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4일 일요일

1.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관리 (산업재해 등 각종 안전사고와 핵발전 위험 등), 관피아 등의 문제가 자주 거론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연관성이 큰, 시급한 문제다. 이런 주제와 관련해선 무엇이 위험하고, 문제의 핵심이 무엇이진,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하는지 답은 대부분 나와 있다. (주류경제학적 관점에서 본 세월호 관련 문제에 대한 흥미로운 진단으로 다음 ㅍㅍㅅㅅ 글 참조, 여기).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지가 문제일 뿐이라는 얘기. 대단히 뛰어나거나 참신한 혹은 복잡한 분석이나 진단이 필요한 것 같지 않다. 여하튼 여러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중요한 주제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2. 지식사회, 위험사회, 위험 nichtwissen 운운하면서 등장하는 각종 개념, 이론, 분석틀은 적어도 한국 상황에서는 매우 사치스러워 보인다. 연구윤리, 생명윤리 같은 것도... 핵발전 문제는 꽤 심각해 보인다. 그 주제가 그 자체로 중요성이 커 보인다. 물로 사회적 관심도가 꾸준히 높은 건 아니지만... 생명과학은 어떠한가? 생명과학 연구의 응용과 적용의 안전 문제는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이게 큰 문제인가? 줄기세포 연구 같은 최첨단 주제를 배제하더라도, "낙태" 같은 문제는 - 이것 자체가 뭐 대단한 기술이 필요하진 않지만 - 매우 심각한 주제임에 틀림없다. 인공수정 또한 그렇고... 사실 인간 배아 등 초기 생명체 관리는 그 위험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어쩌면 매우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다. 인간에 대한 이해, 생명에 대한 이해와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의 생명에 대한 가치, 윤리에 영향을 주는...  즉, 지식의 내용 그 자체의 복잡성도 그렇지만, 생명과학이 던지는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다고, 그것이 대개 실험실 이나 병원 등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해서 그것을 가볍게 여기게 되는 그런 풍조 자체가 문제다. 그것이 생명에 대한 경시, 타인의 생명에 대한 경외 등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초기 생명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매우 사치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산재, 자살 등으로 (혹은 기아로) 죽어가는 생명들이 훨씬 더 시급한 문제임은 사실이니까. (자살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자살...매우 심각한 문제니까.) 사람도 못 살리는데 무슨 동물의 권리냐... 라는 비난에 대해서 유기견 등 동물의 권리 보호하는 이들의 대답하는 방식이 적용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대개 "동물이 존중받는 사회가 인간도 존중받을 수 있다"라는 방식으로 얘기하던데... 초기 생명체에 대한 존중의 정신이 인간 생명 전체에 대한 존중 정신을 고양시킬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인가? 꼭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생명존중이라는 대의 앞에서 어떤 접근이 필요할까? 여러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느끼는 바들이 합쳐져서 생명 존중의 정신이 고양될 수 있을 것이다.

3. 배아줄기세포, 배아 보호... 그런 쪽으로는 여전히 마음이 가질 않는다. 더 끔찍한 상황에서 존재의 위협을 받는 생명들이, 침해받는 권리들이 많기 때문에. Peter Singer가 얘기하는대로 차라리 감정과 고통을 아는 동물들의 권리가 더 와 닿지 않은가? 서구인들은 왜 그렇게 배아에 집착하는 것일까? 물론 배아를 특별하게 대해야 하는 건 분명하지만... 좀 과한 보호와 관심의 대상은 아닐까? 개인주의, 개인의 정체성을 개인에서 찾는, 개인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은 배아...뭐 그런 서구 근대 문명의 소산일까?
그런 경우도 있겠고... 정말 인간 배아에 대한 생명존중의식 투철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slippery slope때문 아닐까? 작은 문을 열어 두면 둑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애초에 보수적으로 접근하는게 차라리 낫다는... 독일만 하더라도 생명존중, 인간존엄성을 그렇게 강조하고 배아에 대해서는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지만 낙태에 대해서는 꽤 관대한 편이다. 인간 배아의 보호에 앞장서는 대표적 세력이 미국의 보수주의 기독교인들인데 그들은 미국의 침략전쟁 등에는 매우 우호적이다(낙태에 대해서는 꽤 비판적이지만). 그런 전쟁으로 죽는 생명들에게는 눈을 감고서 인간배아에 대해서 살해라고 주장한다. 이중적 태도... 어떤 입장을 일관되게 관철하기가 사실은 어려운 것이다. 서양에서도 그렇다. 선진국에서도... "배아 보호"와 기타 생명윤리 주제들에 대해서 민감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대단한 생명존중에 기초한 것인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이다. 역사도 짧고... 미국 흑인 인권은 1960년대에 들어서 비로소 사회운동의 대상이 되었으니까. 인권 의식, 생명파괴의 경험이 환자의 권리, 피험자의 권리, 나아가 초기 생명의 권리로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역사적 상황, 사회구조적 조건에 따라 윤리도 발전/정착한 것이다. 그것은 긍정적 성취이기도 하고 동시에 한계도 가지고 있다. 다른 역사적 경로를 밟았지만, 서양에서 발전한 사회구조를 갖추게 된 한국에서는 그런 윤리를 서양 것이라고 피할 수만은 없다.

서양에서는 이러저러한 경험 - 때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잔인함을 보여준... - 을 통해서 인권의식, 생명존중 (심지어 인간배아까지....)을 키워왔다. 우리나라는 인권파괴, 생명파괴의 경험이 적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서양만큼 극적이진 않았다. 예를 들어 제국주의가 피식민지에서 자행했던 짓들, 나찌 독일, 흑인 민권 운동 등과 비교할 때. 오히려 문명국이었지 않은가. 서양 오랑캐라고 업신여길 정도로... (물론 그건 자기기만에 가까운 인식이었지만)... 실제로 조선의 인권의식은 당시 서양보다 더 앞서지 않았을까? (그런데 일본은 왜 그 모양?) 여하튼 생명윤리, 인권 등에 관해서도 나름 그 당시로선 발전된 관점을 가지고 있었으니 (신분제지만 서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린... 그리 보편성을 지닌...), 오히려 그것을 뒤집어 엎기가 힘든 건 아닐까? 미야지마 교수의 논지를 생명윤리에도 적용하자면...

페친 정중규 님의 이야기

" '68혁명'을 전후로 한 가치관의 변동과 그것에 따른 사회 변화, 특히 반전과 반폭력, 인권, 생명과 안전, 환경 등과 같은 탈물질주의적 가치에 대한 선호의 부각 -그것에 바탕을 둔 국가와 정치와 관료(제) 개혁 운동 등의 사회적 실천의 확산-을 두고 잉글하트라는 정당학자는 '조용한 혁명'이라고 칭한 바 있습니다. '68혁명'을 가능케 했던 사회 기저의 '조용한 혁명'은 대한민국에서도 가능할 것입니다. 너무나 뼈아픈 고통으로 삶을 지속할 의지도 힘도 갖기 어렵지만, '집단 학살'에 다름 아닌 세월호 참사 이후 '조용한 혁명'으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의 '68혁명'을 함께 꿈꾸고 도모해갔으면 합니다."

단지 68년의 그 사건들로 혁명적 변화가 가능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적된 역사가 임계점에 다다른 것일 뿐. 하지만 세월호 사건이 68혁명 같은 변화로 이어지지 말란 법은 없다. 누적된 역사가 있다면... 세월호는 누적된 역사의식, 부조리를 폭발시키는 계가가 될 수도 있다.

4. 침몰해가는 배 속에서 학생들이 찍었다는 동영상을 아직 안 봤다.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일부 인터넷 방송이 공유했고, CNN이 방송했다는 얘길 들었다. 페북에서는 여러 페친들이 공유하고 있고... 그 장면이 그렇게 공유되는게 불편하다. 책임을 묻는데는 효과적일 수 있겠지만... 굳이 다 알아야 하나...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Nicht-wissen-wollen... 여하튼 앞으로도 보지 않을 것 같다. 이미 충분히 끔찍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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