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3일 화요일


"그런데 많은 신앙인들에게 낙태가 문제되지 않는 이유가 여성 결정권에 대한 존중에 있는 것은 아니다. 종교를 갖든 가지지 않든 많은 이들은 인간을 사회(, 국가)나 시장의 종속변수, 인적 자원으로 본다.  ()

시장경쟁에서 생존능력이 없고 다른 국가들과 경쟁해야 하는 우리 국가가 돈을 지출해서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장애인이 아예 태어나지도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근대 동아시아의 국가주의적 생명관의 핵심을 보여준다. 한국과 일본에서의 근대적 낙태의 역사를 금지의 시대사실상 허용의 시대로 나눠볼 수 있는데, 금지도 허용도 여성의 결정권과 별 관계는 없었다. 국가의 인적 자원 정책의 문제였다. ()

한때 군인들의 머릿수를 늘리려고 낙태를 억제했던 국가가 인구 부담을 줄이려고 낙태를 사실상 허하자 종교신앙의 유무와 무관하게 자신의 몸에 대한 국가의 관리권을 인정해온 국민은 낙태를 당연시하기에 이르렀다. 미국과의 차이란 종교보다 국가 정책에 대한 인식이 우위에 선 것이다. 물론 생계 걱정으로 낙태를 결정한 여성들에게 생명의 존엄을 들어 설교할 일도 설법할 일도 없다. 그런데 낙태란 비록 필요악으로 인정될 수 있어도 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이루어지고 보육 예산이 대폭 늘고 사교육비나 학비의 부담이 무상교육 정책으로 줄어든다면 태어나기도 전에 벌써 죽는 비극의 태아들 수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낙태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는 고용 안정과 무상 의료, 교육 정책 이외에 없다고 본다."

--> 인간을 그 자체의 가능성, 정체성으로 보지 않는다. 관계 속에서 결정되는 것으로 본다. 국가의 국민, 국왕의 신민이거나 가족의 일원이거나 노동자계급의 일원이거나등등. 전통사회에서는 대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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