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9일 금요일

구원, 믿음

오늘 페친이 된 이민규 교수님이 쓴 '구원'에 대한 글에서 많이 배웠다. 일부 옮겨 두면.. 

"한국에는 유난히 장로교가 많다. 그러나 특이할 정도로 장로교이면서도 칼뱅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벗어나는 부분이 많다. 그중 하나가 구원론이다. 물론 목회자들은 신학교에서 칼뱅의 “구원의 서정”을 배우고 시험도 보겠지만, 어찌 된 노릇인지 졸업만 하면 그 내용을 다 잊어버리고 교회에서 전혀 다른 내용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이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그것이 정통교회에서 이단으로 여기는 구원파의 구원론과 유사하다는 사실조차 잘 모른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는 “신자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후 성화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라는 가르침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칼뱅은 이러한 신학을 반대한다. 성화는 “구원 이후” 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칼뱅에게 구원이란 예수를 주로 고백하여 단박에 받는 것이 아니라 순서가 있는 “과정을 거치는 길”과 같다. 여기서 성화는 필수 과정이다. 즉 성화 없는 구원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러기에 그는 “기독교 강요”에서 “성화론”을 따로 다루지 않고 구원론에서 함께 다룬다. 그는 구원을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한 “칭의”와 “성화”로 설명한다. 칼뱅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여 이중은혜(a double grace) 곧 칭의의 은혜와 성화의 은혜를 받게 된다고 한다(Ⅲ.11.1). 

칼뱅에게 성화의 행위는 구원 이후가 아니라 구원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칼뱅은 성화의 “행위”가 제한된 의미로 구원의 조건임을 인정한다. 쉽게 말하자면 야고보가 말하는 행위 없는 믿음의 허구성을 경고하는 것이다.

“우리가 행위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도 아니고,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도 아니다.” (칼뱅).

필자가 보기에는 칼뱅도 한 사람의 신학자에 불과하고 그가 성경을 해석하는 절대 기준이 될 수 없지만, 그의 칭의/성화 구원 과정은 “단박구원”보다 훨씬 성서적이다.* 

칼뱅의 Ordo Salutis (라틴어로 구원의 순서)는 우리 말로 “구원의 서정”으로, 화란어로는 “구원의 수단”(Heilswerg), 영어권에서는 “구원의 길” (Way of Salvation)로 번역되었다. 칼뱅은 이 표현 그대로 구원을 순서가 있는 길과 같은 과정으로 이해한다."

대개 구원을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는 순간" 얻는 사후 천국행 티켓 정도로 생각하지 않는가?(단박구원!). 그 이후  좀 더 착하고, 은혜스럽게 살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한 번 "획득한" 티켓은 절대 뺏기는 법이 없는... 뭐 그런... 매우 편리한...

구원을 그렇게 전하는 것을 두고 "값싼 복음"이라고 비판하는 견해에 동의했으면서도, 난 기독교, 특히 장로교 교리 자체가 단박구원을 옹호하는 줄 알았었다. 그게 아니었구나.

어제 유트부를 통해서 들은 이재철 목사님의 설교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에서도 느낀 바가 많다. 내 식으로 풀어서 요약하자면...  '믿음'은 그저 심리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 10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했는데... 여하튼... 결론은 삶의 변화, 의지적 노력 등이 수반되지 않는 건 믿음이 아니라는 것. 그저 립서비스일 뿐.

나는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나는 정말 구원의 길 위에 있는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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