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는 모든 사물들의 배후에 있다. 그러나 차이의 배후에는 아무것도 없다’
–질 들뢰즈
“차이 자체는 다양이 아니다. 다양은 주어진다. 그러나 차이는 그것을 통해 소여가 주어지는 것이다. 즉 그것을 통해 소여가 다양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차이는 현상이 아니라 현상의 예지체에 가깝다”
-서동욱, 31쪽.
들뢰즈가 말하는 ‘차이’와 우리가 흔히 ‘차이를 존중하자’고 말할 때 쓰는 관습화된 차이는 같지 않다. 후자는 ‘외적 차이’를 말하는 것으로, 개별자들(혹은 다양)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우리의 지성을 통해 개념적으로 경험된다. 반면 들뢰즈의 차이는 ‘내적 차이’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의 개별자가 그 개별자로서 발생할 수 있게 해주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감성을 통해 감지되는 비개념적 차이이다. 결국 들뢰즈는 동일성의 부수적인 도구로 전락한 차이를 넘어서서, 동일성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는 차이 자체를 고안한 것이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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