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굳이 그런 질문을 해야 하나? 어디에서 왔는지를 아는 지식이 지금 사는 모습을 설명하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현재를 아는 것이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를 예측하는데 역시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독일 모델"에 대한 평가가 바뀌는 것을 보라. 역사를 일관되게 설명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과거-현재-미래... 그렇게 긴밀하지 않다. 그저 결과론적으로 일관성을 그려내고, 그를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편의적으로 선택할 뿐이다. 물론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낼 수는 있을 것이다. 또 - 당연히 - 과거와 현재가 긴밀하게 연결되는 지점이 없을 수도 없다. 대원칙을 얘기하는 것일 뿐.
정치사는 물론 과학사의 발전도 그럴 것이다. "인과성", "일관성", "설명"... 참 매력적이지만 허상인 것 같다. 쉬운 선택이기도 하고... "고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도 불만이다.
나도 어지간히 인과성, 일관성을 추구했나 보다. 계량적, 통계적 접근이 아니었을 뿐...
누적적, 인과적, 총체적 역사관을 벗어나는 쪽이 바슐라르, 푸코 등인가? 루만의 경우는 약간 애매하다. 스스로는 이 쪽에 끼고 싶겠지만 - 비개연성Unwahrscheinlichkeit을 그렇게 강조하지 않는가 - 사회 분화의 삼단계설 테제 등이 주는 인상이 너무 강력하다. "기능적 분화"처럼 어떤 원칙에 따른 역사 변화를 기술하는 계보에 있다보니 그렇기도 하고.
그렇다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같은 질문은 사실 공허하다. 왜? 어떤 구체적인 답변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논쟁 자체를 피해가는, 사실은 아주 비겁한 질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알고 싶은 그런 질문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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