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9일 토요일

로아때문에 올라와 계시던 어머니는 며칠 '휴가'를 내셨고
하루 종일 잠을 안자고 칭얼대던 로아가 마침내 잠에 드셨고
이래저래 출산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아내도 다른 방에서 취침 중...
온전히 나만을 위해서 쓸 수 있는 드문 시간이다
아... 낮에 장보면서 포도주 한 병 사둘걸...
눈 쌓인 바깥 풍경을 보면서 모처럼 얻은 여유를 즐길 수 있었을텐데...

2012년 12월 28일 금요일

나의 이 이중, 삼중, 사중...적인 인격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 미세한 틈만 보여도 그 틈을 비집고서 여지없이 드러나고야 마는 내 인격이라니... 보여지는 내가 아니라 보여지는 않는 내가 나의 참모습이다. 과연 그 참모습을 얼마나 감추고 살 수 있을까... 생긴대로 살고, 희노애락 오욕칠정  모두 드러내는 게 결코 해결책이 아닌 것을...  확 드러내고서 살면 차라리  나을 지도... 그러지 못하고 평생 이런 저런 가면으로 내 참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돌려막기하려면... 좀 고전적이고 너무 착한 대안이지만... 잘 다스리는 편이 나을 지도 모르겠다. 틈이 보여도 좀 참을 수 있도록 다독다독 달래가며 승화시켜야겠다. 희노애락 오욕칠정...을 착하게 다스려야겠다. 내 속의 감정, 욕망을 다 드러내는 것이 결코 내게도 타인에게도 득이 못되는 것을...  욕망해도 괜찮지 않다. 혹은... 항상 욕망해도 괜찮은 것은 아니다.

2012년 12월 27일 목요일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서 상식을 들먹였지만 사실 내 행동도 상식적이진 않았다. 아. 상식적이란... 얼마나 제멋대로인가...

2012년 12월 24일 월요일

지난 주말 학술대회에서 발표를 잘 마쳤다. 세션 전체에 대한 호응은 예상 외로 좋았고 내 발표에 대한 분위기도 발표, 논평, 토론을 거치면서... 괜찮은 편이었다. 두고 두고 생각하다보니 걸리는 점들이 좀 있는데...
예를 들어 과잉통합의 주체로서 정치보다 경제를 더 중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언급에 대해서... 이번 대선과 대선 이후 파장을 보라고... 정치의 역할은 여전히... 매우 매우 중요하다고... 한국 뿐 아니라... 미국, 독일도 그런 것 아니냐고... 이런 반론을 제기했어야 했다. 다른 질문에 대한 내 답변도 좀 시원찮았던 것 같다. 한편으로 시간 때문에 ... 다른 한편으로...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제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인데... 여하튼... 복기해보니 아쉬움이 남는 장면이다.
내공은 대개 준비된 발표보다 즉흥적 질문에 대처하는 모습에서 더 잘 드러나기 마련인데... 더 쌓는 수밖에...

2012년 12월 18일 화요일

18일 자정 무렵

내 페친과 트친들이 전하는 소식들만 들으면 문재인은 이미 박모씨를 압도적으로 이기고도 남아야 하는데... 불안하다. 들려오는 소식들이 그리 위안이 되질 않는다. 진중권 교수가 이런 얘길 남겼다. "내일 날씨가 춥답니다. 근데 내일 투표 안 하면 5년이 춥습니다." 누구에게 투표하라는 얘길 직접하진 않았지만...
지난 5년 나름 힘든 시간이었기에... 앞으로 - 어쩌면 그보다 더 힘들 - 5년도 힘들게 보내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 간절하기에... 과연 어떻게 될까. 아. 두렵다.

19일 오전

투표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한다. 조금 안심이 된다. 벌써 당선 쪽으로 결론을 내리는 글들도 늘고 있고. 이런 추이라면 생각보다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듯. 이왕이면 더 깜짝 놀랄 정도로 투표율이 높고, 표 차도 많이 났으면 좋겠다.
내 경우.. 문선생에 대한 특별한 호감, 호의가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다. 박씨가 되는 것만은 도저히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런거다. 이씨 보느니라고 지난 5년간 고생한 내 눈을 생각해서...
내가 분노하거나 욱하는 대상은 상당히 제한적인데... 거기에 이씨가 포함되어 있다. 차마 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표현을 이곳에 옮겨놓을 수 없을 정도로 이씨를 생각할 때마다 내 속은 불편했다. 이념, 정책의 질, 실력, 지식... 이런 걸 떠나서... 인격 때문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격... 거짓말하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모르는... 물론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 역시...
박씨는 그보다 결코 못지 않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그만 생각해도 분노가 치미는 것...

19일 저녁

손녀도 보실겸 서울에 올라오신 부모님. 박씨를 찍으셨다고... 티비를 계속보신다. 박씨의 목소리가 반복해서 나오는데... 정말 들어주기 힘들다. 이런 저런 정치 이야기를 꺼내시는데 그냥 조용히 있었다. 이미 여러 번 경험했지만... 설득은 커녕 합리적 토론 자체가 성립되기 힘들고... 결국 남는 건 상처 뿐이기 때문...
텔레비전에서 비쳐주는 한나라당, 아니 새누리당 앞 풍경은 엽기적이다. 장년 노년층... 일색... 무섭다. 그 세대들의 생각이...

2012년 12월 11일 화요일

이번 대선에게 누구에게 표를 줄 지 물어보면 - 표본수가 많진 않지만 - 많은 경우 "아직 모르겠다. 그 사람이 그 사람 아니냐. 누가 되어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식의 대답이 돌아온다. 아니! 절대 그렇지 않다. 크게 다르다. 22조를 강 망가트리는 일과 토건업자들 배불리는데 사용하느냐 다른 일에 사용하느냐의 문제다. 언론을 통해서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만 들어도 스트레스를 받느냐 아니면 마음이 훈훈해지느냐의 문제다.  대선에 대해서 시니컬한 대답을 한 사람들에게 '박원순 잘 하는 것 같으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역시 시니컬하다. 오세훈이 웃기는 짓 한 것은 분명하지만 박원순이 뭐하는지 모르겠다고... 그게 아니라고.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 행정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바꾸었는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제발 좀 들어 보라고. 막상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사례들에는 눈을 감으면서 왜 누구를 뽑아도 그게 그거라는 건지...
나름대로 정치적 흐름(정세)를 잘 읽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대선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대세를 읽어내려고 애쓰고 있는 중이고... 사실 민주당과 문재인은 훨씬 더 쉽게 선거를 치룰 수 있었다. 정권심판의 여론을 자기 것으로 가져오지 못한 민주당과 문재인 탓에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지금 가슴을 졸이면서 여론 추이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안철수 덕분에 겨우 분위기를 바꿔 놓을 수 있었다. 여전히 민주당, 문재인은... 많이 모자란 것 같다. 에휴.. 어쨌거나 현재 상황은 그리 비관적이지 않은 것 같다. 과연 지금 예감이 맞아 떨어질지... 겨우 일 주일 있으면 알게 될 터이다.

"과학기술이란 말이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면 인문상경이란 말과 비교해 보자. 클래시컬팝도 좋겠다. ...장난하십니까." (트위터에서... 송용근 ‏@insaint03 )

2012년 12월 9일 일요일

대통령 선거까지 며칠 남지 않았다. 걱정이다. 공주님도 공주님이지만... 그 언저리에서 한자리 해 먹어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무리들의 얼굴을 보게 될 것 같아서... "해먹는 것" 그 자체야... 사실 근본적으로 다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상식이나 예절, 세련미는 갖춘 이들이 해 먹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 자리를 해 먹더라도 "혈안"을 감출줄 아는 정도의... 겸손한 척 할 줄 아는... 허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과연 대역전극은 가능할 것인가...
페이스북으로 여론을 가늠하긴 힘들다. 페친들이 달리 페친이 아니다. 친구 아닌가...
내가 주로 여론의 척도로 삼는 건 다음미디어 기사에 달린 댓글들인데... 이번엔 그것도 별로 신뢰할 수가 없다. 다음 기사 댓글을 한 90% 정도는 친문재인, 안철수인 것 같으니... 여론조사 결과와 편차가 너무 큰 것. 세대 간에 차이가 크다거니 그런 점을 보여주는 현상은 아닐지... 젊은 세대가 주도하는 인터넷 여론은 확실히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2012년 12월 8일 토요일

언제 위기인가? 내가 통제하기 힘든 상황... 내 지식,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 생길 때...
위기, 스트레스를 적게 경험하려면... 지식, 능력의 범위를 넓힐 것. 경우의 수, 플랜 b, c,d...를 마련해 둘 것!!

2012년 12월 7일 금요일

대화란게 꾸밈없이 물흐르듯 이어지는게 좋으나... 어디 그러기가 쉬운가. 1년 휴직하는 직원과 어색하게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했으면 좋았을 덕담이 이제사 생각나네... 아쉬워라... 그나저나 내겐 이런 의례적인 대화 상황이 여전히 불편하다.
"하늘에 계신" 하지 마라.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라고 하지 마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라고 하지 마라. 아들딸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 하지 마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고 하지 마라. 물질 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하지 마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하지 마라. 죽을 때까지 먹을 양식을 쌓아두려 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 하지 마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 하지 마라. 죄 지을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악에서 구하소서"라 하지 마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이라고 하지 마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우루과이 한 작은 성당벽에 적혀 있는 글>이라고...

2012년 12월 6일 목요일




페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어지간해선 여백을 허용하지 않는, 여백의 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던 조상을 둔 후손들... 어쩌면 계약기간이 맞지 않아서 겨우 가능하게된 자본주의의 여백..."

2012년 12월 5일 수요일

분명히 아이에게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할 거라는 '슬픈 예감'을 했었다. 지금까지 내 아빠 노릇에 90점 정도는 줄 수 있었다면 어제 처음으로 점수를 크게 잃었다. 이것 저것 다 해줘도 칭얼대는 아이에게 화를 버럭 낸 것. ㅠ ㅠ 산후조리원을 떠나 집으로 온 이후로 짜증이 조금씩 쌓인 여파다.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다들 서로를 향해 스트레스를 키워가고 있다. 더 쌓이기 전에 소소한 일로 한 번 점검할 수 있는 기회였다. 어떤 젊은 아빠가 아이를 키우는 일은 "기쁨 세 배, 힘듦 세 배"라고 하더니... 현재 상태로는... 기쁨 1.5배, 힘듦 1.5배 정도... 에휴. 이제 시작인 것을...
기대치가 높아지고, 욕심이 생기고, 처음 마음을 잊고... 인지상정이지만... 최대한...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처음처럼... 아이를 가졌을 때의 기쁨,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게 출산했을 때의 기쁨, 병원 문을 나섰을 때의 홀가분함,  주민등록표 기재된 "정로아" 이름을 확인할 때의 신기함...

2012년 11월 29일 목요일

내 경우 지금은 다른 무엇보다 열심히 써야 할 때다. 하지만... 쓰기 위해선 쓸 거리가 있어야 하고,
쓸거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이 읽어야 하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 많이 읽을 단계는 지났으니 많이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많이 읽기는 오히려 쉬운 편이다. 읽기의 대상이 되는 텍스트를 이해해야 한다는 분명한 단기적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측하기 힘든 사고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고도로 집중해야 한다. 그게 어지간히 힘든 일이 아니다. 긴장의 끈을 만들기는 어려우나 놓치는 건 금방이다. 요즘 그런 위기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늘도... 내일까지 제출해야 한다는 시간의 강박때문에 평소보다 조금 더 높은 생산력을 보이고 있을 뿐... 큰 일이다. 큰 일... 어찌해야 하누..

2012년 11월 28일 수요일

진부한 표현이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문재인과 민주통합당, 그리고 그 언저리에서 정권교체를 기대하는 이들에게 현상황은 위기다. 아무리 살펴봐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확률이 높다. 그는 고정 지지율 45%에서 내려가지 않으니까. 물론 그 이상 올라가는 일도 어렵겠지만... 어쨌든 유리하다는 건 분명한 사실. 문재인과 민주당은 어지간한게 독한 마음 먹지 않고서는 이 위기를 벗어나서 대권을 잡기 힘들다. 하지만 그것이 곧 기회다. 그것도 한국 현대사의 분수령이 될 수도 있는 기가막힌 타이밍에서 맞은 기회...  이러저러한 기득권, 특권, 구습, 구태를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는 그런 기회... 역사가 준 기회. 안철수가 만들어준 기회. 안철수를 바라 볼 일이 아니다.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안철수는 이미 자기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 상식이 상식일 수 있는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정말 중요한 기회다.

2012년 11월 27일 화요일

사무실은 춥다. 많이... 8시 반부터 9시 반까지 반짝 난방을 하곤 그걸로 끝... 여름엔 그렇게 에어컨을 아끼더니... 온도계에 따르면 현재 실내 온도는19도. 여름엔 더위에 저항할 수 있는 방식에 제한이 많다. 겨울엔 좀 다르다. 일단 옷을 더 껴입을 수도 있고, 무릎 담요도 있다. 게다가... 개인 난방기기까지... 개인 난방기기 사용 전력량이 난방 시간 줄여서 아낀 전력량을 가볍게 넘어설 것 같다. 개인 난방기기 사용을 엄격하게 통제하지 않는 것에 감사해야할 지경... 결국 전력 절감 효과도 없고 업무 효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난방 축소란 말입니까?

내 마음이 얼어붙어서 추운 날씨가 더 춥게 느껴진다. 속이 쓰리다. 이놈의 상처는 아물 겨를이 없으니...

2012년 11월 24일 토요일

일단 안철수씨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는 점, 그리고 그가 한국 정치의 개선에 이미 많은 기여를 했음을 인정한다는 점을 전제하고서... 아래 기사가 사실이라면... 안철수씨는... 임명직이라면 모르겠지만 선거를 통한 현실정치에 참여하기는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선거는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똑같다면 다른 사람이 아닌 이 사람을 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좀 지저분한 방식으로 차이를 드러내거나 혹은 차이를 희석시키려는 경우도 있다. '흑색선전' '네거티브 공세' 등. 그런 방식엔 나름 선방하더니, 막상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차이 확인 과정을 부담스러워하는 철수씨. 너무 착하고, 순진한 철수씨. 그런 그에겐 국민의 이름으로 추대되는 방식이 어울릴 것 같다. 한국에 왕정이 복고될 경우, 혹은 남북 통일 이후 통합을 위한 상징적 지도자가 필요할 경우 등에 분명 그가 일순위다. 안철수가 대단히 전략적이고도 치밀한 계산을 하는 인물로 해석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번 사퇴도 그런 선택의 결과로 보는... 그건 아닌 것 같다.

  " ... 안 후보가 처음 후보직 양보 또는 사퇴를 이야기한 것은 지난 21일 텔레비전 토론 이후부터였다고 한다. 안 후보 쪽 핵심 관계자는 “텔레비전 토론 당시 문 후보가 자신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과 내용에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안다. 후보가 그 이후부터 후보직 사퇴와 양보부터 각자 후보를 등록하는 경우까지 모든 방안을 놓고 깊은 고민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캠프의 전략가들은 안 후보에게 텔레비전 토론 직전까지 문 후보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주문하며, 문 후보를 참여정부의 실정과 연결시켜 공격할 소재들을 상당수 건넸다고 한다. 안 캠프의 정책 쪽 핵심 관계자는 “그러나 막상 토론에 들어가서는 그런 내용들을 거의 제기하지 않더라”고 전했다. 안 후보는 전날 텔레비전 토론 사전연습 과정에서도 문 후보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를 주문하는 요구에 불편한 표정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철수씨가 정치적 활동을 계속 할 수는 있다. 민주당이건 어떤 정당이건 "국민들" 마음에 흡족할 리가 없기 때문에, "구태"는 항상 남아 있을 테니까, 안철수는 언제든지 "국민의 이름으로" 호명될 것이다. 구원자, '오실 메시아'로... 하지만 그가 땅 위로 내려 오는 순간 그의 구원의 능력은 의심을 받는다. 안철수 딜레마... 영원히 안티테제로 남을 수밖에 없는... 그것도 한국 정치에 대한 기여라면 기여다. 아니. 그만이 할 수 있는 기여다. 중요한...

페이스북에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어쩌면 안철수는 정치를 하지 않음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 혹은 정치를 하지 않을 때 정치를 더 잘하는 사람이 아닐런지... 그게 안철수의 한계이자 또 가능성..."

2012년 11월 19일 월요일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 축하 인사 이후 이름을 묻는 경우가 많다. "'로아'이므니다". 이어지는 질문은 흔히... "무슨 뜻?" 내 답은... "뜻이 없으므니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바꿔야 할 것 같다. "뜻이 없는 게 뜻이므니다..." 무슨 얘기냐면... 자식의 이름에 특정한 의미를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일이 바람직한지 생각해 보자는 '뜻'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지어줄지 오랫 동안 고민했다. 검색도 해보고 책도 찾아보고 자문도 구해보고... 이번에 발견한 놀라운 점 하나는 여전히 작명소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 작명소식 이름 풀이를 볼 것 같으면... 참 기가막힌다. 대부분 한자 풀이에 의존하는데... 획수 등... 사소해 보이는 요소에도 대단한 의미를 부여한다.
또 다른 경우는... 특정한 가치, 지향하는 바를 이름에 드러내는 경우다. '기쁨, '맑음' 등 순우리말식 이름들, "하영=하나님께 영광"처럼 어구 첫 낱말의 모음, '평화', '화평'처럼 한자 단어로 만들어진 이름 등. 이 경우에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자체로 충분히 값진 이름이다. 사실 우리 역시 이름을 이렇게 지으려다 결국 실패했다. 이름의 '뜻'과 함께 '개성''특별함'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이 둘을 만족시키기 힘들었던 것. 차츰 '뜻'을 포기하고 '개성'있고, "어감" 좋은 이름 찾기로 바뀌었다. 어감이 좋은 낱말들을 적어 놓고 이런 저런 조합을 시도해 본 것. "로아"는 그러다가 툭 튀어나온 이름이다.
그러다보니... 뜻이 있을 수 없는데... 굳이 뜻을 찾자니... '뜻이 없는게 뜻이다', '아이는 부모의 뜻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로 논리가 비약한 것...

아니... 이름 짓기에 대해서 좀 다르게 접근하자는 생각이 아애 없진 않았다. 예를 들어 서양의 경우 이름을 훨씬 더 소박하게 짓는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대부분 성경에서 나온 이름들, 성인의 이름들, 조상의 이름들... 이름의 다양성이 적은 편이다. 한국의 경우보다 "姓"이 더 다양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가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독일 영감님의 경우 첫 딸 이름을 "한나"(Hannah)로 지었는데 자신이 좋아했던 여성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이름에서 가져왔다고... 거기에 비해서 한국의 이름들이 갖는 의미는 거창한 편이다. 이름짓기의 사회적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니 어느 쪽이 반드시 좋다 혹은 나쁘다라고 판단할 일만은 아니지만... 여하튼... 서양의 전통을 원용해서 두 할아버지나 할머니 이름에서 한 자씩을 따와서 조합해 볼 생각까지 했으니, 이름짓기에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했음은 분명하다.

이름짓기에도 유행이 있어서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데, 그런 흐름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싶기도 했다. 독특하지만 알파벳으로 써도 쉽게 부를 수 있는...

'로아'로 마음이 기운 상태에서 끝까지 나를 고민하게 만든 건 이름 어두에 오는 '리을' 발음이었다. 현대 한국어에선 외래어나 북한말 표기 외에는 어두 리을을 인정하지 않는다. 두음법칙! 다행이 姓이 아니라 이름의 어두라 공식적으로 제한을 받진 않지만 이름만 부를 경우에 발음상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는 것. 어두 '리을' 발음에 약한 - 어저면 두음법칙 탓에  훈련할 기회마저 박탈당한 - 한국인의 언어습관 탓에 '로아'가 '노아'로 들리기 십상이라는... 그런데 '반갑게도'^^ 'ㄹ'발음을 강화할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는 글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되었다. 심지어 이런 얘기까지...

"리을 발음은 생기운과 멸기운을 아우르는 소리이므로 세상과 공감하고 이웃과 연대하는 소리입니다.현재의 한국인은 건강을 위해서라도 초성 ‘R’과 ‘L’을 배워서 발음할 필요가 있습니다.한국인의 상호 연대하고 남 생각하는 마음은 초성 리을 발음을 발성하는데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이건 분명 오버지만... 어두 '리을' 발음을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사용하게 만든 1930년대에 정립되어 이후 남한에서만 관철된 '두음법칙'에 문제가 적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어두 리을 발음을 차츰 포기하면서 실제로 그 발음 훈련이  덜 되고, 덜 민감하게 되면서 이런 저런 문제들이 생긴다. 우선 외국어 학습시에... 대표적으로 'R'과 'L'. 사실 우리말에서도 'ㄹ'발음이 어두, 어미에 있을 때 다르게 발음된다고 한다 (어두 R, 어미 L). 그런 미묘한 차이를 어두 'ㄹ'을 적게 사용하면서 놓치게 된다는 것.  두번째 문제는 노래할 때... 장르를 불문하고 한국어로 부르는 노래에서 리을 발음이 잘 안들리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그래서인지 성악가들 중에선 語頭 리을을 과장해서 발음하는 경우들도 있고... 어찌되었건 '로아'처럼 이름에 어두 'ㄹ'을 사용면서 한국어 발음과 발음표기의 현실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는 것이다.

로아를 로마자로 표기하면 'Loa'보다는 'Roa'가 더 정확할 것이다. 'L'은 한국어 어미 발음에 더 어울린다고 하니... 예를 들어 '할'은 'hal'이지만 '라'는 'ra'로 표기하는게 더 어울린다는... 이런 견해에 따르면 '랄'은 'ral'되겠다. 오늘 검색하니 '로아'란 한국 여가수가 있었네. 헐! 어쨌든 그녀는 자신의 로마자 이름을 'Loa"로 표기하고 있다. 또 '로아'는 국내 여성브랜드명이기도 하고,  흔하진 않지만 사람, 반려동물 이름으로도 쓰이고 있다.

그리고 '정로아'라는 이름이 '정로환'을 연상시킬 수 있음을, 그래서 놀림을 받을 수 있음을 지적한 지인들도 있다. 한 친구는 처음 듣는 '정로환' 역사까지 곁들여서... 일본군이 러시아와 전쟁 때 물갈이로 인한 배탈을 방지하기 위해서 만든 환약이라나 뭐라나...  또 이름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 사례를 언급하면서 '정로아'라는 이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쩌면 무난하고 평범하지 않은 이름을 지을 때 피할 수 없는 위험성이다. 하지만 좋다는 쪽이 수적으로는 훨씬 더 많고, 그 자체로서 해괴한 이름이 아니니 부모로서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하려고 한다. 설령 특이한 이름이라 하더라도 자주 부르면 그 사람과 일치가 되면서 그 이름이 자연스럽게 들린다. 대표적인 예가 안성기. 한글 이름만을 생각하면 매우 튀지만 자주 접하니 '성기'라는 이름이 어색하거나 이상하게 들리지 않잖은가? 어쩌면 전국의 'O성기'들은 안성기 씨에게 무척 감사하고 있을 지도... 물론 그럼에도 개명을 고려하고 있는 "성기"씨들도 많겠지만... 지인이 예로 든 경우는 '이세기'. '이새끼'로 놀림을 받는다는 것이다. 좀 윗 세대들에게 '이세기'라는 이름은 - 안성기 만큼은 아니지만 - 낯설지 않다. 국회의원, 체육부장관을 지닌 정치인 '이세기' 때문이다. 이름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가장 먼저 드러내고 - 처음 만나자마자 서로 이름을 주고 받는다 -, 또  평생 그 사람을 따라다니기에 - 누구를 연상할 때 이름을 먼저 떠올린다 - 좀 보수적으로 결정하는게 원칙적으론 옳다. 이름으로 놀림을 받을 싹을 키우지 않는 게 백번 낫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정로아'면 충분히 보수적이다. 걱정 붙들어 매시라.

영어권에서 Roa 는 이상한(?) 축약어 외에 - "return on assets": 총자산 이익률,  "right occipitoanterior" 우후두전위, 우후두전위태위(右後頭前位胎位) - (라틴계?) 이름으로도 쓰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영문 예문을 보니 전부 남자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또 한 번 헐...  가까운 예로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으로 기아 타이거즈 투수였던 아킬리노 로페즈 두번째 이름이 '로아'였다. Aquilino Roa Lopez. ㅠㅠ

스페인인어로 roa란 단어는 '(배의 뱃머리를 이루는) 나무[쇠]로 만든 굵고 굽은 부분, 선수재'란 뜻을 가지고 있고, 칠레 도시 중에 'Hanga Roa'가 있다고 한다.

한자로 '로아'는 '露雅' (이슬 로, 맑을-고상할 아)를 쓸 생각인데, 재미있게도 露雅로 검색해 보니 주로 중국어권 웹사이트들이 결과로 나오는데 대개 여성스러운 만화 캐릭터나 화장품에 대한 것이다. 이건 나쁘지 않네.^^

너무 많은 걸 고려하다간 이름을 지을 수 없다. 그냥 밀어붙여야지... 누구보다 애기 엄마가 강력하게 원하니...

정로아, Jung Roa, 鄭露雅... 혹은, 정안 로아, Jung-An Roa, 鄭安 露雅...

2012년 11월 17일 토요일

한 쪽 귀퉁이 오디오에서 파헬벨의 캐논이 나온다. 집에 먹다 남겨 둔 와인을 가져와서 마시고싶다. 그리고 좀 일찍 잠들고 싶다. 희망사항이 많아진다.

산책을 하다. 덮어두고 있던 상처를 들쑤셔 주신 탓이다. 서늘한 가을 기운에 상처난 부위를 말려보지만... 역부족이다. 오기로 밀어내린다. 꾸역꾸역...

나는 내가 생각하는만큼 좋은 아들, 남편, 친구가 아니다. 아마 부모나 선생으로서도 그럴 것이다.

2012년 11월 16일 금요일

이제 내 자식을 둔 자식이 되었지만 어미의 마음을 반도 못 헤아린다. 자식이 나같은 짓을 해야 비로소 그 마음의 나머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아들이 아니라서...

2012년 11월 13일 화요일

내일이면 그녀를 만난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그녀를...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는다
상상할 수가 없다
그녀로 인해 내 삶이 어떻게 바뀔지...
어떤 의미일지...
어떤 메시지일지...
얼마나 큰 무게일지...
상상할 수 있는 건...
내게 부족한 많은 것들...
그녀를 맞이할 준비를 제대로 못한 점
그래도...
더 늦기 전에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점...
그리고...
내일은 겨우 시작일 뿐이라는 점...

2012년 11월 12일 월요일

폭풍같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사무실 책상 앞으로 왔다. 모처럼 여유를 가지고 뒤를 돌아본다. 이런 글은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은 페이스북에는 적절치 않다. 정체모를 관찰자들이 많은 트위터도 적절치 않고, 컴퓨터로 접근할 수 없어서 긴 글 쓰기가 힘들고 일상 얘기, 단상에 어울리는 카카오스토리도 패스. 독자가 너무 적긴 하지만 그래도 이 공간이 가장 편하다.

1.

지난 주 발표한 짧은 논문에서... 루만을 소개하면서 '우연'이란 표현을 썼다. 사회과학 역시 과학인지라 (자연과학보다는 덜 강하지만 어쨌든) 인과적 설명을 요구 혹은 기대하기 때문이다. 루만에게서 인과성을 포기되는 것인가? 어떻게 설명하고 있지? 좀 더 공부해 봐야겠다. "Funktion und Kausalität"이라는 초기 논문을 우선 봐야할 것 같고...

'우연'에 대해서 불편하게 느끼는 건 과학 커뮤니케이션 뿐 아니다. 종교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기독교인들은 결과가 긍정적일 때 대개 '하나님의 뜻'으로 설명한다.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을 때 역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응답'으로 설명한다. 누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날 수 있으랴. 그건 형식논리적 설명은 될지언정 실체적 설명은 못된다. 특히 부정적 결과가 이러질 때면 뭔가 더 센 설명을 찾게되는데 그럴 때 자주 동원되는 논리가 '죄'원인론이다. 내 죄, 네 죄, 부모의 죄 등등... 누구의 죄든 그 죄 때문에 이런 원치 않는 결과가 나왔다는 얘기... 훨씬 더 그럴듯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설명에 혹한다.

그 원인을 타인의 죄로 전가하는 습성이 집단적으로 적용되는 경우 '희생양'이라고 한다. 지금 닥친 불행한 현실의 원인을 누군가의 잘못으로 전가하는 습성 말이다.

모든 일에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할까? 이유모름 (원인불명)... 이 그렇게 불편한가?

2.

그 논문에서 한국어 제목을 달고서 그 제목을 영어로 한 번 표현해 봤다. 발표하는 자리에서 나온 반응이 재미있다. 영어 제목을 한국어 제목이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어로 쓴 논문이니 영어 제목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도 될 법한데... 기준점이 영어가 되는 것. 사실 그 영어 제목이 영어 학술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자주 쓰이는 것이긴 하니까... 시선이 갈 수는 있었겠지만.... 어쩜 처음부터 영어 제목을 염두에 두지 않고 떠올린 한국어 제목의 의미가 분명하게 전달되지 않았던지... 아님 내 영어 실력에 대한 불신 때문이던지... 어쨌든, 한국어 논문에서 영어 제목을 바꾸라고 하지 않고 한국어 제목을 바꾸라는 반응이 좀 재미있었다.

3.
결혼 전엔 좋은 남편이 될 수 있을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러려고 애쓰는 편이지만 예전의 자신만만함은 더 이상 없다.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도 자신이 있었다. 그 시간이 다가올수록... 남편으로서 부족함을 느낄수록... 더 이상 그렇지 않다.

2012년 11월 5일 월요일

결국 쓰지 못했다. 쓰기로 한 짧은 글을... 가벼운 글인데도... 원인을 생각해보니... 아마 어떤 나를, 어느 정도로 드러내야 할지 수위조절을 못한 탓이다. 떠오르는대로 쓴다면 너무 우울하거나 아니면 너무 비판적인 내용이 나올 것 같아서... 솔직함이 항상 미덕인 것은 아니기에...

2012년 11월 1일 목요일

삼성이 시즌 1위에다 코리안시리즈 우승마저 가져갔다. 응원하는 팀은 아니지만... 그래도 류중일 감독이나 이승엽 등 선수들을 생각하면... 그리 밉지 않다. 에휴. 야구보는 재미를 다시 맛보려면...
11월이 오고야 말았다.
두 달 남았다.
올 해는...
약 한 달 남았다.
아이가 세상에 나와서 우리 부부 삶의 양태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때까지...
건강 문제로 1년간 휴직을 했던 동료(?)는 박사 학위를 "따 가지고" "금의환향"했다.
오늘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동료(?)의 무심한 시선에서...
나는 그가 전혀 전달하지 않았을...
그러니까 전적으로 내가 상상해 낸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사무실은 추운 편이다.
17도 정도 되니까...
하지만 머플러를 하고 무릎 담요를 덮으면 견딜만하다.
전기난로가 있지만... 틀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11월 첫날의 오전시간이
조금씩 내게서 멀어져간다.

2012년 10월 30일 화요일

오늘 페친인 "Karl Marx"님이 이런 글을 올렸다.

"Stealing food is against the law. Yet, letting someone starve to death while you have even entire warehouse of food is completely legal."

쓰디 쓴 진실 아닌가? ...bittere Wahrheit! 의사와 약이 있고 병원이 버젓이 운영되고 있는데 돈이 없어서 죽어가야 하는 현실...

마르크스주의의 출발점이자 핵심은 "인본주의"인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의 경제결정론적 접근이 좀 답답하긴 하다. 그리고... 그런 자본주의 비판을 현실화할 수 있는 신통방통한 방안을 내놓진 못했다. 여하튼.... 관성, 타성에 젖어서 현실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는 상황을 따끔하게 지적할 때 매우 유용하다.

상식의 근원은 결국... 인본주의, 인간주의, 휴머니즘 아닐까? 아니면... 좀 더 나아간다면... 생태주의? 더불어서 잘 살자는 것 아닌가? 경제도, 정치도, 종교도, 가족도...

남을 짓밟고서라도 좀 더 잘 살려고 하다보니... 환경 파괴, 노동력 착취, 인간 소외가 생기는 것이고...

주객이 바뀌는... 체계가 살려고 사람을 소외시키는... 기능적 분화... 체계의 자율성...

기능 체계의 작동방식을 바꿀 수 있을까? 더 환경친화적이고, 불평등에 민감한 경제, 정치가 가능할까? 아니면... 아애... 기능적 분화라는 근대적 사회의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을까? 탈분화는 도대체 어떤 모습을 갖게 될까?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이... 상상력의 근원이자 지향점은 인본주의와 생태주의가 결합된 그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이다.

2012년 10월 29일 월요일

월요일 아침. 평소보다 거의 2시간 일찍 사무실에 도착하다. 주말에 좀 놀았더니 아마 미안했던지 (혹은 불안했던지) 몸이 알아서 반응했던 것. 조용하고 춥기까지해서 가라앉은 분위기를 조금만 "업"시키려고... The Idea of North의 "Gospel Project"를 듣고 있다. 드문 시간을... 인터넷 서핑이나 페북 글쓰기로 보낼 수 없어서... 뭔가 더 보람있는 일을 해 보려고 하는데... 고작... 이렇게... 일기 비슷한 글을 쓰고 있다. 이제 인터넷 연결을 끊고... 뭔가를 해 볼까 한다.

2012년 10월 26일 금요일

하기 싫은 일 하나를 끝냈다. 전적으로... 아니 한 구할은 원고료 때문에 쓰는 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받는 금액에 값하는 것보다 시간을 더 쓴 것 같아서 좀 억울하다. 그래도... 배운 점들이 있다. 역시... 글쓰기엔 생각을 성숙시킬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정보와 아이디어를 집어 넣고서... 머리 속에서 이러저리 충동시킨다. 하루, 이틀... 그리고 나서 마음먹고 처음부터 끝까지 주욱 쓰기...
짧은 글은... 이런 방식으로 쓰게 되는데... 긴 글은 완전히 다른 호흡이 필요하다. 어쩌면... 긴 글에서 가장 필요한 기술은 작게 나눠서 쓰는 법 아닐런지... 긴 이야기를 나눠서... 짧게 나뉜 글은 서두에 언급한 방식을 적용할 수 있을 지도...
긴 글에는 그래서 무엇보다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거기에 대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물론 짧은 글에도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작은 이야가들이 산을 이루고  그 산들이 모여서 큰 산맥을 형성하는 것처럼...

2012년 10월 24일 수요일

지난 해 발표된 정성훈의 논문 두 편을 읽다.

"사랑 이후 혹은 현대 이후의 힘겨움 - 친밀관계와 현대사회에 대한 루만의 연구로부터"
"현대 도시 삶에서 친밀공동체의 의의"

현대성 위기의 핵심을 "포함/배제"로 보고서 그 문제점을 드러내는 작업을 해 왔는데, 이제 대안을 모색하는 단계로 넘어간 것 같다. 그의 성실함, 뚝심, 열정엔 정말이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통합과 체계통합을 구분하자면... 그는 '사회통합'에 관심을 주로 두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 (물론 법의 자율성을 강조한 논문도 있지만... 경향상... ). 그래서 체계통합은 사회통합이 문제가 되는 한 선택적으로 다룬다.

그렇다고 체계통합 문제만 본격적으로 다루는 것도 반쪽짜리 접근이다. 결국... 루만이 하려고 했던 것은 "사회통합과 체계통합의 통합"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개인이 기능체계에 어떻게 통합되는의 문제는 (사회의 통합) 기능체계의 분화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물론 체계의 분화가 아닌 분화된 체계들 간의 관계라는 의미에서 "체계통합"은 조금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는 하다. 루만에게는 "구조적 연동"으로도 표현되는...

체계 통합, 구조적 연동에서... 사회 통합 혹은 포함/배제 문제는... 그리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내 관심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하지만... 체계 통합의 위기는 ("체계 분화의 위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는.... ) 는 매우 쉽게 사회 통합의 위기로 연결된다. 대표적으로... 경제에 의한 과잉통합! 그런 경향에서는 다른 체계 뿐 아니라 개인들도 위기에 처하게 된다.

경제화 경향/경제의 한 과잉통합 경향에 대한 해결책을... 하지만... 사회통합에서만 찾아서는 안된다.새로운 공동체... 친밀 공동체... "건전한". 결국, 건전한 체계 통합이 기초에 있어야 한다. 물론... 건전한 체계 통합만으로 건전한 사회통합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정성훈 적 접근도 필요하다. 그 두가지는 함께 가야 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내 관심은 경제화 경향, 혹은 한국에서는 역시 강한 정치화 경향에 대해서... 건전한 체계 통합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통합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은 아니다. 사회통합의 대안은 그 자체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2012년 10월 18일 목요일

갈아타려고 기다리고 있는 지하철이 올 생각을 않는다. 짜증지수가 올라간다. 물론... 그것은 스마트폰 어플 '지하철'이 가르쳐준 정보 탓이다. 그렇게 나는... 길들여진다.
늦은... 지하철... 모두 한 뼘 공간에 제 몸을 늘어뜨리고선 하루에 젖은 몸을 말린다. 정말 피곤한걸까. 아님 피곤한 척 하는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피곤해야만 하는걸까. 피곤은... 피로는... 그렇게 친근하니까...
오랜만의 회식때문에 늦은 퇴근길. 핸드폰에 음악을 넣어두지 않아서 라디오를 듣다. 좀 우울한 음악이 땡기는 밤...

2012년 10월 16일 화요일

오늘도 퇴근길! 기분이 꿀꿀하다. 오늘은 직딩 코스프레까지해서 더 퇴근길 같고...
한국에서 노선버스의 존재 이유는 두 종점 사이를 최단시간에 주파하는데 있다. 승객들을 중간에 떨궈주는 일은 옵션이고...

2012년 10월 15일 월요일

월요일 저녁 퇴근(?)길... 마음이 그닥 편치 않다. 시간을 아껴서 쓰지 못했고 "내가 노래하듯이 또 얘기하듯이"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신, 집중...
다시 새로운 한 주가... 주말에 깨진 리듬을 다시 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월요일 오전은 거의 버리다시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일요일 저녁부터 공부모드로 전환한다고 하던데... 정말 그렇게라도 해야 할 모양이다.

주말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토요일 세 번째로 마라톤 하프 코스를 뛰었고, 기록은 2:04:45였다. 2시간 내를 내심 목표했었는데...  기록이 좋지 않아서 한편으로 실망스러웠다. 준비를 한다고는 했으나... 부족했던 모양이다. 얻은 게 있다면... 후반부에 체력이 급저하되던 현상은 없었다. 완주 후 후유증도 거의 없었고... 그것 역시 준비를 한 탓이다. 결국... 딱 내가 준비한 만큼 결과가 나온 것. 흘린 땀은 딱 흘린 만큼만 배신하지 않는다!

오후엔 한독사회학회 이토회에 참석했다. 이번 모임에선 하이델베르크 Pohlmann교수가 자신의 저서 '조직사회학'의 내용 일부를 발표했다. 독일 대학 세미나실 분위기를 모처럼 느낄 수 있었다. 서울 강남에서... 한독사회학회는 독일과 사회학이라는 뚜렷한 공감대가 있기 때문인지 분위기가 참 좋다. 나 같은... 애매한 위치에 있는 사람도 환영받는... 

일요일 오전엔 육아용품 보러 돌아 다녔다. 육아용품 시장이 얼마나 큰 지 선택의 가능성이 너무 많다. 많아도 너무... 하지만... 역시 시간과 노력을 들인 품목에 관한한 무엇을 사야 할 지 눈에 들어온다. 대표적으로 유모차... 구매 대상이 정해졌다. 다만 비싼 가격 탓에 적당한 가격의 중고 물건을 노리고 있다. 당분간 '중고나라'에 자주 들낙거려야 할 듯.

소논문을 하나 며칠 내로 써야하고... 한글 ppt를 영어로 번역하는 '아르바이트'를 맡아서 역시 며칠 내로 해야 하고. 한독사회학회 논문도 써야 하고... 내 논문도 계속 진행시켜야 하고... 이래 저래 시간활용을 잘 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인데.... 월요일 오전을 보내는 내 태도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여하튼... 지금부터라도... 화이팅!!

2012년 9월 29일 토요일

좀 우울한 얘기는 할 곳이 별로 없다. 심지어 처지는 음악도 여럿이 함께 듣기는 뭣하다 (드물게 그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경우가 있긴 하지만...). 노래방에서도 분위기를 가라 앉히지는 1인이 되지 않으려고 자기 검열을 한다. Nicht immer... aber immer öfter... 사람들은 대부분 긍정적 에너지를 얻길 원한다. 이야기든 노래든... 왜 그럴까? 그렇게라도 해야 겨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일까? 긍정적 에너지를 총동원해야 겨우 하루 하루 살 수 있기 때문일까?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서로 눌러 주는 것도 다 긍정의 기운을 받고 또 나누려 하기 때문이다. '인정욕구'라 해도 좋고...
오늘 EBS 다큐 '자본주의' 2편의 핵심 메시지는 그것이다. 자본주의를 이끌어 가는 힘은 '불안'이다. 불안하니까... 남들을 따라 한다고... 소외될까봐 돈에 더 집착하고. 우리는 언제부터 그렇게 따돌림에 민감했을까? 근대는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시대라고 하지 않았나? 그 개인들은 다 어디가고... 집단에 목을 매는 사람들만 남아 있을까?

2012년 9월 27일 목요일

"천화숙 (1997), 동아시아 근대화와 제문제"라는 논문 중에서..

"서구 근대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이 이외에도 많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정체성의 위기다. 서구 사회는 현재 심각한 개인적, 집단적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하는 실존의 문제다. 따라서 정체성의 위기란 서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주의의 원리가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증거다. 합리주의의 본고장에서 그것도 ‘나’ 를 중심으로 하는 개인주의가 공동체의 기본으로 인정되는 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위기가 발생했을까?
우리의 논의를 위해 중요한 사실은 소위 ‘유교적’ 근대 화론도 바로 이런 서구의 근대사회가 안고 있는 윤리적 위기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신유가들이 ‘유교적’ 근대화론을 제기하는 목적은 동아시아의  경제 성장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데 있는 것만은 아니다."

여기에 덧붙여서 생각하면 좋을 구본준 기자가 전한 건축가 조민석, 조병수의 얘기...

"`한국성'이란 표현 그만하면 좋겠어요. 미국이나 독일에서 미국성 독일성 이런 이야기는 안하잖아요. 한국성은 이데올리기스러워서 싫어요. 지역성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좋겠어요. 한국에도 수많은 시대가 있는데 어느 시대가 한국성인가요? 우리는 유교의 한국, 농업국가 시대의 한국을 한국성이라고 너무 일반화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요?' -건축가 조민석. 

"열심히 살면(건축을 하면) 그게 바로 정체성이고 그게 바로 전통이 아닌가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 진솔하게 하면 그게 이 시대의 전통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시대성과 장소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생동감 넘치고 바뀌어가는 것입니다." -건축가 조병수

천화숙 교수의 얘기는... 새삼스럽게 유교와 기타 전통 운운하는 담론이 흥왕하는 이유는 근대성의 한 유형으로서 아시아적 근대성, 그 핵심적 특징인 아시아의 경제적 성장, 발전을 설명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바로 근대서 자체가 변화, 진화해가는 과정 속에서  요구되는 탈근대적 특징들 - 집단적인 특성, 공동체성, 지역적 차이 - 등에 대한 이해, 설명 요구가 커지고 있는데, 아시아성, 한국성 논의는 그런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동원되는 것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두 건축가가 하는 얘기는... 한국성, 아시아성은... 사실 늘 만들어지고, 변하는 것이다. 유교, 논어, 공자, 맹자가 한국성의 뿌리인가? 참 촌스러운 얘기다. 그동안 서구에게 당한 것들을 우리끼라도 성토함으로써 정신적 위로를 얻을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혹 번트에 대한 페티시즘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열심히 번트를 시키던 그 분이 ... 누구나 번트를 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강공을 선택했다. 그 찰나... 난 그 분의 철학의 실체를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다. 한 마디로... "나 어긋날테야..."라고 반항하는 질풍노도 시기의 고집 센 청소년 같은 모습이 바로 그 분의 실체였던 것이다. 남들 얘기는 잘 안 듣는... 남들 얘기 듣고 자기 고집을 꺽는 모양새를 싫어하는... 번트 좀 그만대라고 온 우주가 아우성칠 때는... 귀를 닫는다. 번트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난 니들 말 듣고서 내 뜻을 꺼는 사람이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위해서... 그러다 모두가 포기하고서 조용해지면... 그 때는 더 이상 그런 시위를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대야 할 순간에도 안 댄다. "난 번트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그런 성향이 야구 경기를 풀어가는데 유리할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야구에서도 수싸움, 기싸움에 능해야 하는데... 고집, 배짱 없이는 이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분석, 계산이 없다면 고집, 배짱이 통하지도 않겠지만...
그 분의 야구론, 리더십을 좀 더 지켜 볼 일이다.

2012년 9월 26일 수요일

구성원들이 거기에 속해 있음을 즐겁게 인정하지 못하는 조직은... 안타깝다. 조직도 그렇고 조직원들도 그렇고... 그런 조직에라도 속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사람은 더 그렇고.

2012년 9월 24일 월요일

늦은 밤 수서역에서 3호선을 갈아 타려면 때론 20분 가까이 기다려야 하기도 한다. 지금이 그런 경우.

음. 오늘 하루는 그리 민족스럽게 보낸 것 같지 않다. 유일하게 잘한 일은 10km 뛴 것. 내일은 좀 보람있게 보내야지. 더 경건하게...

2012년 9월 23일 일요일

음. 서재응이 데뷔 후 첫 완봉승을 기록했구나. 나이스 가이 재응씨. 성격이 모질지 않아도 좋은 성적 거둘 수 있음을 보여주삼.
오늘 기아가 모처럼 이겼나보다. 7:0으로... 내 모임때문에 생중계를 놓치긴 했으나 자정 무렵의 귀가길에 하이라이트는 기꺼이 즐김하리라.
모처럼 흥미로운 모임에 가는 길. 오늘의 주제는 치맥과 루만... 이렇게 주말은 또 한 번 지나가고...

2012년 9월 20일 목요일

새벽 세시에 일어나 운전해서 벌초하러 가야하는데 아직 잠에 들지 못했다. 현재 시간 00:12 ㅠ ㅠ

2012년 9월 19일 수요일

대구에 왔다. 마음이 편치 않다. 과거를 마음껏 추억할 수도 없다. 이 도시가... 낯설다.

2012년 9월 18일 화요일

눈 앞에서 지하철 문이 닫히는 바람에 짜증지수가 급 올랐다. 그런데... 페북에서 놀다보니 15분여가 금방 지나가네. 짜증냈던 게 머쓱해지는구만.
오늘 런닝머신에서 5km를 뛰면서 25분대를 목표로 삼았다. 한 150여 미터를 남겨두고서 - 마지막에 최고 속도인 시속 16km로 한참을 달리는 바람에 무리가 간 탓인지 - 기계 전원이 나가 버려서 최종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25분 50초  정도 나왔을 것 같다. 최근 성적이 좋은 편인데... 근력운동 탓인 것 같다. 그동안 근력운동을 그저 근육을 키우고 몸매 좋게 하는 운동 정도로 생각했는데... 참 무지했던 것. 근력운동과 기타 유산소 운동의 결합이 가져오는 효과를 요새 톡톡이 보고 있다. 체력, 건강 관리 등에선 우등생인데, 정작 논문처럼 가장 시급한 일에 대해선 열등생이니... .. ㅠㅠ

야구를 볼 때... 가장 짜증나는 경우는... 그냥 잘 못할 때가 아니다. 생각 없고, 센스 없이 경기에 임할 때... 여러 번 강조하지만... 야구는 매우 매우 지적인 스포츠니까... 기아 타이거즈에서 야구 센스 혹은 야구 지능이 빼어난 선수는... 이용규, 김선빈, 안치홍... 이들은 사랑받지 않을 수 없다. 좀 떨어지는 경우는... 실명을 거론해서 좀 미안하지만... 뭐 그들이 여길 볼 일이 없으니... 나지완, 차일목, 김주형, 신종길... 한 마디로 경기 흐름을 읽고, 상황에 맞는 플레이하기... 운동선수도 학생시절 지적인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운동을 더 잘 하기 위해서라도...

서재응은 오늘도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본인은 최고의 투구를 했고, 2점 차 리드 상태에서 내려갔지만, 후속 투수들을 점수를 내 주는 바람에... 이런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 해설자 김정준씨가 한 말이 참 오래 오래 남을 것 같다. '나이스 가이'라는 별명을 가진  호인 서재응. 승리를 날려도 그저 웃을 뿐인 서재응. 차라리 그가 더 자기 중심적이고, 고집이 셌다면... 후배들이 그렇게 쉽게 승을 내 주었을까... 대투수들 중엔 소위 못된 성격 소유자가 그렇게 많다고 한다. 사람이 좋은 것이 약점이 될 수 있고,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진리'는 야구에도 통하는 것 같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김시진 감독이 잘렸다. 성격 때문인가? 아니... 뭐. 모질다면 모진 김성근 감독도 지난 해 잘렸으니... 성적이 좋은 편이었는데도... 감독 잘리는 건 성격, 성적과 상관 없는 것 같기도... 구단 임원들과 친해야 하나?

ps) 서재응이 데뷔 후 첫 완봉승을 거뒀다. 결국.. 자기 힘으로 경기를 끝내야 겨우 승을 챙길 수 있는 이 불편한 진실... 서재응은 나이스 가이였기에,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지지했기에, 어제 승리에 대해서 그렇게 뜨거운 반응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독하지 못해서 잃은 것도 있었겠지만, 반면에 얻은 것도 있음을 보여주는 작은 사건이었다.

2012년 9월 14일 금요일

페친 은수미님이 친구의 생각이라면서 소개한 글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가 아니며, 사회에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만들어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이윤은 그것의 부산물. 하지만 오늘날 기업은 이윤만 추구하는 괴물로 바뀌고 인간적, 사회적 가치는 제거되어야 할 악이 되었다."

거기에 달린 댓글은 대동소이한 내용들인데... 그를 대표하는 하나...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는 기업은 이윤창출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2가지 목적을 적절하게 균형있게 추구해 가야할 듯 합니다"

동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자세히 읽어보면 의미가 불확실하다.

첫번째 인용한 글에서 기업이 추구할 수 있는 목적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1) 이윤
(2) 사회에서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만드는 일
(3) 인간적-사회적 가치

글의 논리는 이렇다.
- 기업의 목적은 (2)여야 한다. (1)은 결과일 뿐이다.
- 하지만 오늘날 기업은 (1)만 추구하고 (3)은 제거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리고... 도대체 (3) "인간적-사회적 가치"는 무엇인가? 혹시 (2)와 (3) 을 같은 내용으로 생각하고 있나?

두번째 인용문은... "이윤창출" "사회적 책임" 두 가지를 구분하는데... 이 역시 서로 배제하는 카테고리인지 의심스럽다. 이에 대해서 기업은 "이윤창출" 활동을 통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 라고 하면 그만이다. 요즘처럼 고용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경우, 일자리 창출, 고용 그 자체만큼 사회적으로 중요한 책임을 감당하는 일도 없는 것 같으니 더더욱... 도대체 사회적 책임은 무엇일까? 바르게 살기 운동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구분은 과학 연구에 대해서도 자주 제기된다. 과학은 지식 생산 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 해야 한다는 식의...

체계이론적으로 볼 때 이런 혼동은 잘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기능체계는 사회 전체에 대해서 특정한 "기능"을 충족시킨다. 다른 기능체계에 대해서는 "서비스"(Leistung)을 제공한다. "기능"과 "서비스"가 구분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기업이 기능체계는 아니지만... 윗 구분을 가져다쓰면... 기업에게 이윤창출은 "기능"에 관련된 것으로,  사회적 책임은 "서비스"에 관련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능"과 "서비스" 사이에 균형이 잡혀야 기능적 분화 사회가 잘 유지될 수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서구에선... 기능과 서비스의 균형을 맞추려 애써오고 있고 (최근엔 기능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강조점이 바뀌는 듯), 서구를 모델로 근대화를 지향하던 비서구에서는 "서비스 지향성"이 강했는데 최근엔 오히려 "기능"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는 듯...
진지하고 깊을수록 가벼워야 한다. 어설프게 진지하고, 깊은 경우 그것을 동네방네 알린다. 진지함과 깊음이 더 진지해지고, 깊어지면... 도리어 가볍고 얕을 수 있다.  좋은 깊음은 얕음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cf. "좋은 유머는 지성의 결정체다. 반대로 좋은 지성은 유머여야만 한다.")
지금 프로야구에선 김기태 LG감독과 이만수 SK감독 간의 갈등이 화제다. 이만수 감독은 늘 좀 위태위태했다. 열정이 있고, 솔직한 것은 좋은데...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이 속한 팀과 팬들의 입장에서 좋게 보일 뿐이다. 상대팀, 타팀 팬들의 입장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이감독은 이런 얘길 했나 보다. "야구는 이기는 것이 목적이다. 상대팀에 대한 배려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저러니... 결국 그런 태도가 만들어 낸 일들이 쌓여 있다가 폭발한 모양이다. 기아 팬들이 선동열 감독에 갖는 불만, 불신도 그 본질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는 것 같다. 기사를 통해서 팀내 분위기를 짐작할 뿐이지만... 선감독은 선수들과 많은 대화를 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대화, 소통은... 결국 상대를 배려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방법이다. 반대로 상대를 무시하는 가장 손쉽고도 치명적인 방식은... 입을 닫는 일이다. 모름지기 오고 가는 의사소통이 적으면 오해는 쌓이기 마련이다. 야구는 이기기 위한 것? 글쎄... 그 이전에 야구는 사람이 사람과 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결국... 사람이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점은... 아무리 뭐라해도 성적이 좋으면 결국... 다 용서가 된다는 점. 김성근 감독이 그런 경우... 어쩔 수 없다. 사람이... 결국... 그런 걸...
사무실에 혼자 남아 있을 때 퇴근한 직원들 책상을 둘러보곤한다. 무거운 내용의 책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는데... 오늘은 도올선생의 '금강경강해'. 사실 모두나름대로 깊고 깊은 고민을 하며 살아갈텐데 직장에선 도무지그런 얘길 나눌 겨를이 없다. 가장 많은 대화가 오사는 점심시간에도... 70%는 하나마나한 흰소리들... 다들 알면서도 괜히 지나치게 상찰적이기 싫어서... 그녕 얇은 대화로 만족하는 것 같다. 꼭 그래야 할까?

2012년 9월 13일 목요일

런닝머신에서 5km를 26분 32초에 뛰다. 개인 신기록!
'우리' 도올 선생은 이런 얘기도 했다. "주색(酒色)의 절제의 공부가 곧 보약이다" ㅋㅋ


다음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도올 어록'(?), 혹은 '도올 복음'(ㅎㅎ)
  • 어릴 때 배운 훌륭한 고전의 한 구절은 평생을 지배한다.
  • 인간학은 우주학이다. 
  • 학문하는 자세의 첫째는 호기심 있어야 하고. 둘째는 자존심이 있어야 하며, 셋째는 고독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 건강은 위대한 신비이다.
  • 동양철학서는 건강서적이기도 하다.
  • 의학의 발달이 오히려 건강을 더 위태롭게 하고 있다.
  • 과학의 발달은 한편으로는 인간이 원래 가진 능력을 소멸시키기도 한다.
  • 모든 과학도 결국 인간학이다.
  • 젊은이들을 수학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 인간의 구원은 궁극적으로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 바로 유학의 기본이념인 수신(修身) 정신입니다
  • 인쇄 매체는 느낌의 전달에 한계가 있지만, 언어는 느낌의 전달이 가능하다.
  • 진정한 사회의 리더는 여성적이어야 한다.
  • 문명은 모험이 없으면 사멸한다.
  • 문명을 배우되, 그것이 없더라도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 문명의 진화에 따라서 몸의 변화가 수반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질은 변화가 없는 것이다.
  • 인간의 모든 제도에는 어느 한 면에서 말할 수 없다. 항상 양면성(兩面性, 장단점)이 있는 것이다.
  • 인간(人間)이란 사람을 뜻하는 명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間)가 얽혀서 형성되는 인간세상, 즉 휴먼 소사이어티(Human Society)를 의미합니다. 인간(人間)은 인(人)이 아닌 인간세(人間世)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고존(孤存)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사람(人)이기 전에 사이(間)의 존재인 것입니다.
  • 인간의 사회에 자유와 평등이란 존재할 수 없다.
  • 살아있는 풀 한 포기 이상의 신비는 없다.
  • 역사는 변화하지 않습니다. 역사의 이러한 양태(樣態)의 변화에 우리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 완전은 불완전보다 하위개념이다. 
  •  욕은 타이밍timing, 時의 예술이다. 
  •  우리의 지식은 거의 전부가 독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회의없는 독단은 죽음이다.
아래 쪽에... "욕망해도 괜찮아? 아니! 늘 그런 건 아냐"라는 주제로 쓴 글에 덧붙이는 이야기... 응원군을 좀 멀리서 끌고 왔다. "중용"(中庸) 4장을 김용옥 선생이 설명한... (출처)


4장 [지미장知味章]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도道가 왜 행하여지고 있지 않은지, 나는 알고 있도다.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도度를 넘어서서 치달려 가려고만 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마음이 천한데로 쏠려 미치지 못한다. 도道가 왜 이 세상을 밝게 만들지 못하고 있는지, 나는 알고 있도다. 현명한 자들은 분수를 넘어가기를 잘하고 불초不肖한 자들은 아예 못미치고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 마시고 먹지 않는자는 없다. 그러나 맛을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물다.

"맛"은 생리에 기초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문명의 소산이다.
"맛"은 인간의 감성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것이지만 가장 고도의 복합적 체계이기도 한 것이다.
프로이드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괘감을 "색色" 즉 성감으로 본 것은 부차적인 것을 춴초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오치誤置의 오류the fallacy of misplacement이다.
"맛"은 일차적으로 미각味覺을 의미하는 것으로 입口에 속하는 것이지만, "맛"은 실제적으로 구규九竅전체의 감성에 해당한다.
맛은 이성과 감성을 매개하며 주관과 객관을 통합하며 상대와 절대를 통섭하며 인간과 하나님을 융합하는 것이다.
절제없는 맛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공부없는 맛은 존재하지 않는다.
맛은 전문성을 문명에 제공하는 끊임없는 문화이다.

여기에서 밑줄 긋고 싶은 구절은... "절제없는 맛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공부없는 맛은 존재하지 않는다" 절제... 절제가 필요하다. 억제, 강제, 억압의 결과로 어쩔 수 없이 참는 게 아닌... 절제가... 절제할 때 비로소 한 계단 올라 설 수 있다.
방금 스마트폰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스마트폰 중독이 심각하다는... 그리고  좀 찔리는... 허나 그게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기술적으로 이미 가능하다는 점. 사람들의 욕망, 욕구에 부합하는 점이 있다는 점. 고용문제, 세수에 민감한 경제정책적으로 볼 때 그런 어마어마한 시장과 그 시장에서의 거래를 억제하기란 쉽지 않다는 점. 그나마 이런 저런 부작용, 해로운 점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개인의 절제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스스로의 책임으로...!!  결국 개인 책임의 윤리?? 책임의 윤리는 다른 차원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경우 스마트폰 제조사나 통신사 등등.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물론 그들이 명백한 범법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스마트폰 제조, 유통을 금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윤리가 필요한 것. 이런 저런 문제가 있다. 그러니 좀 '알아서' '책임지는 자세로' 스마트폰에 대해서 생각해 달라. '사회적 책임을 지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 정도 요구를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래서 윤리 경영!!을 선포할 수도 있다. Na und? 그래서 문제가 해결되는가? Non! 문제는 한 번 더 옮겨졌을 뿐이다. 윤리로 도피한 것이고... (Flucht in die Ethik als Problemverschiebung!) 윤리의 한계는 분명하다. 하지만 불가피한 선택인 것도 사실이다. 윤리는 의미있는 기능을 하고 있다. 변화하는 정당성 요구에 체계들이 부응하도록,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서구의 경우... 체계 자체의 이상적 기능 --> 사회적 책임 요구 수용... 의 형태겠지만, 한국의 경우는 사회적 책임 요구 ---> 체계 자체의 이해 수용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순서가 바뀐 것.

2012년 9월 12일 수요일

루만 이론의 특징이자 내가 장점으로 생각하는 점은 양면을 동시에 관찰한다는 것이다. marked space와 unmarked space를 동시에... 우리는 "the marked"에서 시작하는데 익숙하다. 눈에 보이는 바로 그것, 존재하는 그것에서...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즉 비존재 없이는 존재가 존재할 수 없다. 비록 눈에 보이진 않더라도... 그처럼 차이 - 존재와 비존재의 차이 같은... - 에서 출발하는 루만의 이론 디자인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루만이 이론 구성에서 크게 의지했던 스펜서-브라운은 그의 책 "Laws of Form" 1장을 시작하기 전에  '노자'의 앞부분에 나오는 내용을 한자 그대로 소개하고 있다 (오른쪽 그림.). "無名天地之始: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이 천지의 원천이며.."

며칠 전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소개한 앙드레 모루와의 얘기가 맞아 떨어진다. "어쩌면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가 아니라 그가 감춘 것..."이라는...

"무엇을 하는 것, 무엇인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는 것, 무엇이 아닌 것"이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일 수도...
장르는 완전히 다르지만 김두식의 "욕망해도 괜찮아"나 박범신의 "은교"에선 비슷한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박범신 선생은 언젠가 힐링캠프에서 오욕칠정을 너무 억누르면서 살지 마라고 했던가... 허나.. 박 선생 스스로도 무지 억누르면 살 것 같다. 그렇게 억눌린 감정을 소설로 발산하는 것 아닌가?
진실은... "욕망해도 괜찮지 않다" 혹은 "욕망을 드러낸다고 살림살이 좋아지는 것 없다" 쪽인 것 같다. 욕망이란... 드러낸다고 해서 줄어드는 게 아니니까. 그러니까 욕망이지... 차라리 욕망을 절제하면서 오히려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욕망을 절제하면 대개 금욕적이 되고, 시야가 좁아지고, 남을 판단하게 되고... 김두식, 박범신은 그런 부작용을 지적하는 것 같다. 욕구불만 사회의 폐해가 만만치 않으니까... 별 것도 아닌 욕망 - 그래... 사회비판도 욕망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을 강제로 억압하는 사회의 모습은 얼마나 uncool한가... 예를 들어 쥐그림을 처벌하는 그 쥐새끼들...  욕망을 잘게 쪼개서 문제되지 않는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해줘야한다. 그래야 집단적 욕구불만에 걸리지 않는다. 집단적 욕구불만, 억압된 심리가 표출되는 극단적 방식이 성폭력이고 자살이다.
과잉 억압은 절대로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 그렇다고 욕망을 더 많이 드러내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결론은... 욕망을 적절히 조절하되 가능하면 절제하는 것이 좋겠다는...다만 그것이 억압때문은 아니어야 한다는...

2012년 9월 11일 화요일

페이스북에도 소개했지만... 꽤 큰 충격을 준 글을 만났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가 아니라 그가 감춘 것"이라는 앙드레 모루아의 얘기... 그리고 그것을 소개한 송인수 선생이 덧붙인... "선한 것을 많이 감춘 사람은 아름답고, 어둔 것을 더 많이 감춘 사람은 부끄럽다"는 얘기... 그 글을 읽으면서... 부끄러워졌다. 지금도 부끄럽고... 아마... 평생 이런 부끄러움을 갖고 살 것 같다. 원체 발산형이라기 보다는 축적형에 가까운 터라... 감춰두고 숨겨둔 것들이 많은 탓이다. 이중, 삼중, 사중...적인 내 모습을 잘 알고 있기에... 행여라도 감춰둔 모습이 들키면... 그렇게 부끄러운 것이다. 내가 감춘 것이 나라니...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아니라... 그렇다면... 정말... 한심한데, 부끄러운데... 그런 생각이 떠나질 않는 것이다. 조금 더 괜찮은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감추어져 있던 어두운 것을 좀 덜어내고, 그 자리에 선한 것을 숨기면 될까? 음... 가능할까?
블로그에 쓰는 글들은 말 그대로 자판가는대로 쓰는 글들이다. 수필... 생각거리만 있으면 그것을 붙들고서 쭈욱 써 나가면 된다. 생각을 쭈욱 밀고 나가면 된다. 생각의 속도와 글의 속도가 대개 일치하는 편이고... 글의 질을 높이려면 나중에 한 두번 더 읽고서 교정해주면 된다. 내 생각의 수준이 딱 글의 수준이고, 그래서 내가 곧 글이라고 해도 좋다.
논문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니 그렇지 못하다. 생각의 속도와 글쓰는 속도가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 간극을 메울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 쭈욱 써내려가기도 힘들 뿐더러, 표현이나 단어도 낯설다. 뭔가 써놓은 것들도... 도무지 나 같지가 않다. 언어의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어, 영어, 독일어... 무엇으로 쓰더라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금까지... 논문형 글쓰기에 약한 것인지, 아니면 아직 뭘 써야 할 지 잘 몰라서 그런지... 내 얘기를 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이 모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인지...
말로 풀어내는 건 좀 다른 것 같다. 그런 경우... 내 얘기를 하는 것 같다. 바로 그게 논문에 대한 내용일지라 하더라도... 특히, 루만, 한국 근대성 등... 내가 오랫동안 고민한 주제에 대해서는... 그런 느낌이 덜한 분야는... 안타깝게도 과학, 과학정책, 생명윤리 같은 주제들이다.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지만... 여전히 생경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남의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어쨌거나... 돌이킬 수는 없는 법. 하루 빨리 이 생경한 이야기를 정리해야 한다. 납득이 되지 않더라도...  대안이 없다. 대안이... 다른 길이...
오늘 아침 커피는 실패다. 미지근한 물을 삼분의 일 정도 부은 것. 팔팔 끓는 물을 더해 보았지만... 뜨거운 커피를 맛볼 수는 없었다. '블콘블롯'(Vollkornbrot) 사이에 구다 치즈를 껴넣은 샌드위치를 커피와 함께 즐기려는 계획이 틀어졌다. 그래도... 빵은 맛있다. ㅋ
선동열 감독이 기아 타이거즈를 맡을 때 나도 적잖은 기대를 했었다. 정규 시즌이 끝나가는 지금... 실망이 크다. 김성근 감독의 야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과는 좀 다른 느낌인 것 같다. 성적이 좋았다면... 물론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컸을 것이다. 하지만... 삼성에 있을 땐 좋은 성적을 거뒀음에도 팬들의 지지를 크게 받지 못했었는데... 그 이유를 이제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가지만 지적하면...
우선... 선수들 기를 죽이는 편이다. 강하게 키운다, 혹은 선수들과의 기싸움에서 이겨서 카리스마를 가지고 팀을 장악한다... 그런 긍정적인 효과가 없진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 기아에선 팀 스피릿을 아주 이상하게 만들고 있다. 선수들과 친밀한 의사소통을 잘 못하거나 안하는 것 같고, 많은 경우 언론을 통해서 선수들을 질책한다.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카리스마를 얻고, 기사거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잃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선수들의 마음이다.
두번째로 번트를 지나치게 많이 댄다. 통계적으로 희생번트는 점수를 올릴 수 있는 확률을 높이지 못할 뿐더러, 그보다 더 나쁜 영향은... 선수들의 경기에 임하는 태도를 위축시킨다. 공격에서의 위축은 수비에서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신뢰관계도 형성되어 있지 않는 상태에서, 위축은 또 다른 위축을 낳고... 지금 그런 악순화 고리가 형성된 상태다.
모르짐직 리더는... 구성원들의 사기를 살려줘야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카리스마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도대체 이 두가지를 어떻게 잘 조화시킬 것인가? 이는 거의 자유와 평등이 민주주의에서 균형잡힌 상태로 실현되기 어려운 것만큼 리더쉽에선 어려운 숙제다.
안타깝게도 선동열을 그리 매력적인 리더가 못되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감독은... 인격(person)이 없는 조직에 대한 평가를 내릴 때, 그 평가의 대상이 되기 위해 필요한 인격인지도 모른다. 잘 되면 감독 탓, 못 되도 감독 탓.

2012년 9월 10일 월요일

다시 월요일... 지난 주말은... 어땠나... 음... 특별한 일은 없었던듯. 아. 한독사회학회 모임에 참석했던 일이... 있구나. 다음 모임에서 발표하겠다고 약속을 했고. 그렇게 일을 저질러야 할 듯. 역시 '사회학'이 내몸에 맞는 옷인듯.
'기능적 분화', 특히 기능체계 간의 관계를 위계적으로 보지 않고, 또 전체 통합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루만적 견해를 취하는 일이 사회분석에 얼마나 유익한지... 그런 점들을 더 분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루만도 이념형적 (idealtypisch) 견해와 경험적 관찰 사이에서 적지 않은 혼동을 보여준다. 그러니 그런 점도 더 분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고... 루만을 교조적으로, 너무 추상적으로만 좇는 접근방식은 철저하게 배격하고...
기능적 분화의 단점과 장점이 있다. 단점이라면 기능체계들의 체계합리성 추구, 환경을 자기 체계의 기준으로 포섭하려는 전체화 경향이  결국 비합리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장점이라면... 체계 간의 견제로 어떤 특정 체계의 독단을 막을 수 있고 기능체계의 '올바른' 작동은 개인주의, 합리성, 공공성을 전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기능적 분화, 기능체계들의 독립분화 같은 착상은 독일 같은 지역에서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데 가장 잘 맞는 것 같다. 전쟁이 끝나면서 오히려 더 그런 경향이 강화된 것 같다. 전체화하려는 경향에 대한 강한 거부감... 그런 지점에서 루만은 하버마스가 만나는 듯. 하버마스는 경제, 정치 같은 체계가 생활세계를 식민화하는 경향을 강조했고... 루만은 경제, 정치나 그 어떤 체계도 다른 체계를 지배하거나 규정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건 경험적 사실에 대한 분석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기층에는 그러길 바라는 희망, 소망의 마음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발전국가 주도의 근대화 시기에는 국가가 기능체계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기능체계들의 자율적 역량이 더 강화되면서, 국가는 그런 기능 체계들의 자율성을 더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그 과정이 점진적이 상승과정은 아니다. 전진, 후퇴... 이런 과정들이 있겠지만, 그런 경향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MB 정권은 기능체계의 자율성에 관한한 심각한 정도로 퇴행적 개입을 했지만, 만만치 않은 저항에 직면했고 (물론 본질적으로 개선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ㅠㅠ), 앞으로 설령 큰애가 정권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더 나빠지긴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너무 낙관적, 나이브한 진단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과학과 과학의 자율성에 관한한...국가적 개입은 DJ, 노무현 정부에서 결코 약하지 않았으며, 멩박씨에게서 더 강하지도 않았다. 여하튼 멩박씨는 자신의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한 '약탈적' 정권 - 약탈해서 자기 배 채우기, 해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해먹기... - 이었고, 뭐 국정 철학이랄게 없었으니까... 결과적으로 그렇단 말씀.

기능적 분화 경향의 강화를... 결코 우습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특정 체계에 의한 식민화 경향을 저지하고, 기능적 분화, 기능 체계의 자율성을 강화하는게 바로 상식과 공정성을 세우는 방식이다.

2012년 9월 4일 화요일

막연한 낙관주의를 버려야한다. 정답은 없다. 상상력을 더 발휘해야 할 것. 싸이처럼... 서양 꽁무니만 좇아간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근대적 질서는 야만을 키우고 있다. 나찌는 과거만이 아니다. 오히려 도덕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 부정의 윤리? 그게 도움이 될까?
도덕이 많은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무도덕을 윤리를 통해서 얻어낼 수 있을까?
루만의 기능적 분화이론은 고전적 분업론과 다르다. 기능체계들은 단순히 기능을 사이좋게 나눠서 사회의 재생산에 기능하는 게 아니라 기능체계의 자율성은 체계들 간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반드시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연규윤리가 잘 지켜지지 않는 이유를 다들 잘 알고있다. 무슨 어려운 이론으로 따지고 분석할 필요도 없다. 연구윤리는 더 잘 지켜져야지. 남들이 이런 저런 이유를 언급하는데... 뭐. 새롭게 언급할 이유도 없다. 이 부분은 상당히 분명하다. 과학의 내적윤리는... 상당히 분명한 부분이다. 문제의식도 분명하고, 지향해야 할 바도 분명하다. 애매한 경우들이 있지만... 그건 그 때 그 때 결정하면 된다. 그 부분은 더 강조되어야 하고, 이론의 여지가 매우 적다. 연구윤리를 지키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적, 문화적 요인들... 그런 점도 분명히 인식되고 있다. 강조점이 좀 다를 뿐... 알려져 있긴 하다. 그것 역시 시간을 두고 변할 것이다.

어려운 점은 과학의 내적 윤리가 아니라 과학과 사회가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윤리문제다. 이 부분은 매우 어렵고, 복잡하다. 새로운 윤리적 논점을 제시하기 때문이고, 문제가 문제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성폭행, 성추행 사건을 빌미로 폭증하는 한국 사회의 성적 담론은? 어쩌면 억눌렸던 성적 욕망, 상상력이 이를 빌미로 공공연하게 표출되는 지도... 욕망을 지나치게 억압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비집고 나온다. "지랄 총량 불변의 법칙"(김두식)은 개인 뿐 아니라 사회에도 적용된다. "에너지 총량 불변의 법칙"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지랄'은 곧 꿈들대는 에너지니까... 사회에서 에너지는 결국 담론으로 표출된다. 여기서 담론이란... 모든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을 다 포함한다. 전쟁, 육체적 폭력 등도 포함하는...  사회의 에너지, 혹은 담론을 어떤 식으로든 표출된다는 건... 여러 사실로 '증명'된다. 민주국가는 말싸움, 논쟁이 그것을 푸는 중요한 방식이고, 독재국가일수록 3S에 관대하고, 사회주의국가들은 서커스나 스포츠에 투자하고, 빈국들에선 스포츠나, 소수그룹 패기로 풀고... 선진국, 문명국은 그런 에너지를 합리적, 세련된 방식으로 푸는 방식이 발달된 나라들이다.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되지 않도록 이런 저런 완충장치를 다양하게 갖춘 것이다.

2012년 9월 3일 월요일

(무슨... 의식의 흐름을 좇는 초현실주의처럼...  이런 글은 떠 오르는 생각을 붙잡아 놓은 것이니 그냥 그러려니... 무시하시길...)

가족주의, 권위주의, 연고주의... 가 신뢰 형성을 막는다. '전근대적 문화'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근대적 합리성의 기초는 개인주의다. 구조자체가 전근대적이었을 때는 우선 구조를 바꾸는 일에 집중한다. 구조를 바꾸면 문화도 바뀌리라 기대하면서... 하지만 전근대적 문화는 근대사회의 구조적 조건에서 일부 저항을 받기는 하지만, 좀 더 세련된 모습으로 바꾸거나 아니면 전근대성을 뻔뻔하게 드러내면서도 살아남는다.
특히, 전근대적 문화가 변화된 구조의 재생산에 역기능적으로 작용함이 드러날 때 비로소 문화 변혁에 힘이 실린다. 문화는 결코 구조 변화를 그대로 좇아가는 법이 없다. 독자적인 생존력을 가지고 있다. 전근대적 문화가 새로운 구조와 잘 지내게되면 전근대적 문화를 바꾸기는 더 힘들어진다. 대표적으로 정치계, 언론계, 조직 문화, (일상적) 친밀한 관계  등을 들 수 있겠다.
역기능을 보이는 분야들이 좀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스포츠 선수들 (히딩크가 선수들끼리 서로 이름부르도록 한 것, 하지만 그것은 매우 일시적, 일회적 사건이었다. 홍명보가 감독으로서 이끈 올림픽 대표팀도 위계적 질서를 중시했다고 하고... '고참의 역할' 운운하는 프로야구팀들... 선후배 관계를 확인하는... ), 과학의 경우 실험실의 권위주의, 위계적 질서 등이 업적에 대한 정당한 평가, 나아가 과학의 긍정적 재생산에 방해가 됨이 드러나면서... (황우석 사건), 혹은 연고주의에 의해 부정한 방식으로 취득한 학위가 경력에 해가 될 수 있다면... 그런 경우도 줄어들 수도 있다.
기능적 분화는 전근대적 문화와 관련해서 두 가지 경향을 동시에 종용한다. 한편으로 근대적 문화가 역기능, 혹은 구조의 지속에 불리하게 작용함이 드러나면서 근대적 문화 도입을 종용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구조의 유지와 재생산에 전근대적 문화를 사용하는 것이 유리할 경우도 있어서 그런 경우 전근대적 문화는 살아남는다. 전근대적 문화는 근대적 구조의 재생산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 때 그 때 다르다.
체계이론적 접근을 통해서 우리는 구조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문화의 변화 그리고 수렴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지적할 수 있다. 오히려 근대적 구조가 전근대적 문화의 온존, 지속을 - 합법적으로 - 가능하게 만들기도 함을 보여줄 수 있다. 근대적 구조, 특히 기능 체계의 합리성은... 사회 전체에 대한 비합리적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는데,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방식은 여전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전근대적 문화는 유지, 재생산될 수 있는 것이다.
근대적 구조와 전근대적 문화의 친화성!!
연구윤리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한계를 지닌 접근이다. 체계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절차 같은 것.
하지만 그런 연구윤리조차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전근대적 문화다.
전근대적 문화는 근대적 구조에서도 여전히 많은 경우 효과적이고, 그래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기능체계는 개인주의를 전제로 하는지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조직'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더군다나 네트워킹을 생각하면 더더욱... 개인주의를 전제로 하는 근대사회의 기능적 분화는 조직사회라는 특징과 갈등을 빚을 때가 많다. 특히... 일관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않은 비서구 지역에서는 더더욱...
기능적 분화는 비합리적 문화가 발흥하기 좋은 토양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억제하는 메커니즘들이... 이리 저리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것들로 지켜내기엔... 버거워 보인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내가 열심히 얘기했는데 상대방은 내 이야기 이전에 그가 하던 이야기를 이어가는 경우가 있다면... 그건 내 얘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이해할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거나, 아니면 내 얘기를 무시하거나... 그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2012년 9월 1일 토요일

모름지기 못할 때도 응원해주는게 진정한 팬아니냐는 얘길 가끔 듣는다. 주로 연패중인 팀의 선수들의 입을 통해서... 틀린 얘긴 이니나 공감하긴 힘들다. 팬이 선수와 맺는 관계의 성격을 생각하면...
사회현상을 서로 연결된 전체 속에서 보려고 애를 쓰는 사회학도로서, 특정한 입장에 기초해서 세상을 전체화하는 시도에는 어쩔 수 없는 거부감이 생긴다. 기독교적 관점도 그에 해당한다. 신앙인으로서 '나'는 사회학도로서의 '나'와 매우 잘 지내는데.... 교회에서 듣게 되는 신앙에 대한 이야기와 사회학도로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견해 사이엔 서로 삐그덕대는 지점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과연 화해시킬 수 있을까? 차라리 좀 독특한 공동체를 찾아 볼까? 물론 그런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없게 만드는 관계들이 있다. 에휴. 한국에서 개인주의는... 때로는 사치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free hug' 장면을 담은 유투브 동영상을 보았다. 별 것 아닐 수도 있는데... 감동을 준다. 길에서 스쳐 지나는 사람들... Ich-Es가... 포옹을 하면서... Ich-Du가 된다.
Ich-Du 관계가 축소되는 현상... 사람 간의 관계가 달라지는 현상... 그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한 편으로 '자유'를, 다른 한편으로는 '소외'를 의미한다. 작은 공동체가 이상일까? 유토피아? 여유, 여가, 놀이가 있는?
"수렵채취사회에서는 일주일에 12-20시간밖에 일하지 않고 나머지는 스포츠, 예술, 음악, 춤, 제례의식을 즐긴다."
"문화적 다양성에도 붉구하고 모든 인간의 공통된 욕망 중 하나는 '놀이'이다. 우리는 놀기 위해 일하고 일하기 위해서도 논다. 삶의 목적과 방법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즐겁고 행복한 사람은 놀이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이다."

현대인들은 놀면 큰 일 나는 줄 안다. 놀이의 즐거움을 일찌감치 빼앗긴다. 공부로 내몰리는 아이들을 보라. 죽기살기로 매달려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남들보다 더 잘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잘 사는 게 도대체 뭔가? 잘 노는 게 잘 사는 것 아닌가?

거대한 사회 - 심지어 세계사회 - 가 질서를 유지하면서 지속되려면 소외, Ich-Du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까? 놀이의 상실, 일에 대한 강박... 그것은 근대적 질서일까? 인간의 본성에서 멀어지는 것일까?

현대인들은 엄청난 강박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누구나 역할 갈등,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신경쇠약, 우울증은 근대인에게 주어진 천형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긴장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살아간다. 표내지 않고... 가끔씩 긴장이 풀어지면서 억눌리거나 왜고된 욕망이 억압을 뚫고서 분출되는 경우가 있다. 성폭행, 살인, 자살 등이 바로 그런 사례 아닐까? 근대인/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강박, 억압, 혼란, 갈등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런 상태의 위험상, 긴장 강도를 높이는 상황이 있을 것이다. 한국이 그에 해당하는 것 같다.
안철수씨가 진보/ 보수의 구분이 아닌 상식/비상식으로  구분하고 자신을 '상식파'라고 했다는데... 이는 좌우 구분과 좌우 이념 논쟁을 낡은 것으로 여기는 생각이다. 하지만... 정치적 이념은 사라져서도 안되고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비상식과 몰상식이 횡행하는 시기에 상식을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지지를 받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매우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다. 상식은 전제이지 목적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상식적 좌파와 상식적 우파가 있어야 할 것이다.

2012년 8월 29일 수요일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음악에 진심이 담겨져 있어야 하고, 심지어 음악이 곧 자신이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어제 본 EBS 프로그램 중에서...). 신앙에 투신하는 목회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학문을 하는 사람도 자신이 전하려는 메시지에 투신해야 할 것이고, 그 메시지가 곧 자신이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소명의식' 운운하는 낡은 얘기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아니다. 참신한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다. 너무 억누르지 말고, 욕망해도 괜찮고, 즐겨고... 스스로 설득되고, 즐길 수 있어야, 몰입할 수 있고, 자신을 던질 수 있고,  그래야 남을 설득할 수도 있고, 메시지에 힘이 있고... 뭐. 그런 선순환 관계인 것이다. 뭔가를 해야 하는 게 강요되는 순간! 그것은 '소명' '부르심'에 가깝고 그것은 강박, 억압, 억누름에 매우 가까이 있는 상태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해석될 수는 있겠으나... 출발은 '소명'이 아닌 자기 설득, 몰입, 즐거움, 유희... 뭐 그런 것이어야 할 것이다.

2012년 8월 22일 수요일

박근혜에게서 이명박 냄새가 난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대통령 당선시의 그 냄새가... 2mb씨에게 BBK니 전과 몇 범이니 떠들었어도 결국 '경제' 이 한 마디로 깨끗하게 정리가 되었듯이... 근혜 누님께 대해선 '장준하' '5.16 쿠테타' 같은 얘기로 비난해도 '미래' 한마디면 충분한 것 같다. 게다가 누님은 mb씨가 갖추지 못한 통큰 모습까지 보여주니... 이대로라면 결과는...

2012년 8월 16일 목요일

이운회 교수가 프레시안에 실은 글에서 80년대 '사회구성체논쟁'을 깔끔하게 잘 요약해 놓아서  옮겨 놓는다.

"사회구성체이론은 1985년 <창작과비평> 57호에서 국가독점(國家獨占) 자본주의론(박현채)과 주변부(周邊部) 자본주의론(이대근)이 충돌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논쟁은 세계사의 유례가 없을 만큼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이 논쟁에서 주변부 자본주의론이 패퇴하고 식민지반봉건론(NL)이 등장해 국가독점 자본주의론(PD)과 맞서는 상황에서 다시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 입장에서 나온 자본주의 사회구성체 이론(1987)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특히 식민지(植民地) 반봉건론(半封建論)은 일제 식민지였던 조선은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한 것이 아니라 근대적 지주제를 토대로 하여 식민지 국가권력이 상부구조를 이루는 특수한 사회구성체라는 것이다. 마치 19세기 말 동학 혁명(1894)의 구호를 보는 듯하다. 동학혁명의 핵심은 반제(反帝) 반봉건(反封建) 투쟁이다. 1960년대 이후 이른바 이촌향도(離村向都)로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 노동자인 한국 사회의 현실을 봉건사회로 규정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차라리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자본주의 구성체 이론'은 다소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이론은 한국 사회는 사회주의 혁명만이 구원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었다. 더욱 큰 문제는 식민지 반봉건론에 입각한 운동 세력들이 북한과의 연계와 협력을 중시했다는 점이다."
'생존'에서 '존중'으로... (장은주)

지당한 얘기다. '존중'도 '인간 존중'을 넘어선 '생명 존중'이어야 할 것이다. 반려동물이건 갯벌의 생명체건...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작은 생명체까지 존중받는 사회에선 인간도 당연히 존중받을 것이기에... 인간의 생존 혹은 존중을 위해서 다른 생명체들이 이미 충분히 희생했으므로...

또 다른 차원으로 '미래 세대 존중'이라는 개념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내 자식의 세대, 그 자식의 자식 세대가 어떤 환경에서 살게 될 지를 지금 결정을 내릴 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존중의 관계는 '나-너'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우연히 마주치는 길위의 '동료' 운전자도 존중해야한다. 동료운전자를 'du'로 보지 못하게 하는 자동차 같은 괴물은... 사용 자체를 줄여야 할 것이다. 그러니 '좋은 것' 보겠다고 너무 멀리 다닐 일도 아니다. 한 번눈요기하고 오는 아름다운 경치 속 생명체들보다, 출근길에서 늘 만나는 나무가 'du'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사람, 그리고 기타 존재하는 것과 맺는 관계를 '나-너'가 아닌 '나-그것'의 관계로 만드는 모든 매체, 체계, 절차, 메커니즘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근대(성)'사회라는 괴물이다. 특히 합리적으로, 맹목적으로 작동하는 기능체계, 조직들이고, 특히... '대도시'이고... '익명성'이고 '비인간적'인 속도고...
좀 사회비판적인 얘길 페이스북에 쓰려다 움찔 그만뒀다. '위선적'이란 비난이 들리는 듯해서... 내가 알게모르게 '성인군자' 행세를 했나보다. (비판적) 지식인을 지향한다면 철저히 절제하며 스스로에게도 엄격하던지 아니면 속물근성을 일관되게 드러내던지 해야할 것 같다.

어디 지식인 뿐이랴... 사람들은 대개 그렇게 독하지도, 그렇게 얼굴이 두껍지도 못해서 그저 상황에 맞춰서 눈치보면서 이런 저런 가면을 번갈아 쓰다가... 죽는 것이다. 그런데... 일관된 게... 항상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진 않기에... 위로라면 위로가 된다.

얼마 전에 읽은 리영희 선생의 "대화"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등장한다. 본인의 도덕적 엄격함 때문에 자식들이 힘들어 했다는... 일관되고 엄격한 삶을 살아서 존경받는 사상가, 종교인들이 막상 가까운 식구들에겐 다른 평가를 받는 경우를 자주 본다. 역시...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는 법...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법.

고로... 내가 일관되지 않기 때문에 꼭 손해만 보는 건 아닐 거라는 점. 얻는 것과 잃는 것이 뭔지... 한 번 따져볼까나...

2012년 8월 15일 수요일

성내천으로 혼자 산책길에 나섰다가 다리 밑에서 우글대는 잉어떼를 보다. 뭘 그렇게 잘 먹었는지 포동포동 살은 올랐으나 그래봐야 지들의 세계는 이 얕고도 좁은 개천일 따름인데... 그 모습에 겉은 번지르르하고 말은 좋으나 실상을 보면 영락없이 창살없는 감옥을 살고있는 한 사람이 생각나서 참으로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오호 애재라......
표는 못내고 티는 나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집중이 잘 안되었다. 급기야 저녁엔 내겐 도움이 되질 않는 소식을 들었고... 나를 많이 배려해주던 분이 다른 곳으로 가신다는... 집에 와선... 항공권을 예약할 일이 있었는데... IT 강국 대한민국의 인터넷 거래 절차가 얼마나 허접한지 온몸으로 느끼면서 분노하고 짜증내다가 결국 성공하지 못했으며... 아이폰이 왜 아이폰이고, 맥이 왜 맥이고, 스티브 잡스는 왜 스티브 잡스겠는가, 이 대한민국의 IT 전문가들아... 기계가 복잡해진다고 매뉴얼, 절차, 운용방식이 덩달아 복잡해진다면 도대체 그걸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냐고... 이 사람들이 정말. 국민들이 모두 IT 천재줄 아나... 복잡할수록 직관적으로... 맥 출신 기기들엔 매뉴얼이 따로 없다구요 이 사람들아.
열받아서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님은 오늘도 쉽게 오실 생각이 없는지... 어영부영 시간 보내기가 싫어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시간은 벌써 2시 반을 넘기고...
오늘 하루가 좀 부실했으니... 잠이 들 때까지라도 뭔가를 해 볼 생각이다. 내일은 휴일이기도 하고...

2012년 8월 14일 화요일

"지식인은 권한은 없고 책임은 많이 느끼는 사람이다. 권한은 많고 책임은 별로 지지 않는 현실의 실권자들은 현실을 비판할 필요가 없다. 세상은 그들을 위해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인은 보편적 관점에서 현실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지식인은 비판적 지식인이다. '지식인'이란 말 앞에는 '비판적'이라는 형용사가 생략되어 있다." (정수복,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84쪽)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페이스북에서는 너무 진지해서 무거운 얘기는 큰 환영을 받지 못한다. 더군다나 아침부터라면... 하지만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무거운' 시가 있어서 잊기 전에 이곳에라도 기록해 두려한다. 요즘 '주야로 묵상'하고 있는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중에서...

나 거기 서 있다


몸의 중심은 심장이 아니다
몸이 아플 때 아픈 곳이 중심이 된다

가족의 중심은 아빠가 아니다
아픈 사람이 가족의 중심이 된다

총구 앞에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양심과 정의와 아이들이 학살되는 곳
이 순간 그곳이 세계의 중심이다

(후략)

2012년 8월 11일 토요일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논문이건 책이건 페이스북에 남기는 글이건... 글이건 예술작품이건 간에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하다 못해 메시지가  없다는 메시지라도 있어야 한다. 가능하면 그 메시지는 분명해야 한다. 그저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나열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그 정보나 지식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이해시켜야 한다. 그게 한국 사회에, 사회학 담론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것을 알려주고 설득시키는 과정이 매우 매우 중요하다.

최근에 내가 읽은 리영희, 이원복, 박노해의 글에는 그게 있다. 리영희는 우상이 지배하는 시대에 이성의 빛을 비추려고 했다. 남들은 알고도 모른 체 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사실을 드러내어 세상에 대한 우리 인식의 균형을 잡아주겠다는 것이다. 이원복도 분명하다. 문화민족, 존경받는 민족이 되려면 남을 먼저 알아야 한다. 선진국 뿐 아니라... 특히 지금까지 널리 다뤄지지 않았던 지역을 더 잘 알아야 한다. 발칸반도, 동남아시아, 중동... 박노해... 남들이 잘 다니지 않는 분쟁지역에 대해서, 그 곳의 삶에 대해서 알리는 것이다.  평화를 위해서... 그곳에도 사람이었네... 메시지가 분명한 책을 한 권 더 추가해야겠다. 정수복의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놀라운 책, 반가운 책이다. 거기에서 정수복 선생은 현대 한국이 갖는 문제의 원인과 해결 '개인주의'에서 찾는다. 개인주의를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게 아니고, 건강한 개인주의를 살리는 일이 왜 긴요한지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다.

내 논문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문화의 비극. 구조와 문화의 불일치. 한국 사회는 구조적으로는 기능적 분화라는 서구적 틀을 좇아가지만, 거기에 맞는 문화가 아직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너무 서구중심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불편한 진실이다. 부인할 수 없는...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한국 문화는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서구 중심으로 세계화된 문화가 외피를 이루고, 한국적 근대성이 만들어낸 문화가 속살을 이루는... 문화의 비극은 이 두 문화 사이의 갈등, 불일치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이는 서구화, 서구적 근대화를 더 충실히 이행하면 문화의 비극이 사라질 것이라는 순진한 주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구의 근대성 역시 문화적 비극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으니... 하지만 그것은 그 다음 과제인 것 같다. 한국에 필요한 문화는 대단한 게 아니다. 그야말로 상식적인 것들이다. 개인주의, 인권 같은... 한 마디로 '상식' 혹은 '기본'. 기본이 갖춰져야 비로소 다양성, 복지, 윤리, 책임 등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상식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상식은 출발점일 따름이다. 하지만... 출발선에 제대로 세우는 작업을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공정하게 운영한다고 하더라도 게임 자체를 뒤집을 수는 없다. 자본주의라는 게임, 기능적 분화라는 게임... 착한 혹은 공정한 자본주의, 자본가...

궁극적으로는 게임의 룰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지만...  내 논문에서 그런 얘기까지 꺼낼 수는 없는 일.

여하튼 한국은 정상 근대성, 정상 자본주의의 길을 밟고 있다. 정상 자본주의를 이르러야... 그 다음 단계를 고민할 수 있나? 반드시 그렇진 않을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가능성만 놓고 보면... 하지만 역사적 경험을 놓고서 판단할 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문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남이 밟은 경로를 밟고서... 충분히 소화한 이후에라야... 제 삼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

2012년 8월 9일 목요일

공감... 共感...

낯선 사람 혹은 그다지 친하지 않아서 서로 잘 모르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면서 몇 마디라도 덧붙여야 할 때... 이 어색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요긴한 얘기거리는? 그렇다... 고것은... 바로... 날씨.
날씨의 영향을 비슷하게 경험하는 범위 내에선... 날씨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고, 또한 날씨처럼 몸의 감각기관을 이용해서 느끼는 일들이라면 공감대가 쉽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몸... 몸은 그런 것이다.
오전 내내 남 일을 대신 해주었다. 아니... '대신'이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그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라 내게 부탁한 일이니까... 같은 공간에 있으니 이런 일 정도는 도와줘야한다. 그에게 내가 도움을 받을 일이 있을 수도 있고... 굳이 그런 계산을 하지 않더라도... 도울 수 있으면 도와주는 게 맞으니까... 좀 덜 노골적으로 계산을 해 본다면... 그런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도 이 공간에서 편하게 지내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 에휴. 그놈의 잔머리 굴리기...

아무리 잔머리를 굴리면서 어지간한 부탁은 들어주더라도... No!할때는 No!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부정직한 일이라면 거절해야 하고, 분명히 상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런 상황이라면 그것도 거절해야 한다. 그때문에... 불편해지더라도...

이제 내 공부를 해야 한다. 끊어진 리듬을 다시 찾기으려면 워밍업이 필요하다. 지금 이런 글을 쓰는 것도 일종의 워밍업이고... 내가 선호하는 다른 방식은... 컴퓨터 문서폴더나 책상을 정리하는 일. 아니면... 좀 더  가벼운 책을 읽는 일. 그래서 내 책상엔 항상 가벼운 책들이 있다. 요 며칠은... 가로세계세계사 3권. 너무도 사랑스러운 만화책이다. 이원복 선생을 다시 평가하게 만든... 소장하고 싶은...

한국에서 살면서 좋은 점이다. 한국어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출판업자들은 어렵다고 하소연하던데, 독자로서 난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질 뿐이다. 한국어로 나온 좋은 책들이 많다. 무척... 무척... 행복한 고민, 비명...

2012년 8월 8일 수요일

이 아침... 왠지... 집중이 잘 안된다.
남들은 여전히 덥다고 하지만... 난 한여름의 기운이 꺽이는 낌새를 예민하게 포착해내고선... 심지어 그 속에서 가을 냄새까지 맡아 내고선... 하여... 내 마음 한 켠은 벌써 서늘해지는 것이다. ㅠㅠ
어쩌랴... 대안이 없다 대안이... 다른 방법이 없다 방법이... 이런 감상(感傷)도 사치인 것을...

요즘 오며가며 지하철에서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읽고 있다. 아니... 묵상하고 있다. 구구절절 시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예를 들어...


무엇이 남는가

정치가에게 권력을 빼 보라
무엇이 남는가

부자들에게 돈을 빼 보라
무엇이 남는가

지식인에게 명성을 빼 보라
무엇이 남는가

빼 버리고 남은 그것이 바로 그다

그리하여 다시
나에게 영혼을 빼 보라
나에게 사랑을 빼 보라
나에게 정의를 빼 보라

그래도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면
그래도 태연히 내가 살아간다면

나는 누구냐
나는 누구냐

2012년 8월 7일 화요일

근대사회의 구조를 혁명적으로 (영성 혁명, 사랑의 혁명) 전복시킬 수 없다면, 가능한 대안은 기존 구조가 '영성' Ich-Du 관계를 지향하고 그것을 지지하도록 고쳐 쓰는 것이다. 과학은 진리탐구를 위한 인간의 지적 노력이다? 그것이 영성을 지지하지 않는한 그런 과학은... 글쎄... 물론 목적지향적이지 않은 연구의 결과가 긍정적 적용으로 이어진 바도 적지 않지만... 어쩌면 알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그 자체로 신비로운 세계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선... 연구활동을 지나치게 영성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제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여기에서 다시 떠오르는 질문은... 도대체 '영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이해하는 한 방식을 난 Ich-Du 관계에서 찾긴 했지만... 더 고민할 문제다.

여하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환경, 인간과 기술, 인간과 체계와의  관계가 생명, 영성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구조화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불평등 구조의 재생산, 상업화 경제화 경향, 소외, 배제 같은 현상이 막아야할 혹은 치유해야할 대표적 현상이다. 윤리, 특히 제도화된 윤리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윤리는 결국 기득권, 소수 특권층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것 아닌가? 윤리는 한편으로는 발전주의, 성장주의에 대한 성찰의 의미도 있다. 하지만 그 자체로 과장된 윤리 주장도 별 도움이 안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하버마스처럼 담론윤리... 내용 없는, 지배 없는 자유로운 토론, 담론이 가능할까?
복지국가가 그런 것처럼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어디에 완벽한 윤리가 있을까. 어설프더라도 과학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서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면, 그리고 여전히 과학을 지속하기 위한 목적에 경도되어 있더라도, 그런 논의를 통해서 윤리가 다양해지고, 일상과 더 밀접해지면 나름 의의가 있을 것이다.
사실 책임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면 분명히 긍정적인 요소들을 찾아낼 수 있다.
'윤리'를 수리해서 써 보자고...
'Ich-Es'와 'Ich-Du'의 구분을 중심으로 사회, 근(현)대사회의 작동 원칙과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근대사회에서는 Ich-Es 관계가 지배적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지만, 그 만남은 Ich-Es인 경우가 많다. 가게 주인과 손님의 관계로... 심지어 직장에서 매일 얼굴을 보는 동료들끼리도 '직장동료'라는 가면(persona)를 쓰고서 관계를 맺으니까. '도시'라는 구조는 Ich-Es 관계에 친화적이고, 체계 합리성, 체계 이기주의를 지니는 기능체계로의 분화라는 근대사회의 기본 구조에서 인간은 고작 환경에 위치할 뿐이다.  '근대사회' (특히, '도시')는 인간을 연료로 쓰는 거대한 괴물과도 같다. ('기능적 분화'와 '도시화'의 친화성. 도시의 익명성과 기능체계에서 인간의 원천적 배제와 유사).
이는 퇴니스의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의 구분하면서 얘기하려는 바, 즉 게마인샤프트의 상실이고, 하이데거가 이야기하는 고향 상실(Heimatlos)이고, 하버마스가 '체계'(System)와 '생활세계'(Lebenswelt)를 구분하면서 얘기하려는 바에 따르면 체계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화이고...
매체(media)의 발달은 Ich-Du 관계에 대해선 대개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매개체 없이 직접적으로 맺는 관계가 Ich-Du이기 때문이다. 물론... 오감 같은 원초적 매체 없이는 관계 맺기가 애초에 불가능하겠지만... 인간이 생래적으로 타고난 매체를 제외하면... 그런 것 같다는 말씀. 근대의 대중매체, 최근의 신미디어들은 Ich-Es 관계의 폭발적 확산에 기여하고 있고... 물론 인위적 매체들도 자-알 쓰면 Ich-Du 관계의 형성, 영성, 거룩함 등에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알 쓰면...

체계, 기능체계, 게젤샤프트가 그나마 게마인샤프트적인 속성을 어느 정도 회복시키는 경우들이 있다. 그걸 어느 정도 성공한 지역을 우리는 복지국가, 선진국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Ich-Es 관계를 가장 극단적으로 끌고 가면서 가능했다. Ich-Du 관계는 사실 - 부정적 의미로 - 봉건적, 전근대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까... 신비적, 정서적 관계... 근대사회의 질서에선 Ich-Du 관계를 강조하면... 오히려 전체적으론 Ich-Du 관계에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근대적 질서에선 Ich-Es 관계가 깔끔하게, 상식적으로 잘 굴러가는 것이 오히려 Ich-Du 관계를 회복하는 전제조건이 된다. 한국에선 Ich-Es 관계를 상식적으로 정립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다.
궁극적 과제는... Ich-Du 관계를 확산시키는 일이다. 이는 근대적 질서를 혁명적으로 전복시킴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것은 작은 규모에선 가능하나, 사회 전체, 특히 세계사회를 생각한다면... 실현 가능성은 뚜욱 떨어진다. 그 앞에선 복지국가, 선진국들도 크게 앞서가지 못하고 있다.
여하튼... 지금 한국에서 시급한 과제는 분명하다. Ich-Es 관계를 제대로 세우는 일. 그리고 가능한 Ich-Du 관계를 중심에서 놓지 않기...

Ich-Du 관계에서 '평등' '자유' 같은 문제는 어떻게 이해될까? (Ich-Du 관계를 '영성이 충만한 관계'로 이해하자. 내 식으로...) 아마.. 평등, 자유 같은 개념이 필요치 않을 것 같다. 줌을 통해서, 베풂을 통해서 받는 그런 관계 아닌가? 아마 '선물(物)의 경제학'이 그런 얘기 일 것이다. '권리' 같은 것도... '권리'는 Ich-Es 관계에 적합하다. 계산이 분명해야 하므로. 인권 등 각종 권리가 중요하고, 특히 약자의 권리를 법과 행정력으로 보장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깔끔하고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Ich-Es 관계 정립을 위해서 그렇다. Ich-Du 관계라는 차원에서 보면 한계가 있다는 말씀.

Ich-Es 관계를 기초로 삼는 근대사회가 이루어 낸 긍정적 성과가 적지 않다. Ich-Du 관계로의 회복은 그런 성과를 긍정적으로 계승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퇴행적 혹은 문명도피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미국 아미쉬(Amish) 공동체처럼...  하지만 Ich-Es와 Ich-Du는 근본적을 다른 프레이밍, 혹은 패러다임이기 때문에 제대로 접목시키기가 쉽지 않다. 그런 주제에 관해서 다양한 연구가 나와야 할 것이다.
괴테 할아버지가 이런 말을 남겼나 보다.

„Wer lange bedenkt, der wählt nicht immer das Beste.“

어떤 이가 이 말을 '장고 끝에 악수둔다"라고 아주 상쾌하게 번역했다.

이 아침... 논문 때문에 여러 모로 불안한 마음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말이다. 아픈 곳이 찔리는... 여러 갈래 길을 다니다보면 최선의 길을 찾겠지 생각했는데,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시작한 자리에 서 있는 듯한... 그냥 좌고우면하지 않고 처음 생각한 길을 쭉 갔더라면...
하지만 그런 옵션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내게 있어서 아주 낮다. 왜? 그러지 않는 게 나고, 그리고 바로 그런 점이 긍정적인 결과를 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내 정체성을 포기하는 변신을 시도해서 얻을 수 있는 것 잃을 수 있는 것을 계산해 보면 답은 나온다.
여하튼... 그래도 이제 bedenken은 참으로 lang, lang했다. 충분하다. 충분하고도 넘친다. 구겨넣어서라도, 주물주물해서라도 뭔가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
관심사를 다룬 영어 서적을 주문하려다 생각을 바꿔 먹었다. 이 작업이 끝날 때까지는 학문과 관련된 책을 주문하지 않으리라... 더 넓히지 않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 가지고서 정리하리다. 그리고 안철수가 했던 것처럼... 내 책상을 깨끗하게 치우고서 다시 시작하리라.

2012년 8월 6일 월요일

이슬람은 7,8세기를 거치면서 세력을 급격하게 확장해 나간다. 이처럼 짧은 시기에 이슬람이 넓게 퍼진 것은 모든 종족이 형제가 되는 이슬람 공동체의식으로 인해 차별대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로세로세계사 3권. 89쪽). 어쩌면 이슬람은 그대로인데 변한 건 (이슬람 밖) 세상인지도 모르겠다. 역사의 변화 앞에서 너무 쉽게 변하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변하지 않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래 결론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기능적 분화를 유지한다... 체계통합인데... 그게 지금 상태로 유지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그게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가? 그런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서요. 물론 그 이전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여러 분야들이 독립적, 자율적 성격을 띠게 된 건 분명 역사적 사실이긴 합니다. 종교나 정치 혹은 경제 등에 의한 위로부터의 통합에 대해서 다른 체계들의 독립성을 갖게되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 정치와 경제의 분리, 과학, 예술, 언론의 독립 등등. 기능체계의 자율성 유지는 대개 체계의 지배적 조직이나 지배적 역할 담지자의 이해관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혹은 그 핵심적 역량을 소비할 수 있는 계층, 집단의 이해관계와 말입니다. 체계와 인간의 관계는 그러니까 사실 매우 불평등한 것입니다. 사회통합 혹은 포함/배제 논의가 그런 점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

2012년 8월 3일 금요일

"그래서 나의 결론은, 근대성의 핵심인 '기능적 분화'는 성과과 한계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근대성이 이룬 성과의 열매만을 따먹으면서 한계를 피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계를 극복하겠다고 기능적 분화라는 대원칙을 근본적으로 흔들 경우 - 그게 가능할 것 같지도 않지만 - 오히려 더 큰 혼란을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현시점에서 가장 이상적인 대안은 기능적 분화의 틀을 유지하고, 그것이 가져 온 장점을 살리면서, 개인화, 개인 이기주의, 체계 이기주의, 소외, 배제, 기대 인플레이션, 환경문제 같은 기능적 분화의 한계들을 극복하는 여러 시도들을 하는 것입니다. 복지국가가 대표적인 그런 장치일 것이고, '제도화된 윤리'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요즘 얘기하는 경제민주화도 그런 것이라고 불 수 있겠지요." (리영희의 '대화'를 흉내내 봄 ^^)
리영희 '대화'

"나의 결론은, 인간의 이기심은 인간이라는 종(種)의 생물적 속성 그 자체이며, 그런 속성을 제도나 교양교육을 통해 일시적으로 억제할 수는 있지만 인간의 영구한 속성으로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었어. ... 자본주의는 인간의 속성인 '이기심'에 호소하는 방법과 제도로, '물질적' 생산을 극대화시켰고 그것으로 승리했다고 본 거예요. 그러나 인간과 인류의 진정한 승리는 그것과 다른 의미의 절반의 승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지요." (683 - 684쪽)

"그래서 결국 나의 결론은 인간은 물질적 요소로 존재하는 동물이니까 자본주의적 요소로 말미암은 필연적인 비인간화적 결과를 5할 정도의 선에서 인정하고,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인간성 파괴의 측면을 보완하기 위해 게마인샤프트적 사회주의적 요소를 5할 정도 융합하는 방식으로 사회민주주의적 체제가 현실적으로는 결함과 약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인류사회의 현 발전단계에서는 가장 낫고, 사회주의 없는 미국식 제제보다 우월하다고 확신해요.
유럽의 사회체제는 소련의 체제보다 훨씬 나은데다, 미국사회의 속성인 이기주의 폭력주의 극심한 빈부격차 범죄 타락을 상당한 정도까지 극복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희구해도 이미 지나온 '게마인샤프트'(물질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인간적 유대가 기본인 공동체)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게젤샤프트'(서로의 이해관계의 계산을 매개로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와 적절히 배합한 인간 생활형태를 미래의 상으로 그려볼 수밖에 없겠지요" (687쪽)

존경받는 아름다운 나라

리영희 '대화'

"나는 통일된 국가가 반드시 '강대한 국가'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군사적으로 막강한 국가보다는, 평화지향적이고 주변국가들과 협조하면서 전쟁 위험을 주지도 받지도 않으면서, 정치 문화 경제적으로 남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699쪽)

이원복 '가로세로 세계사'

"'나는 잘사는 부자 나라, 힘이 센 나라도 좋지만 우리가 만들어야 할 새 선진 대한민국은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나라'여야 한다고 믿는다... 남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나라는 세계를 품어 안고 이해할 수 있는 넉넉한 국민에 의해 이루어진다. 우리들이 21세기 세계를 이끌고나가기 위해서는 세계를 알아야 하고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가로세로 세계사'를 시작하는 가장 큰 이유다" (서문)

김구 '나의 소원'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武力)으로 정복(征服)하거나 경제력(經濟力)으로 지배(支配)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리영희의 '대화'를 읽으면서 눈에 좀 거슬리는 부분은 말하자면 '자기 자랑'인데 좀 심한 편이다. 특히 어학실력, 국제적 감각 등에 대해서... 다른 부분에선 겸손한 양반이...
의외였는데 그래서 더 마음에 든 부분은 미국에 대한 태도..
"나는 미국의 일반적 성향으로서 흉악한 그 국가적 체질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면서도 그들이 크고 작은 모든 시도에서 일사분라하고 완전무결한 능력을 갖춘 집단이나 국가는 아니라고 생각해"(p.536)
미국의 한국에 대한 철저한 계획을 가지고서 국내 정치를 조종하고 있다고 믿는 듯한 대담자 임헌영에게 타박을 주면서 한 말이다.
퇴니스의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를 명저라면서 거듭 추천하고 있다.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급 솟는다.
기독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확실히 '거룩함'인 것 같다.
'거룩함'은 '돌아 봄'이고 '거리 둠'이다.
돌아 볼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해주는 것이다. 그런 여지, 공간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기대, 정보, 지식, 욕망의 인플레이션은 근대의 일반적 속성이기 때문에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말씀, 신학, 찬양 등이 인플레이션... 세상, 세속과 거리를 두도록 공간을 제공해줘야 할 교회에서도 자신들의 만들어 내는 정보, 지식, 음악으로 꽉 채워 놓는다. 교회 안에서 성찰할 수 없는데 어떻게 세상에 대해서 성찰할 수 있을까...
세일기간 백화점, 토요일 오후 마트처럼 바글바글 거리는 교회... 천정에 매달려 있는 스피커를 통해서 쩌렁쩌렁 울리는 찬양 소리...
여백이 필요해... 공간히 필요해...

Anspruchsinflation

기대가 충족되면, 또 다른 기대가 생기고, 기대에 대한 기대가 생기고... 그럴수록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는 더 많아진다는 불편한 진실, 기대의 역설... 기대는 기대를 낳고, 더 많은 기대를 낳고... 기대 인플레이션은 근대적 질서를 근본적으로 전복시켜지 않는한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모름지기 어떤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매진할 때가 좋은 법이다. 그런 분명한 기대가 있을 때가 좋은 법이다.
'기대'에 대한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은... 근대적 질서 속에선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아니... 기대를 줄이거나 기대를 달리 이해하고자 하는 '기대'조차도 커진다. 그것 자체가 새로운 '시장'으로 떠 오르고 있으니...
'기대'는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욕심' '욕망' '가치'이기도 하다. 반드시 물질적 욕망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더 생태적으로, 건전하게, 욕심을 줄이면서 살기... 그것도 하나의 기대고 욕심이다.
'기대'가 없으면 인간이 아니다. 문제는... 기대가 비대해질수록 만족은 더 멀어진다는 점. 그리고 기대와 기대가 충돌하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점... 어떤 기대를 먼저 충족시켜줘야 할까? 사회적으로 권장되지 않는 기대는 억누른다고 쳐도 (현실적으로 그런 기대가 줄어드는 것과는 상관없이.... 적어도 그런 기대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선 고민할 필요가 없다. 억누르기... 그 결과는 '이중적 태도' '눈가리고 아웅' 등으로 나타날 때가 많지만...) 정당한 기대가 많아지면서 정당한 기대 간의 갈등이 더 자주 등장한다.
한국 사회가 갈등이 많아지는 이유는 바로 그런 점들 때문이다. 정당한 기대 간의 갈등... 다양한 기대...
생명윤리에 대해서도 그렇게 이해할 수 있고...
줄기세포연구는 한편으로 치료 가능성을 부풀리면 기대치를 높인다. 초기 생명을 좀 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것 또한 정당한 기대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이 '윤리적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아야 한다는... 그런 '선진국에 대한 기대'를 자극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고전 10:12)

일어서겠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을 때가 오히려 쉽다. 한 번 서고 나면... 선 상태를 제대로 유지하기 어렵거나 다시 넘어질 수도 있다.
민주주의가 그랬고, 노동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인권, 생명윤리 등이 그렇다. 민주화를 목표로 삼을 때는 적도 분명했고, 지향해야 할 바도 분명했다. 하지만... 87년 이후 제도적 민주주의가 도입된 이후... 상황은 더 혼란스럽다. 노동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등도 시작 단계에선 어렵지 않게 공감대를 만들 수 있다. 워낙 배제되던 분야라서 적어도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는 정당한 일로 여겨졌다. 시간이 흘러서... 그런 운동도 제도화되고 자리를 잡으면... 영향력을 발휘하고, 이런 저런 삶의 영역에서 두드러지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정당성, 공감대를 확보하려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자리가 잡힌 이후에는... 분명한 목적을 지향하던 시기라면 무시되었을 사건들이 위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민주화 세력, 시민단체의 도덕성 문제.

2012년 8월 2일 목요일

taming modernity through spirituality

영성, 감성, 공감 등이 중요해진다면서 미래는 영성/감성/공감의 시대다! 라는 주장이 널리 퍼지고 있다. 그런 견해는 지금은 자주 쓰이진 않지만 80년대 말 이후 오랫동안 유행했던 '포스트모던 사회'라는 인식과 궤를 같이 한다. 근대는 이성적, 개인중심의 시대였고, 탈근대는 이성에 반대되는 감성, 영성, 공감 그리고 집단, 공동체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시대라는...
루만에 따르면... 모던과 포스트모던의 구분은 구조적 차원과 문화적/의미론적 차원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애기하는 포스트모던적 새로움은 대개 문화적 차원에 대한 것일 뿐, 기능적 분화 같은 근대사회의 구조적 측면에서 본질적 단절이 관찰되지 않는다는... 포스트모던적 특징은 근대의 구조적 진화가 진행되면서 그에 따른 결과, 특히 부정적 결과에 대해서 예민해진 '근대적'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개인화, 합리화 경향과 집단 중심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찾고, 감성적 측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경향은 서로 배척하는 게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것이라는... 그 둘은 앞으로도 쭉 공존할 것이다. 시기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지겠지....
그러니 포스트모던 사회 테제가 더 진지하게 다뤄지려면 문화적, 의미론적 차원이 아닌 구조적 차원에서 과연 근본적 변화가 있는지 논의해야 한다. 영성, 감성, 종교, 공감, 새로운 공동체 지향... 같은 것으로 안된다는 것.  물론 구조적 차원의 변화를 강조하는 견해도 있다. 대표적으로 네트워크사회! 탈분화사회!
기능적 분화가 지배적 원칙이 아니고, 영성이 사회구조적 측면까지 관통하면서 기능적 분화라는 특징을 전복시켜야 비로소 탈근대적 영성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영성, 공감 등에 대한 관심은 근대화가 가져온 부정적 결과를 어떻게든 처리해 보려는 문화적 안간힘이다. 영성이 탈근대사회로의 전환을 보여주기는 커녕, 근대사회의 구조 속에서 용해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영성의 자본주의화 현상 (capitalization of spirituality). 영성에 대해서 접하려면... 교회에 출석하던지(종교 조직), TV 채널 등을 통해서 듣던지 (매스미디어), 책을 사보던지 (출판시장), CD를 든던지 (음악시장)... 어짜피 근대적 구조를 통해서 영성은 전파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본적이고 혁명적인 영성사회는 탈자본주의적, 탈시장주의적, 탈제도적... 협동조합이나 공동체 가 확산을 통해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근대적 성과와 그 성과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서...
아니면... 기존 근대적 질서의 작동 방식을 최대한 '영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조정하던지... 예를 들어 관련 책들이 더 많이 팔리게 한다던지, 영성을 지향하는 내용을 담은 방송프로그램이 많이 제작되던지, 영성의 원칙에 부합하는 제품들이 시장에 더 많이 나오게 한다던지... 그런 경우 그것은 탈근대적이라고 얘기하긴 힘들다. 근대를 길들이는 정도...
 


"이제 이 시대는 '부흥'의 시대가 아닙니다.
부흥을 외쳐야 할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지금은 '세상을 변화시키자'는 모토를 가질 때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합당케 되는 '거룩'에 힘써야 함을 말해야 할 때입니다.
이제는 '거룩'의 때입니다. 
회개에 힘써야 할 때입니다."

한 동안 정기적으로 찬양 영상을 봤던 마커스, 그 마커스 찬양시간에 설교하시던 마커스 지도목사님. 검색하던 중에 우연히 유투브에서 발견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부흥'의 시대가 아니라 '거룩'의 시대라는...
하지만... '거룩'은 개인적 차원에서 이해된다. 사회의 거룩? 거룩한 사회? 그건... 기대하기 힘들다.
니버가 얘기했듯이 인간은 도덕적이더라도 사회는 비도덕적이기 쉽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씁쓸한 진실...

2012년 8월 1일 수요일

근대적 질서의 핵심은 신분제도에서 해방된 인간들이 사회적 질서 자체에서도 해방되어 사회의 환경으로 밀려난 일이다. 사회는 이제 인간이 아닌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의 재생산으로 지속되는 질서로 이해된다 (cf. 영화 '매트릭스'). 인간의 물질적, 실존적, 정신적 상태와 상관없이 사회는 지속되는 어떤 면에서는 '끔찍한' 그런 상태인 것이다. 이것이 루만이 그려내는 현대사회의 모습이다. 물론... 그런 질서라도 제대로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최소한의 윤리, 규범, 규칙, 상식, 원칙 같은 것들이 마련된다. 인권이 대표적이고... 하지만 그런 가치들은 대부분 추상적이어서 그 자체로는 모두 고개를 끄덕일만한 것들이지만, 실제로 적용하려고 하면 어떤 가치를 더 중시하느냐 등의 문제를 야기하는 등 뚜렷한 한계를 보인다. 여하튼... 그럼에도 이 상태로의 진화되는 과정 자체는 그 이전의 야만적인, 폭력적인 상태에 비하면 진보라고 부를만 하다. 여전히 야만적, 폭력적 상황이 지배적인 지역들이 아직 많이 있고, 그 지역의 관점에서 보면 위에서 기술한 현대적 질서는 심지어 '이상향'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근대적 질서는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인간의 소외 문제, 배제 문제, 인간의 정신, 영적 문제를 반영하지 못하는 질서... 그렇다고 근대 이전, 다시 주술화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비록 전근대의 부정이 근대라면 근대의 부정은 전근대와 유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그저 회귀가 아닌 새로운 차원일 수밖에 없다. 근대 이후를 상상하는 견해를 통틀어서 탈근대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사회학적인 버전들은 좀 심심하고, 겸허하다. 좀 과감하게 탈근대를 '영성의 시대'로 정의하면 어떨까. 그것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도...
영성의 시대는... 근대 사회학의 언어로 표현하기는 힘들 것이다. 사회학 자체가 근대적 틀을 벗어나지 않은 한... 아쉬운대로 근대 사회학이 기여할 수 있는 바는 영성의 시대로 문명사적 전환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근대의 한계를 보여주는 데 있을 것이다. 인간의 소외를 가져오는 합리화, 특히 체계합리화...
근대적 질서의 단초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다만, 가치, 감성, 공감, 인정 같은 요인들이 중요해지고 있음을 언급하는 견해 정도...
일단... 과학과 관련해서 가치, 책임 등 정서적 측면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견해는 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도덕적 혼란을 야기한다. 왜? 가치의 다양성을 이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윤리는 그런 혼란을 처리하기 위한 한 방편이다. 특히 제도화된 윤리, 법 등등.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임시방편일 뿐이다. 쉽게 윤리의 사소화, 형식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연구의 결론은 딱 여기까지!]
영성을 포함하는 그리고 살리는 과학 관련 질서는 무엇일까? 지금의 과학은 완전히 재편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기업화된 과학, 의학... 의료적, 기계적, 개인주의적 생명 이해...
대안적 과학, 의학이 필요하다!! 영성이 깃든 그런 의료, 의학, 과학!! 근대적 질서를 뛰어 넘는.... 기능적 분화의 한계를 극복하는...
(1) 리영희의 '대화'와 이원복의 '가로세로 세계사'는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고, 그 언저리에서 내게 전해지는 메시지가 있다.

한반도, 즉 남한, 북한의 문제는 세계사적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남북한 현대사는 전혀 예외적이지 않다. 남북한 민중이 겪었던 고초의 크기가 과연 동남아시아나 발칸 반도 민중들의 그것보다 더 컸을까? 그런 면에서 난 예수의 고난을 적용해서 한민족의 고난을 풀이하던 함석헌 류의 민족주의에도 그닥 공감하지 못하겠다. 마찬가지로... 한민족이 문명사의 전환을 이끌 선두주자가 될 거라는 김지하 류의 호들갑도 별로고... 어짜피 지금까지의 문명사도 어느 한 두 민족, 국가가 만들어 낸 것만도 아니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물론 주도하는 국가가 없진 않았지만 그건 특히 지역적 차이가 크고 지금 같은 수준의 세계적 연결망이 구축되기 이전 이야일 뿐, 앞으로는 어느 한 두 민족이나 국가가 세계를 주도하기는 힘들 것이다. 중국을 자주 얘기하던데... 그럴 일은 전혀 없을 것이다. 재미있게도 중국의 부상을 가장 경계하는 미국이 특히 경제적으로는 중국가 가장 긴밀하게 엮여 있다고 하니...
물론 민족, 국가라는 단위는 오랫 동안 중요하게 남아 있을 것이니, 남한과 북한, 한반도의 이 두 민족국가를 잘 꾸려가야 할 것이다. 자랑스러운 나라, 존경받는 나라가 되면 좋을 것이다. 요샌 북유럽 국가들이 그런 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어디가나 예외적 사건들, 인물들, 집단들은 있는 법이니까... 몇몇 불행한 사건들을 가지고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여하튼 남한이나 북한이 그런 정도로 시대를 선도하는 그런 아름다운 나라가 되면 좋을 것이다 (cf. 김구). 상식적인 나라, 합리적인 나라, 공존 공생하는 나라, 공존 공생엔 사람 뿐 아니라 동물, 자연환경까지도 포함할 줄 아는...

(2) 하지만... 신앙적으로 보면 그것만으로는 모자란다. 왜? '사회'는 그런 합리적인 상태, 공존 공생의 상태에 만족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속가능한 '사회'), 인간은 그런 상태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사회학과 인문학이 갈라진다. 사회학자들이 얘기하는 '근대 사회'는 그야말로 인간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기계가 되어 버렸다. 그 기계가 큰 탈 없이 돌아가도록 분석하고 기름칠하는 것이 사회학자, 정치가들의 역할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인간에겐 그 이상이 필요하다. 생존, 인정, 복지, .... 이런 것이 채워지면 만족하는 그런 존재가 아닌 것이다. 영성! 영적인 갈급함이 채워져야 할 지도... 영성은 좀 넓은 의미로 이해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사랑, 공감 같은 정서적인 면을 포함하는... Ich-Du의 관계... 이 경우... 어쩌면 우선순위를 바꿔야 할 지도 모르겠다. 영적 갈급이 채워지는 그런 사회적 질서로... 영성을 정점으로 해서 사회질서를 재편하는 게 정말 근원적인 혁명일지도 모르겠다. 

(3) 영성을 정점으로 한 사회 질서는... (이것을  Ich-Du의 관계로 이야기할 수 있을 지도...) 현대 사회학의 학문적 언어로 표현하기 힘들다. 대안은... 그런 점을 전제로 삼고서, 그러니까 괄호치고 나서 그 나머지만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포츠의 경우... 현대 스포츠의 관계를 Ich-Du의 관계로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한쪽에 응원하는 관중, 대중, 팬이 있고, 다른 쪽엔 그 기대를 채워주는 존재로서 선수, 팀이 있는... 또 다른 한 쪽에 그 관계에 빌붙어서 사는 스포츠 언론, 관련 운영 조직 등이 있는... 그런 스포츠는 Ich-Es의 상태를 조장하니까... 
과학의 경우...  Ich-Du 관계를 지향하는 그런 과학! 과학 윤리도 Ich-Du 관계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지금은 윤리도 Ich-Es 관계를 지향하는 철저하게 객관화된 그런 것이다. 좀 더 일상적인 도덕 역시 Ich-Es 관계에 지배된다. 대중매체, 정치적 맥락 등에 의해서... 그런 점에서 더 일상적인 그런 가치 판단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어쩌면 과학 윤리, 그 중에서도 생명윤리에 대한 연구는 현대 사회에서 과학을 둘러싼 윤리적 혹은 도덕적 접근에서 드러나는 Ich-Es 관계를 보여준다는 데 의의가 있을 지도... 다시 말해 불편한 진실!
아직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더라도... 
야구를 보지 않기로 한 중요한 이유는 선수들에 대한 내 태도에 나 스스로 놀라기 때문이다. 그들의 경기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 선수들, 감독 등에 대해서 미움이나 - 심지어 - 분노의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이 마음은 도대체 뭔가? 도대체 그들이 내게 뭘 잘못했다고... 관심이 있으니까 미워한다? 그런 식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내가 떠올린 설명은 Martin Buber의 '나-너', '나-그것'의 구분이었다.

"'나' 그 자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다만 근원어(Grundwort) '나-너'의 '나'이거나 근원어 '나-그것'의 '나'일 뿐이다."
"내가 경험하는 것은 '그것'일 뿐이다. ... 경험으로 말미암은 인식은 사람의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사람과 세계와의 '사이'(Zwischen)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너'라는 말을 건넬 때 사람은 관계(Beziehung)의 상황 속에 서 있는 것이다"
"관계의 세계가 펼쳐지는 영역이 셋이 있다. 첫째는 자연과의 공동 생활이다. ... 둘째는 사람과의 공동 생활이다. ... 셋째는 정신적 실재(geistige Wesenheiten)와의 공동 생활이다. 

부버에 따르면 나를 존재케 하는 상대로서 '그것'과 '너'는 반드시 '사물' '사람'으로 대칭될 수 있지 않다. 그러니 "만일 나에게 그럴 의사가 있고 또 은총의 개입이 있을 때에는, 나는 나무에 대한 나의 관찰을 계기로 하여 나무와 관계를 맺을 수가 있다. 이에 이르면 나무는 내게 대하여 '그것'이기를 그치고 '너'의 그 독존성(獨尊性, Ausschliesslichkeit)으로 나를 사로잡아 버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너'의 관계가 종국에 다다르든가 혹은 수단으로 말미암아 혼탁될 때에는 '너'는 하나의 대상으로 화하고 만다". 이런 경우를 '그것化한 인간'(Es-Menschenheit)'이라고 표현한다.

기아 타이거즈 선수들은 나와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게 아니라, 내 경험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내가 원하고 기대하는 결과를 가져다 주는 'Es-Menschenheit'! Du에 대해서 갖는 분노와 Es에 대해서 갖는 분노는 '질'과 '격'이 다르다.

운전할 때 내가 분노를 느끼는 운전자들도 전형적인 Es 혹은 Es-Menschenheit다. 운전자 Es가 운전자 Du가 되로 바뀌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앞차가 너무 꾸물거려서 빵빵거린 적이 있었다. 그 때 그 승용차 뒷좌석에서 고개를 돌려서 나를 바라보는 얼굴이 보였는데... 애기를 안고 있는 여인네. 약간 슬픈 듯한 그녀 눈빛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람이 운전하는 걸 모를 일 없건만 도로 위에서 마추치는 차량들은 그저 Es일 뿐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내가 기대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분노의 대상으로 쉽게 바뀌는...

현대 사회에서 나의 상대가 Du인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고, 대부분은 Es-Menschenheit다. 그게... 현대의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물론 다른 면에서 현대에서 비로소 누리게 된 열매도 많이 있지만...  현대의 특징인 합리화, 분업, 기능적 분화 등은 모두 인간을 원칙적으로 'Es-Menschenheit'로 상정함으로써 가능하다. 이런 현상을 개인화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근대 자본주의 경제가 돌아가려면 돈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 전혀 중요하지 않다. 얼굴없는 소비, 생산, 거래의 주체들이 있을 뿐... TV나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그 존재를 알게 되는 사람들은... 나에게 대부분 'Es'일 뿐이다.

이런 양면성, 딜레마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도대체 있을까? 야구야... 안 보면 되지만... 자동차를 포기할 수도,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없고... 정말 Ich-Du 관계에서만 살려면... 모두가 자급자족하는 조그마한 공동체 생활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 혁명적 변화는 소수에게나 가능하니... 현대사회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한다면, 가능한 Ich-Es 관계를 줄이고 Ich-Du 관계를 늘리는 수밖에... 티비에 얼굴 비치는 스타, 연기자들을, 프로야구 선수들을, 거리에서 마주치는 '동료' 운전자들을... 'Du'로 여기고서 말을 건네는 수밖에... 
리영희, 이원복의 책을 보면서 많이 놀란다. 해방 이후 세계 정세 속에서 남한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비로소 느끼기 때문이다. 남북한 현대사도 참 기구하지만...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현대 역사도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모자라지 않다. 동남아 국가들은 가로세로 세계사 1권이 다루는 발칸반도 국가들에 비해서 인구수가 훨씬 많다. 근현대 이전의 역사에 대해선... 그닥 흥미로운 얘기들이 없다. 세계사적, 혹은 지역사적 임팩트가 적다는 얘기겠지. 하지만...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확보의 대상이 되면서부터 얘기가 달라진다. 탈식민지 과정도 지극히 어려웠지만, 그 이후 독립국가로서 국가의 틀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도 그야말로 어려웠다. 대부분 군부 독재 등을 겪었고... 다른 점이 있다면 남한의 경우 적어도 한국전쟁 이후엔 좌우 갈등이 그리 크지 않았다. 북한의 존재 때문에 좌파의  싹은 애초에 자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갈등의 핵심은 군부독재에 대한 민주화 운동 정도...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좌우대립의 역사는 극적이다. 물론 순수한 좌우 이념대립이 아니라 인종간, 종교간, 계급간, 식민지 경험 등이 섞여서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양상이었지만... 이 지역을 식민지로 삼았던 유럽 국가들의 만행도 곳곳에 등장한다. 여하튼...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들. 흥미로운 사실들을 두서없이 몇 가지 정리해 놓는다.

- 인도네시아 1965년 9.30. 쿠테타 이후 수하르토 정권은 40여만 명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살해함. 대부분 자바, 발리 주민. 수하르토의 이념 판차실라, 인노네시아식 민주주의. 박정희의 '한국적 민주주의'는 사실 그리 독창적이지 않다는... 아, 실제 박정희는 인도네시아에서 1972. 10월유신 모델을 찾았다고 하네.
수카르노의 교도민주주의(guided democracy), 수하르토의 판차실라.
- 필리핀은 동남아시아 동쪽 끝, 섬나라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인종적으로 복잡하고, 종교의 영향을 덜 받았다. 종교, 강한 왕조에 대한 기억처럼 사회를 묶는 힘의 부재로 동남아시아를 주름잡던 역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16세기 초 에스파냐의 침략 이후 필리핀 역사가 시작되고 가톨릭을 믿게되어 현재 인구 80% 이상이 가톨릭 교도. 펠리페 2세의 이름을 빌려 필리핀이란 이름을 붙임. Felipe -> Filipin -> Philippines. 1898 에스파냐로부터 독립 선언, 미국-에스파냐 전쟁, 1901 미국 식민지. 1935. 필리핀 연방정부. 1965. 마르코스 취임. 마르코스의 독재는 경제를 망가뜨림.

2012년 7월 31일 화요일

아무래도 야구를 끊든지 해야지 원. 근성없고 머리를 쓸 줄 모르는 쓰레기 같은 플레이 때문에 성질 버리겠다. 이참에 페이스북, 스마트폰도... 이건 끊지는 못하겠지만... 많이...줄여야겠다. 벌써 7월을 다 보내지 않았는가. 8월이다. 정신차리기!!!
리영희, 이원복을 생각하며... 김구 선생을 떠올렸다.

'나의 소원'이란 글에서...

"네 소원(所願)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大韓獨立)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 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 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自主獨立)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


세계 인류가 네오 내오 없이 한 집이 되어 사는 것은 좋은 일이요, 인류의 최고요 최후인 희망(希望)이요 이상(理想)이다. 그러나 이것은 멀고 먼 장래에 바랄 것이요, 현실의 일은 아니다. 사해 동포(四海同胞)의 크고 아름다운 목표를 향하여 인류가 향상하고 전진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요 마땅히 할 일이나, 이것도 현실을 떠나서는 안 되는 일이니, 현실의 진리는 민족마다 최선(最善)의 국가(國家)를 이루고 최선의 문화(文化)를 낳아 길러서, 다른 민족과 서로 바꾸고 서로 돕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민주주의(民主主義)요, 이것이 인류의 현 단계에서는 가장 확실한 진리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으로서 하여야 할 최고의 임무(任務)는, 첫째로, 남의 절제(節制)도 아니 받고 남에게 의뢰(依賴)도 아니 하는, 완전한 자주 독립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 민족의 생활을 보장할 수 없을뿐더러, 우리 민족의 정신력(精神力)을 자유로 발휘(發揮)하여 빛나는 문화를 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완전한 자주 독립의 나라를 세운 뒤에는, 둘째로 이 지구상의 인류가 진정한 평화(平和)와 복락(福樂)을 누릴 수 있는 사상을 낳아, 그것을 먼저 우리 나라에 실현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날의 인류의 문화가 불완전함을 안다. 나라마다 안으로는 정치상, 경제상, 사회상으로 불평등, 불합리가 있고, 밖으로 국제적으로는 나라와 나라의, 민족과 민족의 시기(猜忌), 알력(軋轢), 침략(侵略), 그리고 그 침략에 대한 보복(報復)으로 작고 큰 전쟁이 끊일 사이가 없어서 많은 생명과 재물을 희생하고도, 좋은 일이 오는 것이 아니라 인심(人心)의 불안(不安)과 도덕(道德)의 타락(墮落)은 갈수록 더하니, 이래 가지고는 전쟁이 끊일 날이 없어, 인류는 마침내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 세계에는 새로운 생활 원리(生活原理)의 발견(發見)과 실천(實踐)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담당한 천직(天職)이라고 믿는다. 이러하므로, 우리 민족의 독립이란 결코 삼천 리 삼천만만의 일이 아니라, 진실로 세계의 전체의 운명에 관한 일이요, 그러므로 우리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곧 인류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의 오늘날 형편이 초라한 것을 보고 자굴지심(自屈之心)을 발하여, 우리가 세우는 나라가 그처럼 위대한 일을 할 것을 의심한다 하면, 그것은 스스로 모욕(侮辱)하는 일이다. 우리 민족의 지나간 역사가 빛나지 아니함이 아니나, 그것은 아직 서곡(序曲)이었다. 우리가 주연 배우(主演俳優)로 세계 역사의 무대(舞臺)에 나서는 것은 오늘 이후다. 삼천만의 우리 민족이 옛날의 그리스 민족이나 로마 민족이 한 일을 못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武力)으로 정복(征服)하거나 경제력(經濟力)으로 지배(支配)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것이다. 어느 민족도 일찍이 그러한 일을 한 이가 없으니 그것은 공상(空想)이라고 하지 마라. 일찍이 아무도 한 자가 없기에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이 큰 일은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남겨 놓으신 것임을 깨달을 때에 우리 민족은 비로소 제 길을 찾고 제 일을 알아본 것이다. 나는 우리 나라의 청년 남녀(靑年男女)가 모두 과거의 조그맣고 좁다란 생각을 버리고, 우리 민족의 큰 사명(使命)에 눈을 떠서, 제 마음을 닦고 제 힘을 기르기로 낙(樂)을 삼기를 바란다. 젊은 사람들이 모두 이 정신을 가지고 이 방향으로 힘을 쓸진댄, 30년이 못 하여 우리 민족은 괄목상대(刮目相對)하게 될 것을 나는 확신(確信)하는 바이다."

다른 글에서는 또 이렇게...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는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힘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결국... 민족, 국가의 '자주'와 '문화'다. '자주'(自主), 즉 스스로 주인이 되려면... 이 시점에서...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특히, 미국, 중국, 일본 등 외세와의 관계를 생각할 때... 결국 남북통일을 해야 한다. 그것은 남쪽에서 상식을 세우는 기초가 된다. 결국, 상식은... 항상 남북관계를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통일을 하고 상식을 세우는 기초 중 기초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 경제력, 정치력을 잘 활용해야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모두 한계가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 그것으로도 한계가 있다. 세계적 보편성을 띤... 아니 새로운 세계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그런 문화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생각을 좀 더 해보면 김구 선생의 견해는 지극히 원론적이어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드러난다. 자주적이라는 것은 목적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더군다나 '자주적'이란 게 상대적인 개념임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예전에 민주화 운동이 왕성하던 시기에 '정치적 민주주의'(작게는 '직선제')는 목표였지만, 그래서 민주주의가 실현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지만... 왠걸... 정치적 민주주의는 절차일 뿐이었다.
'문화' 역시 막연하기 그지 없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그런 '문화'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결론은? 우리는 복잡성을 감내하면서, 근대사회의 장점과 단점, 남한의 한계와 장점, 성취한 것과 남은 과제,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고려하면서... 그저 조심스럽게 문제를 하나씩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변화, 혁명을 꿈꾸지 않는 한...
어쩌면 혁명은 소규모 공동생활, 협동조합... 그런 방식으로 나타날수도...
영성을 키우는... 그런...
요즘 오며 가며 지하철에서 읽고 있는 있는 책이 있는데 매우 흥미롭다. 리영희의 '대화', 그리고 이원복의 '가로세로 세계사'. 내용 자체도 물론 유익하고 재미있지만 무엇보다 저자가 살아온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나서 좋다.
리영희의 경우 외신전문기자,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 있었던 교수로서의 삶에서 국제적 정세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것의 의미를 한국에 전달하려는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팩트'를 수집해서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팩트가 넘쳐나는 시대였다면 아마 그는 다른 방식으로 작업했을 것이다. 어쩌면 역사철학 같은... 왜? 지금은 사실보다 해석이 더 중요한 시대니까... 어쩌면 지금이라면 오히려 더 보수적 인사로 여겨졌을 듯... 여하튼 그는 미국에 종속된 나라 꼴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다. 어쩌면 자주적인 나라,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국가... 라는 아주 상식적이고 소박한 꿈을 가졌던 것 같다. 
이원복 선생은 한국이 아주 못살던 시절 독일에 유학 간 이후 경험한 선진국의 부러운 모습을 소개하는 것을 사명으로 목적으로 삼았다. 그 작업의 결과가 '먼나라 이웃나라'. 이제 한국이 선진국 문턱에 있으니 미래비전을 생각해 봐야 하는데 이 책 '가로세로 세계사'에선... '나는 잘사는 부자 나라, 힘이 센 나라도 좋지만 우리가 만들어야 할 새 선진 대한민국은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나라'여야 한다고 믿는다... 남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나라는 세계를 품어 안고 이해할 수 있는 넉넉한 국민에 의해 이루어진다. 우리들이 21세기 세계를 이끌고나가기 위해서는 세계를 알아야 하고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가로세로 세계사'를 시작하는 가장 큰 이유다'.
여하튼...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래서 일관되게 작업할 수 있었고, 결국 그렇게 큰 족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나고 나면 다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결정은 지금 내리는 것이고, 지금 이 순간엔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더군다나... 시대가 변했다. 세상은 더 복잡해졌고, 무엇이 옳고 의미있는 길인지를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 
물론... 지금 당장. 한국에 주어진 과제는 분명해 보인다. 상식과 원칙을 바로 세우기! 이 모든 게 가카 덕이다. 그 양반이 비상식, 몰상식의 극단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안철수만큼만 얘기해도 한국에선 '진보' '빨갱이' 소리를 들을 판이니...
이원복 선생의 말처럼 한국이 '존경받는 나라'가 되려면... 다른 것 필요없다. 안철수가 그리는 그런 모습만 되어도 충분하다. 상식이 통하는 나라, 공존 공생하는 나라... 좀 자주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그런 나라...
세계화된 사회니까... 충분히 열려 있으면서 세계적인 가치와 기준을 만들어내고 지키는 그런 나라. 동시에 당당하게 우리의 기준을 가지고 자주적으로 결정하는 그런 나라... 

2012년 7월 30일 월요일

―굳이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 필요가 있나. 죽을 때가 오면 죽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 내 삶도 그렇게 바뀌었다. 죽음을 배우면 죽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삶이 달라진다." 


 ―죽음에서 무엇을 배운다는 건가? 


 "죽음은 혼자 떠나는 것이다. 모든 걸 남겨두고 간다. 우리 삶은 갖고 가지 못하는 것들에 너무 집착한다. 마지막을 생각하면 삶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때 훨씬 현명해진다. 중세 수도원 수사들은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고 서로 인사했다. 자신의 마지막과 소통한 것이다."

오늘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 중 일부다. 대구의료원의 호스피스 병동을 책임지는 의사 김여환(47)씨와의...

지난 해 어떤 계기가 있어서 '자살'과 '죽음'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공부한 적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쓰려던 자살에 대한 논문을 완성하진 못했지 그 공부 자체는 매우 유익했다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을 천선영 교수가 이미 해 놔서 새삼스럽게 그 분야로 뛰어 들 엄두를 내진 못하겠지만, 생명윤리의 사회학과 관련해서 충분히 연결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생명윤리의 '생명'이 그야말로 모호한 개념이라서 '생명윤리'라는 개념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학자들도 있는 것 같지만... 바로 그 때문에 '생명윤리'가 요즘 유행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명윤리엔 심지어 죽음의 윤리도 포함하고 있다. 생명윤리와 비슷한 이중적 대접을 받고 있는 개념이 생명과학, 생명공학이다. 모호하지만 그 모호함 때문에 사랑받는...

생명과학 논의에선 실제로 '생명'에 대한 다양한 이해가 드러난다. 노련한 과학자들은 그것을 잘 이용하기도 하고... "'생명' 앞에서 그 무엇도 소중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좀 진부하다. (어제 목사님 설교도 그런 내용이었다. 군대 귀신 씌인 청년을 살리기 위해서 수 천명의 돼지가 죽는 사건... 청년의 생명이 귀하다! 뭐 그런...) 물론... 그런 명백한 생명의 위기 상황은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을 것이다. 배제의 증가 경향 때문에... 하지만 생명의 위기는 덜 절박한 방식으로도 여기 저기에서 관찰된다. 그래서 이젠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할 경우들이 늘고 있다. 선택의 가능성들, 기대할 수 있는 여지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앎이 오히려 혼란스럽게 만드는....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얘기는 더 이상 '금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모를 권리' (Recht auf Nicht-wissen-wollen) 같은 개념이 등장했을까...

이젠 더 많은 지식은 행복으로 이르는 지름길이 아니다. 지식과 정보의 홍수, 아니 쓰나미 속에서 생존하려면 지식과 정보 다이어트가 필수부가결하다. 하지만... 나 혼자서... 다이어트한다고 될 일만도 아니다. 예를 들어서... 태아에 대한 유전자 검사 등을 거부하더라도... 혹시 유전적 질병을 가지고서 태어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따질 경우 그런 검사를 받지 않은 점이 고려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알려면 알 수 있는데 모른다는 건... 애초에 모르는 것과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더 많은 지식이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해 줄거라는 소박한 믿음을 유지하기란... 더 힘들어지고 있다.
다시... 월요일... 7월의... 마지막...이틀...

어영부영... 오전 시간이 거의 다 갔다. 덥지만... 오늘도... '따뜻한' 커피를 내려 마시고...

계속된 무더위 때문에 에어컨, 선풍기를 하루 종일 끼고 살고 있다. 그 탓인지 며칠 전부터 콧물이... 다행이 더 심각한 감기 상태로 악화되지는 않는데... 여하튼 이래 저래 힘든 시기다.

그래도... 가을 기운이 갑자기 다가온다면... 그건 더 반갑지 않을 것 같다. 아니... 무섭게 느낄 것 같다. 그러지 않도록... 여름 기운이 있을 동안에 최대한 끌어 올려야 할 것이다.

2012년 7월 25일 수요일

'상식/ 비상식'을 '합리/ 비합리'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 상식적인 것은 합리적인 것이고, 비상식은 비합리적인 것일까? 결론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아니 엄밀하게 볼 때 그런 연결은 불가능하다. 왜? 상식과 비상식을 엄밀하게 정의내리고 구분할 수 있는 그런 기준이 없다. 합리, 비합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그러니 굳이 이 두 카테고리를 연결시키려면 어떤 기준에서 볼 때 그럴 수 있는지, 아니면 그럴 수 없는 지를 우선 이야기해야 한다.
한국은 지금 진보와 보수가 아닌 상식과 비상식 간의 싸움이라고 하는 것은... 널리 알려져있는, 기대되는 기준이나 원칙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생각의 표현일 것이다. 그것은 공정/비공정 카테고리로도 이야기되는 것 같다. 곧 '상식/비상식'은 '공정/비공정'과 유사하다! '합리적'이란 표현은 상황이나 사람의 행동이 설명가능하고, 예측가능할 때 사용되는 것 같다. (to be continued ^^)
아무리 덥다고 해도 사무실에 있으니 그래도 견딜만하다. 내 공간이 충분히 넓고, 선풍기도 있고... 게다가 1시간 전부턴 미지근하지만 에어컨 바람까지 나오니...  심지어 조금 전엔 '따뜻한' 커피를 내려 마시는 여유를...
쇼팽의 Nocturnes을 듣고 있다. 夜想曲이라... 피아노 소리가 시원하다. 바흐는 겨울에 더 어울리는듯.

2012년 7월 24일 화요일

어제 힐링캠프 안철수 편을 재미있게 봤다.예전에 '좋은 행정, 나쁜 정치'를 구분하고 '전문가의 정치' 같은 것을 얘기하던 모습에서 좀 진전된 것 같아 보이긴 했다. 하지만 정책은 그렇다치고 그 정책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정치'에 대한 언급은 없었던 것 같다. 책에서 그런 얘길 좀 했을까? 여하튼 고민을 많이 한 티는 났다. 민주당의 조직이라는 몸에 안철수의 몸이 결합되어서 대선을 치루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문재인은... 총리나 하고... 그 양반 요새 좀 실망이어서... 대통령은 큰 그림을 그려야하니까 (멩박이도 큰 그림을 그리긴했다. 강들이 서로 서로 '통'하여 연결되는 그런... 너무 원대해서 범인들은 감히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도 힘든... 다행히도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여하튼 미친... )... 문재인은 총리 정도가 어울리는 그릇인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안철수씨가 책을 쓰는 이야길 했다. 책상 위에 책을 쓰기 위한 자료들을 놓고 또 읽고서... 결국 책 한 권으로 결과물이 집약되어서 나오면 그 자료들을 다 치워도 좋다는 취지의... 그 얘길 들으면서 뜨끔했다. 수 년동안 쌓아놓고 들고 다니는 자료들... 한 번 싹 치우고 싶다는...
도대체 난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건지.... 내가 읽은 것 고민한 것을 도대체 어떤 결론으로 집약해서 표현할 것인지 고미하던 차에 도전이 되는 얘기였다. '안철수의 생각'을... 나도 사 줘야 하나?

2012년 7월 19일 목요일

기아 타이거즈 +1로 전반기 마감. 전반기 마지막 인터뷰하는 선동렬 감독 표정이 무척 밝다. So am I!!

2012년 7월 18일 수요일

지하철 옆자리 아주머니. 약밥인지 참기름향 나는 무엇을 꺼내 한 입 드신다. 공공장소에서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에 예민한 편인데 오늘은 그런 마음이 크게 들지 않는다. 우리들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 같아서다. 비오는 늦은 밤... 마음이 짠하다.
잠들기 힘든 밤. 캄캄한 거실에 나와 창밖을 내다보며 포도주를 마시다. 생각이 많아서일까...

2012년 7월 16일 월요일

한참 열심히 하다가 점심 탓에 맥이 끊겼다. 흐름을 다시 찾기가 쉽지 않다. 주말을 보내고 난 월요일이라 더 그런지도... 주말에 충분히, 게다가 알차게(!) 잘 놀았는데도... 놀 때 잘 놀아야 일의 능률이 높아진다는 내 지론이 무색하게... 날이 그리 덥지도 습하지도 않고... 환경적인 조건은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데도... 점심을 많이 먹은 것도 아니고, 게다가 맛있는 커피를 앞에 두고 있는데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무식하게 하는 수밖에... 더군다나 오후엔 '숙제검사'를 받아야 하지 않은가...

2012년 7월 11일 수요일

다시 아침. 비. 커피. 그리고 스무디 킹 출신의 시저 닭가슴살 랩.

2012년 7월 10일 화요일

모처럼 바람을 쐬고 왔다. 암. 이런 날도 있어야지. 다 재미있게 살자고 하는 일들 아니던가. 빅 재미를 얻으려다 잔재미들을 희생시켜선 안 될 것이다.
사진발 잘 받는 흐린 날이었다. 그래봐야 고작 핸드폰 카메라...ㅠ ㅠ 지금 보니 사진이 너무 어두운 것 같기도 하고...




2012년 7월 5일 목요일

예술, 미적 감수성

"이 논문은 우리가 현재 처한 현실이 근대의 구성물임을 재확인하고 현대사회의 병리에 대처하는 데 예술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목적에서 작성되었다. ... 아도르노(Theodor W. Adorno)는 판단력의 미적 가능성에 기대를 건다. ‘전통적인’ 근대 패러다임은 아도르노의 예술론을 통해 새롭게 사회적 구속력을 기 대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예술이 본래 위상을 회복하고 근대성의 핵심요소로서 다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면, 근대성 논의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 (이순예 2010, 근대성, 합리와 비합리성의 변증법. ) 

이 구절을 읽으면서 어제 읽었더던 하르트무트 로자(Hartmut Rosa)에 대한 die Zeit 기사 내용이 생각났다. 로자의 새 책 "Weltbeziehungen im Zeitalter der Beschleunigung"을 소개하는 이 기사에 따르면 로자는 주체가 세계와 성공적 관계를 맺는데 (gelingende Weltbeziheungen) 더 많은 "미적 감수성(Ästhetik), 자연(Natur), 종교(Religion)" 등이 도움이 될 거라고 얘기하는 모양이다. 이순예 선생이 아도르노를 통해서 제시한 '예술'과 로자의 '미적 감수성'을 연결시켜 볼 수 있겠다.
큰 비가 내리려는지 하늘이 흐리다. 내 마음도... 초큼...  늦은 오후에나 냉방을 하더니 오늘은 웬일인지 오전부터... 높은 습도 탓에 혹시라도 업무효율이 떨어질까봐 세심히 배려한 탓일까. 내일 검사받아야 할 숙제때문에.. 마음이... 초큼... 무겁다. 잘 풀리지 않는 것이다. 일단 큰 틀을 포기하고 세부적인 내용을 채워 넣으려고 한다. 그러다보면 그림이 다시 그려지겠지...

2012년 7월 3일 화요일

'남자의 물건' (김정운, 2012) 중에서

책 반납하기 전에 인상적인 구절을 좀 남겨 놓으려고...

p.23: "우리의 삶이 재미없는 이유는 '선택의 자유 freedom of choice'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모이면 군대 이야기다. 이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한 트라우마를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꾸 반복적으로 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이유는 뭔가 심리적으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모여 앉으면 시집살이 이야기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 선택의 자유는 인간 존재의 근거다. ... 요즘 유행하는 행동경제학의 '넛지 nudge' 같은 개념은 바로 이 선택의 자유에 관한 경영학적 변형이다. 방향만 은근슬쩍 제시하고 최종 결정은 스스로 내리도록 해야 행복해한다는 것이다."

p.32: "... 마르크스 <자본론> 어딘가에 있는 내용이다. 행동을 하기 전에 목표를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이야기다. ... 목적과 상상력, 이 두가지가 인간 행위의 본질이다. 목적을 떠올리고 그 목적을 향한 행위를 가능케 하는 그 힘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심리적 경험의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 이를 심리학에서는 '모티베이션 motivation'이라는 개념으로 다룬다. 그러나 뫁티베이션은 아주 애매한 미국식 개념이다. .. '모티베이션' 혹은 '동기'로 번역되는 이 실행 동력의 한국식 조작적 정의는 과연 어떤 것일까?
'설렘'이다. 가슴이 뛰고, 자구 생각나고, 목표가 이뤄지는 그 순간이 기대되는 그 느낌을 우리말로는 '설렘'이라고 한다. ... 설레는 일이 있어야 삶이 행복하고 재미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분명해야 설레는 삶을 살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지난 한 주간 내 일상에서 가장 기분 좋았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된다. 내가 가슴 설레며 기다렸던 일을 기억해내면 된다. 바로 그 일들이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것들이다. 그 설레는 일들을 끊임없이 계획하며 살면 된다. "

p.42: "세계 모든 문화권에는 '겸손하라!'는 도덕적 명령이 존재한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겸손은 본질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덕목이기 때문에 그런 도덕적 명령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거다. 누구나 자기 잘난 거 잘난 체하며, 폼 나고 싶어 한다."

p.45: "삶의 속도가 급변하여 생기는 문화병의 치료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걷기'다. 수백만 년에 이르는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걷는 속도'에 적응해 발달해왔다. 감당하기 어렵게 빠른 삶의 속도는 불과 지난 몇백 년 동안의 일일 뿐이다."

p.63: 새해의 결심이 좌절되는 이유는 내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 옹골찬 계획을 이뤄내기 위한 방법론에 뭔가 치명적인 오류가 있는 까닭이다. 나 자신과 싸우려고 달려들기 때문이다. 언제가부터 '나 자신과이 투쟁'이 하나의 문화 트렌드가 되었다. 마라톤... 산 정상... 성공한 사람...
불안해서 그렇다. ... 자신의 불안한 내면의 원인이 분명치 않으니 외부에서 그 원인을 찾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바깥의 적은 그리 만만치 않다. 그래서 스스로를 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불안할수록 사람들은 그 불안의 원인을 자기 내부에서 찾는다. 그래야 문제의 내용은 물론 해결책도 간단해지기 때문이다. 착하거나 혹은 비겁한 이들의 특징이다. 그러나 미래는 원래 불안한 거다.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는 무한 지속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견디지 못해 1년 365일을 만든 것이다. 무한한 미래를 1년 단위로 끊어놓으면, 미래가 매년 새로 시작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365일이 지나면 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미래는 그다지 무섭지 않다. 영원으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매번 반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해는 인류가 시간의 공포와 불안에서 풀려나기 위해 지난 수만 년간 고안해낸 마법이다. ... 새해에는 즐거운 결심을 해야 한다. ... 제발 나를 괴롭히며 싸워 이기려고 달려들지 말자. 이미 충분이 많이 싸웠다. 나 자신은 절대 싸워 이겨야 할 적이 아니다. 조곤조곤 이야기하며 설득해야 할 아주 착하고 여린 친구다."

p.75: "개념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문화적 약속이다. 혼돈스러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사람들은 개념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다. 일단 개념이 한번 성립하면, 그 개념은 역으로 또 다른 실재를 만들어낸다. 개념과 실재 사이에 성립하는 이와 같은 상호 규정을 '해석학적 순환 hermeneutischer Zirkel'이라고 한다."

p.86: "아이들이 발달 과정에서 내면화하는 도덕적 규범들의 초기 형태는 '사회적 참조 social referencing'라는 현상으로 설명된다. 낯선 상황 혹은 낯선 대상에 대한 아이들의 규범적 판단은 어머니의 정서적 반응을 참조해 결정된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난생처음 흑인을 본 아이는 어머니의 표정을 살핀다. 어머니가 당황해하거나 어색하면 아이의 반응도 똑같아진다. ... 흑인에 대한 문화적 편견은 이렇게 주변인들의 정서적 반응을 참조하는 과정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등과 같은 사회적 소수집단에 대한 편견 또한 이런 식으로 세대를 건너며 전달된다. 물론 왜곡과 편견의 해소 또한 동일한 방식으로 가능하다."

p.98: 하버마스가 이야기하는 도구적 합리성과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심리학적 근거는 '함께 보기 joint-attention'라는 상호작용이다. '마주 보기 eye-contact'와 더불어 '함께 보기'는 아동의 의사소통 발달의 핵심현상이다. ... '함께 보기'로부터 시작하는 상호간의 '관심 공유' '의도 공유'야말로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심리학적 기초다.

p.103: "인간은 불안하다. 유한한 존재는 죄다 불안하다. 그 불안의 실체는 시간이다. 도무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불안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은 죽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죽음에 대한 불안 또한 그 본질상 시간에 대한 불안이다.
시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기 전, 인류는 자연을 두려워했다. 도무지 통제가 안 되기 때문이다.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인간은 스스로의 의식을 바꾸는 방식으로 극복했다.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으로 바꿔 버리는 기술을 만들어 낸 것이다. 원근법이다. 도무지 통제 불가능한 대자연의 공간을 2 차원의 평면 위에 그려낼 수 있게 되자, 자연은 곧바로 인간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소실점으로 회귀하는 객관적 척도를 발명한 것이다. 아울러 소실점을 기준으로 누구나 납득할 수 있게 비율로 그려내는 자연의 미메시스는 인간 합리성의 토대가 된다. 이는 근대 과학의 기초가 되고, 인간은 드디어 자연을 마음대로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공간과는 달리 시간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극복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에게 차원을 줄이는 지혜가 있었다. 4차원의 시간도 3차원 공간으로 줄이면 된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시계다. ... 시계의 본질적 기능은 반복이다. 도무지 어디로 흐르는지 모르는 시간이 시계라는 3차원의 물건에 들어가자, 시간은 이제 반복되는 게 되었다. ... 오늘 잘못하면 내일 다시 시작하면 된다. 그것도 잘 안되면 내년에 또다시 시작하면 된다. ... 이런 식의 도덕적 해이를 벗어나기 위해 인류는 또다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낸다. '발달 development'이다. ... 성장과 발달의 개념은 역사의식과 더불어 나타난 근대적 발명이다. ... 사회처럼 각 개인도 발달학 성장해야 한다. 그래서 발달심리학이 탄생한다. 인간의 발달은 영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기에서 완성되는 것으로 암묵적 합의가 이뤄진다."

p.105: "성인이 됨과 동시에 대부분 죽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나이 마흔을 불혹이라 했을까? 오늘날 '마흔 불혹'의 뜻은 바뀌었다. '아무도 유혹하지 않는 나이'라는 뜻이다."

p.107: "우리의 '가족'이 그토록 갈등인 이유는 가족의 사회적 표상이 너무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다..."

p.139: "사람이 왜 그렇게 금방 싫증을 내는가에 관해 칙센트미하이는 '능력'과 '과제'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한다. 과제가 내 능력보다 어려우면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걱정에 빠진다. 반대로 과제가 내 능력보다 못하며 지루함과 권태를 느끼고 무관심에 빠진다. 그러니까 내 능력과 과제는 지속적으로 서로 발전해야 끊임없이 몰입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이 발전의 동력은 약간씩 어긋나는 능력과 과제의 관계다. 내 능력보다 과제가 약가 더 높은 것은 바람직한 것이다. 견딜 만한 불안이다. 이 경우 각성 상태가 유지되며 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더욱 몰두하게 된다. ... 인터넷 게임... 그래서 공부하는 게 제일 재미있는 일이다. 자기 능력이 향상되며 과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p.157:  이어령 편 "'언제 외로우세요?' ... '디스커뮤니케이션 discommunication.' '미스커뮤니케이션 miscommunication'이 아니고 '디스커뮤니케이션'이다. 미스커뮤니케이션은 소통의 의지는 있으나 내용이 잘못 전달되는 경우다. 그러니 디스커뮤니케이션은 다르다. 소통의 의자 자체가 아예 없거나 화자의 의도가 애초부터 왜곡되는 현상이다."

2012년 7월 2일 월요일

7월의 첫 월요일... 그렇다. 자그만치 7월이다. '6월말까지...'라고 약속한 게 있었는데 그것을 지키지 못해서 마음 한 구석이 무겁다. 기대하는 일이 하나 있었는데... 그래도 안되어서 다른 한 구석도 무겁다. 이런 저런 일때문에 사람들 만나는 일이 그리 편치 않는 경우가 있어서 또 다른 한 구석은 찜찜하다. 그래도 가장 힘이 되는 건... 내 식구들이다. 그렇지. 이제 식구들이란 표현이 어울리지. 7월을 맞이하여 심기일전 논문에 매진하기로 했다. 다른 길이 모두 막혔고, 물리적 환경도 최상의 조건이고, 12월이 되면  생활 환경이 완전히 바뀔테니 그 때까지의 시간은 두번 다시 오지 않을 마지막 기회다.

2012년 6월 29일 금요일


"...파버카스텔의 만년필 뚜껑은 무척 무겁다. 다른 만년필처럼 뚜껑을 뒤쪽에 끼고 쓰기 어렵다. 물어보니 돌아오는 대답은 간단하다. 뚜껑이 가벼우면 파버카스텔 만년필이 아니란다. 뚜껑을 뒤에 껴서 쓰는 만년필은 폼이 안 나기 때문이란다. 불편해야 고급이라는 거다..." (김정운 '남자의 물건'에서)

꼭 그래야 폼이 나는 건지, 더 고급인지는 모르겠지만...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던 특징에 그런 이야기가 얽혀 있을 줄이야...
언제부터인지 소설 읽기가 힘들다. 아니 읽어보려 해도 읽어내기가 힘들다. 소설의 느린 흐름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아애 느리거나 아니면 빠르거나 해야 눈에 들어 오는 것 같다. 아애 느린 쪽은... 詩나 그림같은... 머리 속으로 그려 볼 수 있는...  아니면 아주 짧은... 단상... 정곡을 찌르는 기가 막힌 표현들이 언제부터인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반어적, 역설적 표현들... 빠르다는 것은... 맛있는 정보의 전달이 쉽게 잘 되는... 소설처럼 산문적 표현의 힘을 빌지 않고 바로 내지르는... 김용옥, 진중권, 김정운의 글을 그래서 좋아한다. 굳이 소설을 읽는다면... 아마 호흡이 빠른 SF나 스릴러, 추리 쪽이 내 취향일 것이다. 그 반대 쪽에 감성적 에세이나 한껏 멋을 부린 느린 소설이  있고...

2012년 6월 28일 목요일

"비도덕적 인간과 도덕적 사회"

물론 이는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Moral Man and Immoral Society)를 비튼 표현이다. 니버의 주장의 핵심은 그가 서문에서 요약한 대로..

"개인의 도덕적-사회적 행위는 사회 집단의 도덕적-사회적 행위와 엄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 집단의 도덕이 이처럼 개인의 도덕에 비해 열등한 이유는... " 이 구분을 통해서 니버는 "순전히 개인적인 윤리로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정치 영역들"이 있음을 인식해야 하고, "인간 사회의 정의를 획득하기 위한 싸움에는 정치가 꼭 필요"함을 주장한다. 개인 윤리 차원에 집중해서는 사회 정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국가'란 억압의 수단일 뿐이므로 소멸되어야 하는 것으로 본 마르크스주의적 국가관, 국가를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제로 보고 최소화해야 한다고 보았던 자유주의적 국가관을 비판하는 것이다. 자유주의가 지배적인 미국에선 국가의 긍정적 역할을 강조하는 꽤 진보적 입장이었을 것이다.

2012년 6월 27일 수요일

연애에서 신혼까지...그 기간은 아름답다. 아니... '알흠답다'. 참으로... 모두...눈을 덮고 있는 '꽁깍지' 때문이다. 대통령이나 수상 등 새로운 국정 책임자가 권좌에 오르면 이후 한동안 언론이 좀 봐준다. 정치인, 행정부의 부정, 잘못을 까발기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 언론들도 말이다. 이를 허니문 기간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애초에 나쁜 관계로 출발할 필요 없는 공적인 만남... 예를 들어, 같은 조직 내에서... 물론 처음 그 관계를 지배하는 것은 첫인상이다. 그러나 그건 매우 짧은 순간이고... 이내 그 사람에 대한 훨씬 더 다양한 정보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정보의 생성과 유통 정보는 매우 복잡하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이는 구성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 frame되는 것이다.) 이러저러한 정보에 근거해서 한 사람에 대한 판단이 내려진다. 고쳐지고, 또 새로운 판단이 내려지고, 또... 부정적 판단이 긍정적으로 바뀌기도 하고, 호감이 비호감으로 바뀌기도 한다. 같은 부서원이나 친한 사람들에겐 호감인데, 좀 무뚝뚝한 탓인지, 교류가 많지 않은 사람들에겐 비호감으로 비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 드물게 모든 사람에게 두루두루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정말... 드물다.
결론은... 뭐... 뻔하다. 호감을 주는 요소를 강화하고, 비호감을 주는 요소는 없애거나 개선하라! 타인의 판단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만... 이왕이면 호감형 인간이 좋지 않을가? 자주 볼 일 없어도 보면 반갑고 좋은... 스스로 그런 인간형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암... 
각국 장애인 관련 제도, 정책을 보면서 배우고 느끼는 점들이 많다. 특히 소위 신자유주의의 천국이라고 이야기하는 영국과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장애인 등 소수자를 배려하고 인정하는 정책이 발달되어 있는 편이다. 직접적으로 장애인 차별이나 권리를 보호하는 법, 정책 뿐 아니라 인권, 차별금지 등 보편적 접근 역시 발달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정책이나 제도가 신자유주의와 본질적으로 갈등을 일으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각종 소수자, 약자의 권리 보장은 자유주의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능한다. 이는 복지제도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는 너무 많은 이들이 빈곤상태에 이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먹여살려서라도 그들의 소비를 이끌어내야 비로소 자본주의는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권 등 소수자 보호 정책과 복지 제도의 한계를 지적하는 '근본주의자들'도 있다. 그들은 이런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엎어야 비로소 새세상, 새누리가 열린다고 주장한다. 복지제도나 인권 등 윤리는 그저 미봉책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너무도 이상적인 주장이라서 실현가능성이 적어보이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너무도 황당한,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버젓이 자행되는 곳이라서... 미래 바람직한 변화의 모습에 대한 기대 수준을 상당히... 매우 낮은 곳으로 끌어내려야 하는 것이다. 인권, 복지라도 제대로 적용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이후 같은... 꿈은 꾸되... 눈은 좀 낮은 쪽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월요일엔 여행 후유증으로, 어젠 병원 다녀오고 점심 거하게 먹고 새텔레비전 설치하고 용돈 벌이용 원고를 쓰느라, 오늘 오전엔 어제 못다 쓴 원고를 마저 쓰느라 보냈다. 내 공부와 관련해서 지금 상태는 지난 목요일 저녁과 같다고 봐도 좋을듯. 리듬을 다시 잡기가... 이렇게 힘들다. 8월 경에 기대했던 일이 하나 있는데... 점심 때 확인해 보니... 그것도 물 건너 갔다. 한편으로 섭섭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지금 내게 남은 과제 그리고 학술대회에서 느낀 그 느낌을 그대로 쭉 밀고 가는 길만 남은 셈이라 오히려 홀가분하기도 하다. 배수의 진을 쳤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빠져나갈 구멍이.. 아니 조그마한 틈이라도 없는지 찾기 마련이다. 그럴 여지는... 기가 막히게도 잘 찾아낸다. 지금 내겐... 고맙게도... 그럴 구멍, 틈이 거의... 거의... 보이질 않는다. 잘 되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한 길... 한 길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2012년 6월 25일 월요일

학술대회 참석 등으로 평소와 다른 리듬으로 주말을 보낸 후 맞은 월요일의 사무실. 학술대회를 계기로 만난 이들과 함께 얘기 나누면서 얻은 넓은 시각이 '급'좁아지고, 자유로운 정신 등이 '급'냉각되는 곳이다. 비록 실내온도는 30도에 육박해서 뜨거운 열기가 지배하지만... 어서 빨리 학문과 교육의 세계로 뛰어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어서...

2012년 6월 21일 목요일

사귐 혹은 관계맺기의 출발은 공감대찾기다. 공감대는 과거 혹은 이미 지니고 있는 것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미래에서도 찾을 수 있다. 어찌되었건 공감대를 찾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안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아애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는 게으름보다는 백 반 낫다.
오늘도 호랑이는 고양이 짓을 할 뿐이고... (2:7로 지다)
모처럼 참석한 회식자리에선 ... 공감하기 힘든, 혹은 별로 공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오고가고...
사실... '공감'의 전제는 '관심'이다. 특히 사람... 삶에 대한 관심... 그것에 대한 관심이 없는 건 아니나... 그저 일화에서 일화, 과거의 사건에서 사건으로 이어질 뿐인 이야기가 내 관심과 흥미를 끌지 못할 뿐...
다시... mundfaul...

mundfaul...

얼마전 '힐링캠프'에서 작가 박범신 선생이 들려 준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홀로 걷되 함께 가고, 함께 걷되 홀로 가기... 여럿이 등산길을 나서면... 혼자 걷는다. 많은 얘기 나누지 않고 가끔씩 어때? 괜찮아? 정도로 격려하면서... 딱 그 정도가 좋지 않은가? 
말이 너무 많다. 정보가 너무 많다. 지식이 너무 많다. 흰소리들이 너무 많다.
침묵을 견뎌하질 못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적어도 소음이라도 그 공간을 채우고 있어야 한다. 물론... 그게 필요할 때가 있지. 하지만... 역시 문제는 어느 정도냐는 것...
분위기, 상황에 따라 적절한  수위를 조절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지 못하다면... 차라리 말이 적은 편이 나은 것 같다. mundfaul... 
그런 성향 탓인지 비트겐슈타인의 이 말이 좋다. 물론 그는 분명히 다른 맥락에서 한 얘기일 테지만... 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über muß man schweigen...
푹푹 찌는 날씨때문에
겨울을 그리워하다
백석의 시가 생각났다. 나타샤... 
찾아보니 정확한 제목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1935년 발표했다고... 아니 정확하겐 그의 연인 자야(나타샤)와 이별하며 전해 준 시라고... 
나타샤와 함께 흰 당나귀 타고 눈이 푹푹 나리는 산골로 들어 가고 싶은 날이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a senior writer at Newsweek and The Daily Beast"인  Tony Dokoupil이란 양반이 쓴 "Zombie Apocalypse? Could the Internet bring on a face-eating epidemic?"란 글을 읽었다  (잡지 팔아먹으려고 너무 '선정적' '자극적'으로 쓴다는 비판을 얻기도 한... ("Newsweek Writes Sensational Stories to Sell Magazines?").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주는 구절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Last fall Oxford research fellow Susan Greenfield warned that ignoring the way digital experience rewires the brain—literally “blowing the mind”—may one day be akin to doubting global warming. And in a video essay on YouTube, the writer Will Self argued that our wired world is “inherently psychotic,” a place where a single screen hosts both the real and virtual life, with just a mouse click between them. Does the Internet cause insanity? No. But for some vulnerable souls, it may excite their already destructive states of mind."


"it is well established that city living—with its constant noise and lack of solitude—is linked to higher rates of insanity; now research is showing that our nonstop connectivity may duplicate this stress, pushing unsteady minds toward full-blown mental illness."


인터넷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는 상태는 끊임 없는 소음, 홀로 있는 시간의 부족 탓에 도시인들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는... 디지털적 경험이 우리 뇌를 꼬이게 만든다는... 마음에 파멸적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는...

사회학자들은 대부분 근대/현대사회의 핵심적 특징을 독특한 합리성을 갖는 다양한 영역으로의 분화로 꼽는데 동의한다. 문제는... 최근의 변화에 대한 진단이다. 근대/현대 이후인가? 탈근대/탈현대 사회인가? 어떤 단절이 있는가? 본질적 변화를 이야기하는 학자들이 대부분 주장하는 바가 바로 컴퓨터, 통신기술 등의 발달에 따른 네트워크의 역할이다. 더 이상 독립된 영역으로 분화된 사회가 아니라 갈수록 경계가 모호해지는 네트워크사회라는 것. 하지만 네트워크 사회는 복잡성이 더 높아지는 사회다. Dokoupil이 경고하려는 것은 네트워크, 연결성이 가져오는 부정적 영향들이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복잡성,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을 넘어서는... 어쩌면 그런 과잉 복잡성에 직면해서 우리는 정보량의 감축이 필요하고, 기능적 분화 같은 근대적 질서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더 강력하게 요청되는 지도 모르겠다.