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학습기기실'이 너무 추워서 콧물을 흘리다 이게 뭔짓인가 싶어서 좀 더 '따뜻한' '인문자연과학실'에 있다. 온 김에 서가를 어슬렁거리다가 내 논에 들어온 책이... "EBS 다큐멘퍼리: 동과 서"였다. 원래 이런 단순하고 분명한 구분이 매력적이다. 따지고 들면 설득력이 떨어지더라도 일단은 혹하게 된다. 강준만, 김정운, 김용옥 그리고 그밖에 언론에서 선호하는 학자들의 태도가 대개 그렇다. 알기쉽고, 분명하게 얘기하지만, 발언의 내용을 따지고 들면 헛점투성이인... 어쩌면 모호하고 복잡하기만 한 내 생각, 논문, 글쓰기에 진절머리가 난 참이라 좀 단정적이고 분명한 얘길 듣고 싶었나보다. 제목을 보면서 미국 Nisbet 교수의 저서 "생각의 지도 The Geography of Thought"를 연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책을 토대로 기획한 다큐였다고...
책 내용은 역시나 "이보다 더 명쾌할 수는 없다".
동양 - 물질(재료) 중심, 서양 - 물체(사물) 중심
동양 - 동사 중심, 서양 - 명사 중심
동양 - 동질성, 일체(one-ness) 강조, 서양 - 개체성, 집합(collection) 강조
동양 - 사물간의 관계 중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인정, 기(氣)로 가득차 있다. 기를 매개로 연결되어 있다. 지구와 달의 상호작용으로 밀물 썰물 생기는 것을 일찌기 알았음, "고대 중국인들은 2500년 전부터 파장, 자기장과 같은 개념을 알고 있었고... 서양인들은 18세기 후반까지도 떨어져 있는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했음...
현대물리학에서는 기로 연결되어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공간을 '장(場) fied'이라고 부른다. 동양인들은 우주를 하나의 커다란 장으로 생각했다. 현대물리학은 장 개념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연구를 진행... 아인슈타인은 중력장 이론과 양자장 이론을 통해 물체를 이루는 입자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밝힘.
사물(事物)이라는 단어는 연결관계를 잘 드러낸다. 모든 물체物와 물체物는 서로 연결(事) 되어 있다.
동양: (차) 더 마실래? (동사 중심)
서양" (Would you like to have) more tea? (명사 중심)
동양인들에게 우주의 사물들은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사물을 둘러싼 환경과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
한 송이 국화꽃이 피기까지는 봄부터 소쩍새도 울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다...
--> 동양적 사고는 오늘날 생태학적 사고나, 싸이버네틱스, 체계이론적 사고와 친화성이 매우 크다.
--> 그런 전통에서 이론을 만든 루만도 어쩌면 동양인들에게 더 쉽게 어필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생겨나고 사라진다. 불교에서는 연기(緣起)라고 부른다. 모든 사물이 수많은 인연에 따라 생겨난다. '연'은 인연, 즉 수많은 원인을 가리킨다. '기'는 생겨난다는 뜻.. 모든 사물은 늘 변화하면서 새롭게 생겨나는 존재라는 뜻. 서양에서는 모든 존재를 고정적인 의미인 'Being'으로 펴현. 동양에서는 모든 존재가 항상 변화해간다는 의미인 'Arising, 기(起)'으로 표현. 동양의 관점ㅇ네서 모든 존재는 고정된 명사적 존재가 아니라 늘 변화하는 동사적 존재.
동양에서는 어떤 사물의 특성을 알고자 할 때 다른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도 그 사람의 가정환경, 인간관계 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식...
서양에서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알고자 할 때 그 사람의 타고난 성격이나 특유한 사고방식, 심리상태 등 그 사람 고유의 내면 분석을 통해서 파악하려 함.
동양에서는 사물과 사물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고 전헤함. 주역(周易)에서는 이를 대대성(對待性)이라고 표현. 대대성이란 이 세상 모든 사물이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상호연결되어 있다는 뜻.
천지인... 사람은 땅이나 하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음양... 세상 만물이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시간(時間), 공간(空間), 인간(人間)...
동양에서는 시(時)라는 단어에 굳이 간(間)자를 추가해서 표현... 시간을 전과 후가 합쳐진 개념으로 인식했기 때문.
서양에서는 사물을 추상화(抽象化)abstraction해서 표현하기 때문에 간(間)개념이 발달하지 않았음. 서양에서는 모든 사물이 독립된 물체들의 결합이라고 믿기 때문에 쪼개고 또 쪼개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본질적인 물체에 도달한다 믿었고, 이것을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 여겼다.
공간.. 전후좌우 네 가 방향이 합쳐져서 발생하는 대대적 개념.
동양이 관계 중심적이고 서양은 개체 중심적 이라는 주장은 반드시 옳은 것 같지 않다. 개체중심저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동양의 관계는 삼강오륜에 잘 나타나 있다.
삼강(三綱)
- 군위신강(君爲臣綱):(임금과 신하사이의 도리) 신하는 임금을 섬기는것이 근본이요.
- 부위자강(父爲子綱):(어버이와 자식사이의 도리) 아들은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 근본이요.
- 부위부강(夫爲婦綱):(남편과 아내사이의 도리) 아내는 남편을 섬기는 것이 근본이요.
오륜(五倫)
- 父子有親(부자유친): 어버이와 자식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한다.
- 君臣有義(군신유의):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로움이 있어야 한다.
- 夫婦有別(부부유별): 부부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
- 長幼有序(장유유서):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
- 朋友有信(붕우유신): 친구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밖에도 의미를 갖는 관계는 다양할 수 있다. 친척, 친족, 마을 등등. 문제라면 문제는 이렇게 관계로 얽히지 않는 관계 밖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이다. 이방인, 손님, 혹은 야만(족), 미개(족) 등으로 다루면... 그들에 대한 예절, 규범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관계 중심적이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의미있는 관계를 - 근대화된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 매우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 간(인권), 시민 간 (시민권)의 보편적 관계에 대한 이해가 천박하기 그지없다. 특히 대도시에서 친분관계, 직접적 관계가 없는 인간을 어떤 관계로 설정할 것인지... 그런 개념들이 희박하다(혹은 아애 없다). 그런 상황을 두고 과연 관계 중심적이라고 일반화할 수 있을까? 아... 물론 직접적 친분관계를 넘어선 관계로 한민족, 국민.. 같은 개념들이 있다. 그것은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 발동된다. 월드컵 한국 경기를 길거리에서 응원하러 보인 사람들 속에서... 혹은 다른 형태의 민중, 비판적 시민, 시민사회... 등은 촛불집회 같은 경우에서...
반면에 개체중심적이라는 서양에서는 개인주의 덕/탓에 개별적 인간들 간의 평등, 보편적 관계를 상정하는 개념들이 발달했다. 인권, 천부인권.... 물론 여기에서 동등한 권리를 갖는 '인'에 포함되는 '인'의 범위는 확대되었다. 서양인들은 근대적 관계 개념을 발전시켜왔던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개체에서 특징을 찾는 것... 관계 속에서 개체의 특징을 찾는 것... 뭐 그런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런 관계 속에서.... 보편적 '인간'들 속에서 개인의 특징을 찾는 동양의 문화는.... 천지인.. 운운하기도 하지만... 인권 같은 개념으로 발달되지는 않았다는...
물론 그 관계중심성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들에 대한 관념으로... 인인유친.... 같은 개념을 발전시키지 못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타인 속에서 동등함을 발견할 수 있다면, 애초에 관계성에 더 민감한 동양인들이 인권을 더 체화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문화, 이주민들에 대한 접근은 우리는 우리의 관계 속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려고 시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보편적 인권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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