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독교 신앙, 내 나름의 '믿음'에 근본적 도전을 주는 계기들이 계속 생기고 있다. (1) '구원'에 대한 칼빈의 이해, (20 이재철 목사님의 '믿음'에 대한 설명. 어제 접한 책은 옥성호의 '갑각류 크리스천 블랙편'(2013)이다.
자연의 웅장함에 대한 경외감 경험을 얘기한 후.. 그것을 "그저 그 웅장함, 자연의 모습 그 자체로 충분한... 존재가 꽉 채워지는 듯한 느낌"으로 표현한다. "내게 '기독교,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런 기대가 잠시가 아니라 영구적으로 충족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물며 창조주가 만든 자연을 통해서도 내 존재 전체가 채워지는 말할 수 없는 황홀경을 맛보는데 창조주로 말미암아 그런 충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내게 이해할 수 없는 껍데기 신앙에 불과하다"(46쪽)
"내가 정말로 미친 듯이 기뻤던 적이 언제인가? ... 왜 구원은 내게 이런 짜릿한 기쁨으로 다가오지 않는가?"(53쪽)
"뭔가 너무 너무 싫었던 것을 안 하게 될 때 느끼는 기쁨도 분명 크지만, 너무 너무 원했던 것을 손에 넣었을 때 느끼는 기쁨은 더 크기... 그런 의미에서 지옥에 안 가서 기쁜 것보다 분명히 천국에 가기에 구원이 진짜 기쁨이고 감격이어야 하는데..."(57)
"기독교의 구원이 주는 기쁨은 매우 형이상학적이고, 그 형이상학을 포기하면 '기독교가 주는 기쁨이 매우 세속적이게 된다'는 딜레마... 기독교의 구원이 제시하는 형이상학적 기쁨은 최소한 내게 별 감흥이 없다. 그러다 보니 나의 삐딱한 시각으로 볼 때 '기독교는 어찌 보면 실제로 가장 기쁜 요소가 별로 없으니 어떻게든 기쁨을 짜내려고 가장 발버둥치는 종교로 전락하고 있지 않나? ... '감동 있는 예배' 같은 단어를 쓰며 어떻게든 기쁨을 가장한 흥분을 조장하는 데 갖은 전략과 에너지를 쓰는 상황이 아닐까? ... 왜 오늘날 교회들이 그렇게 발라드 음악과 찬양팀에 목을 맬까? 그렇게 조작하지 않으면 기쁨, 감격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교회 속의 음악은 음식에 들어가는 조미료, 즉 MSG와 비슷한 것이다. 그게 없으면 맛이 안 난다. (58f)
"그렇다면 MSG 음악을 더하지 않은 기독교에 진짜 맛은 없다는 것인가? 구원이 주는 진짜 기쁨은 없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까지는 분명 기독교의 구원에 그 기쁨이 실재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갈구하고 찾는 것이다. 분명 지금 내 수준의 지옥 탈피용 구원의 기쁨 수준으로 사는 것이 기독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그 기쁨의 실체... 성경 속에서...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을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요 7:38)
...
왜 2002년 월드컵의 승리가 내게 그토록 큰 기쁨을 주었을까? 그때까지 피부로 느끼지 못했지만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대한민국, 내 나라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기독교만이 줄 수 있는 기쁨의 비밀은 결국 사랑 속에 있다. 빌립보서에서 말한 바울의 고백, 어느날 오후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분명 예수님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사랑이 있었기에 기쁨이 그들을 채웠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소유했던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지금 갈망한다. 내 속에 꺼지지 않는 기쁨을 위해서!"(60f)
"진짜 믿음은 '앎'에서 시작하는 것... 믿음은 안다는 것이다. 알면, 정말 제대로 알면 삶에서 아니, 나의 표정 하나에서 저절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어느 날 내 통장에 100억 원이 있음을 안다. ... 그 사람은 즉시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 바뀌어 새로워질 것이다. .. 성경은 이런 변화가 생긴 사람을 향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말한다. ... 기독교의 꽤 많은 진술을 우리가 믿는다고 말하지만, 이 믿음이 진짜 앎을 동반할 때 우리의 삶이 '뒤집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기적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하물며 내 통장에 100억 원이 있어도 내 인생 전체가 뒤집어지는데 옆집 친구의 아버지가 아닌 바로 내 아버지가,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나 대신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셨음을 안다면... 그 사실을 알게 된 나의 오느로가 어제가 똑같다면... 우리는 너무도 쉽게 '믿는다'고 말한다. 이 상황을 놓고 내밀 수 있는 가장 가능한 결론은 단 하나뿐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건 아닌지... " (74f)
"우리는 행여 하나님에 대해 아예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분의 수많은 약속을 앞에 두고도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 건 아닐까? 아니면 최소한의 무슨 느낌이라고 일으키기 위해서 나는 30분 이상 땀을 흘리며 반복해서 감동적인 노래를 계속 불러야만 하지는 않을까? 내 통장에 100억 원이 있음을 알 때 내 삶 구석구석에서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우러난다. 자신감을 갖기 위해 특별한 명상을 하고 세미나를 다닐 필요가 전혀 없다. 어떤 사실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생기는 믿음은 그냥 자연스럽게 삶 속에서 흘러나오고 삶의 모든 분야에서 자연스럽게 투영되기 마련이다. 내가 낳은 자식을 사랑하기 위해서 부모가 애쓸 필요가 없다. ... 내가 낳은 자식임을 알기에 자식에 대한 나의 사랑은 그냥 흘러나온다. 내 자식을 향한 사랑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듯 믿음은 그 대상을 아는 것이다. 정말로 안다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안다면, 그 결과 믿음은 자연스럽게 우리 삶 속에서 드러난다. 억지로 쥐어 짜야 하는 그 무엇이 아니다(81f)
==> 이 책을 읽오 내린 결론: 내 믿음 가짜다. 감동도 없고, 기쁨도 없다. 사랑하지도 않고,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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