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어도 두 세계를 구분할 수 있다. 페이스북이 보여주는, 아니 내가 페이스북에 구현해 놓은 세계와 실제 세계. 그러니 페이스북이 실제 세계의 요약판으로 보이는 건 전적으로 착시현상일 따름이다. 예를 들어 내가 페북을 통해서 보고 있는 (아니 보고 싶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반응과 실제 많은 '국민들'이 보이는 반응 간의 간극...
- 국가주의, 국민, 국민행복을 그렇게 강조하더니... 막상 필요할 때에 국가는 없다. 문재인의 선거 구호가 '사람 중심'이었던가? 그때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는지.. 국민이라는 정체성보다 더 본원적인 정체성인 인간, 사람...그런 의미였던가? 혹 그런 생각이 깔려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선거 당시엔 그런 식의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선거 공약은 사람 중심이 아니라 국민 중심이었던 것 같고... 여하튼 국민, 국가를 그렇게 강조하지만 막상 국가에 대한 불신이 그렇게 크다. 이는 모순된 현상이 아니라 매우 잘 어울린다. 국가가 제대로 역할을 하고 적절한 신뢰의 대상이 된다면, 당사자들은 그렇게 소리 높여 국가, 국민을 강조하지 않을 테니까. 어떤 점을 강조하는 경우, 그 이면엔 이미 뭔가 어색한 구석, 자연스럽지 않은 구석, 감추고 싶은 구석이 있다. 국가, 국가주의, 국민 강조 이외에 예를 들어 '효도'가 그러하다.
- 자동차 사고의 경우에도 '2차 사고'를 조심하라고 한다. 사고야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지만 (물론 사고 빈도를 줄일 수는 있고, 그런 노력도 기울여야겠지만), 2차사고는 잘 대처하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조될 필요가 있다. 어떤 사건, 사고가 발생한 이후 대처하는 방식에서 그 사람의 인격의 정수가 드러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 나도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운전과 관련된... 여하튼... 나는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또 사고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출발해보자. 그네 씨는 가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표현을 잘 쓰던데, 그게 이미 상황인식을 잘못하고 있는 증거다. 물론 강조하려고 그런 표현을 썼겠지만,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 아닌가? 게다가 그런 표현을 쓰는 사람들은 대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충격 탓인지 사건 발생 이후 대처가 대단히 허술하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고 그 이후 추가 피해를 막고 일어나 피해를 최대한 빨리 수습하는 일에 무능하다는 것이다. 뭘 감추려들고, 말을 바꾸고... 무능 혹은 비리를 거짓말로 감추는 습성... 아주 더럽고 천박한 습성... 그런 점들이 나를 더 분노하게 하는 것이다. 세월호 선원들이 그렇고 해경이 그리고 정부가 그렇다. 그들은 천안함 침몰 이후에도 똑같은 행태를 보였다.
자. 이런 점들은 개신교 교회들에게서도 자주 관찰된다. 특히 목회자의 잘못이 드러난 경우...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목회자라하더라도. 그것이 불륜이건 재정횡령이건 학위부정취득이건... 문제는 그런 일이 드러난 이후의 대처 모습이다. 분명하게 인정하고, 때로는 관행이었지만 일반적 도덕적 기준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할 목회자로서 그렇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사과와 기타 조치를 시행하고... 그리고 물러나서 반성하고 자숙하면서 이후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를 기도하는 모습... 그런 경우들이 드물단 말이다. 변명이 변명을,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다. 어떻게든 그 상황을 모면하고서 끈질기게 목회자로 살아남는다. 참으로 천박하고 더러운 인생들이고 그런 목회자를 여전히 '주의 종'으로 섬기는 이들 역시 천박한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런 목회자를 비난하면, 평신도가 '주의 종', 아니 '주의 종님'을 비난한다는 그 점만으로 신의 저주를 받나? 그렇게 해서라도 유지되어야 하는 교회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교회의 모습이라면... 난 털끝만큼의 미련도 없이 기독교를 저주하고 떠나리라. 어설프게 거짓말, 임기응변, 권력, 떨거지들의 지지로 개밥그릇같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드는 그런 메커니즘이 유지되는 기독교라... 그런 교회는 독교라는 종교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욕망덩어리들, 욕망덩어리들의 회합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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