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6일 금요일

자연(주의)적 사회과학에서 역사적 사회과학으로

"대체로 인문학적 감성은 삶의 복잡미묘한 측면들을 섬세하게 펼쳐내는 반면, 사회과학적 논리는 몇 가지 핵심적인 요인들을 잡아내어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를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하므로 자칫 인문학적 감성에 치우치다 보면 그 어떤 악인도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을 혼란에 빠지기도 하고, 사회과학적 논리를 내세우다 보면 한 발짝만 물러서서 생각해도 허점투성이인 주장에 목숨을 걸 수도 있다."

충남대 류동민 교수가 쓴 칼럼의 일부다. 사회과학의 한계는 분명하고도 분명하다. 도대체 사회의 무엇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이해하고 설명한다고 하는 부분이 도대체 사회의 얼마만큼이나 그려낼 수 있을까? 겸손할 필요가 있다. 겸손 또 겸손... 겸손한 이야기는 잘 듣질 않는다. 과학은 왜 과학인가? 적어도 진리라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파편적인 진리일지라도... 제한하고 제한해서... 실험대상을 통제할 수 있는 자연과학은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러저러한 조건에서 이러저러하게 했더니 이러저러한 결과가 나왔다. Punkt! 사회과학도 자연과학 흉내를 내기도 한다. 나름 대상을 조작적으로 정의하고, 변수화하고, 계량화하고, 그 상관관계를 밝히고... 분석을 위한 수치는 따로 수집된 '통계'를 이용하거나, 설문지 등을 통해서 얻는다. 나는 온몸으로 '통계'를 불신하고, '설문지' 따위도 불신한다. 물론 통계에 기초한 해석의 유용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이러저라한 '통계'의 수집 과정을 알수록 - 자살률, 범죄율 같은 통계부터 장애인, 고용 관련  통계들.... - 불신은 더 커진다. 계량화, 수량화된 사회과학적 접근을 온몸으로 부르르 떨면서 거부하고 싶다. 그것을 "자연주의적 사회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자연(주의)적-실증(주의)적-경험(주의)적]
그렇다면 사회과학은 어떤 길을 가야하는가? 역사적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역사기술적으로, 내러티브로... 월러스틴의 "역사적 사회과학"이 그런 주장 아닌가? (역사적-해석적...)

지금 적을 두고 있는 연구기관에서도 통계, 실증 맹신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계량적 연구 자체를 비난하지는 않지만, 계량적 연구에 대한 맹신에 대해서는 짜증, 분노가 치민다. 언제 한 번 이런 주제를 다룬 논문을 쓰거나 적어도 이 조직에서 그런 주제로 발표를 한 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는데, 그럴 기회가 있을지...

댓글 3개:

  1. 공감& 공감!! 이 주제로 쓴 논문이 번번히 게제불가네요.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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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반갑습니다. 다시 읽어봐도 '욱'하는군요^^ 이 주제로 쓰신 논문이 있다니 흥미롭고 발표 지면을 얻지 못하셨다니 안타깝습니다. 이런 논의를 찾기 힘든 가운데 제가 발견한 논문으로 박성환 선생의 "경험적 사회조사의 문화적 의의"(2009)가 있습니다.

    초록 중에서... "사회조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개별 연구가 모두 무익하고 무의미하며 유해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하나의 프로그램과 사업으로서의 사회조사는 학문적으로 미심쩍고 인간적으로 무례하며 사회적으로 해로운 모힘이다. 따라서 사회조사의 자기 절제와 성찰이 요청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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