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우, 법에 있어서 '근대' 개념 - 얼마나 유용한가" 여기 저기에서... 그리고 덧붙임...)
바우만은 나찌즘이 근대성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라 계몽철학에 바탕을 둔 서구적 근대성에 뿌리를 둔, 그것의 귀결이라고 본다. 루만은 나찌즘에 대해서 직접 언급한 바는 거의 없는 것 같지만, 기능적 분화를 근대성의 핵심으로 보는 체계이론적 견해에 따르면, 나찌즘은 탈분화 경향으로 설명될 수밖에 없다. 예외적인, 역행적인... 나찌즘 이전과 이후에 삽입된...
기능적 분화는 여러 기능체계들 간의 조응관계를 상정한다. 한 체계의 독립분화가 다른 체계의 독립분화에도 영향을 미치는 상호조응 혹은 상호상승 작용. 루만의 접근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추상적 이론, 역사학으로 따지면 '사관') 거기에 맞는 사실들로 살을 붙인 것과 비슷하다. 그럴듯하지만 찾으러들면 예외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예를 들어 자본주의와 법제의 관계... 베버는 형식적 합리성과 자본주의를 연관지은 바 있다. 자본주의가 시장에서의 예측가능성, 계산가능성의 제고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의 역사적 경험을 보면 낮은 수준의 형식적 합리성을 갖춘 법제를 가지고 있는 영국에서 자본주의가 가장 먼저 발전하였다. 이것이 바로 베버에게 고민을 안겨다 준 소위 '영국문제'(England problem)이다. 결국 베버는 '영국은 그 사법제도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최우위를 획득했다'라고 말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관계 역시 그러하다. 나찌즘의 예가 보여주듯이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반드시 결합하지 않는다. 전쟁 전 일본의 정치제제 역시 자본주의 발전과 양립하였다.
루만의 접근은 근대에 대한 '본질주의적' 규정의 대표적인 예다. 베버도 해당하겠지. 합리화.
이에 비교되는 경우가 "근대는 상이한 과정을 통해서 성취될 뿐만 아니라 그 귀결점 또한 상이한 형태를 취한다. 일본의 경우 합리화 없는 근대화를 대표한다." (John Clammer). Johann Arnason도 비슷한 입장. 하지만 이 경우도 '근대'가 어떤 상태인지에 대한 그림 없이는 주장할 수 없다... 그것은 또다른 본질 아닌가? (클래머, 아나슨은 근대의 다양한 모습을 강조하면서도 근대에 대한 적극적 정의는 하지 않는다고...) 차이는 일차원적, 닫힌 모델인가 다차원적, 열린 모델인가에서 찾을 수 있을듯.
하나의 해결은... 근대성의 구조가 역사적 맥락에 따른 변이에 열려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같은 견지에서 전통적 배경에 의한 부분적 규정에도 열려 있다. 즉 문화적 전통의 다양성은 근대성을 향한 경로들은 물론 근대성의 형상들에 반영되어 있다. --> 이건 루만 이론과도 충분히 어울릴 수 있는 접근이다. 기능적 분화의 다양성. 나찌즘도 지역적 변이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영국 문제" 역시 마찬가지고. 사회이론의 도움으로 사회와 역사를 다시 그리는 것 아니던가.
루만, 베버는 물론이고 심지어 클래머나 아나슨까지도 사실은 근대의 원형 혹은 본질을 찾으려는 시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런 비판은 Therborn, Routes to/through modenrity).
내 경우는 클래머, 아나슨적인 태도를 루만 체계이론에서 견지하는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듯. 진화론적 사고, 서구중심적 사고임을 인정하고... 그런 접근이 갖는 사회분석적 유용성이 크다는 점으로 그런 비판을 상쇄하려는... 단선적 발전경로를 전제하지만, 근대에도 여러 가지가 있음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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