어 낸 안전 장치들, 그것들의 발전은 정말이지 획기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근대의 자부심이 지나친 면도 있다. 그것은 과학적 지식의 자부심과 한 통속이다. 그래서 세계대전, 생태적 위협 같은 일들을 겪으면서 특히 새로운 뿌리를 갖는 불안감, 불확실성이 부상하기도 했다. 포스트 모던... 여하튼 근대 이후 불안의 처리, 안정 확보에 있어서 서구가 만들어낸 성과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은 새로운 위험에 직면해 있지만 그것들 처리 능력에 있어서는 아직 한참 앞선다.
아시아나 후발국가들은 그런 점들을 배워야 하고, 배울 수밖에 없다. 서구가 몰락한다고... 쉽게 무시하기 힘든 역략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인권, 개인주의, 복지국가, 법치국가, 각종 체계통합, 사회통합 제도들... 불안과 안전은 모두 발명된 것이라고... 영원한 안전은 불가능하다고... 그렇게 뒷짐지고 있어서는 안된다. "거룩한 불안정성"이 그걸 주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검색해 보니 이 개념은 Fumitaka Mastuoka이전에 마르틴 부버가 쓴 듯)
2013년 7월 1일 월요일
아버지
지금보다 더 젊었던... 어렸던 시절에 내가 아버지에게 했던 행동을 회상하다. 그 땐 정말 어렸구나... 참. 어리석은, 그리고 서운하게 생각하실 행동이었구나... 모든 관계는 상호적이다. 내가 늘 강조하고, 염두에 두는 말이다. 유독 부모님에 대해서는 일방적인 관계, 즉 부모님은 일방적인 주고 나는 받는 관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흠. 부모님 대하기를 주를 대하듯... 주를 섬기듯...
1.
7월 1일이고 게다가 월요일이다. 하지만 많이 우울하진 않다. 아마도 어제 저녁 이미 한 번 겪었기 때문인 것 같고, 또 아침 일찍 9km 정도를 달렸기 때문인 것 같다. 딸이 적당한 시간에 "깨워줬고", 또 주말에 부족한 잠을 잘 보충한 탓인지 개운하게 5시 경에 일어날 수 있었다. 한 시간 더 자느니 주말에 실행하지 못한 달리기를 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5시 반경에 출발했는데 날이 상상 이상으로 더웠다. 역시 더위를 좌우하는 것은 온도보다는 습도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체감한다. 모처럼 땀으로 샤워를 했다. 출근까지 시간도 넉넉하지 않은 터라 거리를 9km 정도로 맞췄다. 어제 저녁 - 썩 고급스럽진 않은 - 한정으로 채운 배도 기분좋게 꺼지고,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사무실에 나왔다.
2.
박총의 "욕쟁이 예수"는 기대이상으로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다. 내가 고민하던 부분들, 가렵던 부분들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대목이 많다. 아마 신앙 배경이 나와 비슷해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7월 1일 월요일부터, 지금 내 상황에선 덜 중요한 주제에 몰두하는 게 마음 편하진 않지만 10시까지만 그러기로 하자.
7월 1일이고 게다가 월요일이다. 하지만 많이 우울하진 않다. 아마도 어제 저녁 이미 한 번 겪었기 때문인 것 같고, 또 아침 일찍 9km 정도를 달렸기 때문인 것 같다. 딸이 적당한 시간에 "깨워줬고", 또 주말에 부족한 잠을 잘 보충한 탓인지 개운하게 5시 경에 일어날 수 있었다. 한 시간 더 자느니 주말에 실행하지 못한 달리기를 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5시 반경에 출발했는데 날이 상상 이상으로 더웠다. 역시 더위를 좌우하는 것은 온도보다는 습도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체감한다. 모처럼 땀으로 샤워를 했다. 출근까지 시간도 넉넉하지 않은 터라 거리를 9km 정도로 맞췄다. 어제 저녁 - 썩 고급스럽진 않은 - 한정으로 채운 배도 기분좋게 꺼지고,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사무실에 나왔다.
2.
박총의 "욕쟁이 예수"는 기대이상으로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다. 내가 고민하던 부분들, 가렵던 부분들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대목이 많다. 아마 신앙 배경이 나와 비슷해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7월 1일 월요일부터, 지금 내 상황에선 덜 중요한 주제에 몰두하는 게 마음 편하진 않지만 10시까지만 그러기로 하자.
1.
음. 조금 전 7월 1일이 되었다. 그렇다. 올 해 절반이 벌써 훅 간 것이다. 믿고 싶지 않다. 황당하고 무섭기까지하다. 한 해 두 해 가는 것에 큼 감흥없던 이십대, 서른살을 담담하게 맞던 그 시절이 정말로 그립다.
2.
프로야구는 해롭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오늘 경기는 거의 신경쓰지 못하고 결과만 확인했는데... 앞으로도 좀 그래야 할 것 같다. 프로경기든, 정치든, 사랑이든... 관심을 과하게 가지면... 추한 모습을 보이기 쉽다. 뭐. 그런 모습도 삶의 일부분이지만... 그것도 드문 일탈일 때나 수용가능하지, 반복되면 정말 "추한 모습"이다.
3.
멀티가 아닌 모노태스킹, 그리고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는 건... 좀 더 훈련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지금 이 글도 주께 쓰듯 하고... 운전을 해도 주를 모신듯... 누굴 만나든 주를 만난 듯이 하고... 문제는 실제로 주께 하듯....을 잘 모른다는 점.
음. 조금 전 7월 1일이 되었다. 그렇다. 올 해 절반이 벌써 훅 간 것이다. 믿고 싶지 않다. 황당하고 무섭기까지하다. 한 해 두 해 가는 것에 큼 감흥없던 이십대, 서른살을 담담하게 맞던 그 시절이 정말로 그립다.
2.
프로야구는 해롭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오늘 경기는 거의 신경쓰지 못하고 결과만 확인했는데... 앞으로도 좀 그래야 할 것 같다. 프로경기든, 정치든, 사랑이든... 관심을 과하게 가지면... 추한 모습을 보이기 쉽다. 뭐. 그런 모습도 삶의 일부분이지만... 그것도 드문 일탈일 때나 수용가능하지, 반복되면 정말 "추한 모습"이다.
3.
멀티가 아닌 모노태스킹, 그리고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는 건... 좀 더 훈련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지금 이 글도 주께 쓰듯 하고... 운전을 해도 주를 모신듯... 누굴 만나든 주를 만난 듯이 하고... 문제는 실제로 주께 하듯....을 잘 모른다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