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2일 목요일

나는 왜 쓰는가 (G. Orwell, Why I write)

왜 쓰는가? 쓰는 것도 쓰는 것 나름이지만... 이 경우는 공적인 행위로서 글쓰기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공적 영역에 제출하는... 글쓰기는 자신의 견해, 지식 등을 드러내는 행위다. 주제가 있어야 하고, 가능한 새로움이 있어야 한다. 이전에 내용이 흡사한 글이 없어야 한다. 뭐가 달라도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

나는 왜 쓰는가? 오웰은 그 동기를 네 가지로 나눴다.

1) 순전한 이기심. 남들보다 똑똑해 보이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죽은 후에도 기억되고 어린 시절 자기를 무시했던 어른들에게 보복하고 싶은 욕망. 이게 작가의 동기, 그것도 강한 동기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작가는 이 특징적 동기를 과학자, 예술가, 정치가, 법률가, 군인, 성공한 사업가-말하자면 인류의 꼭대기 부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과 공유한다. 인류의 대다수는 그리 격렬할 정도로 이기적이지는 않다. 대개 나이 서른쯤을 넘기면 사람들은 개인적 야심을 버리고 대체로 남을 위해 살거나 일상적 일에 짓눌려 살아간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에는 소수의 재능 있는 인간들, 끝까지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보려는 고집센 인간들이 있고 작가는 이 부류에 속한다. 진지한 작가들은 대체로 저널리스트들보다 더한 허영과 자기 중심주의를 갖고 있다. 돈에 대한 관심은 덜 할지 모르지만.

2)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 혹은 말의 아름다움과 말의 적절한 배열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지각하기. 하나의 소리가 다른 소리에 주는 영향을 인지하는 즐거움. 좋은 산문의 단단함을 알아보고 좋은 이야기의 리듬을 인지하는 즐거움. 가치 있다고 느껴지는, 그래서 놓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어떤 경험을 공유해 보려는 욕망. 이런 미학적 동기는 산문 작가들의 경우엔 대체로 미약한 편이지만 그러나 팸플릿 저자나 교과서 집필자까지도 자신이 특히 좋아하는 어휘와 문구들을 갖고 있고, 이것들은 공리적 이유를 떠나 그를 매혹한다. 어떤 활자체를 쓰고 책의 여백은 어떤 크기로 할까 등의 고려도 그런 것이다. 철도 안내서의 수준을 넘는 책이라면 어떤 책도 이 같은 미학적 관점을 아주 벗어날 수 없다.

3)역사적 충동. 사물/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한 사실들을 발견하며 후대를 위해 이것들을 모아두려는 욕망.

4)정치적 목적-<정치적>이란 용어는 이 경우 가능한 한 넓은 의미의 것이다.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성취하고자 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보려는 욕망

오웰 자신의 동기는 이렇게 표현한다. "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이 되게 하는 일이었다."

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어떤가? 내게 (1)은 크지 않다. (2)는 거의 없다시피하고, (3) 역시 그다지.... 그나마 가장 강한 쪽이 (4)인 것 같다. 다른 동기에 의한 활동은 이미 뛰어나고 빼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충분히 잘 수행하고 있는 것 같고... 내가 가장 답답하게 느끼는 분야가 "사회에 대한 거시적 기술"인 것 같다. 어쩌면 학부시절부터 줄곧 가졌던 답답함. 사회의 질서와 변화 과정을 어떻게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회이론들은 대부분 두드러지는 한두 특징만을 가지고 전체를 묘사하거나 아애 그런 설명으로 만족한다. 각종 "--사회"가 그렇다. 자본주의(사회), 위험사회, 정보사회... 최근에 그런 묘사는 더 소프트해져서... 피로사회, 단속사회... 그런 접근들, 그런 사회이론들이 불만족스러운 것이다. 그렇다고 사회이론을 자연과학처럼 법칙화하는 것도 불만족스럽다. 사회이론도 아니지만 통계적 접근들, 심지어 파슨즈 류도... 어떤 이론들은 '개념'에 매몰되어 버린다. 개념과 개념간의 관계가 명제고 또 이론의 핵이긴 하지만 사회이론에서 개념은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야 한다. 개념이 생각을 흡수해 버리기 때문이다. 서술적 연구, 역사적 연구가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 같다. 루만이나 베버가 가장 그에 가까운 것 같다. 루만은 사실 파슨즈류 개념 구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런 루만을 파고드는 행위들은 내겐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역사적 접근을 취하는 루만... 여하튼 이러저러한 사회이론과 역사학적인 접근을 통합해서 한국 사회, 이 시대의 질서와 변화를 크게 그리는 것. 그걸 하고 싶었다.
너무 원대한가? 여하튼... 희망사항은 희망사항이고... 현실적인 목표는 훨씬 더 소박하다. 좀 더 그럴듯하고, 새롭고, 참신한 방식으로 한국 사회를 설명하기. 그렇다. 참신해야 한다. 혁명적이진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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